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32화 (3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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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낳은 천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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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너무해.”

“미안, 미안. 내가 너에게 장난치느라 정반대로 얘기했네.”

이건 진심이었다.

루나는 말간 아침 햇살처럼 예쁜 외모였으니까.

종종 미소를 보이거나 웃는 얼굴을 마주할 때면 비타민 복용한 느낌이랄까.

“정반대요? 반대면 밝고 예쁘다는 거죠?”

예쁘다는 말이 듣고 싶은 거냐?

“사과의 의미로 너에게 선물을 줄까 하는데.”

“앗, 정말요? 선물.”

루나의 눈동자가 다시 반짝반짝해졌다.

나는 핸드폰으로 설계도 파일을 루나의 까톡으로 전송했다.

까톡!

루나는 의아한 얼굴로 핸드폰을 확인해보더니.

파일을 열어보지도 않고 실망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이게 선물?”

“응. 네가 혹시 좋아할까 싶어서. 무슨 설계도인데.”

“치이.”

“그런 반응 보일 게 아니야. 네가 건축 전공한다기에 혹시나 해서 준 거지만.

만일 네가 이거 제대로 완성해내면, 네가 완성한 설계도로 건물을 건축할 수도 있어.”

그러자 루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제 설계도로 건축을 한다고요? 갑자기? 진짜 건물이요?”

동그래진 눈, 통 하고 튀어 오르는 듯한 그녀의 반응.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설계는 아무에게나 맡기는 그런 일이 아닌데.

내가 덜컥 루나에게 설계를 맡긴다는 것도 너무 맥락이 없긴 하다.

루나의 눈이 동그래지고 의아해지는 게 당연했다.

참나,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려니 머릿속이 꼬이네.

나는 아무 말이나 내뱉듯이 말을 뱉었다.

“그게... 내가 우연히 그 파일을 얻었는데. 이게 완성본이 아니더라고. 일부가 누락 되었어. 근데 내가 너처럼 그런 거에 관심이 많거든. 실제로 지하 벙커 쉘터를 지으려는 계획이 있어. 그래서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건축을 하는 사람에게는 다 그 파일을 보여줬어.”

“어, 그래요?”

“지하 벙커 쉘터를 설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고. 그 설계도가 일반적인 설계와 많이 다르더라고. 그래서 그 설계도를 완성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뭐 그런 거지.”

되는 대로 말을 하긴 했지만, 루나는 내 말을 믿는 눈치였다.

그녀는 우와 하는 표정이었다.

“네 언니 소유였던 땅을 내가 샀다는 건 알지? 거기다가 쉘터를 건축할 생각 이거든. 만약 네가 그 설계도를 완성하면, 언니 땅이었던 곳에 네가 설계한 건축물이 세워지는 거야. 어때?”

루나의 눈동자는 아까보다 몇 배는 더 반짝반짝 빛났다.

“와, 오빠. 되게 멋져요.”

그녀는 조금 흥분했는지 하얗던 뺨이 붉게 상기되었다.

“나 멋지다고?”

“아뇨. 언니 땅이었던 거기에 내가 설계한 건축물이 세워진다고 상상하니까.

막 심장이 뛰어요. 후아.”

그녀는 심호흡을 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암튼 내가 준 파일, 한번 잘 살펴봐.”

“네! 알겠어요. 오빠, 정말 큰 선물이네요. 저 금방 이거 완성할 테니까. 저한테 우선으로 기회 주셔야 해요.”

“그래.”

나는 그녀에게 답하면서 새삼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녀는 알까?

지금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녀 자신도 확신할 수 없지만.

그녀는 이 땅이 낳은 천재 중 하나라는 것을.

미처 빛을 보지 못하고 스러져 갔을 비운의 천재.

하지만 이 순간, 불행으로 향하던 그녀의 운명은...

이제 막, 방향을 온 힘을 다해 틀었다.

살기 위해.

살기 위해서.

그녀는 언젠가 알겠지.

그녀의 재능이 결국,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누군가에 의해 발굴되어.

죽음의 재앙을 피할 피난처로 사용되는 순간이 있을 거라는 것을.

기쁨으로 반짝이던 루나의 눈이 의아함으로 깜박였다.

“오빠, 왜 그런 눈으로 봐요? 내가 너무 김칫국 마시며 좋아했나. 아직 내가 이걸 완성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피식 웃었다.

“아냐. 김치국. 넌 분명 그 설계도를 완성하게 될 거야. 이만 일어나야겠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루나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가자, 수."

"......?"

루나가 데리고 왔던 하얀 푸들이 헥헥 거리며 일어났다.

"너 설마, 그 개의 이름이 수는 아니겠지?"

"맞아요. 얼마 전에 개명했어요. 이쁘죠?"

"......"

"제가 매일 안아주고 뽀뽀도 해줘요."

그러면서 그녀는 맑은 눈망울을 나를 향하다가 강아지 앞에 쭈그리고 앉더니.

"수, 오늘은 더 이쁘니까 뽀뽀해줄게."

강아지에게 뽀뽀하는 시늉을 했다.

* * *

다음 날 월요일 점심 무렵, 나는 블랙카드 22레벨 보완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제 가구점에 가서 결제한 목록을 떠올렸다.

소파, 침대, 카펫, 커튼 세트, 거실장, 식탁과 의자 등등.

아마도 3000만 원을 넘게 블랙카드로 긁었던 것 같다.

가구점 직원 말로는, 보통 그 정도 쓰게 된다고는 하는데.

내 기준으로는 돈 지랄이 맞다.

소파 하나를 900만 원짜리로 구매하긴 했었으니까.

사실, 집을 사고 아우디를 긁었던 순간부터 내게는 돈 지랄이 시작된 셈이긴했다.

내가 어제 굳이 가구점에 갔던 것은, 부모님은 집이나 가전제품, 가구 같은 거에 전혀 돈을 쓸 줄 모르는 분들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직접 좋은 것으로 사서 집을 꾸며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어제저녁에는 동영상을 확인하니 심상치 않은 메일이 와있었다.

TV 뉴스팀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황금 나무 그림에 관한 영상을 뉴스에 내보내고 싶다는 내용.

나는 뉴스팀 메일로 답장을 썼었다.

<안녕하세요. 애플 수입니다.

제 영상에 관심을 가지고 메일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황금 나무 그림과 그 영상, 그리고 제 이름에 관한 건 얼마든지 뉴스 영상에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사과나무 그림은 본래 제가 대중에 노출하려고 의도했던 작품이 아니었던 만큼, 그 그림의 영상도 조만간 삭제할 예정입니다.

사과나무 그림과 그 영상만 노출을 금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메일을 보낸 후에 전에 올렸던 사과나무 그림 영상을 삭제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사과나무 그림은 어쩔 수 없을 듯했다.

내 그림이 뉴스에 나오는 건 오늘 낮이라고 했으니.

수정 작업을 다한 후에 인터넷으로 뉴스 영상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 외에 전에 왔던 영어 이메일도 번역기로 돌려봤다.

대략적인 내용은, 일본에서 열리는 일러스트 전시회에 초대하는 내용이고.

또 다른 메일 역시 초청이나 자잘한 협업 제안 메일이었다.

미국 한인 기업에서 보내온 것.

나는 그림 수정 작업을 마치고 기지개를 켰다.

“후, 다했다.”

몸에서 우두둑 소리가 난다.

그림 파일을 2050에게 보내자 이내 답장 오는 메시지.

- 2050 : 고수님의 그림을 확인합니다. 그림 분석하는 데 1시간 10분이 소요됩니다.

음, 집에 먹을 게 없으니 마트나 다녀와야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걸치고 집 밖을 나섰다.

길을 걷다 보니 저만치 가전제품 매장이 보였다.

나는 건조기와 식기세척기의 모델과 가격이나 알아볼 생각으로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내 눈길을 끄는 대형 벽걸이 TV.

내 집에는 TV가 필요 없어서 구매하지 않았었지만.

막상 매장에 전시된 대형 TV를 보니 홀리듯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77인치 벽걸이 TV다.

TV 화면은 켜져 있어서 마침 뉴스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걸 보며 무심히 생각했다.

거실이 넓지 않아서 이걸 사면 한 벽면을 다 차지하겠네.

뭐, 딱히 TV 볼 시간도 많지 않고.

그러면서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아나운서가 문화 예술 소식을 전하던 장면이 바뀌더니.

그 커다란 TV 화면에 갑자기 익숙한 그림 사진이 한가득 차지하며 내 발걸음을 붙들었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건, 황금 나무 그림?

내가 그린 거잖아?

아, 이 시간에 뉴스가 나오기로 했었던가.

전에 SNS로 내 그림을 극찬했던 예술평론가가 등장하더니 기자에게 침을 튀어가며 열변을 토했다.

“제 평생에 저토록 아름다운 작품은 처음 봅니다. 사실, 제가 ‘애플 수’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이 작품 전에 그려진 사과나무 그림 때문이었죠. 그 그림을 보고서 한눈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러자 기자가 질문했다.

“황금 나무 그림을 그린 화가의 화명이 본래 ‘애플 수’인가요?”

“아닙니다. 작품에 남겨진 서명은 ‘수’입니다. 빼어날 수. 외자인 거죠. 이 작가가 그린 사과나무 그림을 대중이 보고서 별명을 붙인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다들 애플 수라고 부릅니다. 또는 애플 작가라고도 부르죠.”

“그렇군요. 애플 수의 두 번째 작품이 영상으로 올라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데요. 그만큼 많은 사람이 애플 수를 궁금해합니다만. 아직 애플 수에 관해 알려진 바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현재 애플 수 작가를 안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애플 수는 베일에 싸여 있어서, 저 역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 알고 싶습니다.

다만 이번에 올라온 두 번째 영상을 통해서 애플 수에 관해 추측할 뿐입니다.

그는 2, 30대의 훤칠한 젊은 남성이며, 작업 속도가 굉장히 빠른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젊은 작가라는 정도입니다.”

기자는 예술평론가에게 계속 질문했다.

“애플 수 작가의 두 번째 너튜브 영상을 보면 말입니다. 작가의 작업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견에서는 혹시 조작이 아니냐는 소리도 있던데요?”

“사실은 저도 그 영상을 보고서 제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솔직히 그 정도로 빠르게 작업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그러한 속도로 작업하게 되면 아무래도 그림 퀄리티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애플 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경이로웠습니다. 그의 작업 과정은 경탄스러웠습니다.”

예술평론가는 약간 흥분한 기색이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듣는 내가 오글거릴 만큼 찬사를 쏟아냈다.

“사실, 사과나무 그림을 봤을 때도 저는 이 작가가 독보적인 천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두 번째 그림 영상을 본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애플 수에 관한 생각을 정정했습니다. 애플 수는 그냥 천재가 아니다.

역사를 통틀어 한두 명 나올까 말까 한 천재다. 그는...”

예술평론가는 잠시 말을 뜸 들였다.

“그는 대한민국이 낳은 천재다.”

“예.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평론가의 격정적인 말이 무색하게, 기자는 담담하게 마무리 지었다.

음, 민망하네.

대한민국이 낳은 천재라니.

내가 저런 찬사를 들을 만한 사람이었던가.

하지만.

내 입꼬리는 이런 내 생각과는 다르게 말려 올라간다.

후, 사람이 뉴스도 보고 살아야지.

TV 살까?

그때 매장 직원이 내게 말을 걸었다.

조금 전에 내 곁에 다가왔다가 함께 TV 영상을 지켜봤나 보다.

“와, 애플 수. 뉴스에도 나오는구나. 손님도 저 애플 작가 영상 보셨어요?”

“예? 아, 예.”

“굉장하죠? 저 평소에 그림 정말 관심 없었는데. 애플 수 그림 보고서 정말 팬 되었다니까요. 그 사람, 진짜 천재인가 봐요. 그림 작업 속도가 기인 수준.”

“하하. 기인.”

겸연쩍게 대꾸하자 그는 신이 나서 계속 떠들었다.

“무슨 무협 영화에 나오는 무술 고수 같기도 하고. 아, 애플 수는 그림 고수겠네요. 하하.”

"......"

고수.

왠지 내 이름을 얘기하는 것 같아서 불편해졌다.

"이름이 수인 걸 보면 진짜 이름이 고수인 건 아니겠죠? 그러면 되게 재미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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