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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스마트하고 아름다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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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밤, 나는 간만에 휴식하며 침대에 앉았다.
그러면서 다음 작품은 뭘 그릴까 고민했다.
능력을 올리고 나서 첫 유화 작품은 황금 나무.
두 번째는 하늘 호수, 그다음엔...
까톡!
그때 김수호에게서 톡 메시지가 왔다.
- 2050 : 고수.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손가락을 움직여 메시지에 답했다.
- 고수 : 응, 말해.
- 2050 : 내일 오전 11시, 인천공항. 네가 만날 사람의 프로필은 정테이, 30세. 현재 LA에 있는 지하벙커 제작사 ‘미라클 쉘터스’에서 근무.
- 고수 : 정테이 사진은?
내가 묻자 김수호는 사진 한 장을 첨부했다.
그걸 열어본 나는 쓴 표정을 지었다.
엄청 특이한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반백의 초라한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길러서, 도망친 노비 행색이다.
선글라스가 두껍고 얼굴을 많이 가리고 있다.
- 고수 : 이걸 사진이라고 보낸 거냐? 이 사진으로는 알아보기 힘들 것 같은데.
- 2050 : 그쪽이 널 알아볼 거다.
- 고수 : 흠. 그래, 알았어.
나는 핸드폰을 내려두고 반쯤 감긴 눈으로 그림을 생각하다 잠들었다.
* * *
다음날 점심 무렵, 나는 정테이와 함께 식사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예약해 두었던 한정식집 룸 안에서.
내 앞에 마주 앉은 정테이는 놀랍게도 여자였다.
수호가 보내줬던 사진과 너무 매치가 안 되어서 조금 당황스럽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는 키가 크고 세련된 모습.
약간 긴 커트 머리였는데 되게 여성스럽게 잘 어울렸다.
아마도 턱선과 목선이 가냘픈 편이라서 그런가.
붉게 바른 립스틱은 그녀가 강한 성격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고수 씨는 사진으로 봤던 대로 잘 생기셨네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어제 수호가 보내줬던 사진을 떠올렸다.
30년 가까이 되는 세월이 얼마나 파란만장했기에.
사람이 그토록 변한 건지.
사진만 보고서 약간 왜소한 남자인 줄 알았다.
“내일 쉘터 설계한 사람을 같이 만났으면 합니다.”
“설계도면 미리 볼 수 있어요?”
“아직 완성이 안 된 상태라서요. 곧 완성될 겁니다.”
“상관없어요. 완성이 안 되었어도. 어떤 설계도면인지 미리 보고 싶네요.”
그녀의 말에 나는 핸드폰으로 가지고 있던 설계도를 보내주었다.
이윽고 종업원이 음식을 내왔지만.
정테이는 음식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고 내가 준 설계도만 태블릿으로 살펴봤다.
“흠. 조금 다듬어져야겠지만 훌륭하네요. 틀에 얽매이지 않은 게 마음에 들어요.”
“그래요?”
“비상한 아이디어를 지닌 친구인가 봐요?”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따뜻한 감성을 지닌 사람인 것 같네요.”
“설계도면만 가지고 그걸 알 수 있어요?”
그러자 테이는 싱긋 웃었다.
“보통 쉘터를 주문하는 사람들, 자기 가족이나 지인을 위해 안전한 장소를 마련하고 싶어 하죠. 철저하게 방어적이고 폐쇄적이죠. 이 도면의 쉘터도 그런 부분이 있긴 해요. 근데...”
“......”
그녀는 내 눈을 직시했다.
“이 도면의 쉘터는 다른 쉘터와 다르게 폐쇄적이지 않고 열려 있다는 느낌이 네요. 언제든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도와줄 수 있을 만한 기능이 설계에 스며있어요.”
“그렇군요.”
“저는 수호라는 사람에게 부탁받았어요. 고수 씨가 건네는 설계로 쉘터를 건 축하되, 몇 가지 부분을 보완하라고.”
“그게 뭐죠?”
“미래 기술이요.”
아, 미래 기술...
“앞으로 사람을 위협하게 될 몇 가지 요소를 방어할 만한 기능을 쉘터에 추가 하는 거죠.”
“예.”
“근데 참 흥미로운 건요. 그 미래 기술이 온전하지 않더군요.”
“그래요?”
테이는 젓가락을 들고 반찬 중에서 샐러드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그 온전하지 않은 이유가 나 때문이었어요.”
“테이 씨 때문이라고요?”
“수호 씨 쉘터에 2050년도에 있는 기술자가 나뿐인데. 미래의 나는 미래 지식이 있어도 그걸 실현할 수가 없어요. 그 시기의 나는 이미 시력을 잃었고 큰 충격을 겪은 상태라 지금의 나만큼 총기가 있지 않거든요. 미래의 나는 미래의 앞선 기술지식이 있어도 그걸 온전히 실현해낼 능력이 없는 거죠.”
“......”
그녀는 자신에 관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달라요. 저는 건축 능력만이 아니라 쉘터에 필요한 첨단 기술을 지닌 사람이거든요. 후후, 미라클 쉘터 회사가 저 덕분에 돌아가고 있다고 이해하시면 될 거예요.”
테이는 자신감으로 빛나는 사람인 듯했다.
“사실, 저는 해외 쉘터 제작으로 먼 이곳까지 출장을 오는 사람이 아닌데. 내 인생이 걸린 일이라 내가 직접 올 수밖에 없었네요. 제가 꽤 고급 인력이거든요.”
“예, 테이 씨가 직접 와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암튼 저는 몇 가지 미래 지식을 얻은 게 있어요. 그걸로 완벽하게 미래 기술을 장착한 쉘터를 완성해낼 수 있어요.”
나는 수저를 들고 밥 한술을 떴다.
테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처음엔 미래에서 누군가가 말을 건넨다는 사실이 참 혼란스러웠는데. 지금은 놀랍고 흥분이 되기도 하는군요.”
“수호가 테이 씨를 설득한 건가요?”
“아뇨. 나를 설득한 사람은 나였어요. 미래의 나요.”
“아.”
“완전 소름이 돋던데요.”
나는 겸연쩍게 웃었다.
“그러셨겠네요.”
“내일 만나게 될 분이 기대되네요. 그 사람은 이름이 뭐예요?”
“이루나. 이루나 씨입니다.”
“아, 역시... 여자분이셨군요. 섬세한 감성도 있다 여겼어요. 아마도 완성될 쉘터는 쉘터라기보다 커다란 집이 될 것 같네요.”
“집이요?”
“네. 지하에 벙커 시설이 있고 지상은 방어 기능이 있는 스마트한 집이요. 최첨단 스마트 홈 시설이 된 커다란 집이 되는 거죠. 방이 아주 많은 집이 되겠네요, 호호. 그래서 아포칼립스...라는 게 오지 않더라도 당장 사람이 들어가 거주해도 되는 저택 같은 집이 되는 거죠.”
“그렇군요.”
테이는 말하다 보니 혼자 열정이 솟구쳤는지 눈을 빛내며 말을 늘여놓았다.
“음... 이왕 짓는 거 정원도 꾸미면 좋겠네요. 외관 디자인도 이왕이면 세련되어야 하고. 아, 수호 씨가 그랬다던데요. 돈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고수 씨가 돈이 아주 많다고.”
“하하.”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 돈이 김수호 덕분에 나오는 거긴 하지.
테이의 말은 그 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그녀는 열정과 아이디어가 넘치는 여자였다.
그리고 그것만큼 말도 많았다.
* * *
내가 아우디를 몰고 양평 집에 도착했을 무렵, 진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수야, 어제 얘기했었는데.>
“어제?”
<어젠 그쪽이 금요일이었을 걸? 어제 네가 말한 내용대로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어.>
“그래?”
<근데 페라리 쪽에서 되게 호의적이야. 지금 이 순간에도 네 영상이 어마어마하게 조회수가 올라가고 있어서인 것 같아. 해외 유입도 전보다 더 늘었고.
흐흐, 우리가 갑이다!>
나는 차에서 내리며 그를 따라 웃었다.
“흐흐.”
<거기서 곧 계약서를 보낼 거래.>
“수고했네.”
<수고했지. 계약할 때는 내가 대리인으로 진행하기로 했고. 너에게는 처음에 제안했던 대로 페라리 신차 모델을 주겠대. 그 차가 4억 정도 한다던데. 광고 계약 기간이 유지되는 동안 탈 수 있는 조건으로. 그 외에 광고 출연료도 있고.>
“그래, 알았어.”
<계약서 오면 번역해서 보내줄게. 잘 훑어봐. 그리고...>
“응.”
<조만간 기사도 뜰 것 같아. 애플 수의 그림이 페라리 광고에 등장하게 될 거라고.>
“음, 진구야. 고맙다. 번역하는데도 시간 제법 걸릴 텐데. 조만간 수고비 챙겨줄게.”
<흐흐, 기대하고 있다. 끊는다.>
나는 통화를 마치고 현관문이 열려 있는 집을 바라보았다.
그림을 보관하고 있는 지하실은 내가 잠가둬서 아마도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했을 거다.
이모와 이모부가 와 있는 듯하다.
주차장에 이모부의 차도 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이모부도 온 모양.
이삿짐은 다 들어온 건가?
포장 이삿짐센터 차량은 없네.
이삿짐이라고 해봤자 짐은 별로 없었을 터.
대전 집에 있던 물건은 낡아서 많이 버렸을 거다.
까톡!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수호에게서 톡 메시지가 왔다.
그의 톡을 확인하니.
- 2050 : 고수. 쉘터의 모든 설계가 완성되면 그걸 3D로 이미지 구현화 하는 게 가능하겠나? 사실적으로.
- 고수 : 아, 내가 그림으로?
- 2050 : 그래.
- 고수 : 혹시 내부까지?
- 2050 : 그래.
- 고수 : 쉽지 않은 작업이겠는데? 한다면 할 수는 있긴 한데. 테이 씨가 구체적인 이미지를 완성해서 줘야 할 것 같아.
- 2050 : 블랙카드 24레벨을 쉘터로 진행할 생각이다. 지금 단계에선 버겁긴 하겠지만 최근 재능 레벨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으니까. 잘 해낼 수 있을 거로 생각해.
- 고수 : 흠, 해볼게.
나는 그에게 답하다가 불현듯 든 생각이 있었다.
그가 굳이 2021년도의 정테이를 선택하고, 그에게 미래 일을 공유한 이유.
수호는 젊고 자신만만하며 능력 있는 테이에게 미래 지식 몇 가지를 일러주었고.
2050년에 필요한 쉘터를 완성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완벽하게 이미지화한 그림을 그리게 해서 2050년에 실물로 전 환하려는 거다.
아무래도 쉘터 건축은 1년 이상은 걸릴 수 있으니.
수호는 그 기간을 기다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거기다 2050년의 정테이는 미래 지식이 있어도 그걸 구현할 수 없고.
미래에는 대대적인 건축 공사도 어려웠을 테니.
2021년도에서 2050년의 쉘터 이미지를 구축해야만 했던 것이다.
또한, 2021년도에서 건축을 해도 미리 그림으로 실물 전환한 2050년의 쉘터는 달라질 게 없을 거다.
나는 수호에게 톡을 적었다.
- 고수 : 김수호, 2050년에 걸맞은 쉘터 그림. 완벽하게 그려낼게.
그러자 조금 후에 수호에게서 답이 왔다.
- 2050 : 고맙다.
짧고 단순하며 투박한 한 마디.
나는 피식 웃었다.
겨우 이 한마디 듣는 건데 내 마음이 왜 뭉클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그때 현관 밖으로 나온 이모가 나를 보고서 외쳤다.
“어머! 고수 왔네. 언니이! 고수 왔어.”
이모의 외침에 어머니가 곧바로 뛰어나오셨다.
부모님과 이모, 이모부.
그들은 환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이게 가족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모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고수야, 더 멋있어졌네. 집에 있는 가구하고 조명들. 전부 네가 선택한 거니? 어쩜 미대 출신이라 그런가. 남자가 고른 것 치곤 되게 세련되고 감각적이더라. 언니가 너 아니었으면 이런 가구를 어디 생각이나 하겠니? 되게 고급지고 비싸 보이던데.”
“하하, 생각보단 안 비싸요.”
“얘가 이모 눈을 속이려고 그러네. 내가 모르겠니? 거실에 있는 소파만 해도 유럽 유명 브랜드던데.”
나는 거실 안으로 들어서며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거실 한쪽 벽면에 걸린 액자를 바라보았다.
거기에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부모님과 내가 찍힌 가족사진이다.
* * *
다음 날 새벽 3시.
이 시간에 그림 분석 결과가 나올 거라서 나는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침실 밖을 나가 아일랜드 식탁 의자에 앉아 잠을 깨려고 아메리카노를 한동안 홀짝였다.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식탁 위에 놓인 종이 가방에 눈길을 주었다.
어제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니 현관문에 저게 걸려 있었다.
가방 안엔 반찬 통 몇 개와 국이 든 보온병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작은 손편지.
수연이가 적은 거다.
나는 그걸 펼쳐 다시 읽었다.
<고수야, 근처 지나는 길이라서 반찬을 좀 챙겼어.
혹시, 내가 너에게 음식 주는 건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친구로서 챙겨주는 거야.
그럼 맛있게 먹어.>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AI 2050에게서 톡이 와 있다.
- 2050 : 고수님의 그림을 확인한 결과, 2.5%만 보완하면 적정 퀄리티와 싱크로율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보완해야 할 퍼센티지가 적은 수치로 나오곤 한다.
흠, 23레벨 마감이 화요일 밤 9시까지니까.
이번에도 무사히 통과하겠는걸.
밥이나 먹고 작업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