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블랙카드가 레벨업을 한다-6화 (6/153)

돈으로 재능을 산다는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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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수 : 아, 날인.

- 2050 : 날인하지 않으면 12시간 이내에 그 계약서는 저절로 파기될 거야.

- 고수 : 저절로?

- 2050 : 그리고 지금까지 쓰던 블랙카드도 사용할 수 없게 될 거고. 그림 재능 레벨업도 할 수 없게 될 거다. 물론 방금 높아졌던 그림 속도 능력도 사라질 거고.

- 고수 : 사라진다고?

- 2050 : 나와 연결되어 있던 능력이 끊어지게 되는 거다.

- 고수 : 헐.

능력이 업그레이드 되었다가 사라져버린다면, 그건 또 엄청 아쉬울 것 같은데.

아마도 10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것보다 더 타격이 심할 것 같다.

이제껏 블랙카드를 사용하고 그림 재능이 좋아지는 걸 체험한 건, 맛보기 같은 거였나?

블랙카드로 숨통이 트이고, 그림 재능까지 업그레이드 되고 보니.

나는 이제 이 계약을 거절할 수 없게 된 것 같다.

그러해도 계약서에 날인하기 전, 확인해둘 건 확인해야겠지.

핸드폰을 들고 손가락으로 톡, 톡, 톡, 화면을 터치하며 문장을 작성했다.

- 고수 :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으로는 두 배씩 금액이 올라간다고 했으니까.

1레벨이 100만 원이면 다음 레벨은 200만 원, 400만 원이 되겠지?

- 2050 : 그래. 레벨이 늘어날 때마다 스탯 ‘1’씩 올라갈 거다.

- 고수 : 음... 날인은 12시간 이내에만 하면 되는 것 같으니. 잠시 생각 좀 해보고 날인하지.

- 2050 : 그러든지. 난 이만 가야겠다.

- 고수 : 잠깐. 네 정체에 대해서도 이만 밝히시지?

- 2050 : 그건 네가 계약서에 날인하면 차차 얘기할 거다.

김수호와의 대화는 거기에서 끝이 났다.

나는 계약서를 들고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말은 생각 좀 해보겠다고 했지만, 이 계약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그만큼 내가 얻을 이득이 크다.

하지만 이 계약은 평범하지 않아서 신중해야만 한다.

김수호의 정체를 아직 알지 못해서 껄끄러운 부분도 있고.

계약서 내용을 면밀하게 살피고 또 살피면서 생각에 잠겼다.

“좀 아니다 싶으면...”

블랙카드를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딱히 블랙카드로 인해 생길 손해 같은 건 없어 보이니까.

나는 벌떡 일어나 볼펜을 가져와서 계약서 2부에 사인을 했다.

계약서 2부 중에서 하나는 내가 보관할 거였다.

핸드폰을 들고 김수호에게 톡을 남겼다.

- 고수 : 김수호. 있나?

- 2050 : 수호님은 지금 바쁘십니다. 곧 고수님에게 답변을 남기실 겁니다.

- 고수 : 2050. 계약서 사인했는데. 계약서 2부 중에서 1부는 어떻게 김수호에게 보내지?

- 2050 : 계약서가 들어있던 박스에 고대로 넣으셔서 봉하십시오. 그리고 현관문 앞에 두시면 수거해갈 겁니다.

- 고수 : 누가 수거해 가는데? 택배 기사?

- 2050 : 굳이 사람이 와서 수거하진 않습니다. 수호님이 원하실 때 자동으로 박스가 이송될 겁니다.

자동으로 이송된다는 게 어떤 건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대강 넘어가며 2050에게 답했다.

- 고수 : 알았어.

나는 2050의 말대로 계약서 1부를 박스에 다시 담아 봉했다.

그러고는 현관문 밖에다 내다 놓고 타블렛 앞에 앉았다.

“시작해볼까?”

펜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손놀림이 민첩해지니 그림 그릴 맛이 났다.

갑자기 손이 빨라진 게 신기하기도 하고 마음이 고양되었다.

오래 전에 잃어버린 그림 그리는 즐거움과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다.

내 입꼬리에 짙은 미소가 배어들었다.

* * *

저녁 무렵에, 서울에서 맛있기로 유명한 소갈비 맛집으로 왔다.

예약한 방으로 가서 앉으니 반찬과 수저, 젓가락이 정갈하게 세팅되어 있다.

조금 있으니 친구 녀석들 3명이 도착했다.

그들이 오니 금세 시끌시끌해졌다.

“야, 이 미친놈. 여기 1인분에 10만 원이나 하는 곳 아냐?”

“10만 원? 여기 후덜덜하다.”

"여긴 소고기에 금가루라도 뿌렸나? 식당 입구부터가 고급지긴 했어."

“실컷 먹고 고수 놈 튀는 거 아니겠지?”

그들의 말에 나는 정색하며 대꾸했다.

“야, 나를 뭐로 보고. 내가 의리 빼면 시첸데.”

“고수야,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 걍 나가자.”

“흰소리 말고 얼른 앉아. 지금 안 먹으면 언제 여기 와서 비싼 소갈비를 먹어 보겠냐?”

“얌마, 우리가 여기서 1인분만 먹겠냐? 저것들 한번 시동 걸리면 못 멈춰. 너 그러다 여기서 거덜 나.”

진구가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얼굴로 말했지만 나는 허허 웃기만 했다.

다들 자리에 앉아 여전히 어수선해 있을 때, 종업원이 갈비를 가져왔다.

시작은 일단 4인분.

“헉! 갈비다. 이젠 나가기에 너무 늦은 것 같은데.”

“이야, 근데 고기 때깔 좀 봐라.”

“고수야, 어쩌냐? 내 안의 블랙홀이 열리려 한다.”

“하하. 걱정하지 말고 맘껏 먹어라. 오늘 배 터지게 먹어도 돼. 오늘 이 형님이 쏘겠다고 말했잖냐.”

“이열~ 우리 고수, 로또 당첨되었나?”

“그건 아니고. 내 그림을 인정해주는 재벌 또라이를 만났다고나 할까?”

“재벌 또라이?”

“암튼 오늘 나 두둑하다.”

치이이이-

숯불 위에 종업원이 직접 갈비를 구워주었다.

다들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들을 보며 종업원에게 말했다.

“갈비 8인분 추가할게요.”

친구 녀석은 고기가 다 구워지기도 전에 젓가락을 놀려 입으로 가져가기 바빴다.

눈 깜짝할 사이에 4인분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종업원은 고기가 익기도 전에 사라져버린 4인분에 당황하며, 8인분의 고기를 가져와 다시 열심히 구웠다.

하지만 열심히 구운 보람도 없이 쩝쩝거리는 소리와 함께 홀연히 사라지는 갈비.

여느 때보다도 종업원의 손은 바빠졌다.

돼지 녀석들.

나는 이런 비싼 고깃집엔 처음 와봤다.

40만 원어치가 몇 초 만에 사라지는 것을 보니, 괜히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돈 쓰는 일에 이제껏 소심했던 나.

이 정도의 큰돈을 몇 초면 사라지는 먹거리로 소비해본 일이 없다.

그만큼 내겐 면역이 없었다.

그러니 심장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갈비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심장은 떨리더라도 맛은 있다.

살살 녹는다.

본가에 내려가면 부모님께도 사 드려야지.

“고수가 이런 곳에서 크게 쏘기도 하고. 이제 점점 일이 풀리려나 보다.”

“그러게. 이제 고수도 나아져야지. 그동안 고생 많이 했잖냐.”

“맞아. 대학 다닐 때, 안 해본 알바 없었지.”

“그래도 고수는 우리보다 낫다. 이 자식은 내내 여자가 없었던 적이 없잖냐?”

“하긴, 우리 중에서 이놈이 제일 존잘이긴 하지.”

나는 친구들의 말에 대꾸했다.

“그러면 뭐하냐? 여자가 있었어도 궁상떠는 내 모습에 금세 떨어져 나가곤 했는데.”

“유라 걔는 나쁜 년이고. 전전 여친, 전전전 여친은 애초에 네가 지레 끊어낸 거잖아?”

“됐고. 너네들 냉면 먹을래?”

“콜!”

고기를 다 먹고 냉면 먹을 즈음, 나는 화장실 다녀오면서 계산대 앞으로 왔다.

종업원에게 블랙카드를 내밀자 담담하게 받았다.

음료와 술을 시킨 것까지 다해서 130만 원이 나왔다.

후아, 내가 밥값으로 130만 원을 긁어보다니.

이래도 되나 싶다.

그래도 학교 다닐 때부터 변함없이 함께해준 친구들에게 사는 밥이니.

전혀 아깝진 않다.

어쨌든 오늘은 기분 좋은 밤이다.

* * *

집에 들어오니 밤 10시다.

현관문 밖에 있던 박스는 언제 가져갔는지 사라졌다.

저녁 먹고 그 뒤에도 뭔가를 계속 먹었더니 아직도 배가 부르다.

대충 씻고 핸드폰을 확인하자 김수호에게서 1시간 전에 톡이 와 있다.

- 2050 : 고수.

- 2050 : 있나?

나는 타블렛 앞에 앉아 핸드폰으로 톡을 작성했다.

- 고수 : 말해, 김수호.

- 2050 : 수호님이 조금 후에 답변하실 겁니다.

- 고수 : 조금 답답해서 그런데. 김수호와는 톡으로만 대화해야 하나? 통화할 수 없나?

- 2050 : 그 질문 역시, 조금 후에 수호님이 대답하실 겁니다.

아, 그래.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타블렛 펜을 잡았다.

슥슥-

보조 모니터로 자료 사진을 띄워놓고 스케치를 했다.

이제껏 줄곧 음식 사진뿐이었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 생긴 기관총 사진이다.

까톡!

톡 알람에, 핸드폰을 확인하니 김수호가 톡을 보냈다.

- 2050 : 고수. 계약서는 잘 받았다.

- 고수 : 벌써?

- 2050 : 11레벨은 내일 낮 12시까지.

- 고수 : 너무 촉박해.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돈 차감하려고.

- 2050 : 겸사겸사. 내가 급하기도 하고. 꼬우면 능력을 키우면 될 텐데?

이놈, 은근히 얄밉네.

- 고수 : 톡 말고 통화 가능한 번호 있나?

- 2050 : 아직은. 까톡만 가능해.

- 고수 : 아직도 신비 컨셉이신가? 솔직히 이해되지도 않고 미심쩍은 게 한둘이 아니거든?

- 2050 : 한 가지는 말해줄 수 있어. 난 지금 네가 사는 세상에 없다.

- 고수 : 뭐? 그럼 김수호 씨는 하늘나라에라도 계시나 보지?

나는 빈정거렸다.

- 2050 : 아니. 내 말은 너와 같은 시대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 고수 : 그게 무슨 말이야?

- 2050 : 내 닉네임 2050. 그거 내가 사는 세상의 연도다.

- 고수 : ...

2050년의 세상에서 사는 김수호?

그런 그가 내게 까톡과 택배를 보낸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 2050 : 계약서에 너의 재능 수치가 나타났던 건, 이곳 기술로 만들어진 계약서 덕분이지.

- 고수 : 그렇군.

나는 어이없고 황당했지만 대답은 했다.

- 2050 : 너와 난 능력이 연결되어 있어.

- 고수 : 뭐?

- 2050 : 나는 네 그림 능력을 통해서 이곳 세상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얘기야.

문득, 전에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그림을 보고서, 이래서는 맛이 없을 거라는 말을 했었다.

- 고수 : 혹시 미래에선 사실적인 그림을 실물로 바꾸는 기술이라도 개발되나 봐?

- 2050 : ㅋㅋ 그런 생각을 했군. 네 말, 절반은 맞다. 내 능력은 그림을 실물로 바꾸는 능력이야.

- 고수 : 헐.

김수호와 엮인 후부터, 내 삶의 장르가 갑자기 판타지로 가는 기분이다.

그림을 실물로 바꾸는 능력.

김수호가 2050년 사람이라는 말보다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혼란스럽고 의구심이 들기도 하다.

이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더욱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 고수 : 네가 2050년을 살고 있다는 걸 뭐로 증명할 수 있지?

- 2050 : 당장 증명할 수 있는 건, 네가 겪었던 신비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군. 너의 재능을 업그레이드 하는 부분은 네가 사는 세상에선 불가능한 일이니까.

- 고수 : ...

- 2050 : 그리고 미래 일을 맞추는 것.

- 고수 : 뭐?

- 2050 : 내일 아침 뉴스를 보면 J그룹 회장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뜰 거야.

중국 00성에서 7도 지진이 발생할 거고. 시간은 정확히 한국 시간으로 오전 7시 5분.

생각이 복잡해졌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질문할 말을 한참을 고르다가.

톡, 톡, 톡, 엄지로 화면을 터치해서 문장을 적었다.

- 고수 : 내일 아침 뉴스를 한번 살펴볼게. 그런데 이번엔 왜 무기 사진이지?

전에는 내내 음식 사진이더니? 무기 그림을 실물로 바꾸려는 건 어떤 목적인 거지?

그가 나를 통해 무기를 얻으려 하는 거라면, 그 용도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김수호는 금방 대답하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하더니 그가 톡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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