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40화 (4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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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차 광고 그리고 유명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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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테이가 수호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괴상해 보이는 선글라스를 꼈고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녀라서 지팡이로 더듬으며 와야 했다.

“수호.”

“......”

수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테이는 그가 있다는 걸 확신하는지 계속 말했다.

“이제 슬슬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드론 말입니까?”

“그래요, 드론이든 뭐든.”

“......”

“2022년 2월. 그 시간은 수호가 태어나기 위해 지켜야 할 시간이잖아요? 이걸 생각하고 전송 기계를 실물 전환한 시기를 앞당기려 했던 거 아니었어요?”

수호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테이는 그런 그가 익숙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 시간이 비틀리면 우리는 당신을 잃을 수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러잖아도 약탈자 놈들이 수호의 능력을 몹시 탐내고 있어서 가뜩이나 불안한데. 그 시간도 지금 불안하다죠? 그곳 시간에서는 3개월도 안 남았다고 들었어요.”

3개월, 그도 알고 있는 바다.

수호는 시선을 테이에게 돌리며 입을 열었다.

“드론은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내일 중으로 보낼 겁니다.”

* * *

테이는 S 호텔에서 묵고 있었다.

그래서 업무 미팅을 하게 되면 장소는 그곳이 되었다.

조금 전에, 계약 문제로 루나를 데리고 S 호텔에 다녀오는 길이다.

내가 모는 차의 보조석에 탄 루나.

그녀는 차창 밖을 보다가 말했다.

“오빠, 요즘 좋은 일이 갑자기 막 생기는 거 같아요.”

“그래?”

나는 무심히 대꾸하며 머릿속으로 유화 그림은 뭐로 그릴지 고민했다.

마땅한 게 떠오르질 않는다.

그러는 동안, 루나는 계속 재잘거렸다.

“과수원 땅에 지어지게 될 건물이 너무 기대되는 거 있죠? 테이 언니의 말대로는 가장 아름다운 집이 될 거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 것 같아요.”

“루나 덕분이지.”

“아녜요. 전 이번에 이것저것 더 많은 걸 배우는 것 같아요. 그래서 행복해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 집이 완성되면 오빠는 거기서 사는 거죠?”

“음, 아마도 그렇겠지. 하지만 건축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까?”

“좋겠다. 거긴 마치 궁전 같을 거예요. 그리고 오빠느은...”

그녀가 말끝을 늘이기에 힐끗 쳐다봤는데, 그 순간 루나는 요정처럼 살풋 웃었다.

“...왕자님?”

“콜록.”

나는 운전하다가 하마터면 사레들릴 뻔했다.

얘는 간질간질하고 오글거릴 만한 말을 이런 식으로 하는지.

잠시 후, 루나가 한강 변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자고 해서 도중에 들렀다.

차에서 내려 편의점 쪽으로 걷고 있는데 루나가 갑자기 내게 말했다.

“오빠, 잠깐 손 좀 줘볼래요?”

“손?”

그렇게 물으면서도 한 손을 내밀었다.

루나는 핸드백에서 작은 핸드크림을 꺼내더니 그것을 조금 짰다.

상큼한 사과 향이 풍긴다.

“아까 오빠가 운전할 때 봤는데요. 손이 거칠어 보였어요. 건조해 보이고.”

“아, 이건 물감을 자주 쓰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아.”

루나는 핸드크림을 자기 손으로 직접 내 손에 발라주었다.

루나의 부드러운 손길이 마치 유혹 같다.

“와, 오빠 손이 되게 커요. 흐흫.”

“네가 작은 거야.”

그렇게 말하다가 루나의 손이 너무 부드러워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루나는 커다란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유난히 밝은 갈색 눈동자가 예쁘다.

그녀는 들고 있던 핸드크림을 떨어뜨렸다.

“아, 미안.”

나는 얼른 핸드크림을 주워주다가 내 시선이 어느 한 곳에서 멈췄다.

저만치 못 박힌 것처럼 우뚝 서 있는 누군가가 보였던 것이다.

그녀는 수연이었다.

왜 저기에 수연이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놀랐는데.

수연이는 내 옆에 선 루나를 보다가 돌아서더니 그대로 가버렸다.

내가 미처 그녀에게 아는 척을 할 새도 없었다.

* * *

저녁 즈음, 작업실에 들어왔다.

얼마 전에 계약한 작업실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캔버스가 있고 물감과 그림 도구만이 어지러이 놓여 있을 뿐.

수연이가 신경 쓰여서 톡을 보내봤지만 읽지 않았다.

내가 그녀와 사귀는 것도 아니고.

그녀가 내 톡을 읽지 않는다고 계속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이제껏 오랫동안 친구였듯이.

그녀와의 관계는 평소와 같이 이어질 거고.

별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음 외에 작업실은 지극히 고요했다.

나는 캔버스를 응시하다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2050 고수.”

내 시야에 반투명하게 나타나는 재능 스탯.

『명화 작가 19레벨

명화 속도 : 6

명화 기교 : 6

초월 창의력 : 9

코인 : 9401.』

코인이 생각보다 많이 모였다.

저번에 기사가 뜬 후로 더 화제가 되어서 내 동영상 조회수도 올랐던 것.

그만큼 사람들이 나에 관해 알게 되고 더 관심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말고도 2050년에서도 코인이 들어오고 있었을 터.

다음 레벨로 업그레이드하는 비용은 16384코인.

그 외에 블랙카드로 긁을 수 있는 금액이 655억 3600만 원이라서.

지금 재능 레벨업이 가능하다.

수호는 이번에 블랙카드 레벨 금액이 다음 레벨로 이월되는 걸 허용해주고 있어서 조금 용이해졌다.

이제 곧 페라리 광고 촬영에서 그림도 그려야 하고, 쉘터도 그려야 하니.

기교를 좀 올려둘까.

쉘터 벙커 건축에 들어가는 비용은 22레벨에서 남은 돈도 있고.

23레벨에서도 남은 금액이 있을 거라서 충분할 듯하다.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명화 기교 레벨업.”

그러자 재능 스탯이 변화했다.

『명화 작가 20레벨

명화 속도 : 6

명화 기교 : 7

초월 창의력 : 9

코인 : 1.』

역시, 코인은 다 빠져나가고 블랙카드도 결제되었는데.

501억 19만 원이 결제되었다.

아마도 블랙카드의 그 금액은 여러 날에 걸쳐서 한동안 결제될 것이다.

까톡!

까톡 알림 소리에 핸드폰을 들었다.

김수호다.

아마도 내가 재능 레벨업을 한 걸 그도 알아챘나 보다.

- 2050 : 고수. 이제부터는 재능 레벨을 업그레이드하는 비용으로 2021년도의 돈보다 코인을 더 많이 의지해야 할 거다.

- 고수 : 하긴 그래야 할 것 같아. 이젠 재능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비용이 어마어마해져서 돈으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더라.

- 2050 : 2050년도에선 적을 제거함으로 얻는 코인이 있지만 2021년도는 오로지 네 명성으로만 코인 수익을 얻어야 해.

- 고수 : 알고 있어.

- 2050 : 얻게 되는 명성은, 때로 질적인 차이가 있을 거다. 그에 따라 너에게 들어오는 코인이 달라질 거야.

- 고수 : 아, 그래?

- 2050 : 네가 쌓는 명성이 고결해질수록 코인은 더 크게 들어올 거다. 그걸 기억해둬.

- 고수 : 알았어.

수호는 용건만 말하고 사라졌다.

좀처럼 친해지기 어려운 녀석이다.

그래도 참으로 이상한 건...

수호를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데다 친밀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데도.

그에 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는데도.

수호는 호감이 느껴지는 녀석이다.

나는 기대가 어린 눈빛으로 하얀 캔버스를 바라보았다.

이젠 한층 향상된 내 기교를 시험해볼 차례.

잠시 눈을 감았다.

문득 전에 영상 편지를 전하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꿈을 그려볼까.

그들의 꿈.

다음 유화 작품으로 완성될 어떤 풍경을 내 마음으로 불러왔다.

아포칼립스를 살아가는 아이에게 아름다운 봄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풍경을 떠올린 거다.

물빛 하늘 아래 솜사탕 같은 꽃구름이 피어올랐다.

나뭇가지에선 연녹색이 잎사귀가 돋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강가를 따라 벚꽃이 무성하게 만발했다.

봄바람이 불자 연분홍빛 꽃비가 내린다.

하늘색과 대비된 빛깔의 꽃잎들.

그리고 동쪽 하늘에선 아침 해가 떠오르고.

창백한 햇살이 드리워졌다.

벚꽃 나무들의 그림자가 늘어진다.

나는 눈을 뜨고 비어있는 캔버스를 응시했다.

이전과 같이 칼날처럼 예리하게 벼려진 천재의 시선이 아니다.

비어있는 캔버스가 아니라 마치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처럼.

내 시선은 한없이 부드럽고 온화하다.

연필을 잡은 오른손을 들어 스케치를 시작했다.

* * *

며칠 후, 어느 건물 내부의 드넓은 공간.

사전에 허락된 몇몇 기자가 이미 들어와서 아까부터 대기하고 있었다.

그 외에 스태프들과 관계자들.

그들 중에는 외국인들도 제법 있다.

카메라 몇 대가 돌아가고 있고, 사람들은 기대감이 어린 눈빛으로 서성였다.

오늘은 페라리 광고 촬영이 있는 날이다.

요즘 너무도 핫한 애플 수의 광고 촬영을 하는 거라서 김주혜는 기대되는 마음으로 여기에 왔다.

그녀는 카메라맨으로 따라온 선배에게 입을 열었다.

“캔버스가 꽤 큰데요?”

“그러네. 저 사이즈를 하루 동안 작업한다고 하던데.”

“페라리 측에선 꽤 높은 퀄리티의 그림을 요구할 텐데. 극사실주의 그림을 저만한 사이즈로 가능할까요? 극사실주의 그림은 시간이 되게 오래 걸린다던데.”

“글쎄.”

“난 솔직히 애플 수의 인기는 거품이 든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봐야 알겠지.”

“애플 수가 천재 작가라는 건 인정하긴 하는데. 작업 속도는 왠지 사기 같아서.”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변을 훑어보았다.

스태프들이 대화하는 말도 언뜻 들어보면 그런 내용이다.

“설마 사람이 그 정도로 손이 빠르겠어? 영상에서 보인 그 정도는 아닐걸.”

“근데 애플 수 작가 소문대로 잘 생겼을까? 키는 크던데.”

“얼굴은 그닥일 것 같아요. 잘 생겼으면 드러내지 왜 숨기겠어요?”

“그나저나 애플 작가는 언제 오는 거예요?”

“지금 대기실에 있대요. 곧, 나올 거예요.”

그때 촬영장 분위기가 동요했다.

누군가가 외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애플 작가 온 모양인데요?”

문이 열리고 이진구가 먼저 나왔다.

그는 마스크를 하고 모자를 쓴 모습이었다.

김주혜는 그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저 남자가 애플 수인가 봐요.”

이진구는 바짝 얼은 표정으로 나오면서 뒤에 선 고수에게 투덜거렸다.

“어우씨, 내가 너보다 더 떨리냐? 수능 때보다 백만 배는 더 떨리네. 청심환먹어도 소용이 없어.”

김주혜와 함께 있던 카메라맨이 말했다.

“아냐. 애플 수는 저 남자 뒤에 선 사람인 것 같은데?”

김주혜는 고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블랙진에 블랙 런닝화를 신고, 블랙 색상의 얇은 목티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색 가면을 썼다.

이번엔 모자를 쓰지 않아서 숱 많은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키는 182나 183센티 정도.

모델 체형을 지녔다고 하더니 팔다리가 길쭉하고 비율이 좋긴 했다.

군살도 거의 없다.

가면 탓에 그의 얼굴이 조금도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매력적.

어쩌면 가면을 써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김주혜는 고수와 스치듯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녀도 모르게 심장이 쿵 하는 느낌이 들고 말았다.

이 나이에 아이돌 보고 가슴이 뛰는 것도 아니고.

방금 뭐였지? 하며 김주혜는 내심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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