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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옹성을 주고 철옹성을 받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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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방어벽에 구축할 방어 시스템을 전부 다 그린 것은 일요일 밤이었다.
마지막 무기의 보완 작업까지 다 마쳤다.
그림 작업을 하는 동안, AI 2050에게 김수호의 쉘터가 괜찮은지 소식을 묻곤 했다.
내 피가 마르는 기분.
이제까지는 마감이 걸려 있어서 돈이 막 깎이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이번엔 실시간 마감이라 해야 할지.
돈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명이 걸려 있었다.
내가 사는 시대의 사람들도 아니고.
내 지인이나 친구도 아니고.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사람들인데.
왜 내 피가 마르고 내 입이 바싹바싹 타게 되는 것인지.
이런 기분 별로다.
나는 침대에 쓰러져 누웠다.
최근 며칠 동안, 내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한 기분.
‘번 아웃’ 올 것 같다.
잠시 눈을 감고 누웠는데 까톡 알림이 들려왔다.
까톡!
나는 부스스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했다.
- 2050 : 고수.
김수호다.
이 녀석, 오랜만이네.
한동안 대화 못 했더니 반갑기까지 하다.
반가운 건 반가운 거지만.
나 지금은 그림을 더 그리기 싫은데.
- 고수 :
- 2050 : 수고했다.
- 고수 : 그럼 수고했지. 그런데 거긴 전투가 끝났나?
- 2050 : 마무리 중이다. 여기는 당분간 안전을 확보했으니. 너도 조금 쉬어도 된다.
오! 이건 생각지 못한 말이네.
쉬어도 된다는 말에 포상 휴가라도 받는 기분이다.
- 고수 : 네가 21레벨 마감을 내일이라고 정했어도 난 쉬었을 거다. 그동안 겁나 힘들었으니까.
- 2050 : 그래. 이틀 후에 21레벨 자료 사진을 보내도록 하지.
이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거라도 어디냐.
- 고수 : 네가 있는 곳은 괜찮냐?
- 2050 : 괜찮다. 피해는 경미 해. 방어벽과 방어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우리 쉘터는 어제 뚫렸을 거다.
- 고수 : 다행이네. 그린 보람도 없이 쉘터가 그런 꼴이 되었다면 나 역시 멘탈 제대로 무너졌을 거야.
- 2050 : 너에게 목숨을 빚졌다는 거, 인정하는 바다.
순간, 내 깊은 곳의 감정이 크게 일렁였다.
울컥하는 감정.
2050이 보내주었었던 영상이 새삼 떠올랐다.
방어 무기 그림을 실물로 전환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늦어졌었다면, 목숨을 잃었을 이들이 꽤 되었을 거다.
나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감정과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
- 고수 : 크흠. 방어벽 그리고 남은 돈, 다 써버릴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 2050 : 그러든지.
김수호는 쿨하게 대꾸했다.
- 2050 : 그리고 한 가지 네가 반가워할 만한 사실을 알려주지.
- 고수 : 내가 반가워 할만한?
- 2050 : 내가 사는 세상에선 적을 제거하고 나면 코인이란 게 생겨. 내가 지닌 능력은 그 코인으로 성장시켜 왔다.
- 고수 : 그런데?
- 2050 : 하지만 2021년도는 그런 게 없으니, 코인과 같은 가치를 지닌 그 시대의 돈으로 능력을 올려야만 했지.
- 2050 : 이번 전투에서 네가 그린 그림으로 인해 얻게 된 코인이 많아. 너에게 공헌도가 있으니 코인이 주어질 거다.
- 고수 : 오!
그렇다면 재능을 더 올릴 수 있게 되는 건가?
- 2050 : 코인은 저녁 즈음에 1000코인이 주어질 거다. 이번에 코인이 주어지면 창의력을 올려.
김수호는 그렇게만 말하고는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저 무뚝뚝한 놈.
어쨌거나, 방금까지 번 아웃이 올 것 같다고 여겼었는데 다시 힘이 나는 ‘나’다.
* * *
나는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이모부와 함께 양평에 온 것이다.
조금 전에 블랙카드로 현금을 뽑아 계좌에 넣고 왔는데, 잔액이...
후후, 다시금 의욕이 솟구치게 할 금액이다.
20레벨에서 남은 돈과 19레벨에서 집값으로 남겨둔 돈을 계좌에 넣어두었더니, 16억 4824만 원이다.
이만한 돈이 내 계좌에 들어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모부는 나와 함께 매물로 나온 어느 집의 정원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네가 말했던 대로 보기 좋은 집보다 튼튼한 집을 우선으로 고려했다. 애초에 말했던 7억 5000만 원보다 더 가격이 있는 집을 몇 개 골라놓았거든.”
“네, 15억에서 20억 사이로요.”
“근데 이 집은 네가 말한 조건에서 일치해서 일단 보여주긴 하는데. 매매가가 20억이야.”
“예. 상관없어요.”
“그래. 네 부모님이 좋아하실 거다. 여긴 숲에 자리 잡은 집이라 공기도 좋고. 정원도 넓고 예쁘거든.”
나는 정원을 가로질러 걸으며 답했다.
“좋아하시겠네요.”
이 집은 푸른 잔디와 멋스러운 나무로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거실에서 창을 내다보면 초록빛으로 시야가 가득 채워질 듯했다.
이모부는 계속 이 집에 관해 설명했다.
“토지 면적은 900평이고, 건평은 110평이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다 수입 화강암으로 외벽을 마감했어. 중정형이라서 주택 전체가 견고한 성 느낌이지.”
견고한 성이라... 그 점이 내겐 가장 중요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은 튼튼하고 안전하겠네요.”
“준공한 지 이제 5년 째라서 신축이나 마찬가지야. 보일러는 지열 보일러가 설치되어서 난방비도 절감될 거고.”
“네.”
이모부는 어느 한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아! 저기는 주차장이다. 아스콘 포장된 외부 주차장 외에 내부 주차장도 있어서 총 6대까지 가능해.”
“흠, 그렇군요.”
정원과 집이 쓸데없이 넓긴 하다.
이제껏 평범하게 소시민으로 살아왔던 부모님과 내가 보기엔, 필요 이상 호화로운 집.
이런 집을 구매할 생각을 해도 될까? 하는 주저함이 내게 있다.
이제껏 사치를 부려본 적이 없어서 면역이 별로 없는데.
부모님은 아마도 더하실 테니.
하지만 이 집처럼 안전하고 내가 생각하는 조건을 부합한 집을 찾기가 어려웠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널찍하고 깔끔한 인테리어의 거실이 나왔다.
거실에서 정원으로 내다보이는 커다란 창이 보였다.
나는 그 창을 보며 생각했다.
만일 이 집을 사면 미관상 안 좋겠지만, 티타늄 방범창을 설치해야겠다.
2층까지 돌아보자, 이모부는 내게 물었다.
“고수야, 다음 집 볼래?”
“예. 다음 집은 어떤 집인데요?”
“그 집은 15억짜리인데, 이 집도 네가 말한 조건에 부합하긴 한데. 여기보단 못할 거야. 내가 보여줄 집은 여기가 가장 비싸고 좋은 셈이지.”
“예.”
“일단 보러 가자.”
이모부의 말대로 20억 집이 가장 좋긴 했다.
이후에 세 군데를 더 돌아봤음에도, 처음에 봤던 집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거다.
그날 저녁, 이모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식탁에 앉았고 이모는 닭볶음탕 냄비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이모부에게 말했다.
“이모부, 저 그 집으로 할게요.”
“20억짜리 그 집?”
“네.”
이모 역시 의자에 앉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20억?”
이모부는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내게 입을 열었다.
“고수야, 요즘 네가 일이 잘 풀린다고 들었긴 하다만. 20억이면 고액인데 괜찮겠니?”
“괜찮아요. 지금으로선 약간 부족하긴 하지만 마련할 수 있는 돈이에요. 부모님이 대전 집을 팔면 조금 보태지기도 할 거고.”
이모부는 내가 과수원 땅까지 샀다는 걸 알고 있어서, 내가 20억 집을 사는 것이 염려되었을 거다.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요즘 꽤 일이 잘 풀리는 모양이다.”
나는 겸연쩍은 미소를 보였다.
또 뭔가를 둘러대어야 해서 마음이 불편하긴 하다.
“네. 요즘 일이 많이 들어와요. 수익도 올랐고요. 공모전도 당선되어서 받은 상금도 있고.”
그때 이모가 끼어들며 말했다.
“요즘 고수가 그림 작가로서 잘 되고 유명해졌나 봐. 그, 애플 작가처럼.”
“애플 작가? 그건 누군데?”
“요즘 인터넷을 보면 완전 핫해. 엄청 인기라던데. 우진이 덕에 알았다니까.”
우진이는 내 이종사촌이다.
고등학생이라 아직 학교에서 오지 않았다.
이모는 흥분한 얼굴로 계속 말을 이었다.
“오늘 오전에 애플 작가가 사과나무를 그리는 작업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었거든. 그것 때문에 사람들 난리 났어. 더 유명해질 것 같던데.”
“그래?”
“애플 작가의 작업 영상을 기업에서 광고로 사용하겠다고도 하던데. 우리 고수도 그만큼 잘나가서 돈을 많이 버는 거 아니겠어?”
그러면서 이모는 그치?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더욱 겸연쩍어진 얼굴이 되었다.
일요일 저녁에 진구가 만든 영상을 월요일 아침에 인터넷에 올려둔 상태였다.
사람들 반응까지는 아직 확인하진 않았다.
이따 저녁에 인터넷 검색해 볼 생각이다.
나는 이모에게 내가 애플 작가라고 말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아직은 내가 애플 작가이고 사과나무를 그렸다는 걸 드러낼 수는 없다.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아직 모르는 일이기에.
“네, 맞아요. 이모. 그 애플 작가처럼 저도 돈을 많이 벌게 되었어요.”
“암튼 잘 되었다. 언제 우리 수, 그림도 봐야 할 텐데.”
“하하, 네.”
“그럼 부모님은 조만간 서울에 오시겠구나.”
“네, 이번 일요일에 올라오실 것 같아요. 그때 부모님도 집을 보셔야죠.”
“언니는 좋겠다. 아들 잘 둬서 좋은 집도 사고.”
이모가 그렇게 한껏 부러워하는 얼굴을 할 때, 이모부는 내게 물었다.
“고수야, 그럼 계약은 언제 할래?”
“음, 제가 평소엔 시간이 많이 안 나서요. 이왕 계약할 거, 시간이 되는 내일 할게요.”
* *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마트에 들러 식료품을 잔뜩 사 왔다.
라면, 계란, 시리얼, 우유, 사과, 쌀, 소고기, 돼지고기 등등.
물건을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어둔 다음.
샤워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후, 이제 얼마 만에 누려보는 여유냐.
근데 아깝게 벌써 하루가 홀라당 지나가 버렸다.
사과나무 그림 사진과 애플 작가에 관해 검색을 했다.
그러자 주루룩 나타나는 검색 내용들.
내가 오늘 아침에 올렸던 영상 조회수가 그새 어마어마하다.
헐, 이게 오늘 누적된 조회수라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 영상에 관심을 가지고 봤다는 것에 놀랐다.
무엇보다 반응이 엄청났다.
무수하게 달린 댓글들을 다 확인하는 건 불가능한 일.
└ 애플 조아 : 아니! 애플 수가 남자였어?!! 미녀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좋아요 1.1천, 답글 203개)
└ 반전은 항상 있다 : 저 손이 남자 손일 거라는 고정관념은 버려. 여자 손일수도 있음. ㅇㅅㅇ (좋아요 72, 답글 59개)
└ 갓갓 : 저건 신의 영역이다. 지린다! 금 손이 아니라 신 손! (좋아요 856, 답글 367개)
└ hahaha : 애플 수, 손도 개잘생겼네~ 얼굴도 존잘일 것 같음. 얼굴 궁금하다. (좋아요 710, 답글 42개)
└ yhsj1004 : 저 그림이 사진이라고 했던 놈들 다 나와! (좋아요 970, 답글 290개)
└ 애플 쑤 : 저 그림을 사람이 그린 거였다니. ㅎㄷㄷ (좋아요 135, 답글 38개)
댓글 행렬은 끝이 없다.
구독과 댓글 알림을 꺼놓아서 몰랐는데.
이 정도인 줄을 몰랐다.
피로함을 느낀 나는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올랐다.
그리고 내 재능 스탯을 확인했다.
침대에 앉아 조용히 혼자 중얼거렸다.
“2050 고수.”
그러자 반투명한 재능 스탯 내용이 시야에 나타났다.
『명화 작가 15레벨
명화 속도 : 6
그림 기교 : 5
초월 창의력 : 6
코인 : 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