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10화 (1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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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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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더 높아지면 김수호는 대체 어떻게 카드값을 감당하려고.

이전 레벨의 두 배 금액을 긁을 수 있도록 한 거지?

2050이 보내온 자료 사진을 확인했다.

이번엔 기갑 전투 차량이다.

하지만 현대에서 볼 수 있는 전차와는 다른 모양이었다.

나는 사진을 터치해서 확대해보았다.

2050이 보낸 사진은 화질이 엄청 좋아서 한없이 확대해도 디테일이 섬세하게 보였다.

“어휴, 이번엔 난이도가 꽤 올라갔는데?”

장갑차의 디자인은 꽤 매끈했다.

크기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 같지만 꽤 강해 보였다.

미래에는 이런 장갑차가 나오는 건가?

나는 조금 전에 김수호가 보냈던 톡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2050 : 14레벨 마감 날짜는 3일 후 정오까지다. 이번에 보낸 사진의 그림은 장갑차의 재질까지 사진대로 표현해야 한다. 조금만 퀄리티가 떨어져도 무기의 재질과 성능이 달라질 테니.

3일 후면 화요일 정오겠군.

이번에 그릴 그림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아무래도 내 기교가 향상되어야 할 듯하다.

안 그러면 몇 번이고 그림을 보완하는 과정이 될 터.

나는 계약서 파일을 꺼냈다.

14레벨을 넘기면 집 보증금 마련은 문제없다.

그러니 지금은 재능을 레벨업 해야 할 때.

“2050 고수.”

계약서를 펼치고 그렇게 읊조리니 내 재능 스탯이 스르르 나타났다.

“그림 기교 레벨업.”

블랙카드에서 800만 원이 결제되며, 그림 재능 스탯 정보가 변화를 보였다.

『그림 작가 5레벨

그림 속도 : 3

그림 기교 : 3

창의력 : 1.』

나는 계약서 파일을 서랍에 넣어두고 펜을 들었다.

그때.

띠리리링-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액정을 확인해보니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하지만 나는 이 번호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었다.

김유라.

내가 전에 삭제한 유라의 번호다.

전화를 받지 않고 그림을 계속 그리려는데.

까톡!

이번에는 톡이 왔다.

핸드폰을 들고 톡을 읽지 않고 보이는 메시지만 슬쩍 확인했다.

- 김유라 : 나쁜 새끼.

하! 이런 적반하장을 봤나.

두 달 동안 한번도 연락 없다가 주말에 예식장에서 마주친 후, 연락을 하는 건 무슨 의미지?

나는 쓴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놨다.

까톡!

거참, 신경 쓰이게 하네.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 김유라 : 넌 나쁜 놈이야.

- 김유라 : 네가 한 번이라도 붙잡았다면 난 너와 헤어지지...

내가 톡을 읽지 않고 겉으로만 확인해서 문장을 다 볼 수는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슥슥-

다시 그림 그리는 일에 집중할 뿐이었다.

* * *

그 후로, 미친 듯이 그림만 그렸던 것 같다.

유라에게선 전화가 두어 번 더 왔었지만 받지 않았다.

유라는 이미 좋은 조건을 택하려고 나를 버렸던 적이 있었으니.

내가 그녀에게 더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설령, 내 감정이 그녀에게 흔들리고 때로 그리움이 고개를 들지라도.

나는 그녀와 내 감정에 매정해져야만 했다.

화요일 저녁 9시 즈음, 겨우 14레벨을 통과했다.

마감은 800만 원만 차감되어서, 13레벨 블랙카드로 긁을 수 있는 금액은 7316만 원이었다.

나는 수요일 오전에 계약했던 투룸의 잔금을 치렀다.

잔금은 7200만 원.

잔금을 치르고 나니 내 마음은 후련해졌다.

계약한 투룸이 이젠 내 거처가 되었구나 싶어서 한시름도 놓았다.

공인중계 수수료와 이런저런 생활비로 13레벨 블랙카드의 잔여 금액은 60만 원.

그 많은 돈이 이렇듯 사라져버리니.

블랙카드를 이런 식으로 써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재능 업그레이드가 아닌 내 개인 거처 마련을 위해 돈을 쓴 것이라서.

김수호에게 미안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거다.

아무래도 카드 대금 결제하는 사람은 그였으니까.

그만큼 앞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려주면 되겠지.

어차피 블랙카드 레벨마다 카드를 긁어야하잖아?

김수호는 그림으로 장갑차도 마련하는 거라서.

그의 입장에선 아주 손해보는 것도 아닐 거다.

이사할 새집은 최근에 비어서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곧바로 이사 날짜를 잡았다.

이사 날짜는 토요일.

후후, 내가 드디어 투룸으로 입성한다.

이렇게 행복할 데가!

새집에는 새 물건으로 꽉꽉 채워 넣어야지.

그동안 블랙카드로 인출하기도 해서 통장에 모아두었던 돈이 4000만 원 가까이 있다.

그 돈으로 일단 물건을 사야겠다.

나는 가까운 백화점에 있는 가구점에 왔다.

키가 180이 넘는데도 이제껏 싱글 침대만 불편하게 써왔는데.

이번에는 넉넉하게 퀸사이즈의 모션베드 침대를 구매했다.

침대의 등판 각도를 리모컨으로 조정할 수 있어서 가격이 좀 있었다.

침대 가격은 300만 원.

책상도 봤다.

고급스러운 서재에 어울릴 만한 클래식한 책상.

60만 원.

의자는 50만 원을 줬다.

옷장은 230만 원에 맞췄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백반집에 들어와 자리에 앉고서 핸드폰으로 계좌이체를 했다.

어머니 통장으로 500만 원을 입금한 거다.

그러고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 아직 시장이세요?”

<응. 여기서 대충 저녁 먹고 들어가려고.>

“맛있는 거 드세요. 아버지는 치과 가셨어요?”

<응. 네가 준 돈으로 인플란트 하려고 치료받고 있어.>

“엄마, 우선 500만 원 부쳤어요. 그걸로 아버지 치과 계속 받으시고. 생활비에 보태세요.”

<너한테 이런 큰 돈을 받아도 될런지 모르겠어. 너도 돈이 필요할 텐데.>

“엄마. 저 요즘 돈 엄청 벌어요. 지인짜 엄청. 그러니까 쓰셔도 돼요.”

<그게 정말이니?>

어머니가 웃자 나도 옅게 웃었다.

“네. 그러니까 시장 일도 너무 힘들게 하지 마요. 또 보내드릴 테니까 병원진료도 받으시고. 대학병원에서 검진도 하세요.”

<......>

어머니가 대답이 없다.

나는 통화가 끊겼나 싶어서 핸드폰 화면을 한 번 쳐다보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으응. 우리 아들, 엄마가 고마워.>

어머니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려 있다.

어머니는 평소 눈물이 많은 편이었는데 눈물을 보이셨나 보다.

어머니와 통화를 끝낸 나는 수저를 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청국장 찌개를 보니, 새삼 어릴 적에 시장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시장에서 밥을 먹어야 했던 게 참 싫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가끔 그때의 분위기와 기억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 * *

15레벨 자료 사진 역시 기갑 전투 차량이었다.

이건 14레벨 때의 사진보다 더 묵직하고 스케일이 커 보였다.

나는 김수호에게 말을 걸었다.

- 고수 : 김수호.

- 2050 : 왜?

오늘은 그와 금방 대화할 수가 있다.

- 고수 : 네가 있는 곳은 지금 전쟁 중인 건가?

- 2050 : 그래.

- 고수 : 어디와 전쟁을 하는 거지? 북한? 아니면...

며칠 전에도 이런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김수호가 대답하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그가 이런 대답을 한다.

- 2050 : 우리는 사람과 전쟁하고 있지 않다.

- 고수 : 뭐?

- 2050 : 우리가 싸우는 건 사람이 아니다.

김수호, 이놈이 한 번씩 뭔가 밝힐 때마다 그 내용은 참 쇼킹한 것 같다.

사람이 아니면, 외계인?

이건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

- 고수 : 그럼 영화 속처럼 외계인이라도 쳐들어오나 보지?

- 2050 : 외계인은 아니다. 이들은 이전엔 사람이었을 테니.

- 고수 : 대체 무슨 말이야? 사람이 아니라며?

- 2050 : 내가 이 말을 하면, 네가 과연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지 모르겠군.

김수호는 주저하는 듯했다.

사실, 나 역시 그에게 질문하면서도 내심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다지 좋은 내용이 아닐 것 같고.

외면하고픈 내용일 것 같아서.

- 고수 : 말해. 들을 테니.

- 2050 : 내가 이걸 말하면 너는 지금까지처럼 페이스를 유지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겠나?

- 2050 : 아니. 그보다 내 말을 믿을 수 있겠나?

- 고수 : 이제껏 넌 비현실적인 얘기들을 해왔는데, 새삼 못 믿을 건 뭐겠어.

- 2050 : 내 말은, 계속 나를 믿고 따라줄 수 있겠냐는 거다.

나는 한동안 핸드폰 까톡 창을 응시하다가 손가락을 움직여 메시지를 적었다.

- 고수 : 여기서 하는 선택으로 인해 혹시 미래를 바꿀 수 있지 않아?

- 2050 : 그래. 하지만 너의 선택이 내 검증을 받아야 하는 건.

- 고수 : 검증?

- 2050 : 너의 선택이 오히려 미래에 그릇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고수 : 그거 무시무시하군.

- 2050 : 지금은 능력을 키우면서 기다려. 아직 시간은 있어.

- 고수 : 오케이. 네 말뜻은 잘 알겠어. 섣불리 엉뚱한 행동은 하지 않을 테니까. 말해봐. 2024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 2050 : 아포칼립스가 찾아온다.

- 고수 : 뭐?

- 2050 : 하지만 그 일은 너의 세상에선 아직 확정된 건 아니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냥 전쟁도 아니고.

아포칼립스.

- 2050 : 내 장담하지. 너의 삶에선 지금 이대로 쭈욱 평화로운 세상이 이어질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그렇게 내 세상도 바꿀 거니까.

- 고수 : 지금 내가 할 일은?

- 2050 : 그림을 그리는 거다. 블랙카드의 레벨을 올리는 거다. 지금은 그뿐이야.

- 고수 : 정말 그뿐이라고?

- 2050 : 그래. 다른 일은 하지 마. 지금은 이대로 그림만 그려. 너는 그것만으로도 내 세상에서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김수호와의 대화 후에,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나는 새삼 지갑에서 블랙카드를 꺼내 바라보았다.

이제 블랙카드 15레벨.

이 레벨을 통과하고 나면, 나는 무려 1억 6232만 원.

마감 날짜는 토요일 저녁 7시까지다.

쓰읍, 그날은 이사 날인데.

이번엔 마감 날짜를 꽤 어기겠군.

마감 날에서 하루 넘어갈 때마다 1600만 원씩 차감되겠다.

* * *

이사하기 전날 밤, 나는 잠시 편의점에 가려고 집 밖으로 나갔다.

한동안 열대야 날씨더니 오늘은 저녁이 되니까 무더위가 주춤했다.

여름도 이제 꺾일 때가 된 것 같다.

원룸 밖으로 나오는데 한 여자가 서성이는 게 보였다.

하늘거리는 원피스에 긴 머리카락이 여성스러워 보이는 여자다.

나는 그녀를 보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유라야.”

그녀는 유라였다.

유라는 약간 술에 취한 듯 나를 보더니 다가왔다.

“나쁜 놈.”

“......”

얘는 여기까지 와서도 나쁜 놈이라고 그러네.

“왜 연락 안 받아?”

“......”

“너, 내 연락 안 받은 적 없었잖아. 내 톡 무시한 적 없었잖아.”

그랬었지.

그때는 헤어지기 전이었고 사귀던 때였으니까.

“이건 반칙이야. 왜...”

“너 술 마셨어?”

“왜, 전보다 더 멋있고 그래.”

“유라야, 네 핸드폰 줘봐. 너 데리러 오라고 연락하게.”

하지만 그녀는 대뜸 내게 포옥 안겨 왔다.

“야!”

얼떨결에 그녀를 안으며 소리쳤지만, 유라는 아예 팔을 뻗어 내게 매달렸다.

얇은 옷차림이라서 나긋나긋한 그녀의 가녀린 허리가 내 팔 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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