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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업그레이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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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50 : 고수. 내가 사는 세상은 그곳과 같지 않다. 이곳에선 살아남기 위해 식량과 무기가 필요하지.
- 고수 : 무엇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데? 미래엔 식량 부족이 심한가 봐?
혹시 환경 오염? 전쟁?
- 2050 : 비슷해. 너에게 분명하게 말하지. 내가 식량과 무기가 필요한 건 세상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는 김수호.
지키기 위해서라는 말.
믿어도 될까?
톡을 통해서만 겪은 거지만 지난 며칠 동안 나는 김수호가 악한 사람 같지는 않다고 여겼었다.
그저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뿐이었지.
얼마 전에 꿨던 꿈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 고수 : 며칠 전에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었어.
- 2050 : ?
- 고수 : 한 번도 본 적 없던 네가 나왔었는데. 네가 있던 곳은 아포칼립스세상이더군.
얼굴도 본 적 없는 놈에게 꿈 이야기를 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는 생각보다 내게 진지하게 반응해왔다.
- 2050 : 아포칼립스 세상이었다고?
- 고수 : 꿈속에서 만난 너는 내 또래로 보이던데?
김수호는 한참 만에 톡을 보내더니 멋대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 2050 : 다음에 대화하도록 하지. 내가 지금 네 꿈 이야기까지 들어줄 여유가 없어서.
그러고는 끊겨버린 톡.
순간, 진지하게 꿈 이야기를 꺼낸 내가 병신 같아졌다.
김수호의 반응이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뭔 상관이야. 나야 돈만 들어오면 되는 거지.”
그래. 돈만 들어오면 된다.
심플하게 생각하자.
지금 내게는 당장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다.
가만! 지금 긁어야 할 블랙카드 금액이 얼마 남았지?
마감 날짜를 이틀이나 어겨서 100만 원 깎이고.
거기에다 그림 재능을 레벨업한다고 100만 원 차감되고.
그 후에 소갈비를 산다고 130만 원을 긁었었지.
그래서 지금은 긁을 수 있는 금액이 182만 원.
182만 원?
와, 어이없네.
10레벨에 긁을 수 있는 금액이 512만 원이었는데.
어떻게 한순간에 182만 원이 남은 거지?
뭔가에 홀린 기분이군.
11레벨 넘기면 더 좋은 거처로 옮길 생각이었는데.
이게 생각대로 되어주질 않는다.
내일 주말은 부모님에게 본가에 내려가겠다고 말해놔서, 집을 구하는 건 미뤄야 할 터.
본가에서도 그림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휴대용 타블렛을 구매해야겠다.
나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120만 원짜리 휴대용 타블렛을 블랙카드로 결제했다.
배달 주소는 대전에 있는 본가.
내일 낮까지 11레벨을 통과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뻐근해진 손목을 풀며 다시 펜을 집어 들었다.
* * *
다음 날 오전,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떠올라서 인터넷 기사를 확인했다.
어제 김수호가 말했던 내용이 고대로 기사에 뜬 게 보였다.
나는 소름 돋은 팔뚝을 문질렀다.
"와, 진짜네."
정말 김수호가 2050년 사람이 맞다는 건가?
내가 그런 사람과 매일 톡을 주고 받고 그림도 그려주고 있는 거고?
새삼 생각해보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걸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김수호와 블랙카드에 관한 걸 누설한 순간, 계약이 파기된다고 했었지.
나는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힐끔 시간을 확인했다.
아! 지금은 고민할 시간도 없다.
마감이 얼마 안남았다.
슥슥-
나는 펜을 부지런히 놀렸다.
하지만 마감 시간이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김수호가 말한 마감 시간은 낮 12시인데, 지금은 1시가 훌쩍 지나간 것.
그림 그리는 속도가 전보다 빨라진 상태인데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쉬지 않고 그려도 이런 상황이다.
공을 들여 섬세하게 그리려다 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거다.
휴, 이번에도 금액 차감되겠군.
10%가량 차감된다고 하니, 마감 날짜를 하루 넘길 때마다 100만 원씩 깎이는 건가?
겨우 11레벨인데 이런 상황이라면, 재능 레벨을 올리는 걸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림을 그리다가 펜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마감을 지키긴 글렀다.
아직 첫 끼도 먹지 못한 상태라 배도 고프다.
핸드폰을 들고 뒤늦게 대전행 srt를 검색했다.
주말이라 당연한 거겠지만 좌석이 없다.
진즉 예매했어야 했는데.
시간대를 쭉 살펴보니 저녁 8시 54분에 한 자리가 남아있다.
누군가가 취소한 표인가 보다.
나는 블랙카드로 결제하여 잽싸게 표를 예매했다.
대충 집안 문단속을 하고 낡은 청바지에 반팔 면티, 낡은 운동화를 신었다.
그리고 노트북을 집어넣은 허름한 백팩을 짊어지고 현관문을 나섰다.
핸드폰을 보니 시간이 오후 1시 40분.
수서역으로 향하는 길에 백화점에 들러 맛있는 점심을 먹고.
블랙카드를 사용해서 회심의 쇼핑을 해야지.
그렇게 계획을 하며 길을 나섰다.
나는 핸드폰으로 까까오 택시를 호출했다.
교통 체증이 지옥 같은 서울 시내에서 대담하게 택시를 다 타보다니.
이게 뭐라고, 왜 내 마음이 설레지?
조금 걸으니 저만치 대기하고 있는 택시가 보인다.
나는 여유로운 태도로 택시에 올라탔다.
이전 같으면 택시에 올라탄 순간부터 내 마음은 초조해졌을 것이지만.
오늘은 블랙카드를 긁을 수 있으니 느긋하게 가리라고 마음먹었다.
백화점으로 가는 길목이 막히자 나는 미터기를 힐끗 보았다.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는데, 7800원.
내 다리가 자동으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덜덜덜.
소시민 근성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닌 모양이다.
그냥 지하철 타고 갈 걸 그랬다.
잠시 후, 백화점 앞에 도착하니 15000원이 나왔다.
속이 살짝 쓰렸지만 괜찮다.
이제 곧 백화점 쇼핑을 할 건데, 벌써 멘탈이 흔들리면 안 되지.
오후, 2시 30분.
백화점 식당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겨우 자리에 앉았다.
그나마 먹을 만한 게 비빔밥.
이게 무려 12000원이나 한다.
3시경부터는 백화점을 돌아보았다.
너무 없어 보이는 차림으로 부모님을 뵈러 가면, 그것대로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 같아 옷을 사려는 건데.
무슨 여름 티 한 장에 십만 원대가 넘어가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은 블랙카드를 긁을 수 있는 금액이 62만 원뿐.
음, 내 옷은 적당히 지하상가에서 사야겠다.
부모님 드릴 선물이나 사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발걸음을 돌이켰다.
* * *
대학 다니는 순간부터 서울 생활을 시작했던 나라서.
8년 동안 부모님과 떨어져서 지냈었다.
그동안 사는 게 팍팍한 탓에 본가에 자주 오지도 못했었다.
부모님이 여전히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싫기도 했었다.
부모님은 시장에서 반찬 장사를 하시면서, 지은 지 42년이 된 낡은 주택에서 지내고 계셨다.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대문은 녹슬었으며 마당 블럭은 다 깨어졌다.
늦은 밤.
나는 백화점에서 산 부모님 잠옷 세트와 간식거리를 들고서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나오셨다.
“수야, 왔니?”
“네, 엄마.”
그래도 오랜만에 집에 오니 내 마음이 푸근하다.
부모님이 계신 곳이라서 그렇겠지.
“왜 이렇게 늦게 와? 좀 더 일찍 왔으면 저녁 같이 먹는 건데.”
“아버지는요?”
“안에 계시지.”
“엄마, 잠옷 사 왔어요. 백화점에서 산 인견 잠옷인데요. 여름철에 시원할 거예요.”
“뭘 이런걸 사 들고 오니? 백화점은 비싼데.”
“엄마도 맨날 시장 옷만 입을 게 아니라 이젠 백화점 옷도 입어보셔야죠.”
아버지는 거실에서 TV를 보시다가 나를 보더니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왔냐?”
“예, 아버지.”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쉬어라.”
“예.”
나는 답하면서 집안을 대강 둘러보았다.
전에 왔을 때보다 더 집이 허름해졌다.
집에 있는 TV는 수년 전 배불뚝이 모델이었고.
가구들은 대부분 오래되어서 골동품 수준이었다.
며칠 전에 세탁기가 고장 나서 어머니가 손빨래를 하신다고 했던 말이 새삼 떠올랐다.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봤다.
주방 벽지 한쪽이 곰팡이가 슬어있는 게 보였다.
싱크대도 낡아서 수납문 한쪽이 기울어져서 잘 닫히지 않는 것도 눈에 띄었다.
구식 냉장고는 말할 것도 없다.
아무런 내색 없이 내 방으로 들어갔다.
전에 쓰던 모습 그대로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오래되어 삐꺽거리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후우.”
절로 한숨이 나온다.
내 거처를 옮기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부모님을 좋은 집으로 모시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핸드폰을 꺼내 톡을 확인했다.
친구들 단톡방, 지인이 보낸 개인 톡, 등등.
여러 톡이 쌓여 있다.
손가락을 움직여 답톡을 한동안 작성하는데 김수호에게서 톡이 왔다.
- 2050 : 고수. 내가 왜 마감을 정했다고 생각하나?
- 고수 : 음, 블랙카드를 긁을 수 있는 금액을 차감하기 위해서?
- 2050 : 차감? 그딴 걸 해서 뭐하게.
- 고수 : 글쎄. 김수호 씨의 돈이 절감되겠지.
- 2050 : 내가 전에 말했던 것 같은데?
- 고수 : 뭐를?
- 2050 : 너에게 하는 그림 의뢰, 내겐 삶이 달려있다고. 혹시 지금 놀고 있는 건 아닐 테지? 지금 당장, 그려!
굉장히 단호함이 느껴지는 문장.
마치 마감 독촉하는 편집자 빙의한 것 같다.
- 고수 : 어, 미안. 타블렛 주문한 게 월요일 오전이나 올 것 같아서. 그때부터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 2050 : 후우.
그의 깊은 한숨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 고수 : 솔직히 주말과 휴일은 좀 봐주지?
- 2050 : 엄한 데 블랙카드 긁지 말고 차라리 재능 레벨업 하는데 카드 긁는 걸 추천하지.
- 고수 : 혹시 말이야.
- 2050 : 네가 쓰는 카드 내역, 나도 보고 있다.
- 고수 : 쓰읍, 그렇군.
- 2050 : 소갈비에 백화점 나들이. 아주 살 맛 났군.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있는 곳에서..
- 고수 : 네가 있는 곳에선 뭐?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한참 만에 다시 톡을 보내왔다.
- 2050 : 네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그때 얘기하도록 하지.
김수호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 * *
내가 주문했던 휴대용 타블렛은 월요일 아침에나 배송되었다.
일요일에는 그림을 그리지 못해서 마감 날짜에서 많이 딜레이되었다.
나는 그걸로 그림 작업을 시작해서 정도 무렵, 완성한 그림을 2050에게 보냈다.
그러자.
- 2050 : 고수님의 그림을 확인합니다. 그림 분석하는 데 45분이 소요됩니다.
45분이 지난 후에는 이런 메시지가 왔다.
- 2050 : 고수님의 그림을 확인합니다. 확인 결과, 퀄리티를 높여야겠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20%만 보완해주세요.
나는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고, 결국 저녁 즈음에서야 11레벨을 통과할 수 있었다.
- 2050 : 고수님의 그림을 분석한 결과, 블랙 카드의 레벨이 12레벨로 상승합니다.
- 2050 : 12레벨 자료 사진을 보내드립니다.
이번에 블랙카드로 긁을 수 있는 11레벨 금액은 차감된 금액을 제외한 724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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