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26화 (26/153)

------------------------------------------------------------------------

고수르? 그에겐 돈과 재능이 샘솟는다

------------------------------------------------------------------------

응? 나는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전에 못 보던 내용이 있었던 것.

1024코인.

블랙카드가 아니라 저 코인으로 재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말이지.

나는 눈을 빛냈다.

또다시 재능을 업그레이드할 생각에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후, 이번에도 창의력을 올려야 한다고 했었는데.

이번에 레벨업하면 코인이 얼마나 들려나.

설마 1024코인이 다 드는 건 아니겠지.

“초월 창의력 레벨업.”

내가 중얼거린 말에 반응하여 재능 스탯이 변화했다.

『명화 작가 16레벨

명화 속도 : 6

그림 기교 : 5

초월 창의력 : 7

코인 : 0.』

쩝, 1024코인 전부 사라졌다.

그나저나 다음 레벨은 대체 어떤 그림을 그리기에 창의력을 이토록 올리라고 한 건지 궁금해진다.

* * *

여유롭게 침대 위에서 뭉그적거리는 건 오래간만이다.

나는 한참을 뒹굴거리다가 부스스 일어났다.

오늘 아침에 ‘라멘 사랑’에서 아침 먹기로 했는데.

이만 일어나야겠다.

머리카락이 많이 길었으니 이따가 이발도 해야지.

근처에 놓아둔 핸드폰을 확인했다.

시간은 아침 8시 반.

여러 톡이 쌓여 있다.

나는 루나에게서 온 톡을 먼저 읽었다.

- 루나 리 : 오빠아, 오늘 오는 거 맞죠? 언니가 맛있는 거 해요.

- 루나 리 : 오빠가 집밥 좋아하는 거 같아서 얼갈이 된장국이랑 갈치조림 한다고 했거든요. > <

이제껏 나에게 정성이 들어간 집밥을 해줬던 적은 어머니와 이모 뿐이었다.

그래서 조금 묘한 기분.

- 고수 : 우와, 기대되는데요? 맛있겠다. 이따가 봐요^^- 루나 리 : 네넹. 기다릴게요, 오빠. (하트 보내는 이모티콘)

그 외의 톡들은 씻고나서 확인할 생각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침실에서 나와 욕실로 들어가려는데.

띵동-

초인종 벨 소리가 들려왔다.

음? 이 시간에 누구지?

인터폰을 확인하니 화면에 수연이의 얼굴이 비친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쟤가 왜 여기에?

수연이는 우리 집을 와본 적이 없어서 주소를 모를 텐데.

그러다 진구를 떠올렸다.

아, 진구 녀석이 여기를 알려줬구나.

어쨌든 나는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수연이는 출근하던 길이었는지 옷을 차려입었고 화장도 한 상태였다.

그녀의 손에는 종이가방이 들려 있다.

“수연아, 너 어떻게 온 거야?”

그녀는 생긋 웃으며 묻는다.

“미안, 놀랐지? 나, 잠깐만 들어가도 돼?”

“어? 어어.”

나는 주춤 물러나며 들어오라는 듯 비켜주었다.

그녀는 성큼 안으로 들어오며 현관문을 닫았다.

그러면서 집안을 둘러보는 그녀다.

“와, 여기가 네 집이구나. 생각보다 깔끔하네.”

“넌 출근 중이야?”

수연이는 출근 시간이 9시 반까지라고 들은 적이 있다.

“응. 가는 길에 들렀어.”

“아.”

수연이는 내 얼굴을 보다가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풋, 고수. 너 머리가 굉장하다? 사자 같아.”

“아, 방금 자다가 일어나서.”

나는 여기저기 제멋대로 일어난 머리카락을 손으로 대강 정리했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야속하게도 다시 일어날 뿐이었다.

펌을 한 상태로 머리카락이 덥수룩하게 길은 데다, 자면서 각 방향으로 머리카락이 뻗는 바람에 그야말로 난리가 난 몰골이다.

“귀여운데? 잠깐만 주방으로 갈게.”

“어?”

수연이는 아일랜드 식탁 쪽으로 가더니 종이가방을 올려놓았다.

그러더니 그 안에서 뭔가를 잔뜩 꺼냈다.

“진구가 그러더라. 너 요즘 사람 몰골이 아니라고. 다크서클은 턱까지 내려오고. 좀 말랐다고 그러던데.”

“그랬어?”

“응. 근데 너 오늘 보니까 진짜 그렇다. 암튼 그래서 내가 좀 너를 챙겨주려고. 어차피 너네 집, 출근하는 동선 안에 있기도 하고. 또 내 취미가 요리잖냐.”

나는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식탁 위에는 반찬 통이 올려져 있다.

“암튼 고맙네. 근데 이거 뭐야?”

수연이는 반찬통 하나씩 열며 내게 말했다.

“이건 장조림이야, 소고기랑 메추리 알 조린 거. 이건 버섯나물, 김치는 네 어머니가 보내주실 것 같아서 안 가져왔어."

“와, 맛있겠네. 이걸 다 한 거야?”

“그럼 내가 다 했지. 연어 스테이크하고 과일 요거트 샐러드는 오늘 새벽에 했어. 이거 바로 먹어야 해.”

“이야.”

이 정도면 대단한 에너지와 정성이 들어갔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까지 해줘? 라고 묻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수연이는 내 얼굴을 보고서 훗 하고 웃었다.

“뭔가 묻고 싶어하는 얼굴이네.”

“하하. 궁금하긴 하지. 이렇게 만들어오는 거 쉬운 일 아닌데.”

“실은 오늘 내가 회사에 점심을 싸가기로 했었거든. 솜씨도 자랑할 겸 다 같이 먹으려고. 싸는 김에 네 것도 싼 거야. 진구가 한 말도 생각나고. 친구로서 네가 걱정되기도 하고.”

“허, 그랬어?”

“회사에서 먹을 건 차에 두고 왔어. 암튼 나 간다.”

그녀는 홱 돌아서서 현관으로 향했다.

“어? 그냥 가게?”

그러자 수연이는 픽 웃는다.

“그럼 그냥 가지. 나 출근해야 해.”

“아니, 내 말은 커피라도 마실 거 주고 싶어서.”

“커피로 때우려고? 그냥 너 시간 날 때 밥이나 사. 술 사면 더 좋고.”

“수연아, 진짜 고맙다. 잘 먹을게.”

“너 그거 다 먹어야 해. 남기면 때려줄 거야.”

“흐흐. 알았어. 나중에 내가 맛있는 거 살게.”

“너 그 말 잊으면 안 돼.”

수연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현관문을 나섰다.

나는 그녀가 나간 그곳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주방으로 갔다.

그녀가 놔두고 간 음식들.

연어 스테이크가 적당히 구워져 있고 옆에 부추가 곁들여져 있다.

스테이크와 부추를 한입 먹어보니 맛이 좋다.

부추는 매실액과 고춧가루, 참기름으로 버무린 모양이다.

이건 점심때 먹어야겠다.

오늘 무슨 날인가?

아침에 먹을 복이 터졌네.

이걸 지금 먹고 싶긴 한데 ‘라멘 사랑’에 가기로 약속되어 있으니.

나는 호텔 파티쉐가 만들었다고 하는 치즈케이크를 꺼내놓았다.

어제 미리 사다 놓은 것.

두 번째로 아침을 얻어먹는 보답으로 한나와 루나에게 줄 선물이다.

* * *

오후 3시 무렵, 나는 아우디를 끌고 외출해서 집 계약을 마쳤다.

나는 이제 곧 부모님의 거처가 될 집 앞에 서서 그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마 전만 해도 에어컨이 고장 난 원룸에서 지냈었건만.

계절이 바뀌는 사이, 나는 집도 사고 차도 끌고 다니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이런 집을 계약하게 될 줄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생각해보면, 유라와 헤어지고 나서 밑바닥으로 내려간 줄 알았던 내 인생은.

가장 높이 오르기 위해 잠시 웅크리던 시기였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니까.

김수호를 만나고, 한나와 루나 자매를 만나고.

한동안 연락 끊겼었던 수연이와도 다시 관계가 이어졌다.

띠리리리링-

아버지에게서 온 전화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네, 아버지.”

* * *

2050년의 가을 무렵, 경기도 양평.

이전에는 아름다웠던 풍광이 이젠 음습함으로 변질되어 있다.

초록빛 숲은 그 빛을 잃었고, 혐오스러운 형태로 자란 기괴한 식물이 을씨년스러웠다.

땅은 시커멓게 변색 되어 있다.

2021년도에 고수가 계약한 적이 있던 주택이 저만치 보인다.

폐허가 된 그곳은 집의 곳곳이 훼손되어 있다.

그곳에 벌레 크기의 초소형 정찰 드론이 비행하며 접근했다.

드론은 전체적으로 투명한 은빛이었는데, 햇볕에 비치면 거의 투명해 보여서 잘 눈에 띄질 않았다.

위이이이잉-

드론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창은 깨어져 있고 훼손된 현관문은 열려 있다.

거실로 들어서니 조금 부서진 백골이 나뒹굴었다.

세월은 지났지만 끔찍한 재앙이 지나갔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드론은 거실을 둘러보며 촬영했다.

부서진 가구들, 거실 벽에 걸린 빛바랜 가족사진.

그 순간!

츠츠츠츠-

이곳에 뭔가 변화를 보였다.

여기저기 나뒹굴던 백골이 갑자기 흔적없이 사라졌다.

거실의 풍경에서 처참함이 지워졌다.

그저 낡은 세월의 흔적만 남았을 뿐.

가족사진도 한순간에 바뀌었다.

나이 들어 보이는 부부와 함께 찍은 한 청년의 사진.

그는 ‘고수’다.

깨어졌던 창은 두꺼운 티타늄 방범창과 방어 시설이 견고하게 설치된 모습으로 바뀌었고.

두꺼운 강철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집안의 처참하던 풍경은 모조리 사라졌다.

집 외부로 나갈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자, 드론은 방금 찍은 영상을 어디론가 전송한 후.

파삭!

스스로 파괴되었다.

* * *

그날 밤, 나는 AI 2050에게 톡을 했다.

- 고수 : 2050, 다음 레벨 자료 사진 부탁해.

그러자 2050 대신, 김수호가 내 톡을 받았다.

- 2050 : 21레벨 마감은 일요일 밤 11시까지다.

- 고수 : 김수호? 이번 마감은 왜 이렇게 짧아? 음, 12일 정도밖에 안 되네.

나는 날짜 계산을 하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 2050 : 이번에 그릴 내용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거다. 다만 이번 레벨그림이 어려운 건, 창의력이 많이 요구되기 때문이지.

- 고수 : 흠, 그래?

김수호는 내게 자료 사진을 첨부했다.

나는 보내온 사진 파일을 열어보았다.

그가 보낸 사진은 옹달샘 사진이었다.

자그마한 옹달샘인데 돌들이 동그랗게 둘러있고 그 주변으로 초록빛 풀들이나 있다.

나는 사진을 확대해보았다.

샘에 고인 물은 너무도 맑아서 투명해 보였고.

주변에 무성한 풀에는 반짝이는 이슬이 맺혀있다.

커다란 돌 틈에서 맑은 물이 또르르 떨어지는데,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 모습이 꽤 아름다웠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때 묻지 않은 자연이 느껴지는 듯하다.

나는 김수호에게 답했다.

- 고수 : 그래, 알았어. 일요일 밤까지 시간 맞춰볼게. 그런데 김수호.

- 2050 : 왜?

- 고수 : 갑자기 궁금해져서 묻는 건데. 네가 가지고 있다는 2021년도의 내 핸드폰.

- 고수 : 거기에 어떤 기록이 있는지 나도 알 수 있을까?

늘 궁금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김수호는 단호하게 답했다.

- 2050 : 필요하다 여겨지면 알려줄 거다.

- 고수 : 내가 쓴 걸 내가 못보다니. 그 핸드폰 내 거잖아?

그러자 그는 고민하는지 한동안 말이 없다가 톡을 보내왔다.

- 2050 : 고수, 내가 너에게 미래의 구체적인 일을 공유하지 않는 건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야.

- 2050 : 넌 모르겠지만 이곳에선 네 이름은 ‘희망’으로 통하고 있다. 그래서 생존자들이 이곳으로 몰리고 있지.

- 2050 : 나는 그런 네가 흔들리지 않길 바라.

- 고수 : 왜 내가 흔들릴 거로 생각하지?

- 2050 : 고수,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보다, 그리고 지나간 과거보다.

- 2050 :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족하다. 그것이 우리를 원하던 세상으로 인도할 테니.

나는 그가 적은 문장들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대꾸했다.

- 고수 : 현재에 충실하라. 명언 같군. 새삼 드는 생각인데. 김수호, 누구 아들내미인지 참 잘 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김수호는 내가 했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급한 일이 생겨서 가버린 건지.

그 뒤로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