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36화 (36/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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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카를 협찬받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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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레벨 마감일은 다음 화요일 밤 9시까지인데.

내가 23레벨 그림을 1차 완성한 건 토요일 오후 2시다.

- 2050 : 고수님의 그림을 확인합니다. 그림 분석하는 데 36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림 분석 시간이 기계적으로 늘어난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모든 선과 점, 색채, 명암, 퀄리티, 비율, 조화. 싱크로율까지.

AI가 그림을 분석하는 것이어서 그만큼 시간이 걸리겠다고 여겨졌다.

아무래도 레벨이 오를수록 세밀하게 그려야 할 부분이 방대해지기도 했으니까.

후, 일요일까지는 좀 쉴 수 있겠는데.

일요일은 부모님이 이사 오시는 날이니 양평에서 보내야겠네.

...라고 생각하는데, 김수호에게서 까톡 메시지가 왔다.

까톡!

나는 핸드폰을 들어 톡을 확인했다.

- 2050 : 고수. 내일쯤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 고수 : 누구?

- 2050 : 쉘터를 건축할 사람이지. 그가 내일 아침 미국에서 한국으로 도착할 거야.

- 고수 : 건축? 아직 설계도도 완성 안 되었는데?

- 2050 : 그 사람을 이루나와 함께 만나. 그 사람에게 많은 걸 얘기해두었다.

- 고수 : 그 사람에게 어떻게 뭘 말해둬? 너 나 말고 이 시대 사람과 연락하는 사람 있었냐?

- 2050 : 그는 이번에 접촉한 거야. 그는 우리 쉘터 사람이고 건축에 있어서 전문가지. 물론 그는 2024년도에 시력을 잃고 왼쪽 팔이 마비가 되어서 예전과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진 않지만.

- 2050 : 2021년도에선 그는 젊고 건강하다.

- 고수 : 그래?

- 2050 : 그는 거의 30년을 후회로 살아온 자였다. 우리는 그에게 삶을 바꿀기회는 주는 셈이 될 거야.

- 고수 : 그럼 그는 2050년의 상황과 2024년의 일도 알고 있는 건가?

- 2050 : 대략적인 건. 그를 설득하느라 제법 시간이 걸렸었다.

- 고수 : 근데 그는 어떤 식으로 접촉한 거야? 나처럼 핸드폰으로 연결된 것도 아니고.

- 2050 : 저번에 실물 전환했던 전송 기계. 그걸 이용했었지.

- 고수 : 아.

나는 납득했다는 얼굴을 했다.

- 2050 : 그는 인천공항에 오전 11시 정도에 도착할 거다.

- 고수 : 근데 그는 믿을 만해?

- 2050 : 이곳 세계에선 그는 믿을 만한 자이지만 그곳에선 알 수 없어. 다만 그는 자신의 삶이 달린 일이니 최대한 협조할 거다.

- 고수 : 그래. 알았어. 아, 근데 그 사람의 사진이나 이름 좀 알 수 있을까?

내가 만날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야지.

- 2050 : 그건 조금 후에 알려주겠다.

나는 그와 대화를 끝낸 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조금 기다리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수야.>

“엄마, 집이세요?”

<아니, 시장.>

“시장 일 정리하신 거 아녔어요?”

<정리하긴 했는데 여기 오랫동안 일해서 정들었었잖니. 그래서 여기서 사람들과 시간 좀 보내고 있었어.>

“아, 그렇겠네요. 거긴 저도 익숙한 곳이니.”

<아들, 오늘도 그림 그리니?>

“아뇨. 일은 다 끝났고 오늘하고 내일은 다른 볼일을 봐도 돼요. 근데 엄마.”

<응.>

“내일 이사할 때 계속 같이 있으면서 도우려고 했는데. 중요한 일이 생겨버렸어요. 죄송해요.”

<아냐. 이사는 포장 이삿짐센터에서 다 해주는데 뭘.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게 우선이지. 내일 신경 쓰지 말고 너 볼일 봐.>

“네. 오후 늦게라도 양평으로 갈게요.”

나는 통화를 끝내고 잠시 생각하다가 루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두 번 가기도 전에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오빠. 흐흫.>

전화 받자마자 까르 웃는 그녀.

얘는 뭐가 그렇게 좋아.

“루나야. 바빠?”

<지금 점심 타임이 지나서 한가해요. 점심 타임이라도 오빠 전화면 엄청 한가 해요!>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가끔 루나를 보면 그녀가 데리고 다니는 하얀 푸들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꼬리를 막 흔들어대는 강아지 한 마리가 연상되고 말았으니.

“그 소리, 네 언니가 들으면 섭섭해하겠다.”

<앗, 그러네요.>

“루나야, 설계도는 잘 되어가?”

<와, 오빠 진짜...>

설마 자기가 그린 설계도 같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어디서 많이 본 설계라고 하던가.

그게 아니면 전에 생각해봤던 설계라고 하는 건.

하지만 그녀가 내뱉은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진짜 어렵고 되게 특이해요. 나도 특이하지만, 이 설계를 그린 사람은 더해요.>

“그래?”

<네. 암튼 평범한 사람은 아닐 거야. 막 4차원이고 혼자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일 거예요. 오빠, 이 설계는 누가 그린 거예요? 아는 사람?>

루나야, 네 입으로 그렇게 말하면 넌 뭐가 되겠니.

“응, 아는 사람.”

<흐응, 그렇구나. 근데 이 설계한 사람 천재인 것 같기도 해요.>

결국, 네 입으로 네가 천재라고 말하는거군.

“그래?”

<참, 오빠 오늘 가게로 놀러 올래요? 오면 내가 만든 디저트 줄게요.>

“네가 만든? 그거 먹을 수 있는 거지?”

<그럼요. 둘이 먹다가 죽어도 맛있어요.>

“그거 먹으면 둘이 먹다가 죽는 거냐? 살벌한 디저트네. 진짜 먹을 수 있는 거지?”

<진짜 맛있어요, 오빠. 맨날 놀리고. 속담에 그런 말 있잖아요. 너무 맛있어서 둘이 먹다가... 암튼 그런 속담.>

루나는 미국에서 살다 온 티를 이런 식으로 내네.

나는 조금 웃었다.

“그래, 있지. 그런 속담이. 이따 갈게. 할 얘기도 있거든.”

<네에, 오빠. 그럼 이따 봐요.>

통화를 마치니 이번엔 진구에게서 전화가 들어왔다.

거참, 핸드폰이 쉴 틈이 없네.

<고수야.>

“응.”

<거기서 연락이 왔는데. 조건부로 네 요구조건 들어주겠다네.>

“어떻게?”

<페라리 신차 모델을 작업하는 게 하루 동안 가능하고, ‘하늘 호수’ 그림 만큼의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다면 오케이래.>

“그리고?”

“음.”

어쨌든 내게 이득이긴 할 듯하다.

국내 인지도도 더 오를 것이고 일본까지 영향력이 미칠 수 있다면야.

명성으로 코인이 엄청 들어올 것 같은데.

<내 생각엔 네 그림을 광고에 쓰면 백퍼 주목받을걸? 보나 마나 각 나라의 TV 광고가 결국 네 그림으로 대체하게 될 거야.>

“그럴까?”

<그래. 아직은 네 그림을 쓰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서 선뜻 크게 활용을 못 하는 거지만. 결국, 사람들은 네가 그림을 그리는 광고를 보고 다들 기절초풍할 거야.>

“흠, 그러려면 더 임펙트하게 뭔가 보여줘야겠군.”

<야, 넌 지금도 충분히 임펙트해. 겁나 임펙트하지. 페라리도 도박을 걸 만큼, 천재성과 엄청난 화제성이 있잖아. 네 그림을 광고에 쓰면 먹힐 걸 그들도 아는 거야.>

“나는 페라리 광고 수락할 의향 있어. 내 조건 분명하게 들어주고. 광고 반응이 좋을 경우 내 조건을 들어주는 것만 명확하게 해준다면.”

<오케이. 알았다. 얘기해볼게. 근데 너 내일 부모님 이사하신다며?>

“응. 그래서 내일 오후 늦게나 가볼 수 있을 것 같아. 오전엔 누구 만날 사람이 있어.”

<여자냐?>

“음, 남자일걸?”

<남잔지 여잔지 몰라? 여튼 알았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새삼 집안을 둘러봤다.

오랫동안 청소를 안 해서 발바닥이 시커멓다.

세탁기를 하도 안 돌려서 당장 입을 옷도 없고.

음, 잠깐 집안일 좀 하고 나가야겠네.

그러다 핸드폰에 까톡이 들어오는 걸 보고 확인했다.

수연이다.

- 김수연 : 고수야, 집에 있어? 반찬이랑 국 끓인 거 있어서 너 가져다주려고 하는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을 했다.

- 고수 : 저녁 밖에서 먹는데? 내일도 내가 집에 없어서. 안 가져다줘도 돼^^;; 신경 써줘서 고마워.

얼마 전에 그녀의 핸드폰에서 언뜻 봤던 유라의 까톡.

내가 신경 쓰일 만한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녀가 사과나무 그림을 배경으로 한 건, 그림에 관심이 많은 그녀였으니, 그걸 배경화면으로 했겠지만.

나는 왜 그녀가 알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걸까.

내가 애플 수라는 걸.

* * *

주말 이른 저녁을 ‘라멘 사랑’에서 먹었다.

저녁 타임은 아무래도 바쁘니까 일부러 이른 시간에 온 것이다.

나는 한나, 루나와 함께 라멘과 스시를 먹었다.

식사하면서 루나가 거의 완성해놓은 설계도를 봤다.

진지하게 보는 시늉은 했지만.

음, 역시 봐도 모르겠다.

그냥 건축 설계도면처럼 생겼다는 정도만 알겠다.

그럴듯해 보이는데, 잘 했겠지.

루나는 긴장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오빠, 어때요?”

“음, 괜찮은 것 같아.”

“정말요?”

루나의 눈빛 반짝 빛났다.

한나는 그런 루나에게 퉁을 놓았다.

“너, 또 이상한 설계도 그렸지? 좀 평범한 거 그릴 수 없니? 남들이 그리는거 말이야. 고수 오빠한테 이런 걸 보여주면 어떡해?”

“내가 먼저 보여준 거 아니다 뭐. 그리고 꼭 남들이 그리는 것만 그려야 해?

좀 색다를 수 있잖아.”

한나는 나보다 한 살 어려서 그녀도 내게 오빠라 불렀다.

한나와 루나는 5살 차이.

몇 번 같이 밥을 먹는 동안 제법 친해져서 나는 말을 편하게 하고 있었다.

나는 밥을 먹는 동안, 루나의 설계도로 과수원 땅에 벙커 쉘터 건축하는 일을 한동안 한나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고수 오빠, 그런 건축물 짓는 게 한두 푼도 아니고. 정말 루나의 설계도로 지으려고요?”

“응.”

“오빠, 이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요. 루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학생일 뿐이에요. 졸업한 것도 아니고 휴학한 학생. 거기다 그냥 집도 아니고 그런 특수한 건물을 짓는 건 돈도 많이 들 텐데.”

“루나는 학생이지만 남들에게 없는 재능이 있어. 마침 내가 그 재능이 필요했던 거고. 그래서 루나에게 맡기려는 거야. 물론 능력 있는 전문가의 도움도 받을 거야.”

나는 루나를 봤다가 다시 한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그녀들은 백인 쿼터 혼혈이라서 눈매가 시원 시원하다.

이목구비는 한나가 더 진하고 이국적인 편이고, 루나는 상대적으로 여리고 청순한 느낌.

“...여기 가게 쉬는 월요일에 루나와 함께 그 전문가 만나려고 해.”

그러자 한나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내게 답했다.

“그럼 오빠. 나도 함께 만나도 될까요?”

“너도?”

“루나 일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루나의 설계도로 건축하는 일을 진행하는 건데. 언니로서 궁금해요. 오빠한테 누를 끼치게 될까 걱정도 되고. 이건 금전적으로 큰 문제라서요.”

“그런 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루나는 학생이지만 전문가로서 손색없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 그 증거로 내가 준 설계를 거의 완성했거든. 그거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을 루나 외에는 찾지 못했어.”

루나가 상기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오빠, 왠지 믿어지지 않아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기대하지 못했어요. 저건축 공부하는 거 포기하려 했거든요. 아무도 내 설계도가 괜찮다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어요. 여자애가 이상한 거 그린다고 이상하게 보고. 제대로 봐주지도 않고.”

“그랬어? 음, 내가 분명하게 말해줄게. 루나야, 너 재능 있어. 그리고 그 재능, 내가 필요해.”

루나는 눈가가 약간 붉어졌다.

워낙 투명하고 하얀 피부라서 붉어진 눈가가 도드라졌다.

그런 루나를 한나가 보더니 그녀도 뭔가 감정적인 표정이 되었다.

한나는 조금 주저하면서 내게 말했다.

“오빠, 고마워요. 오빠는 모르겠지만 지금 오빠, 루나에게 엄청 고마운 말 해준 거예요. 언니인 나도 못 해준 말.”

“그리고 과수원 땅도 그래요. 그 땅 어쩔 수 없이 팔게 되긴 했었지만 그래도 제겐 의미가 있는 땅이었거든요. 아버지 유산이기도 했고. 거기에 루나의 설계로 건물이 지어진다고 하니까. 그냥 고마워요. 왠지 그 땅이 우리에게서 영영 떠난 게 아닌 것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생각하는 거, 염치없죠?”

“아니.”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나요? 과수원 땅 계약하는 날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기억나지. 네가 그랬었지. 우리 인연인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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