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9화 (9/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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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업그레이드 해보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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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수 : 김수호, 물어볼 게 있는데. 내가 계약을 파기하지만 않으면 블랙카드는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업그레이드 된 재능이랑.

- 2050 : 물론.

- 고수 : 믿어도 되는 거겠지?

- 2050 : 믿어도 돼. 이건 우리의 삶이 달려 있으니까.

- 고수 : 우리?

내가 묻자 김수호는 한동안 잠잠하다가 톡을 보내왔다.

- 2050 : 그래, 우리. 어차피 네가 사는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의 과거니까.

- 고수 : 네가 사는 곳은 2050년이라고 했지? 그곳 세상은 어떻게 변해 있어?

많이 안 좋은가?

사실 계속 궁금했던 바였다.

그는 대체 어떤 상황이기에 식량과 무기를 필요로 하는가?

그는 왜 사람들을 지켜야만 하는가?

전쟁이나 환경 오염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비슷하다고 답했었지.

- 2050 : 많이 안 좋다.

- 고수 : 얼마나? 언제부터?

- 2050 :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서 모든 게 그렇게 되어버렸어. 그래서 내 기억은 이런 세상에 관한 것뿐이지.

김수호가 보내는 톡은 항상 건조했었다.

그는 이모티콘 같은 거,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텍스트를 통해 대화하는 거라서 그의 감정과 표정을 알아볼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은 그의 담백한 문장에서 짙은 슬픔이 느껴졌다.

- 고수 : 넌 지금 몇 살인데?

- 2050 : 너와 같다. 28세.

- 고수 : 그래? 나보다 조금은 많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동갑이군. 그러면 세상이 안 좋아지는 건 2022년 이후라는 건데?

지금이 2021년이니까 얼마 남지 않은 거 아닌가?

갑자기 싸해진다.

지금까지는 당장 내 살길만 중요해서 김수호의 세상이 어떠하든 관심을 깊이 두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문제가 심각해지는 기분이다.

- 2050 : 2022년은 아니고 2024년이다.

- 고수 : 아, 그래?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건 마찬가지.

- 고수 : 이봐. 이제는 좀 자세히 털어놓는 게 어때? 2024년이면 얼마 안 남았는데. 나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 고수 : 그래야 뭔가 대처도 하고. 네가 사는 세상도 좋아지고 그러지 않겠어?

- 2050 : 물론이야. 하지만 내가 털어놓을 내용은 너와 우리에게 큰 파문을 불러올 거라서 신중해야 해.

- 고수 : 음.

- 2050 : 네가 받을 만하다고 판단할 때, 나는 너에게 한 가지씩 말할 생각이다.

나는 조금 생각이 복잡해져서 침묵했다.

그러자 그가 이어서 톡을 보내왔다.

- 2050 : 내가 사는 세상은 이러하지만 넌 걱정할 게 없는 건. 나는 너와 함께 미래를 바꿀 생각이다.

- 고수 : 미래를 바꾸겠다고?

- 2050 : 그래.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네가 만일 미래를 바꾸려고 계획에 없던 일을 하게 되면... 그러니까 오늘 밖에 나가서 G공원에 묘목 한 그루를 심게 되면 말이지. 2050년, 내가 사는 세상에는 G공원에 이제껏 없던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홀연히 생겨나게 되는 거다.

- 고수 : 헐. 그렇다면 넌 지금부터 나에게 그런 일들을 시킬 건가?

내가 묻자 김수호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 2050 : 아니.

- 고수 : 아니, 왜?

- 2050 : 아직은 시간 흐름에 섣불리 손을 댈 수 없어. 나 역시, 어찌 바뀌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 고수 : 흠, 그래도 뭔가를 해야...

- 2050 : 너는 당분간 지금처럼 그림을 그리면 된다. 그게 네가 할 일이야.

- 고수 : 지금처럼 그림만 그리면 된다고? 다른 거 생각 안 하고 블랙카드만 쓰면서?

- 2050 : 그래. 하지만 웬만하면 재능을 올려두는 걸 추천하지. 나와의 계약이 파기되면 그 능력은 사라질 테지만. 네가 스스로 파기하지 않는 이상, 그 능력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거다.

- 2050 : 업그레이드 된 능력은, 평생 네 것으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 고수 : 흠. 좋아. 그러면 지금은 최대한 재능을 올리도록 노력할게.

내 대답을 끝으로 김수호는 더 말이 없었다.

나는 책상 서랍에 고이 넣어둔 파일 하나를 꺼냈다.

계약서가 든 파일이다.

계약서를 펼치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2050 고수.”

그러자 나타나는 그림 능력 스탯.

이번에 그림 재능을 업그레이드 하면 400만 원이 차감될 거다.

그다음엔 800만원이 되겠지.

하, 800만 원.

재능에 투자하는 일인데도 목돈이 차감되는 거라서 그런지.

벌써 후들거린다.

나는 그것을 한동안 응시하다가 다시 중얼거렸다.

“그림 속도 레벨업.”

이내 능력 스탯이 바뀌었다.

『그림 작가 4레벨

그림 속도 : 3

그림 기교 : 2

창의력 : 1.』

이제 블랙카드 12레벨에서 긁을 수 있는 금액은 590만 원이다.

아까 800만 원을 인출해서 계약금을 지급하고 방금 400만 원을 쓰고.

그 외에 잡다한 것을 결제해서 그만큼 남은 거다.

내일 은행에 들러서 다 현금으로 뽑은 다음, 통장에 넣어둬야겠다.

보증금 마련해야지.

나는 전보다 탁월해졌을 재능을 시험해보기 위해 펜을 들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슥슥-

“오!”

펜으로 13레벨의 그림을 스케치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손놀림이 마치...

동영상으로 3배속을 한 것만 같다.

“이야!”

계속 감탄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거지만 경이롭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그릴 수가 있지?

내 손인데 내 손 같지가 않다.

이건 손만 빨라진 게 아니다.

내 두뇌 회전도 그만큼 빨라진 거다.

뇌의 능력과 그 모든 걸 따라잡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내 눈썰미까지.

너무 대단해서 심장이 쿵쿵 뛰었다.

미친놈처럼 웃음이 다 났다.

“흐흐.”

이거, 400만 원을 투자할 만한데?

물론 다음 능력 레벨을 올릴 땐 두 배의 금액이 들어가는 것이지만.

나는 홀로 씨익 웃었다.

이제야 내 이름이 이름값을 하는 것 같다.

흘끗 시간을 확인했다.

밤 11시 20분.

후우, 기다려라. 김수호.

13레벨, 이번엔 마감 시간을 반드시 지킨다!

* * *

다음 날 저녁 7시.

나는 완성한 그림을 2050 톡으로 보냈다.

그러자 곧바로 AI가 톡을 받았다.

- 2050 : 고수님의 그림을 확인합니다. 그림 분석하는 데 90분이 소요됩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손가락으로 톡으로 보낼 문장을 작성했다.

- 고수 : 얌마, 마감 시간이 저녁 9시인데. 분석하는데 한 시간 반이나 걸리면 어쩌자는 거야?

- 2050 : 레벨이 오르고 그림 스케일이 커지고 섬세해질수록 분석 시간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고수 : 아, 좀 더 빨리 안돼? 분석 끝나면 8시 반인데. 혹여 퀄리티가 떨어져도 보완할 시간이 없잖아?

- 2050 : 그건 어쩔 수 없군요.

- 고수 : 씁, 수정 그림 분석할 때는 시간 줄어들 테니까. 퀄리티 보완이 뜨더라도 퍼센트가 적게 나오는 게 관건이겠군.

- 2050 : 네. 맞습니다.

대체 이게 뭐라고.

사활을 걸고 있지?

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번에 마감 하루 어기면 450만 원이 날아가는 거다.

그리고 돈도 돈이지만, 10레벨 이후 마감 날짜를 맞춰본 적이 없어서.

한 번쯤은 한 번에 레벨을 통과해야 뭔가 성취감? 쾌감? 이 들 것 같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1시간 반 동안 뭘 해야 하지?

가만, 12레벨의 잔여 금액. 590만 원은 현금으로 뽑아서 통장에 넣어뒀고.

좀 씻고 집안 정리 좀 할까.

곧바로 욕실에 들어가 씻고 욕실 청소까지 하고 나왔다.

그런 후에 세탁기로 빨래를 돌리고 쓰레기를 버리고 한숨 돌리다보니.

시간이 어느덧 지나 있다.

1시간 28분, 이제 2분 남았다.

나는 호다닥 타블렛 앞에 앉아 펜을 들었다.

1분 전.

핸드폰의 톡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꿀꺽.

제발, 레벨 통과하자.

까톡!

나는 황급히 톡을 확인했다.

- 2050 : 고수님의 그림을 확인한 결과, 퀄리티를 조그 높여야겠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3%만 보완해주세요.

3%!

보완할 부분이 적으면 수정 그림 분석하는 시간도 적어졌던 것을 떠올렸다.

나는 눈에 불을 켜고 2050이 첨부한 그림 파일을 열었다.

내가 보완할 부분이 붉은빛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슥슥-

미친 듯이 그림을 수정하며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고는 타오르는 집중력으로 수정 파일을 다시 톡에 첨부해서 전송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저녁 8시 43분.

이내 2050이 톡을 보내왔다.

- 2050 : 고수님의 그림을 확인합니다. 그림 분석하는 데 16분이 소요됩니다.

16분! 다행히 9시를 넘기지는 않는다.

나는 퀭해진 눈으로 침대 위에 쓰러져 누웠다.

정말 하얗게 불태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어제는 3시간 밖에 못 자서 더는 움직이기 힘들다.

결국, 그대로 잠들었다.

그리고 2050은 16분 후에 내게 톡을 보내왔다.

- 2050 : 고수님의 그림을 분석한 결과, 블랙카드의 레벨이 13레벨로 상승합니다.

* * *

어느덧, 주말이 되었다.

아르마니 슈트와 구두, 셔츠와 화장품이 배송되어서 나는 그것을 입었다.

역시 비싼 옷이라 그런가.

옷에 관해 뭘 모르는 나도 원단이 좋다는 건 알겠다.

이런 비싼 옷은 처음 입어봐서 조금은 부담스럽고 조심스럽기도 하다.

벽에 걸어둔 싸구려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을 본 내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이야, 옷발 산다.

인물 산다.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

며칠 전에 펌도 한 상태라서 더 분위기가 살아 보인다.

늘 후줄근하게 있다가 씻고 오랜만에 헤어스타일링도 하고 쫙 빼입으니.

고수, 이놈 내가 봐도 잘 생겼다.

훤하다.

나는 기분 좋게 새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예식장 앞까지 향했다.

잠시 후, 사람들이 북적이는 예식장 안에서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고수!"

돌아보니 대학 친구, 수연이다.

“고수! 와, 너 되게 멋있어졌다? 나 순간 연예인 온 줄 알았잖아.”

“하하. 너도 예뻐졌네.”

“정말? 근데 진짜 빈말 아니고. 너 오늘 완전 존잘이야."

"흐흐, 고맙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따가 너 시간 돼?”

“아, 시간.”

평소 같았으면 시간 당연히 있지, 라고 답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어이없게도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라버렸다.

"너 유라와 헤어졌다며?"

"벌써 소문이 파다하구만. 헤어진지 두 달 되었어."

"나야 진구랑 친하다 보니 소식 좀 들었지. 저기 유라 왔는데 너 봤어?"

"아니."

"좀전에 걔 너 쳐다보고 있었어. 그때 내가 너에게 말을 건 거야."

나는 유라가 있는지 주변을 돌아보았다.

저만치 사람들 틈에 유라가 서있는 게 보였다.

유라는 여전히 상큼하고 예뻤다.

가녀린 목선과 턱선이 참 예뻤던 기억이, 지금도 내겐 선연하다.

그런데 유라는 오늘 남자친구와 오지 않은 모양이다.

혼자다.

문득, 유라와 내 시선이 맞부딪혔다.

나는 홱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때 진구와 준호, 강재가 내가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와 미친! 고수! 너 오늘 쩐다?”

“대박! 옷빨 죽이는데? 누구한테 빌렸냐?"

“샀을걸? 고수 요즘 잘 나가잖아? 엄청 좋은 데랑 계약도 맺었다던데.”

진구의 말에 수연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헐, 진짜? 대박.”

“맞아. 요즘 일 많이 들어오는 모양이던데. 저번엔 우리한테 소갈비도 쐈잖아?”

“어머, 고수야. 너무 잘 되었다.”

나를 보며 눈을 빛내는 수연이.

그녀는 내게 팔짱을 꼈다.

"나 고수한테 대시해볼까?"

"네가 대시하면 고수가 좋대?"

"왜에? 나 정도면 그래도 예쁘다는 소리 듣는다 뭐."

저만치 서있던 유라. 우리를 보던 시선에 못마땅함이 물씬 묻어났다.

강재는 그런 유라를 힐끗 봤는지, 내게 소곤거렸다.

“봤냐? 유라 표정 굉장하던데?”

"너희들 신경 좀 꺼라. 이제 유라와 나는 아무런 상관없어."

그러면서 나는 다시 한번 유라에게 눈길을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곳으로 가고 없었다.

* * *

그날 저녁 집에 들어온 나는 씻고 곧바로 타블렛 앞에 앉았다.

이제 14레벨, 마감 어겨서 깎이지 않는다면 8116만 원을 긁을 수 있을 거다.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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