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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카를 협찬받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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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수 그림 영상을 올릴 때, 영상 마지막에 진구의 이메일 주소와 SNS 주소를 남겨두었었다.
진구는 내 동의하에 SNS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여러 문의가 진구에게 쏟아졌던 것이다.
사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수호와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나는 핸드폰으로 진구에게 말했다.
“진구야, 나 당분간 또 바쁠 거라서 광고니 뭐니 하는 것으로 시간을 많이 뺏기면 힘들 것 같은데.”
<그렇게 바빠?>
“이제 곧 부모님도 이사하시는데 신경 써야 하고.”
쉘터도 건축해야 하고, 그림도 그려야 하지.
내 작품을 남기고 명성을 쌓아서 코인을 얻을 생각으로 너튜브 영상을 올린 거지만.
페라리 광고가 내게 큰 도움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사실 블랙카드로 몇백억씩 긁는 마당에, 내가 협찬과 광고비로 얻을 돈이 아쉽겠는가.
“진구야, 난 페라리나 광고비는 별로 필요 없고. 내게 필요한 건 내 이름을 나타낸 영상이 국내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 곳곳에 퍼지는 거거든? 해외에 애플 수의 인지도를 올릴 기회가 된다면 나는 페라리 신차 그림을 그릴 의향이 있어.
<올. 고수 이놈 봐라. 이젠 유명해지는 걸 원한다 이거고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유명해지는 거, 딱히 말하면 그렇긴 하네.”
<그럼 내가 너의 그런 요구조건을 염두에 두고, 연락 온 그쪽과 한 번 얘기해 볼게. 그래도 되지?>
“응. 근데 너 일도 해야 하고. 나 때문에 이런저런 일도 해야 해서 바쁘겠는데?”
<투잡 하는 거지. 네가 이번 영상 편집으로 200이나 줬잖냐. 월급도 아니고 한 건 편집하는 것으로 200 줬는데 염치가 있지. 돈 받은 값으로 매니저 역할은 톡톡히 해야지.>
“그래, 고맙다.”
하늘 호수 그림 영상이 올라간 이후, 또다시 구독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었다.
그래서 국내 방송 매체에서도 내게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와의 통화를 끝내고 펜을 꺼냈다.
펜을 잡고 한동안 있으니 내 앞에 투명한 디스플레이가 생겨났다.
타블렛 펜에 카메라 기능도 들어있어서 이걸로 내가 그린 하늘 호수 그림을 사진으로 찍었었다.
그리고 그 저장된 사진을 열었다.
내 시야에 선명한 그림 사진이 펼쳐졌다.
디스플레이는 3D인데 사진도 3D인데 피사체는 그냥 평면이다.
그래서 내 그림이 실물 그대로 이곳으로 소환되어 허공에 뜬 것처럼 보였다.
해상도는 이제껏 봤던 여느 디스플레이보다 우수해 보였다.
나는 화면을 터치해서 크게 늘려서 그림을 원본 크기보다 살짝 크게 만들었다.
가을빛으로 물든 강가.
고적하고 평화로운 자연 속에, 또 다른 신비한 자연이 내 시야에 펼쳐졌다.
그림 속 맑은 푸른빛 하늘.
그걸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 눈이 청량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시선을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현실의 가을 하늘.
안타깝게도 미세먼지 때문에 약간 뿌옇다.
그림 속 하늘이 더 아름답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나는 다시 그림을 응시했다.
내가 그린 호수가 맑아 보인다.
잔잔한 호수에 청명한 하늘이 비친 풍경.
나도 모르게 호수 그림에 손을 뻗었다.
유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인데도 사실적으로 그려서, 가만히 손을 뻗으면 참방하고 내 손끝이 젖을 것만 같다.
호수의 수면 가까이 오른 물고기도 그려져 있다.
은빛 물고기.
그저 상상으로만 그려서 실제로 존재하는 물고기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저 잉어를 떠올리며 그렸는데.
흐르는 물에 잠긴 신비로운 은빛을 표현하려고 은박을 조금 쓰기도 했었다.
금속처럼 은빛으로 반짝이는 비늘의 물고기가 금방이라도 파닥이며 수면에 파문을 일으킬 듯했다.
호숫가의 나무들.
초록빛이 싱그럽다.
평화롭고 아름답고 잔잔해서 차분해지고.
자연 속에서 힐링하는 기분이다.
솔직히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했던 작품.
내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그려졌다가 지워졌다.
그래. 이런 풍경이 김수호가 사는 세상에 다시 복원되었으면 좋겠다.
사람을 해치는 적도 없고 사람을 병들게 하는 오염도 없는.
그런 마음이 내게 싹이 튼다.
이런 그림을 보고서, 와 이거 얼마짜리겠는데?
이걸로 대단히 유명해지겠는걸?
그 명성, 그 부귀. 와!
...가 아니라 이 풍경대로 세상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망이 싹트는 것이다.
전에 그 영상들을 봐서 그런 걸까.
사과를 베어먹고 울던 소년.
영상 끝에 메시지를 담아 보내던 쉘터 사람들.
옹달샘을 보고서 기적이라 소리 지르던 그 누군가.
사실 그들의 모습은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오염된 곳에서 여전히 병들어가고 있다고 하니.
나는 그림 파일을 닫고 다시 펜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흙 알갱이 한 알 한 알 살아있도록.
허공에다 그림을 그리는 건 이제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 * *
김수호는 쉘터 밖을 나와 얼마 전에 실물 전환했던 사과나무를 바라보았다.
사과나무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어둡다.
그토록 아름답던 사과나무가 이젠 까맣게 말라 비틀어져 있다.
며칠 전에 잿빛 폭풍이 이곳을 휩쓸고 갔었다.
잿빛 폭풍이 몰고 온 치명적인 성분이 땅에 전부 가라앉고 나서야 쉘터민들은 특수 방독면을 벗을 수 있었다.
한 나이 든 여자가 그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수호. 사람들은 다시 낙담하고 있어요. 사과나무가 죽어버린 것처럼. 샘도 오염되어버렸어요. 이곳에 가득한 그레이 데드 성분이 결국 나무와 샘을 삼켜버렸네요.”
“......”
“이젠 이런 건 의미 없는 것 같아요. 그에게 오염되지 않은 땅을 그리게 해봤자 다시 오염되고 말 거예요. 그냥 통조림이나 무기를 고수 작가에게 그려달라는 게 어떨까요? 사람들은 이제 그걸 원하고 있어요.”
그러자 김수호는 단호하게 답했다.
“아뇨. 그가 땅을 그리고 나무를 그리는 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의 능력이 진화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고수의 능력은 결국 뛰어넘게 될 겁니다. 그의 능력이 그레이 데드를 삼키게 될 시점이 와요.”
“하지만 이제 또 전투가 시작될 거예요.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했어요. 적들이 강해지는 시기죠. 그러니 우리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짧아요.”
“걱정 마십시오. 이제 곧 우리 쉘터도 진화하고 강해질 테니.”
“그런데 수호. ‘고수’라는 이름과 그의 신상을 과거에서 드러내지 않게 하는 이유가 있어요?”
“고수에겐 명성이 필요하긴 하지만 동시에 그는 알려져선 안 됩니다. 그는 아포칼립스를 막을 열쇠입니다. 그런 만큼 열쇠는 가장 깊숙하고 안전한 곳에 보관되어야 하죠. 우리는 그걸 잃거나 빼앗겨선 안 되니까.”
그러자 그녀는 수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당신도 잃을 수 없어요. 우리는 이미 과거에 관여하기 시작했으니, 과거에서 당신이 태어날 시기. 그 시간이 비틀리지 않도록 이제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 * *
나는 그림 작업을 새벽녘까지 하고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페라리 본사 마케팅 담당자에게 보낼 메일이다.
물론 한글로 썼다.
내가 한글로 적으면 진구가 영어로 번역하고 몇 가지 보완해서 이메일을 보낼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황금 나무와 하늘 호수를 그린 ‘애플 수’입니다.
제 화명은 ‘수’이지만, 사람들이 전부 저를 애플 수라고 불러서.
저 역시 애플 수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귀사에 제가 요구하는 조건은 이렇습니다.
1) 제가 하게 될 작업 날짜는 제가 정합니다.
2) 그림을 작업하는 시간은 하루밖에 내지 못합니다.
3) 저는 사람들에게 신상을 노출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림 작업할 때도 얼굴을 가릴 것이고. 계약 때에는 대리인을 내세울 겁니다.
4) 협찬해주신다고 하는 페라리는 받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제가 원하는 것은 제작된 TV 광고 영상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유럽 등의 여러 나라에서도 영상이 나오길 원합니다. 그리고 ‘애플 수’라는 이름이 또렷하게 나와야 합니다.
이 모든 요구조건을 수락하신다면 저는 페라리 신차 모델을 그림으로 그릴 의향이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이메일을 작성한 후 진구에게 보냈다.
그러고는 아까 진구가 까톡으로 보내준 링크를 열었다.
그러자 창이 열리며 TV 뉴스 영상이 떴다.
영상을 재생하니 아나운서 얼굴이 보이며 내가 그렸던 그림에 관한 내용을 전하기 시작했다.
“최근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화가가 있습니다. ‘애플 수’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불리며 주목을 받는 작가입니다.
대중에 알려진 바로는 애플 수는 20, 30대의 젊은 남성으로, 작업 속도가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설 정도로 빠르다고 알려졌습니다.
애플 수는 훤칠한 키와 모델 같은 체형을 지녔고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고 있어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애플 수에 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는데요. 항간에는 애플 수를 봤다는, 진실을 알 수 없는 여러 목격담이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장면이 전환되며 ‘하늘 호수 그림’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영상 속 그림이다.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최근 애플 수의 동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곳곳에서 애플 수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애플 수는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그에 관한 모든 것은 베일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나는 뉴스 내용을 조금 스킵하고 재생했다.
그러자 H 대학의 미대 교수가 나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작품은 놀랍습니다. 그는 혜성처럼 나타나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 최근 영상으로 선보인 호수 그림은 이전 황금 나무 그림보다 기교가 더 발전한 모습을 보입니다.”
나는 그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내심 생각했다.
오! 역시 미대 교수인 건가?
정확하게 보네.
미대 교수의 인터뷰는 계속 이어졌다.
“애플 수의 호수 그림은 경이로운 수준입니다. 그 작품은 향후 몇백 년 이상은 고전으로 불리게 되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의 작품은 명품 중의 명품입니다. 아, 저는 별로 칭찬을 잘 안 하는 사람인데. 애플 수를 극찬하던 김학중 예술평론가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군요. 그는 정말 대한민국이 낳은 천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대 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나는 영상을 끄고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
세상이 ‘애플 수’라는 이름을 떠들고 있지만.
딱히 내 피부에 와닿진 않는다.
생각보다 유명세가 거세게 일고 있어서 약간 걱정도 되긴 했다.
괜찮을까 싶은 생각.
본명과 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모든 관심과 유명세가 ‘애플 수’라는 이름에 걸러지고 있어서.
그나마 내가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 위에 올랐다.
침대가 푹신해서 그런가.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운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졸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다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2050 고수.”
『명화 작가 18레벨
명화 속도 : 6
명화 기교 : 6
초월 창의력 : 8
코인 : 5642.』
오, 생각보다 많이 모였네.
이 정도면 또 한 번 재능을 올릴 수 있겠는걸.
다음 레벨업 코인이 8192 차감이지만.
블랙카드 22레벨에서 긁을 수 있는 금액인 327억 6800만 원이 남아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23레벨에서 그리는 땅과 나무들을 생각하고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초월 창의력 레벨업.”
그러자 내 재능 스탯이 변화했다.
『명화 작가 19레벨
명화 속도 : 6
명화 기교 : 6
초월 창의력 : 9
코인 : 0.』
코인이 전부 빠져나가고 블랙카드도 일부 결제되었다.
22레벨에서 긁을 수 있는 남은 금액을 확인하니 106억 2210만 원이다.
이 돈도 현금으로 빼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