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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38화 (38/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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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스마트하고 아름다운 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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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까지 작업하고 다시 잠들었다가 낮 12시에 일어났다.

테이와 만나는 약속 시간이 2시라서 나는 후다닥 준비를 했다.

급하게 샤워하고 면도하고 셔츠와 바지, 늦가을 반코트를 걸쳤다.

어느덧 날씨가 쌀쌀해졌다.

아우디를 끌고 ‘라멘 사랑’ 앞으로 갔다.

한나, 루나 자매를 밖에서 만나는 건 처음.

저만치 그녀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늘 일상적인 모습만 보다가 화장하고 차려입은 그녀들을 보니까 꽤 예쁘다.

평소에도 그녀들의 미모는 매력적이었지만 오늘은 더 예쁜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괜히 설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차의 앞문이 열리며 루나가 보조석에 탔다.

머리를 길게 풀고 원피스와 트렌치코트를 입은 그녀.

“와, 오빠. 오늘 멋있어요.”

“너희도 예쁜데?”

그렇게 대꾸하긴 했지만, 막상 말을 내뱉고 보니 괜히 어색했다.

여자에게 예쁘다, 라는 말을 잘 하질 못할 때가 있다.

약속 장소인 S 호텔로 향하는데 루나는 캔디를 하나 꺼내더니.

차가 잠시 멈춰있을 때 내게 말했다.

“오빠, 아 해 봐요.”

“아.”

그녀의 말에 입을 조금 벌리자 캔디를 잡은 루나의 손가락이 다가오더니.

내 입안에 캔디를 쏙 넣어 주었다.

그러자 입안에 달콤함이 퍼지고, 동시에 내 마음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스치듯 내 입술을 건드렸을 때,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게 했던 것이다.

루나는 뒤에 앉은 한나에게도 캔디를 건넸다.

그러고는 기분 좋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날씨 너무 좋아.”

* * *

호텔 라운지 카페.

그곳에서 테이를 만났다.

그녀가 자켓을 벗자 몸의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나는 얇은 블라우스 차림이 보였다.

그녀의 둥근 가슴선은 남자라면 시선을 끌만 했다.

자신감 넘치고 세련되어 보이는 스타일.

하지만 나는 도망친 노비 같았던 행색의 미래 사진을 봐서 그런가.

매력 넘치는 테이의 모습을 봐도 별다른 느낌이 들진 않았다.

테이는 붉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루나 씨, 생각보다 나이가...”

“제가 어려 보이는 편이에요.”

“네, 그렇겠죠.”

나는 루나에게 힐끔 시선을 주었다.

루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게 보였다.

설계도 때문에 저런 눈빛을 하는 건가.

하지만 저 눈빛은 뭔가 선망의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인데.

“근데 언니, 너무 멋지세요. 저도 미라클 쉘터스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언니는 그 회사에서 높은 사람이네요. 우아.”

루나야, 여긴 팬미팅 자리가 아니야.

한나가 차분한 태도로 테이에게 질문했다.

“미라클 쉘터스는 지하 벙커를 주로 제작하는 회사인가요?”

테이는 긴 왼쪽 다리를 살짝 들어 꼬면서 답했다.

“지하 벙커만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지하 벙커를 이용한 건축도 하고 있어요.”

“원래 벙커는 군사 용도로 사용되는 거 아닌가요?”

“일반 가정에서도 지하 벙커 주문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요즘 저희 회사의 매출이 수직 상승하고 있어요. 수년 전에 대형 허리케인이 강타하는 바람에 개인 벙커 판매가 급증하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북핵으로 전쟁 우려가 생기자 의뢰가 늘기도 했어요.”

“저는 개인이 지하 벙커를 구매하고, 그걸 전문으로 제작하는 회사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네요.”

한나의 말에 테이는 붉은 입꼬리를 미미하게 올렸다.

“저희가 제작하는 벙커 형태는 비슷해요. 벙커 내부에는 주방, 침실, 샤워실, 거실까지 다 갖춰져 있죠.”

“아.”

“2년 치 비상식량과 물이 저장되어 있어요. 물론 정수 시설도 가능하고요. 고급형 벙커는 내부에 풀장, 볼링장, 피트니스 센터까지 갖춰져 있어요. 하지만...”

테이는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고수 씨의 의뢰로 건축하게 될 벙커 쉘터는 우리가 이제껏 건축하고 제작해 왔던 형식과는 많이 다를 거예요. 어쩌면 이번에 제가 만들게 될 건축물은 다시 없을 역작이 될 거예요. 우리 회사로서도 고수 씨는 최고의 VIP 고객이기도 하고요.”

“고수 씨가요?”

한나가 나를 쳐다본다.

테이는 여유로운 태도로 계속 설명했다.

“고수 씨의 의뢰로 건축하게 될 건물 외관은 물론 실내 인테리어까지, 현대적 이면서도 귀족적이고 우아한 저택 건축물이 될 거죠. 상류층 가정을 위한 고급 건축물이 되는 거예요. 평상시에는 외부인이 방문해도 그 건물이 쉘터 용도인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요.”

“벙커 쉘터를 짓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그런 건물이 우아한 저택이 될 거라고요?”

“네. 건축물의 기능은 최첨단일 것이고 그 무엇보다 강력하고 견고할 겁니다.

지하에는 핵폭발도 견디는 거대한 벙커가 있을 거고요.”

테이는 그렇게 말하다가 인쇄된 설계도면을 훑어보았다.

“이게 완성된 설계도군요.”

루나가 답했다.

“네.”

“그러는 의미에서 이루나 씨의 설계도면은 훌륭해요. 웬만한 전문가보다 나아요. 제가 아름다운 저택과 같은 쉘터를 생각하게 된 건 이루나 씨 설계도면 덕분이었어요.”

“정말요?”

루나의 뺨이 복숭아빛으로 물들며 상기되었다.

이후, 테이는 루나에게 한동안 설계도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이런 말을 했다.

테이는 검지로 설계도면의 몇 군데를 가리켰다.

그녀의 화려한 손톱이 시선을 끌었다.

“여기 이 부분하고, 여기, 또 여기. 몇 군데 수정 좀 할게요. 그래도 괜찮죠?”

“수정이요?”

“루나 씨가 설계한 걸 바꾸는 건 아녜요. 다만 몇 가지를 보강할 뿐이에요.”

“네. 그런 거라면 수정하셔도 돼요.”

“그럼 오늘 할 이야기는 끝난 것 같네요. 이제부터는 고수 씨와 할 말이 있어서 자리 좀 비켜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러자 한나는 루나를 데리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네, 그럼 저희는 먼저 일어날게요.”

하지만 루나는 재빨리 테이에게 물었다.

“혹시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렇게 오래는 안 걸려요.”

테이가 훗 하고 웃으며 답하자 루나는 내게 고개를 돌렸다.

“오빠, 저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여기 치즈케이크 맛있대요. 그거 먹으면서 기다려도 되죠?”

“응. 괜찮다면 기다려도 돼.”

루나는 생긋 웃었다.

“네, 오빠.”

그러더니 루나는 테이를 향해 90도로 인사했다.

“오늘 만나서 영광이었어요, 언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한나와 루나는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테이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테이는 그녀들을 보다가 재밌다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이루나 씨, 귀엽네요.”

“네, 그렇죠.”

“그래서 고수 씨는 저 둘 중에 어느 쪽이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반문이 튀어나갔다.

“네?”

“둘 다 미인이던데. 한나 씨는 차분하고 여성스럽고. 루나 씨는 발랄하고. 제가 관상 좀 볼 줄 아는데요.”

“......”

“고수 씨, 여자들이 따를 상이네요.”

“설마 그 이야기 하려고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신 건 아니죠?”

“호호, 물론 아니죠. 내가 너무 짓궂은 질문을 했나요? 미안해요. 제가 잠시 고수 씨와 이야기하자고 한 건...”

테이는 바로 사과하며 본론을 꺼냈다.

그녀는 설계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좀 전에 루나 씨에게 얘기했던 부분이요. 거긴 2050년도에선 방어 시스템이 들어가야 해요. 저택의 가장 윗부분, 이곳이요. 이곳은 금속 유리로 지붕이 덮어질 거예요.”

“금속 유리?”

“네, 미래에 제조 가능해진 금속인데, 이게 유리처럼 투명해요. 빛을 투과하죠. 강도는 강철보다 단단하다더군요. 녹도 안 슬고. 근데 좀 귀한가 봐요.”

“그래요?”

“그리고 이게 변색도 되어서 필요에 따라 블랙 색상이 되었다가 투명해지기도 해요.”

“신기하군요.”

“이런 시설로 태양 에너지를 받는 공간을 보호하는 거예요. 이런 시설은 2050년도 쉘터에 적용해야 할 거라서, 고수 씨가 그림을 그릴 때 착안해서 그려야 해요.”

“그럼 현재 짓게 될 건물은 이런 시설이 없는 건가요?”

“네. 이런 시설을 할 여건이 아직 이곳은 되지 않기도 하고. 대신 공간만 확보해둘 거예요. 그리고 여기, 여기. 이런 곳은 방어 시스템이 있어요. 감시, 방어 전부 돼요. 또 미래에는 잿빛 폭풍이라는 이변이 생겨서 치명적인 독물질이 모든 곳에 침투하게 되나 봐요. 그걸 견디고 정화할 만한...”

테이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결론은 이러했다.

내가 세밀하게 그려야 할 2050년도 쉘터의 그림이 따로 있었다.

그리고 2021년도 건물 설계가 별개로 존재하게 될 거였다.

테이는 내게 말했다.

“수호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2021년도에 건축하게 될 그 건물은 쉘터가 아니라 그저 안전한 집이 될 거라고. 2024년도의 아포칼립스는 분명히 오지 않게 될 거라고.”

“......”

“무엇 때문에 그가 그렇게 확신하며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어요. 하지만 그의 그러한 확언은 조건이 붙더군요. 2024년도에 아포칼립스가 오지 않으려면...”

그러면서 테이는 나를 직시했다.

전에도 느꼈지만, 그녀의 눈빛은 뭐랄까.

되게 직선적이고 강하게 느껴졌다.

“모든 방법을 다해, 당신을 도우라고 했어요. 그게 우리의 불행을...”

테이는 문득 말을 멈추었다.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녀는 감정을 다스리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 불행을 막을 길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테이의 눈에서 돌연 굵은 눈물방울이 뚝 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테이는 자기도 당황스러웠는지.

“어라? 왜 갑자기 눈물이...”

그녀는 손가락으로 눈가의 눈물을 닦았다.

그런데 미세하게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리누르고 있던 어떤 감정이 갑자기 터져 올랐나 보다.

미래의 그녀는 아마도 엄청난 충격과 극심한 불행을 겪었을 것이고.

시력과 왼쪽 팔 말고도 많은 걸 잃게 된다는 것을.

현재의 그녀는 아마도 알고 있나 보다.

미래의 그녀가 현재의 그녀를 설득했다고 했으니.

그녀만이 아는 뭔가를 공유했을 것이다.

그것은 감정일 수 있고, 그녀의 삶일 수도 있다.

뭔가 조금씩 바뀌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한나와 루나의 삶이 불행을 피하게 되더니.

테이의 운명도 이제 다르게 흘러가게 될 듯하다.

나는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오늘 손수건을 가져와서 다행이다.

테이는 손수건으로 대충 눈가를 두어 번 눌러 닦다가.

잠시 흐트러졌던 감정을 움켜쥐듯 내가 줬던 손수건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금세 평정을 되찾고 내게 말했다.

“...그래서 저는 강하고 아름다운 역작을 만들 겁니다. 수호 씨의 말대로, 이 세상에, 아포칼립스는 오지 않게 될 겁니다. 그러니 쉘터가 아닌 안전한 집.

가장 스마트하고 아름다운 집을 이제부터 만들 겁니다.”

“예. 물론입니다. 아포칼립스는 오지 않게 될 겁니다.”

“곧, 최고의 인재들을 불러모을 거예요. 그래서 최고의 팀이 이번 일을 수행하게 될 겁니다. 조만간 계약이 진행될 거고. 고수 씨는 ‘미라클 쉘터’의 VIP니 회사 측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고수 씨. 미라클, 기적을 만들어 보죠. 우리 잘해봐요.”

그러면서 테이는 내게 악수를 청했다.

* * *

다음날, 아침.

오랜만에 집안 정리를 하면서 근처에 작업실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는 재능 레벨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블랙카드의 금액을 쓰는 일이 자유롭진 않았는데.

이제는 명성으로 코인을 쓸 수 있는 것도 생겨서 블랙카드를 쓰는 일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작업실을 알아봐도 될 것 같다.

월세가 아니라 매매로 구해도 될 터.

나는 핸드폰을 들어 어제 AI 2050에게서 받은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 고수님의 그림을 분석한 결과, 블랙카드의 레벨이 24레벨로 상승합니다.

현재 23레벨에서 긁을 수 있는 금액이 655억 3600만 원.

이젠 블랙카드로 긁을 수 있는 금액을 보면 좋다기보다...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수호 녀석, 어쩌려고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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