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39화 (39/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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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차 광고 그리고 유명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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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 안 청소를 다 한 후,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결국, 얼마 전에 강재에게 전화해서 65인치 벽걸이 TV를 배송받았었다.

소파에 앉아 봉지 커피로 탄 라떼를 마셨다.

오랜만에 누리는 여유 시간.

까톡!

그때 AI 2050에게서 톡 메시지가 왔다.

- 2050 : 고수님, 23레벨 그림을 실물 전환한 영상이 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 고수 : 응, 볼게.

내가 답하자 2050은 영상 파일 하나를 첨부해왔다.

수호가 그림을 실물 전환하는 광경을 보는 건, 매번 나 역시 기대가 되는 부분.

그 영상을 볼 때면 뭉클할 때도 있어서, 피땀 흘려 그린 그림이 한순간에 영영 사라져버릴지라도.

전혀 아깝지 않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는 영상 파일을 열었다.

그러자 이제는 익숙해진 쉘터 풍경이 먼저 보였다.

쉘터 건물과 내가 그려서 실물 전환한 방어벽.

그리고 어둡게 변색 된 땅.

주변의 기괴한 식물들.

핏빛으로 물든 하늘.

영상 속의 하늘은 여느 때보다도 유독 불길하게 붉다.

하늘이 저토록 핏빛일 때, 적들이 강해진다고 언젠가 들었었다.

저런 곳에서 살면 누구든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의외로 쉘터민들의 표정에는 희망이 서려 있다.

초라하고 초췌했지만 그들의 눈빛엔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었다.

아마도 수호와 내 능력 때문일 거로 여겨졌다.

이번에는 종이에 인쇄된 그림이 보이질 않는다.

다만 내 그림이 3D 대형 디스플레이에 나타났다.

그림을 본 쉘터민들은 다들 눈이 커다래졌다.

"오!"

마치 실물을 보는 듯한 선명한 초록빛.

생명력이 느껴지는 보드라운 땅.

그림 같지 않게 생생하고도 싱그러운 자연이 느껴진다.

내가 그린 것을 보고 감탄하기는 뭐한데.

저 그림, 대박이긴 하다.

그런데 쉘터민들은 저게 뭐라고 격렬한 감동을 했다.

“역시 고수!”

“세상에, 저걸 그려내다니.”

“너무 아름답습니다!”

“저 풍경을 내 생전에 다시 보게 되는 것만으로도 나는 여한이 없어요!”

어떤 아이가 소리쳤다.

“사랑해요! 고수 아저씨! 존경해요!”

사람들의 반응에 내 팔뚝은 소름이 돋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저들이 저토록 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내 그림의 예술성에 감동한 게 아니라는 것을.

저들은 자연 그 자체에 감동한 거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들.

작은 벌레가 기어 다니는 흙.

그 속에서 피어난 잡초나 들풀들.

그리고 초록빛 무성한 나무.

생명력이 스며있는 그 모든 것.

사람들은 그런 것에 감동한 것이다.

이제는 그 당연한 것들이 황금보다 더 귀해져 버렸기에.

그때!

쿠구구구구-

어마어마한 진동이 느껴지고.

공중에서 영상을 찍던 드론도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러다 영상이 도중 끊어지고 다시 이어졌다.

나는 심각해진 표정으로 영상을 보다가 잠시 멈추고, 2050에게 물었다.

- 고수 : 2050. 방금 영상 봤는데. 도중에 끊기는 것 같던데, 뭐지?

- 2050 : 그 순간에 잠시 전투가 있었습니다. 작은 전투라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 2050 : 전투가 있었던 광경은 전부 편집했습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맞다. 저곳은 이곳과 다르지.

저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그런 곳이었지.

잠시 잊고 있었다.

- 고수 : 피해는? 작은 피해라도?

당연한 듯하게 말을 걸어오곤 하던 수호.

그의 안위가 항상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언제부터인가.

내 이득 때문이 아니라 그의 안위가 진심으로 걱정이 되곤 했다.

나는 형제가 없지만 마치 형제를 걱정하듯.

- 2050 : 피해는 없습니다. 이런 건 이곳에선 일상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 2050 : 이젠 익숙해져서 작은 전투는 코인을 얻을 기회라고 여깁니다. 이전과는 달리 방어벽과 훌륭한 방어 시스템이 있어서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그런 거라면 다행이다만.

평화로운 일상에 익숙한 나는 직접적인 전투를 보지 않았음에도, 괜히 마음이 동요한다.

나는 영상을 마저 봤다.

이어진 영상은 다른 시간대인 것 같다.

3D 디스플레이에 나타난 내 그림.

그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사람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이번에도 성공이야!”

“김수호! 정말 이건 경이로운 능력이에요!”

영상을 촬영하는 드론이 공중으로 더 높이 떴는지.

쉘터의 풍경이 전체적으로 화면에 다 들어왔다.

쉘터 방어벽 근처 땅까지.

시커멓던 흙은 내가 그린 그림대로 바뀌어 있었다.

초록빛 풀이 돋아나 있다.

영상이 거기서 끊겼다가 다시 장면이 전환되었다.

그곳은 쉘터 내부인 것 같다.

한 아이가 천진한 얼굴로 나와서 카메라를 향해 팔을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고수 아저씨, 존경해요! 수호 아저씨만큼이나 존경해요! 우리 엄마 아빠가 그러셨어요. 고수 아저씨 때문에 사람들이 꿈을 꾼대요. 옛날처럼 대통령 되는 꿈, 의사 되는 꿈이 아니라... 무서운 건 다 사라지고, 하늘에 새가 날아다니고 산과 강물이 푸른 그런 세상을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대요.”

아이는 어디론가 보다가 배시시 웃었다.

그곳에 부모가 있는 모양이다.

아이는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수호 아저씨가 실현할 수 있도록 우리의 꿈을 그려주셔서. ”

영상은 끝이 났다.

저 아이의 천진한 미소는 내게 각인될 것 같다.

나는 소파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잠시 그러고 있는데 까톡 알림이 울렸다.

까톡!

김수호에게서 온 톡이다.

- 2050 : 고수.

- 고수 : 응, 말해.

생각해보니 이 녀석과도 엮인 지 몇 달이 지난 것 같다.

벌써 계절이 바뀌었고 또다시 계절이 바뀌려 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수호에 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내가 아는 건 나이와 이름뿐.

이놈은 나에 관해 거의 모든 걸 아는 것 같던데.

- 2050 : 24레벨에서 그릴 쉘터 이미지는 아직 나오지 않았겠지만. 쉘터에 들어갈 방어 시스템은 내가 사진을 가지고 있으니, 보내주지.

- 2050 : 몇 가지를 미리 그려두면 나중에 수월할 거다. 그리고 24레벨 마감일은 당분간 정하지 않겠다.

- 고수 : 근데 아이가 나오는 영상 편지. 그거 누구 아이디어야? 생각지 못하고 있다가 되게 감동했네.

- 2050 :

- 고수 : 그 아이의 미소가 계속 뇌리에 맴돌아. 나중에 결혼하면 그런 아들 낳으면 딱 좋겠다. 넌 결혼 안 했지? 조카는 있냐?

- 2050 : 아들? 네가 그런 생각을 했었군.

- 고수 : 응?

내가 물었지만 수호의 톡은 한참만에 왔다.

- 2050 : 만약에... 너에게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하겠나?

- 고수 : 무슨 상황?

- 2050 : 너에게 3살이 된 아들이 있어. 그리고 아이의 엄마가 있지.

평소 수호답지 않은 말.

- 2050 : 아이 엄마는 홀로 아들을 안고 있고. 다른 한 곳엔 수백 명의 사람이 한곳에 몰려 있어. 너는 두 가지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 2050 :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모두 죽게 될 것이지만.

- 2050 : 너는 어떤 길을 선택할 거지?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 고수 : 왜 그런 질문을 하지? 나는 아직 아내와 아이가 없기도 하지만. 그런 질문은 별로 답하고 싶지 않은데.

- 2050 : 그래, 그렇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

세상 사람보다 가족이 더 중요한지 묻는 질문인가?

그게 아니면, 내 미래에 뭔가 있어서 저런 질문을 한 건가?

- 고수 : 혹시 내가 나중에 아들을 낳게 되는 거냐? 너 내 미래를 알고 있을 거 아냐.

- 2050 : 조금 전의 질문은 내가 괜한 질문을 한 거다. 잊어.

- 고수 : 이게, 말해놓고 잊으래.

- 2050 : 전에도 말했지만 너는 아직 일어나지 미래 일에 얽매이기보다, 현재에 충실해야만 한다. 내가 말해준다 해도 어차피 그 미래는 이루어지지 않을 일.

수호는 그렇게만 말하고는 더는 말이 없었다.

* * *

며칠이 흘러갔다.

주말 오후, 나는 수호가 보내준 자료 사진을 1차 완성해서 2050에게 보내고는 외출했다.

이모부가 골라준 작업실을 보러 나왔는데.

진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수야, 나 지금 계약하러 간다. 페라리 관계자들 만나러. 내가 주말에 시간이 나서 주말에 날짜를 잡았었어.>

“잘 부탁한다, 진구야.”

<조만간 페라리 광고 촬영 날짜가 잡힐 거야. 네가 표현해야 할 이미지에 관해 미리 염두에 두고 있어. 페라리는 강력하고 과격하며 도발적인 이미지야.

가장 섹시한 스포츠카이기도 하고 럭셔리하지.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너도 섹시하고 강한 모습으로 표현될 것 같아.>

“섹시? 갑자기 손이 오그라들 것 같은데.”

<오그라들어도 넌 그런 이미지로 나올걸? 페라리가 맹수처럼 질주하는 모습.

네가 겁나 빠르게 그림 작업하는 모습과 겹쳐지게 될 것 같고. 암튼 그런 이미지인 것 같아.>

“음.”

<받아들여, 고수. 흐히히. 근데 웃기긴 하다.>

“웃지 마라.”

<그래도 네 이미지도 그렇고 그림도 분명 멋지게 나갈 거니까. 걱정 마. 기사도 오늘 뜨게 될 것 같고. 네 인지도 많이 오를 거야. 그럼 이만 끊는다.>

나는 전화를 끊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살다 살다 내가 TV 광고까지 찍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물론 얼굴은 안 나오고 그림 그리는 모습만 촬영되긴 하겠지만.

뭐, 이걸로 명성이 생길 거고.

코인이 많이 들어올 테니 그거면 되었다.

통화를 끝내자 나를 안내하던 30대의 젊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여긴 공방이나 작업실로 손색없어요. 바닥에 난방도 들어옵니다. 어떠신가요?”

그는 이모부가 보낸 직원이었다.

이모부는 바빠서 대신 다른 사람을 보냈던 것.

나는 작업실 공간을 둘러보며 물었다.

“여긴 몇 평이죠?”

“18평입니다. 매매가는 6억이고요. 사무실 용도로 써도 되고. 여긴 오래되지 않아 깔끔한 편입니다. 조용하고 주변 상권도 괜찮고요.”

“네, 그럼 여기로 계약할게요.”

“어? 다른 곳은 더 안 둘러보세요?”

내가 간단하게 정해버리자 그 남자는 당황한 얼굴이다.

“여기도 괜찮은데요? 깔끔하고 위치도 집에서 가깝고. 제가 다른 날은 다른 일로 바빠서요. 오늘 계약 진행하고 싶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진행할 수 있는지 여기 주인에게 연락해볼게요.”

그가 전화를 거는 동안, 걸음을 옮겨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창밖을 내다보니 아래 거리가 보였다.

이곳은 빌라가 모인 주택가라서 조용한 편이라 괜찮을 것 같다.

“지금 계약하러 오시겠답니다.”

“잘 되었네요.”

* * *

수호는 시선을 들어 쉘터 건물을 올려다봤다.

그의 눈에 쉘터 건물의 이상 현상이 감지되었다.

쉘터 건물이 찰나의 순간 약간 흐릿해졌다가 돌아오는 현상이 두 번째로 목격되었다.

이곳 쉘터에 머무는 과거가 달라질 기미를 보이는 거다.

드디어 이곳의 시간이 뒤틀려서 흐르게 되는 것.

오직 그만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혹시, 죽었던 사람도 다시 살게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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