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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카를 협찬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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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완성되었다.
나는 눈을 떴다.
이제 이걸 화폭으로 옮기는 거다.
연필로 스케치하기 위해 오른손을 들었다가 멈칫했다.
“아!”
그러고 보니 재능 레벨업을 하지 않았다.
나는 돌아서서 카메라를 껐다.
“2050 고수.”
나직하게 읊조리자 나타나는 재능 스탯.
『명화 작가 17레벨
명화 속도 : 6
그림 기교 : 5
초월 창의력 : 8
코인 : 4330.』
코인 액수를 본 나는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생각보다 코인이 너무 많이 모였는데.
이렇게 많다고?
이 정도면 블랙카드를 긁지 않아도 재능 레벨업이 가능하다.
그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근처에 놔둔 핸드폰을 집어 확인하니, 진구 녀석이다.
“응.”
<뭐하냐?>
“내가 뭐하겠냐?”
<허긴 니가 뭐하겠냐? 그림 그리고 있겠지.>
“왜 전화했어.”
<너 너튜브 영상 확인했냐? 조회수가 미친 듯이 올라간다.>
나는 여전히 눈앞에 나타나 있는 반투명한 재능 스탯창을 보면서 대꾸했다.
코인 4333.
“응. 코인이 미친 듯이... 아니, 조회수가 올라가는 것 같네.”
<헐. 너 요즘 코인 하냐?>
“아니, 그 코인이 아니라...”
<너 다음 영상 언제 찍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그러잖아도 지금 찍으려고 그림 그릴 준비 중이다.”
<이야, 기대된다. 네가 그림 그린다고 하니까 설렌 적은 또 처음이네. 이런 날도 있구만. 흐흐.>
“이런 날도 있어야지.”
<암튼 얼렁 그려. 영상 댓글 대강 보니까 여기저기서 유입되는 것 같아. 미국이랑, 심지어 유럽에서도 사람들이 유입되던데.>
“유럽?”
<응. 댓글 내용을 보면 그런 것 같아. 어느 대학에서 그림 전공하는데. 이런 잘 그린 그림은 처음 봤다는 내용이 있더구만. 근데 그 대학이 런던에 있는 거던데? 조만간 유럽 같은 데서도 협업 제안 올지도 모르겠다.>
“......”
<너 잘되면 나 일 때려치고 너 매니저나 할까 보다.>
“야, 이상한 생각 말고 하던 일이나 착실히 해.”
<그랴, 알았다 임마.>
통화를 끝내고는 다시 재능 스탯창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기교를 올릴까?
수호가 뭐를 올리라고 딱히 말하진 않았으니.
이번엔 기교를 올려도 되겠지.
이번에 레벨업을 하면 아마도 코인이 4096 차감될 거다.
신중한 얼굴로 생각하다가 홀로 중얼거렸다.
“그림 기교 레벨업.”
그러자 재능 스탯의 수치가 변화하며 코인이 차감되었다.
『명화 작가 18레벨
명화 속도 : 6
명화 기교 : 6
초월 창의력 : 8
코인 : 242.』
이렇게 재능을 레벨업을 하고 나면 늘 그랬듯이.
내 마음은 기대감으로 고양된다.
이전보다 확연하게 달라진 능력을 곧바로 체감할 수 있다는 건.
좀처럼 해볼 수 없는 황홀한 경험이었으니까.
나는 카메라를 켜고 다시 캔버스 앞에 섰다.
“후우.”
심호흡을 하며 연필을 들었다.
만일 내가 내 모습을 자세히 지켜볼 수 있었다면, 캔버스를 응시하는 내 눈빛이 돌변하는 걸 볼 수 있었을 거다.
내가 저런 눈빛도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눈동자에 비범함이 서린다.
스스슥-
비어있던 캔버스에 연필 스케치가 마치 물에 물감이 번져가듯.
빠르게 번져갔다.
* * *
두 번째로 그린 유화 그림.
금요일 오전에 완성했다.
나는 작업 시간이 빨라서 일반적인 유화 작품이면 하루 반나절이면 끝이지만.
내가 그리는 작품은 극사실주의 작품이었다.
유화물감으로 사진처럼 그리기 위해 엄청 디테일하게 작업해야 했다.
거기다가 유화 물감이 마르는 시간도 필요했다.
그래서 이만큼 시간이 걸린 것.
나는 완성한 작품을 양평 집에 가져다 두었다.
황금 나무 사진도 그곳에 두었다.
아무래도 이 그림들은 대중에게 알려지는 그림이라서 내 집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이 그림을 봐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녁 무렵.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수호가 줬던 펜을 가지고 그림 작업 중이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타블렛 앞에 앉아 있었겠지만.
지금은 거실에 서 있었다.
내 눈앞엔 두 개의 투명하게 빛나는 디스플레이가 허공에 떠 있었다.
디스플레이는 투명한데 그 안의 그림은 색상이 선명하다.
그리고 입체적이다.
3D 형태라서 마치 허공에 내가 그린 것만 동동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 개의 화면 중, 하나는 23레벨 자료 사진.
2050년도의 쉘터 풍경이 3D 사진으로 찍혀 있다.
나는 자료 사진을 보며 지난밤에 수호와 대화했던 말을 떠올렸다.
- 2050 : 네가 그릴 것은 쉘터나 방어벽이 아닌, 그곳의 대지다. 쉘터와 방어벽은 사진 그대로 두고, 토지와 그곳에 자라나는 나무와 수풀 같은 것만 그리면 돼.
- 고수 : 그러고 보니 쉘터 부근의 땅이 달라 보이네. 이전에 봤을 땐 시커멓게 죽은 땅이었는데. 지금은 흙이 부드럽고 나무와 들풀들이 초록빛으로 무성해.
- 2050 : 그래. 자료 사진에 있는 땅은 쉘터의 풍경과 합성한, 오염되지 않은 땅이지. 꼭 사진대로 그리지 않아도 돼. 그저 오염되지 않은 살아있는 땅과 나무와 풀이면 된다.
- 고수 : 네가 있는 세상은 모든 곳이 그렇게 오염되었어?
- 2050 : 이곳 세계는 모든 곳이 오염된 상태다. 땅과 물, 모든 식물까지. 그래서 쉘터 안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라 해도 오염된 땅 위에서 사는 우리는 날 마다 조금씩 병들어갈 수밖에 없어.
- 2050 : 그래서 우리에겐 오염되지 않은 땅과 물, 식물이 필요하다.
- 고수 : 모든 게 오염된 그 일은 언제 나타나는 거지? 원인은?
- 2050 : 고수.
- 고수 : ?
- 2050 : 너에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어차피 그 일은 너의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게 될 거야.
- 2050 : 전에도 말했듯이, 너에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고. 넌 현재에 충실하며 재능을 높여가면 돼. 거기에 우리의 해답이 있을 거야.
- 고수 : 얼마나? 어디까지?
- 2050 : 너의 재능이 궁극에 이르기까지.
궁극.
재능의 궁극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전에는 좋아서 그림을 그렸고.
지금은 내 그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릴 뿐이다.
재능의 궁극에 이르면 대체 그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걸까.
나는 상념을 그치고 자료 사진을 바라봤다.
손으로 터치해서 디스플레이를 조절했다.
디스플레이의 크기를 조절할 수도 있었다.
두 개의 디스플레이 중, 또 다른 화면은 내가 그림을 그리는 곳.
나는 화면을 크게 늘렸다.
그러자 내가 그린 부분이 한없이 늘어나 좁은 거실을 채웠다.
쓴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참, 보면 볼수록 신기한 화면일세.
작업 장소를 넓은 곳으로 조만간 옮겨야겠군.
그때 초인종 벨 소리가 울렸다.
딩동-
진구가 온 건가?
인터폰 화면을 확인하니 진구와 수연이가 보였다.
왜... 저 둘이 같이 온 거지?
진구는 하늘 호수 그림 영상을 편집하는 일 때문에 오는 거긴 했지만.
나는 타블렛 펜의 전원을 끄고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 * *
그날 저녁, 나는 진구와 수연이와 사온 치킨과 피자로 저녁을 대신하며 맥주를 마셨다.
수연이는 조금 마시다가 피곤하다고 잠깐 눕겠다더니 아예 잠들었다.
쟤는 남자 집에서 잠까지 들다니.
나중에 혼 좀 내줘야지.
나는 진구에게 말했다.
“진구야, 얘 깨워서 같이 택시 타고 가. 수연이 집, 여기서 별로 안 머니까 도중에 내려주고 네 집에 가면 될 거야.”
“수연이, 오늘 이상하네. 술 별로 안 취하는 애인데. 그거 먹었다고 이러냐.”
“피곤한가 보지.”
“그렇다고 이렇게 자는 애 아냐. 암튼 나 화장실 좀. 그리고 영상 편집은 이번 일요일 밤까지 해줄게.”
“응.”
“근데 너 이번 그림은 더 엄청나더라. 어떻게 그림이 더 진화하냐? 내가 그림은 잘은 못 그려도 보는 눈은 있잖냐. 이 정도면 크리스티 경매에서도 최고가 낙찰받을 수준일 것 같아. 이러다 네가 그린 그림들, 명품이 아니라 국보로 지정되고 그러는 거 아냐?”
“국보는 무슨. 이게 문화재도 아니고.”
“암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 네 매니저 하는 거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진구는 그렇게 말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수연이를 깨우려고 조금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우우웅, 우우웅-
거실 바닥에 놓인 수연이 핸드폰.
까톡이 들어오고 있었다.
핸드폰 화면으로 까톡 메시지 미리 보기가 보였다.
- 김유라 : 너 이런 ㄴ이라는 거, 고수도 알아?
- 김유라 : 네가 이렇게 만들었잖아? 이동훈, 네 고등학교 선배라며?
하지만 내 시선은 그녀의 핸드폰에 머물 수가 없었다.
수연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길래 그녀에게 물으려 했다.
“일어났...”
그녀는 돌연 다가오더니 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더니 다시 누워 잠드는데.
하필이면 내 무릎에 머리를 대고 잠드는 거였다.
나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싶어져서 잠시 굳어져 있었다.
수연이, 술 취하면 막 뽀뽀해대는 주사 있나?
그때.
쏴아아아-
변기 물을 내리고 나오던 진구.
그는 나와 수연이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네 뭐하냐?”
“아니, 얘가 갑자기 이렇게 잠드네.”
“음, 아무래도 나 혼자 집에 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긴데. 김수연, 수상해.”
“얘 데려가야지. 야, 김수연. 일어나. 여자가 아무 데나. 너 앞으로 맥주도 마시지 말아야겠다. 이상한 주사나 부리고 말이야.”
나는 그녀를 흔들어 깨우다가 진구에게 말했다.
"야, 너 수연이 데리고 갈 때 조심해라."
"뭘 조심하는데?"
"입..."
수연이가 벌떡 일어났다.
“갈 거야. 아무 데나 아니야. 와, 너무 하네.”
그러면서 현관을 먼저 나가버렸다.
그러자 진구는 어리둥절해진 얼굴로.
“나도 간다.”
그러고는 현관을 나섰다.
그들이 사라지자 뭔가 시끄럽고 정신없던 게 휩쓸고 지나간 기분이다.
고요해진 거실.
나는 잠시 앉아 있다가 저만치 놓여 있는 핸드폰을 발견했다.
수연이의 핸드폰이다.
쯧, 핸드폰을 놓고 갔구먼.
조만간 다시 오겠네.
그때 수연이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화면을 보니 ‘엄마’라고 글자가 떠 있는데.
통화 배경 화면이 내 사과나무 그림이었다.
수연이가 설정해놓은 통화 배경화면인 듯한데.
하필이면 사과나무 그림이다.
* * *
월요일 아침, 나는 양평 강가로 나왔다.
일부러 인적이 없을 만한 외진 곳으로 와서 잠시 강바람을 쐬었다.
어느새 날이 조금 쌀쌀해졌다.
얼마 전에 김수호에 관해 AI 2050에게 가볍게 물은 적이 있었다.
김수호의 생일이 언제인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그즈음에 내가 그곳으로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2050은 이렇게 답했었다.
- 2050 : 수호님의 정확한 생년월일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2022년 12월 즈음에 태어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태어난 장소는 저에게 말씀드릴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2022년 12월이라면, 그 부모는 2021년이나 2022년 초에 결혼한 부부일 가능성이 크겠다.
띠리리링-
진구에게서 전화가 와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왜?”
내가 전화를 받자 숨넘어갈 듯한 진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젯밤 늦게 하늘 호수 그림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으니.
그 영상에 대한 반응 때문에 전화 온 것일 테지.
<야! 너 봤어?>
“뭘?”
<페라리.>
“페라리가 뭘 어쨌다고?”
<거기서 연락 왔어. 애플 수가 그림을 그려주고 그걸로 광고 영상을 제작하게 해주면 페라리를 협찬해주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