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21화 (2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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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살라져야 얻을 그림의 가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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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김수호에게 물었다.

- 고수 : 근데 갑자기 궁금한 게 생각났는데.

- 고수 : 네 부모님, 내가 사는 시대에 계시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자 김수호의 반응은 싸늘했다.

- 2050 : 그건 알 것 없다.

그가 무뚝뚝하고 늘 담백한 태도를 보이긴 했어도, 싸늘해졌던 적은 없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살짝 당황했다.

아마도 내가 못 물어볼 걸 물었나 보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책상 서랍 안에서 계약서 파일을 꺼내 들었다.

현재 블랙카드로 긁을 수 있는 19레벨 금액은 25억 9712만 원.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2050 고수.”

그러자 나타나는 그림 재능 스탯.

『그림 작가 12레벨

그림 속도 : 4

그림 기교 : 5

창의력 : 5.』

능력 레벨업 비용으로 막대한 금액이 지출될 거라 잠시 심호흡을 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갈수록 부풀어가는 금액이라서 가슴이 벌렁벌렁할 수밖에 없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말을 내뱉었다.

“그림 속도 레벨업.”

그러자 금액이 차감되긴 했는데.

10억 2400만 원만 차감되었다.

“어?”

원래는 20억 4800만 원이 결제되어야 한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톡으로 김수호에게 물어보았다.

- 고수 : 2050. 방금 13레벨 재능을 업그레이드했는데. 원래 20억 4800만 원결제되는 거 아냐?

하지만 그는 그사이 자리를 비웠는지 AI 2050이 대신 대답했다.

- 2050 : 이번에는 고액이라 두 차례 나눠서 결제됩니다. 다른 날짜에 다시 한 차례 결제될 예정입니다.

- 고수 : 그렇군.

재능 레벨업 비용이 차감되고 나면 19레벨에서 긁을 수 있는 돈은...

5억 4912만 원.

참으로 흡족한 금액이다.

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김수호가 추가 보상으로 2억 원을 준다고 했으니까.

5억 5000만 원과 합하면, 거의 7억 5000만 원을 주택을 구매하는데 할애할 수 있을 것 같다.

후후, 왠지 꿈만 같은걸.

최근에 산 과수원 땅에서 양평은 차로 한 시간 안쪽 거리이니.

나쁘지 않다.

아무래도 대전보다 같은 경기도에 집을 구하는 것이 혹시 모를 미래를 대비하기에 좋은 거다.

나는 바뀐 재능 스탯을 바라보았다.

『그림 작가 13레벨

그림 속도 : 5

그림 기교 : 5

창의력 : 5.』

골고루 스탯 수치를 올린 상태.

집 구매도 좋지만 나는 타블렛 펜을 들었다.

후, 이젠 내 드로잉이 얼마나 빨라졌는지 볼까?

20레벨 자료 사진을 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슥슥-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눈을 커다랗게 떴다.

확실히 빨라진 속도!

그냥 빠른 게 아니라 미친 속도다.

전에는 마치 내 손에만 시간이 4배속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5배속으로 시간이 빨리 흐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쯤 되니, 그냥 천재라거나 달인이라거나 하는 표현은 쓸 수 없을 것 같다.

이건 재능이라기보다 초능력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터.

사람이 이 정도로 빨리 그릴 수는 없다.

후후, 그림을 그리는 게 즐거워진다.

* * *

아침에 한강 변으로 운동 나왔다가 오랜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벤치에 앉은 채 신호음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곧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셨다.

<수야, 오늘은 아침에 전화했네?>

“엄마, 바쁘세요?”

<아니. 아들 전화 받을 시간은 항상 있어. 근데 너 이번에 또 돈을 보냈더라.

500만 원. 수야, 그러지 말어. 엄마도 돈 있는데.>

“아버지 인플란트 마저 하셔야잖아요. 근데 엄마.”

<왜?>

“이제 거기 집이랑 시장 일 정리하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저 이번에 양평에 집을 사려고요.”

어머니는 많이 놀라셨는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뭐? 네가 집을 사다니? 무슨 돈으로?>

“아직 산 건 아니고요. 조만간 천천히 알아볼 거예요. 그러니까 슬슬 시장 일정리하세요.”

<전부터 집 산다, 집 산다 하더니 정말 사는 거야? 어휴, 양평 집 엄청 비싸다던데. 네가 그만한 돈이 어디 있다고.>

“있으니깐 산다고 하죠. 엄마, 저 요즘 돈 엄청 번다니까요?”

<수야, 대출로 무리해서 집사는 건 안 된다. 그리고 시장 일 정리하면 뭐 먹고 살겠니?>

나는 그 후로도 한동안 어머니를 설득해야 했음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일을 놓지 않기를 원하지 않았고, 대전도 떠나지 않길 원하셨다.

하지만 어차피 2023년 안에는 부모님이 양평 쪽으로 이사와야 한다.

아무래도 대전에 있는 것보단 쉘터와 가까운 양평에서 지내시는 게.

내 마음이 편할 테니.

무엇보다 대전 집은 너무 낡고 허름하다.

나는 어머니와 통화를 마친 후에, 루나에게서 온 톡을 확인했다.

- 루나 리 : 고수 오빠, 라이브 드로잉 쇼에 참여하는 거요. 결정하셨어요?

저는 오빠가 하셨으면 좋겠어요.

- 루나 리 : 오빠는 그만큼 실력이 있으니까. 더 유명해져서 아티스트로서 잘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실은, 내 안에 열망이 있긴 하다.

그림 작가로서 유명해지고 성공하고 싶은 마음.

여느 때 같았으면 옳다구나 싶어서 냉큼 수락했을 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순위가 2024년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만일 그 행사에 참여한다면, 나는 아마도 주목을 받고 싶어 할 테지.

지금 나에겐 남들에게 없는 탁월한 재능이 생겼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후 꼬리를 물고 이어질 기회들을 붙잡고 싶어 할 거다.

여러모로 지금 하는 일에 방해받을 터.

지금은 아포칼립스를 막는 게 더 중요하다.

불행으로 예정된 미래를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니 조금만 더 2024년을 대비하는 데 충실하다가 기회를 잡아도 좋다.

루나가 하는 제안이 다시없는 기회 같아 보여도.

실상은 내게 나타난 13레벨의 그림 작가 능력이 ‘기회’ 그 자체다.

이것만 있으면 ‘기회’는 언제든지 내게 머물러 있는 셈이다.

나는 그녀에게 답장을 적기 시작했다.

- 고수 : 다음에 참여할 기회를 주시면 그때 하겠다고 전해주세요. 루나,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고수 : (하트 보내는 이모티콘)

* * *

오늘도 타블렛 앞에 앉아 그림 작업 중이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얼마 전에 19레벨로 그렸던 사과나무 그림이 떠오른다.

가장 최근에 사라진 그림이라 그런가.

이제껏 사라진 그림 중에 그 그림이 가장 아쉬움이 크다.

김수호가 그림을 실물로 바뀌면, 언제나 그러했듯.

나의 피땀으로 그려진 그림들은 전부 흔적없이 사라지곤 했다.

사과나무 그림이 흔적없이 사라졌을 때.

저장되어 있던 내 컴퓨터 안에서 흔적없이 사라진 것을 봤을 때.

그런 감정이 들었었다.

2024년도에 예정된 불행.

숱한 생명이 종말을 겪은 죽어버린 땅.

어두워지고 온기를 잃어버린 모든 인생과 역사에 빛을 내고 온기를 내고자.

내 그림을 불사르게 된 기분이다.

그렇긴 해도 내 마음은 나쁘지 않았다.

사과나무 그림이 유독 마음에 들었다고 해도.

그걸 내줌으로 인해 얻게 될 더 큰 가치가 있으니까.

그림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그 그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만 얻게 될 가치는 더욱 크다.

그러고 보니, 실물로 변한 사과나무가 궁금한데?

김수호에게 사과나무 그림을 실물로 전환한 영상을 보내달라고 하려고 핸드폰을 들자.

친구로부터 까톡이 왔다.

- 이진구 : 야, 고수야.

나는 핸드폰을 들고 답장했다.

- 고수 : 왜?

- 이진구 : 봤냐? 네 그림.

- 고수 : 응?

- 이진구 :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네 그림 말이야.

엥? 이게 뭔 소리랴.

- 이진구 : 사과나무 그림. 이거 네 그림인 것 같은데? 그림에 네 서명에 박혀 있어. 지금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데. 사람들 반응이 장난 아니야.

- 고수 : 잠깐 확인 좀 하고.

나는 심각해진 얼굴로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다 발견한 19레벨 때 그린 사과나무 그림.

내가 잠시 까톡 프로필 사진으로 해놓았던 사과나무 그림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서 퍼지는 중이었다.

그림을 핸드폰 사진으로 찍은 거라 화질이 아주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진을 확대하면 어느 정도 디테일이 보였다.

원래, 그 그림의 원본은 잎사귀에 붙은 아주 작은 벌레까지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그림이었다.

헐, 이걸 누가 허락도 없이 인터넷에 올린 거지.

이 그림을 그렸던 뿌듯함과 아쉬움 탓에 까톡 프로필에 10분 정도 올렸다가, 바로 삭제했었는데.

까톡 프로필에 올린 걸, 누군가가 보고서 저장했었나 보다.

그런데 내 까톡엔 정말 사람이 많아서.

누가 내 그림 사진을 저장해서 인터넷에 올리기까지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인터넷에 올라온 그림의 오른쪽 하단을 살펴보았다.

거기에 자그맣게 적어넣은 내 서명이 있다.

秀.

빼어날 수.

어느 커뮤니티에 내 그림 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있다.

└ 머라노 : 헐. 이거 진짜 그림이라고?

└ Ran : 그냥 사진 같은데? 요즘 사진 기술이 얼마나 좋은데 ㅉㅉ ㅂㅅ들

└ 아린 : @Ran 이 사진, 진짜 그림이라던데요?

└ 떡 하나만 : @Ran 너가 ㅂㅅ ㅅㄲ

└ 오졌고 : 그림이면 진짜 금손이다 ㄷㄷㄷ

└ tkfkdgo : 사진ㅇ라고 해도 넘 멋지네요. 작품임!

└ 빵아빠 : 뭔가 되게 신비로운 느낌이 듦. 그림이라면 너무 사진처럼 그려졌는데. 사진이라기엔 되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느낌이 들어서 예술작품 같음.

└ 전문가 : 나 그림 그리는데 이거 그림 맞아. 한땀 한땀 금손 장인이 그린 거야.

반응들이 되게 폭발적이다.

다른 곳을 찾아봐도 다 비슷한 반응이다.

이건 사진이다. 사진이 분명하다.

그게 아니면 그림이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그린 나를 사과나무를 그린 작가라고 해서, 애플 작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또는, ‘애플 수’ 라고 부르기도 했다.

애플 수.

뭔가 나와 안 어울리는 이름이긴 하다.

나는 컴퓨터 모니터의 인터넷 창을 한동안 들여다보며 멍하니 있었다.

왠지 이상한 기분.

묘하다.

한참을 모니터를 응시하다 눈동자를 움직여 핸드폰을 힐끗 보라보았다.

아, 진구와 까톡하고 있었지.

핸드폰을 들어 까톡을 확인했다.

진구는 나에게 계속 까톡을 보내고 있는지 안 읽은 톡이 3개 있다.

- 이진구 : 사과나무 네 그림 맞지? 그 애플 수라고 부르던데. 사람들이.

- 이진구 : 네가 올린 거야?

- 이진구 : 난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네가 이런 ㅎㄷㄷ한 그림을 그렸다고?

전에 통조림 그림도 엄청나긴 했는데. 이건 격이 다르다. 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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