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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낳은 천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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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갈등하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을까? 작업 속도가 빠른 걸 부각하려고 하면 왠지 분란이 될 것 같아서.
조작이니 뭐니 그런 소리도 나올 것 같고.”
그러자 진구는 조금 가늘어진 눈매로 영상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음... 영상을 자세히 보면, 넌 그림 그리는 오른손만 빨라. 만약 영상을 빨리 돌렸다면, 네가 작업할 때 붓을 든 오른손만이 아니라 다른 움직임도 같이빨라져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가?”
“화면을 빨리 돌렸다면 다른 움직임도 빨라져야지. 미묘하게 고개가 움직일 때도 그렇고. 붓을 들지 않은 손은 빠르지 않은데, 붓을 든 손만 겁나 빠르잖아.”
“그렇긴 하지.”
“손놀림은 되게 섬세한데. 부스터 단 것처럼 엄청 빨라. 이건 누구든 면밀하게 영상을 살펴보면 식별할 수 있을 거야.”
“음.”
“뭐, 사람 중에는 성급하게 대충 보고 별소릴 다 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고. 암튼 편집할 때, 속도를 전혀 높이지 않은 구간도 넣어서 네 그림 작업이 얼마나 빠른지 알게 해야겠어.”
나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해.”
진구는 여전히 영상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너, 그 와중에 얼굴을 꽁꽁 싸맸네? 마스크 쓰고 테가 두꺼운 안경을 쓰고. 모자도 썼네. 기분 나쁜 놈, 모자에 머리가 다 감싸지는 것 봐.”
나는 검정 마스크에 까만 뿔테 안경, 검정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작업복으로는 검은색의 박시한 티와 면바지를 입은 상태였다.
“그림을 그리는 영상을 찍으려면 아무래도 내가 안 나올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쩝, 조금 아쉬운데.”
“뭐가?”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진 않지만, 넌 비주얼은 되는 편이니까. 네 외모는 분명 플러스 작용을 할 거거든.”
“음, 내가 가끔 고개를 돌리거나 앞모습을 보일 때도 있거든? 그건 편집해줘.
뒷모습만 나오게끔.”
“그래, 알았다. 아무래도 영상 편집은 일 끝나고 집에 와서 하게 될 거라서 금방은 안 되긴 하지만. 최대한 빨리해서 줄게. 이번 목요일 정도.”
진구는 보던 영상을 끄더니 노트북을 닫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래. 그리고 진구야.”
“어.”
“이 영상 속 사람이 나라는 건 사람들에게 말하지 마.”
“그래, 알지. 네가 이토록 꽁꽁 싸매고 영상을 찍었는데. 내가 어디 가서 입털겠냐? 걱정 붙들어 매셔.”
내가 진구에게 영상 편집을 부탁한 건, 그가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입이 무겁기도 했고 물론 편집하는 실력도 있었다.
진구는 다시 집중적으로 치킨을 뜯기 시작하면서 내게 말했다.
“너 사과나무 그림 영상 댓글 다 안 보지?”
“그동안 못 보다가 추석 때 잠깐 보긴 했었어.”
나는 그렇게 답하면서 얼마 전에 확인했던 이메일 내용을 떠올렸다.
비즈니스 협업 메일이었다.
사과나무 그림 영상을 광고에 활용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곳에선 협찬을 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 사과나무 그림 영상을 사용하고 싶다는 메일들이 오긴 했었어.”
“오, 진짜? 잘 되었네.”
“근데 사과나무 그림 영상은 내 사정상 광고에 사용할 수 없다고 답변을 보냈어.”
“아니, 왜?”
진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그런 아까운 기회를 왜 버리냐고 묻는 것이다.
사실, 사과나무 그림은 미래에 김수호가 사용하게 된 그림이었다.
김수호는 그가 사용한 그림이 웬만하면 외부로 유출되지 않기를 원했었다.
평소 미래가 비틀리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던 김수호였으니.
나 역시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이 있고.
우려가 될 만한 부분은 웬만하면 피하자고 생각하는 바였다.
새 영상을 올리면 이전 영상은 지울까 생각 중이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올릴 그림은 다르다.
이 그림 영상은 세계 곳곳에 퍼져도 상관없고.
그림이 대중에 드러나도 문제없다.
진구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며 거실 벽에 걸린 그림을 응시했다.
“크으, 그림 끝내준다. 저 정도 퀄이면 우리나라 탑 급이라 해도 과언 아니겠는데? 너 저거 팔 거냐?”
“응. 기회 되면 팔아야지. 유명세를 어느 정도 타고 나서 그림 가치가 더욱 상승하면 그때 팔 거야. 최고로 비싼 값에.”
나는 그에게 답하며 씩 웃었다.
* * *
진구가 가고 난 늦은 밤.
나는 잠시 타블렛 앞에 앉았다.
그저 손을 놓은 채 한동안 자료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번 22레벨 마감은 다다음 목요일 오후 5시까지다.
이번에는 작업 시간을 18일 준 것.
날짜는 넉넉하지만, 그림 완성은 훨씬 일찍 마무리되어야 할 것은...
그림 분석 시간이 엄청 긴데다가 보완 작업할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2050 고수.”
그러자 내 눈앞에 그림 재능 스탯이 반투명하게 나타났다.
『명화 작가 16레벨
명화 속도 : 6
그림 기교 : 5
초월 창의력 : 7
코인 : 1463.』
1463코인.
AI 2050이 말하기를, 저 코인은 내가 그렸던 방어벽의 방어 시스템이 적을 제거해서 추가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고수’라는 내 이름이 쉘터 내부와 외부로 퍼지는 바람에 코인이 더 들어온 거라고도 했다.
2050은 이런 말도 했었다.
- 2050 : 아직 고수님이 계시는 2021년도로 전송해드리지 못했지만. 이곳에 이미 새로운 블랙카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 2050 : 이 블랙카드에 ‘고수’라는 이름 외에 ‘애플 수,’ ‘애플 작가’라는 이름을 추가로 심어놓았습니다.
- 2050 : 물론, 고수님이 이 카드를 2021년도에서 사용하실 때, 코인이라던가 애플 수라는 이름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을 겁니다.
- 고수 : 그래? 그거참 신기하네.
- 2050 : 새로운 블랙카드가 만들어진 직후부터는 고수님의 코인은 2050년도와 2021년도의 명성이 오를 때마다 발생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해서, 1463코인이 생겼나 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애플 수’라는 이름은 조금씩 퍼지고 있는 중이니까.
조만간 두 번째 영상이 올라가고 나면, 코인이라는 게 더 들어오게 되겠지?
내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갔다.
이번에 코인으로만 재능 레벨업을 한다면 2048코인이 차감될 거다.
하지만 지금은 코인이 그 정도 있지는 않고.
김수호의 말대로 블랙카드의 금액과 합산되어 차감되겠지.
현재 21레벨에서 긁을 수 있는 금액은 119억이다.
양평 주택 잔금 치르고 남은 것.
이번에 재능을 레벨업하고 나면 얼마나 남을까?
혹시 모자라진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초월 창의력 레벨업.”
다행히, 코인이나 금액이 모자라진 않는 모양이었다.
내 재능 레벨이 올랐다.
코인과 블랙카드 금액이 결제되며 재능 스탯에 변화가 왔다.
『명화 작가 17레벨
명화 속도 : 6
그림 기교 : 5
초월 창의력 : 8
코인 : 0.』
코인은 모조리 빠져나갔고.
21레벨 블랙카드 금액도 결제 되어서, 이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6억 800만 원이 남았다.
어? 돈이 생각보단 제법 남았네.
후후, 저 돈은 현금으로 뽑아 계좌에 넣어야지.
갑자기 마음이 풍족해지는 기분이다.
* * *
며칠 후, 그림 작업을 하다가 잠시 바람을 쐴 겸, 차를 몰고 양평으로 왔다.
부모님이 이사하게 될 양평 집의 인테리어 공사를 살펴본 후.
나는 사람이 별로 없을 만한 양평 강가로 왔다.
어느덧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들.
강가의 바람이 조금씩 불어왔다.
바람결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들풀을 보며 산책하듯 거닐었다.
가을볕에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에 시선을 두었다.
나는 조금 걷다가 그림을 그리기 좋을 벤치를 발견하고서 거기에 앉았다.
정면으로 흐르는 강물이 보여서 운치가 있다.
핸드폰을 꺼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이내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
<응, 수야. 그러잖아도 잘 있나 궁금해서 전화해보려 했었어.>
“엄마, 대전 집은 팔렸어요?”
<아직. 이 집이 오래되어서 그런가. 잘 안 나가네.>
“천천히 팔아도 돼요. 어차피 양평 집은 잔금을 치러서요. 지금 인테리어 작업도 거의 끝나가서 이제 이사 오실 준비하셔야 해요.”
<벌써? 지금 시장 일도 정리가 안 되었거든.>
“천천히 하세요.”
<한 달이면 될 것 같아. 그 시기에 맞춰서 포장 이삿짐센터도 예약해둘게.>
“네.”
<수야, 밥은 잘 먹고 있지? 다시 봤을 때, 또 말라 있으면 엄마한테 혼날 줄 알아.>
“하하, 그럼요. 잘 먹고 있어요. 요즘 친구가 맛있는 음식도 가져다주곤 해서.”
나는 그렇게 말하다가 수연이를 떠올렸다.
일요일 아침에 김밥을 들고 왔던 그녀.
그날 생각지 못하게 그녀와 집에서 밥을 먹게 되었었다.
그녀와 나는 오랜 친구였고 친구로서만 지내왔었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었지만.
내심 신경이 쓰였다.
다 큰 여자애가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와 있는데.
신경이 쓰이지 않을 리가 없다.
수연이는 내 집을 구경하겠다면서 침실까지 들어가 보더니.
내 침대에 털썩 앉기까지 했다.
“침대 되게 좋은데? 이불도 되게 부드럽다. 와, 고급져. 한 번 누워보자.”
그러면서 아예 드러눕기도 했다.
와, 무슨 여자가 경계심도 없이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막 들어오고.
그것도 모자라서 침대에 막 드러눕는 건지.
“야! 김수연. 안 일어나? 어딜 여자가 남자 집에 와서 침대에 드러누워.”
그러자 그녀는 일어나며 내게 투덜대었다.
“아, 치사하다. 치사해. 내가 좀 누우면 닳냐?”
“그래, 닳는다. 어? 방금 네가 누운 자리, 해졌다 해졌어. 얼른 일어나.”
“와, 상처받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던 그녀.
그때의 일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어머니와 통화를 마친 후에 휴대용 타블렛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 내 핸드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띠리리리링-
핸드폰을 확인하니 진구다.
“응.”
전화를 받자 그가 대뜸 말을 꺼냈다.
<야, 고수. 동영상 편집 끝났다. 지금 보내줄까?>
“그래, 보내.”
<언제 올릴 거냐?>
“음, 이따 집에 들어가서.”
<지금은 밖? 후우, 이번에 영상 올리면 어떤 파급이 나타날지 내가 다 떨린다.>
“왜 네가 떨려?”
<몰라. 그냥 떨려, 후우. 너 나한테 말하고 올려. 당장 텨가서 보게.>
“흐흐. 그래, 알았어.”
<너 사과나무 그림 영상 댓글, 계속 체크하고 있냐?>
“왜?”
<나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거든? 근데 난리야. 다른 작품도 영상으로 올려달라고.>
“그래?”
<다음번 영상은 네 목소리도 넣고 그러면 좋을 것 같다. 너 그거 잘 되면 나에게 줄 인센티브 같은 거 없냐?>
“생각해볼게.”
<후후, 알았다. 다음 영상 편집할 일 있으면 연락해. 충성 충성한다.>
통화를 끝내고 나는 다시 타블렛 펜을 잡고 그림을 그렸다.
* * *
그날 밤, 나는 두 번째 너튜브 영상을 올리기 전에 확인을 했다.
진구가 편집한 영상은 7분이 넘었다.
영상에는 잔잔한 배경 음악이 깔렸고, 영상 시작할 때 간단한 자막도 들어갔다.
나는 영상으로 내 얼굴이 조금이라도 보이는지 살폈다.
하지만 정면이 보이는 부분은 전부 편집되어 있다.
영상을 업로드하며, 이 영상이 어떤 파급력이 가져오게 될까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세상은 이전보다 더 ‘애플 수’라는 이름에 관심을 두게 될 거다.
그 이름은 더욱 유명해질 것이고.
내 그림은 가치가 상승할지 모른다.
사람들은 애플 수가 누군지 궁금해하게 되겠지.
하지만 나는 당분간 대중의 관심이 ‘고수’라는 이름까지 닿게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