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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낳은 천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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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생일대의 역작을 남기고 싶어 하는 마음.
어느덧 며칠이 지나 일요일 저녁이 되었다.
블랙카드 21레벨 마감 시간이 이번 일요일 밤 11시까지였으니.
이제 널널하던 시간도 거의 지나가 버린 셈이다.
블랙카드 레벨 그림 작업을 하지 않는 동안, 나는 유화 그림을 그렸었고.
그 사이 양평 주택의 잔금도 치렀었다.
이제 그 집은 온전히 내 부모님 집이 된 것이다.
그 집의 보수 공사와 인테리어 작업 등을 전문가들에게 맡겼으니.
부모님은 그 모든 게 끝난 이후에나 이사 오실 수 있을 거다.
나는 완성한 유화 그림을 내 집에 걸었다.
색감이 화려하면서도 신비하다.
걸어놓는 것만으로도 집안 분위기가 확 살았다.
이곳이 더 럭셔리해진 느낌.
작품은 내가 보기에도 아름다웠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별빛이 내리는 풍경과 황금 나무.
이걸 채색할 때, 광택 나는 황금색이 물감으로는 표현이 안 되어서 금박을 사용했었다.
진짜 황금으로 만들어진 금박이다.
섬세한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이 세밀하게 그려졌고.
작은 한 부분까지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저런 황금빛 나무가 실제로 있을 리 없건만.
극사실적으로 그려내어서 그런가.
실제로 존재하는 나무처럼 보였다.
그림을 보면 금빛 나뭇가지들이 금세라도 흔들릴 것 같다.
나무의 주변을 맴도는 자그만 반딧불조차도 살아있는 것 같고.
하늘에 촘촘하게 박힌 별들은 너무도 영롱해서, 밤하늘 아래 우뚝 선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은 실바람마저도 그림을 보는 내게 느껴질 것 같았다.
후, 이걸 내가 그렸다니.
계속 보면서도 믿기질 않는다.
능력 레벨업한 효과가 이렇듯 어마어마하다.
나는 핸드폰으로 진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이내 그가 전화를 받았다.
<웬일이냐? 전화를 다 하고.>
“진구야, 너 부업 해볼 생각 없냐?”
<갑자기 부업은 왜?>
“나 두 번째 그림 영상 찍어놨거든.”
<오! 그래? 그럼 영상 편집해달라는 거고만.>
“어. 건당 50 줄게.”
<50? 50만 원? 너튜브에 올릴 영상이지? 꽤 후한데.>
“오늘 저녁에 여기 와라.”
<오케이. 당장 텨갈게. 갈 때 치킨이랑 맥주 사 들고 갈게.>
나는 통화를 마치고 잠쉬 쉬다가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에 먹을 음식이 한가득 넘쳐난다.
어머니가 추석 때 싸 오신 음식들.
그리고 수연이가 가져온 샐러드와 디저트까지.
조만간 수연이에게 선물이라도 해야지.
그녀는 오늘 아침에 우리 집으로 왔었다.
수수하게 자켓, 면티와 청바지 차림으로.
나를 챙기겠다고 하더니 그녀는 또 음식을 가지고 왔었다.
단발이던 그녀는 어느새 머리카락이 조금 길어서 어깨에 닿아 있었다.
액세서리를 하지 않았고.
화장도 안 한 것 같았다.
아니, 한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요즘 여자들은 화장을 마치 안 한 것처럼 풀화장을 한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수연이는 집에서 김밥을 싸 왔는데.
야채 가득 넣은 계란말이 김밥과 소 불고기 김밥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었다.
“이야 맛있겠다. 너 이거 싸느라 고생했겠는데?”
“고생했지.”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너 아니어도 아마 나 집에서 이거 싸고 있었을 거야. 맛있는 김밥이 너무 먹고 싶었거든. 혼자 먹는 것보단 좋아하는 친구랑 같이 먹는 게 낫지.”
나는 그녀가 했던 말을 생각하며 냉장고에서 그녀가 가져왔던 샐러드를 꺼냈다.
양상추와 그 외 알 수 없는 채소가 들어가고.
방울토마토, 키위, 슬라이스 아몬드와 리코타 치즈가 들어간 샐러드.
남은 김밥과 샐러드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려는데.
까톡!
까톡 알림이 울렸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김수호다.
- 2050 : 고수.
- 고수 : 왜?
- 2050 : 이번 22레벨 그림은 미래 물건이다. 이게 완성되면 내가 너에게 뭔가를 전송하는 일이 좀 더 쉬워질 거야.
- 고수 : 미래 물건? 전송하다니?
- 2050 : 이곳 시대에는 양자 기술을 이용해서 사물을 원하는 시간과 공간으로 전송하거나 가져올 수 있는 기계가 존재해.
- 고수 : 헐. 진짜? 그거 타임머신 같은 거냐?
나는 조금 흥분하며 빠르게 문장을 작성했다.
- 고수 :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럼 너도 올 수 있는 거 아냐?
- 2050 : 아직 살아있는 생명체까지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은 없어. 작은 크기의 물건만 가능하지.
- 고수 : 허, 그래? 근데 그 기계를 그림으로 그려야 한다는 건, 현재 너에게 그 기계가 없다는 건가?
- 2050 : 우리 쉘터에 있는 기계는 초창기 모델이다. 단순한 형태의 작은 물건만 가능하지. 이를테면, 계약서가 든 택배 박스라던가.
- 고수 : 아.
전에 2050이 말했던, 택배가 전송된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 2050 : 하지만 네가 이번에 그릴 기계는 초창기 모델을 보완한 기계인데.
아쉽게도 2027년도 즈음에 완전히 파괴되었고. 그 기술을 가진 박사도 사망했다고 들었다.
- 고수 : 음, 그럼 초창기 모델이 만들어진 건 언제인데?
- 2050 : 2026년.
- 고수 : 그렇군. 그렇다면 그 기계를 이후에 더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그 기계는 희소하겠네?
- 2050 : 그 기계는 내가 가진 게 전부다. 이것이 만들어진 게 아포칼립스가 나타나 한창 혼란하던 시기라서, 세상 사람들은 이 물건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지.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의문이 들어서 그에게 물었다.
- 고수 : 그래? 그런데 넌 어떻게 그 기계의 초창기 모델을 가지고 있고. 그걸 보완한 모델을 알고 있는 건데?
그러자 김수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 녀석은 매번 이러네.
이대로 말도 없이 사라진 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할 즈음.
그가 예상 밖의 대답으로 톡 메시지를 보냈다.
- 2050 : 그 기계는 네가 쉘터에 가져다 놓은 거다.
- 고수 : 뭐?
- 2050 : 생각해보면 넌 이곳을 위해 많은 일을 해놓았던 셈이지.
- 고수 : 그럼 나는 적어도 2026년도까진 그 쉘터에 있었다는 거군. 그런데 그곳에 나를 아는 사람이 없어?
- 2050 : 그래.
- 고수 : 흠.
- 2050 : 자료 사진을 보내도록 하지. 사진 속의 물건은 2050년에도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나 마찬가지라서, 창의력이나 기교가 많이 필요할 거다.
- 고수 : 그래, 일단 보내.
내가 말하자 김수호는 자료 사진을 보내왔다.
그러고는 그는 내게 말했다.
- 2050 : 그리고 한 가지.
- 고수 : 뭔데?
- 2050 : 만일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 전송 기계를 실물로 전환하는 게 성공한다면, 나는 너에게 새로운 블랙카드를 보내줄 예정이다.
- 고수 : 새로운 블랙카드?
- 2050 : 지금 네가 쓰고 있는 블랙카드는 2021년도에 맞춘 신용카드다. 기존의 전송 기계로는 그 카드를 보낼 수 있는 게 최선이었어.
- 고수 : 그런데?
- 2050 : 하지만 기능이 보완된 새로운 전송 기계는, 미래 기술이 축적된 새로운 블랙카드를 보낼 수 있다. 그 카드엔 신용카드 기능뿐만 아니라 2050년 도의 시스템 기능이 추가 되어 있어.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그에게 물었다.
- 고수 : 2050년도의 시스템이 뭔데?
- 2050 : 이곳 사람들이 코인 얻는 방식을 말하는 거다.
- 고수 : 음.
- 2050 : 이곳에선 적을 제거하는 데 공헌하거나 긍정적인 명성을 쌓으면 코인을 얻게 돼.
- 고수 : 그래?
- 2050 : 네가 새로 얻게 될 블랙카드는 2021년도의 슈퍼리치로서 혜택을 갖는 기능과, 2050년도처럼 공헌과 명성으로 얻게 될 코인 기능이 함께 들어있는 거다.
나는 쓴 표정을 지었다.
- 고수 : 그러면 설마 나보고 여기서 명성 같은 걸 쌓으라는 얘기는 아니겠지?
- 2050 : 고수. 이곳 쉘터에서 내가 왜 너의 이름을 드러냈다고 생각하나?
그의 뜬금없는 질문을 듣고선 생각에 잠겼다.
이름? 그러고 보니, 2050년도에서 내 이름이 퍼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는데.
- 2050 : 너에게 코인을 얻게 하기 위해서였다.
- 고수 : 그래 봤자 거긴 2050년이잖아? 난 2021년도 사람인데.
- 2050 : 이곳에도 너의 이름은 존재해. ‘고수’라는 인물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니. 너에게 유리한 점은, 2021년도와 2050년도에서 동시에 명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 고수 : 현재와 미래에서 얻은 명성이 내게 코인으로 들어온다는 말이야?
- 2050 : 그래. 이 사실은 나 역시 몰랐던 부분이었다가 최근에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 쉘터 방어전을 치르면서 네가 코인을 획득하게 되었을 때였지.
- 고수 : 그렇군.
- 2050 : 최근 너의 이름으로 인해 발생한 코인, 보내도록 하지. 아무래도 이번엔 창의력을 올리는 게 낫겠다. 코인과 블랙카드 금액이 합산되어 차감될 거야.
김수호는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사라졌다.
나는 그가 보냈던 자료 사진을 열어보았다.
사진엔 생전 처음 보는 기계가 놓여 있었다.
은색의 매끈한 형태의 기계.
원형 바닥에 5개의 기둥이 원형으로 솟아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김밥을 마저 먹었다.
3개 즈음 집어 먹었을 때, 현관 도어락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삑, 삑, 삑 삑-
진구 녀석인 모양이다.
그놈 오면 이 김밥 다 먹어치울 텐데.
나는 김밥 두어 개를 한꺼번에 입에 욱여넣었다.
* * *
밤 9시 즈음.
나는 진구와 치킨을 뜯으며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치킨 옆에는 샐러드 그릇과 김밥 그릇이 비어있다.
조금 전, 진구 녀석이 다 먹어치운 것.
진구는 내가 준 usb를 노트북에 꽂고 영상을 계속 보는 중이었다.
영상을 보면서 그의 입은 좀처럼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와, 미쳤다. 미쳤어. 인간이 아니네. 손이 안 보여.”
“......”
“그림도 미쳤지만 고수 놈 손은 더 미쳤네. 어마어마하다.”
“......”
“헐. 인간이냐? 와. 너 몸값 오른 이유를 알겠다. 흐미.”
“......”
“와, 대박이네.”
그는 영상을 보면서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그의 왼손에 들린 치킨은 꾸준히 살점이 뜯겨나갔다.
“엄청난데?”
나는 진구를 보면서 진지하게 물었다.
“아무래도 영상 편집할 때 속도를 조금 감춰야겠지? 이게 몇 배속 영상이다, 이런 식으로.”
“미쳤냐? 그걸 왜 숨겨? 온 만방에 퍼뜨려야지. 영상 대박 날 건수인데.”
“인간이 아니라며?”
“응, 초인이지. 우리가 대박치려면 인간이어선 안돼.”
내게 말하는 진구의 눈빛이 번뜩였다.
대박 아이템을 발견한 자의 눈빛이었다.
“고수야, 생각해봐. 세상엔 천재는 많아. 금손도 많고.”
“근데?”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남고 대박치려면...”
진구는 어느덧 우리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한 배를 탔다는 듯이.
“...우리가 올릴 영상의 주인공인 넌 초인이어야 해. 천재 중의 천재. 희대의 천재. 역사상 한두 명 나올까 말까 한 그런 천재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