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헌
광장 앞은 사람들로 꽤나 붐비고 있었다. 번화가로 조성된 광장은 백화점과 대형 마트를 비롯해 근처에 상업 건물이 밀집해 있어 낙원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이었다. 중앙에 설치된 거대한 전광판에서 조금 크다 싶은 볼륨으로 광고음이 울려 퍼졌다. 완벽하게 미학적으로 설계된 네온사인들이 현란하게 반짝인다. 저녁 무렵엔 십여 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강변을 따라 이따금 작은 야시장이 열리기도 하는데, 마침 그날이었는지 자재를 실은 조그만 트럭들이 주차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경헌은 분수대 앞에 앉아 그 모든 것들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쇼핑백을 들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한 사람들이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간다. 하나같이 활기차고 시끄러운, 이제 한국인지 낙원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활성화된 거리.
이경헌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폐 속 가득 차갑고 신선한 공기가 들이찬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었다. 낙원의 건설은 실로 성공적이었다. 몇 년간 씨를 뿌리듯 낙원에 기조를 세우고 신의 힘을 운용해 벌어들이는 모든 자본을 이곳으로 집중시켜 기둥을 쌓아 올렸다. 집 밖으로 운신하지 못하는 신을 대리해 이경헌은 파종한 순간부터 셀 수 없이 이 섬을 오가며 싹이 트는 것을 지켜보고 관리하며 기록해 왔다.
신의 새로운 둥지가 될 낙원. 신을 등에 업고 영원히 시들지 않을 이 섬의 생명체들. 누가 뭐래도 자신은 신세계의 건축가였다. 신의 힘이 낙원의 심장이라면 자신은 낙원의 사지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 달 뒤에 있을 이벤트를 대비해 나무마다 달아 둔 알전구가 어두워지는 거리에 맞춰 하나둘 켜졌다. 나무는 푸른색일 테고, 전구는 노란색인가, 아니면 붉은색? 이경헌은 습관이 되어 버린 색 맞추기를 하며 광장에 넘쳐흐르는 활력을 지그시 빨아들였다. 비록 동공에 맺히는 모든 것들은 수묵화처럼 색을 잃었지만 넘치는 생동감만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신은 이경헌에게서 색을 빼앗아 갔다. 도망친 이기현에 대해 거짓을 고한 대가였다.
머리를 조아리고 바닥에 엎드려, 이경헌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신에게 알량한 거짓말을 읊조렸다. 이기현의 신병을 확보했다고, 언제든 데려올 수 있으니 걱정 말라는 그 말에 신은 그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섞인 것이 기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경헌이 광으로 끌려 들어간 것은 그 직후였다. 이경헌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신의 눈을 가리기 위해 허튼짓을 하던 혈족들, 이기현을 찍어 내기 위해 애쓰던 치들 또한 함께였다. 신은 낙원에 갈 인원을 조용히 선별하고 있었다. 이경헌이 열흘 뒤, 인고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누락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던 것은 아직 그의 쓸모가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광장 한쪽이 살짝 소란스러워졌다. 누가 크게 넘어지기라도 한 듯 제각각의 시선들이 잠깐 쏠렸다가 흩어진다.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기에 더더욱 의식하는 분위기였다. 시선들이 쏠렸던 곳에는 어김없이 검은색 차량이 주차하고 있었다.
뜻하지 않았던 행운에 이경헌은 조용히 거리의 인파 속으로 몸을 숨기고 차량을 주시했다. 짙은 선팅으로 차 안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누가 타고 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차 문이 열리고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신이었다. 이기하는 늘 보던 정장도 정복도 아닌, 니트에 회색 재킷만 걸친 편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가 성큼성큼 차를 돌아 조수석의 문을 열자 길쭉한 인영이 차에서 내렸다. 오랜만에 보는 여우 신, 이기현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답게 두툼한 외투를 두른 이기현은 어깨를 떨며 이기하의 옆에 바짝 다가섰다.
이경헌은 그를 확인하고 놀라움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이기현은 확실히 성장해 보였다. 이기하의 쇄골 부근에 겨우 닿았던 키가 살짝 커져 있었다.
이기하가 손을 내밀자 이기현은 익숙하게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손깍지를 하고 팔짱을 끼듯 옆구리에 팔을 붙인 채 거리 한쪽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인파에 몸을 드러내는 것이 제법 익숙해졌는지 타인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시선은 오로지 서로만을 향해 있었다.
길거리의 다른 연인들과 다를 것 없는 그 모습에 이경헌은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둘의 사이가 완전히 회복됐다는 보고는 받았지만 직접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기하는 공개 석상에서 제 짝을 절대 대동하지 않았고 특히나 수뇌부들에게 보이는 것을 꺼려 했으므로. 가주의 분위기가 몰라보게 달라졌기에 둘의 관계가 확실히 복원됐겠구나 짐작하는 것이 다였다.
이경헌은 실로 오랜만에 뛰는 심장을 누르며 멀찌감치서 그들의 뒤를 쫓았다. 신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저 여우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거였을까. 가장 가까이에서 형제를 지켜봤던 그로서는 눈앞에 두고도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이기하의 사랑 방식은 이경헌이 봐도 혀를 내두를 만큼 잔인한 것이었다. 이어지긴 고사하고 이기현은 날이 갈수록 제 동생에 대한 혐오가 늘어만 갔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지.
이경헌은 아직도 선명한 그날의 붉은색을 떠올리고 눈을 찡그렸다.
생전 그런 색을 본 적이 없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날의 그, 하얀 시트 위의 붉은색. 그보다 더 선연하고도 생생한 색채는 없다고.
방 밖에 대기하고 있던 고용인들과 이경헌은 제물의 비명 소리가 날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그리고 아무 말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신이 그칠 때까지 비는 것뿐이었다. 부디 제물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혹은 망가뜨리더라도 고칠 수 있을 정도로 자비를 베풀기를.
이기현은 수면제의 효과가 떨어져 정신을 차린 순간부터 처절하게 저항했다. 강간당하며 울부짖는 소리, 싫다는 비명 소리, 그만하라는 애원이 안채 바깥까지 들렸다. 종래에 내뱉는 저주들은 이지헌의 것을 닮아 있었다. 끝내 이기현이 도와 달라고 숙부인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자 이경헌은 가만히 손을 올려 두 귀를 틀어막았다.
너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래. 신께서 너를 얼마나 원하셨는데. 그 긴긴날을 네가 성장할 때까지 얼마나 참아 왔는데. 그 저주와 고통을 감내하고 희생하면서 오직 너 하나만을 위해서.
귀를 막은 손에 땀이 차올랐다. 비명이 잦아들고 방 안에서는 이기하의 신음만이 흘러나오게 되고도 이경헌은 손을 내릴 수 없었다.
하루를 꼬박 채우고야 겨우 신은 제물을 놓아주었다. 그마저도 만족해서가 아니라 형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이유였다. 널브러져 있는 소년의 몸을 본 이경헌은, 평생 이 색채를 잊을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저 결점 하나 없는 붉은색. 너무 선명해서 바늘로 눈을 찌르는 듯 자극적인 원색.
시체처럼 누워 있는 이기현을 중심으로 시트 위는 꽃이 만발한 것처럼 보였다. 점점이 떨어진 핏자국은 장미꽃잎으로 보였고, 하얀 피부 곳곳은 살이 찢겼다가 아물리는 것을 반복해 몸을 양분 삼아 피어난 붉은 꽃 그 자체였다. 목덜미를 시작으로 가슴 위의 봉오리에서 옆구리를 타고 내려가는 붉은 흔적이 허벅지에서 발목까지 이어졌다. 국부는 시트로 가려져 있었지만 들춰서 확인하는 의사의 표정으로도 어떤 상태일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커다란 방 안을 가득 채운 소년 둘의 살 내음과 피비린내에 현기증이 일었다. 이경헌은 떨리는 손으로 이기현의 코밑에 손가락을 가져가 그가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했다. 느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심장이 쿵 떨어졌을 때 아주 미세한 흐름이 간신히 손끝에 와 닿았다. 감히 신을 거역하는 말을 읊게 만든 것은 실낱같이 피어오른 죄책감의 힘이었다.
‘이런…… 이런 건 정사가 아닙니다.’
‘…….’
‘이건 성고문이에요.’
어떤 것에도 관심 없이 오로지 이기현만을 응시하고 있던 이기하가 그의 말에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마주한 새빨갛게 피가 오른 눈동자에는 죄책감 따위가 없었다. 그래서, 그래서 그게 뭐?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형을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고 이기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똑같은 일을 반복할 것임을, 아니 앞으로 수많은 날들을 이렇게 반복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경헌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 뒤로 이경헌은 이기현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그에게 최음제를 급여하고 근육 이완제를 주사했다. 그게 그나마 그가 조카에게 해 줄 수 있는 참회의 방식이었다.
‘살려 주세요. 제발, 더 이상은 못 해요.’
제발, 제발, 무릎을 꿇으며 비는 이기현의 멱살을 움켜쥐고 질질 끌어 신의 방에 던져 넣으면서 이경헌은 어김없이 두 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그마저도 익숙해져 뒤처리를 하며 갈아지는 시트의 핏자국이 점점 줄어들 때쯤에는 비명 소리를 듣고도 아무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더 솔직하게는, 그 붉은색을 볼 수 없어짐에 못내 아쉬워하기도 했다.
색맹에 가까워진 지금은 정말로 영원히 볼 수 없게 된 것.
인파에 섞여 길을 걷는 그들을 쫓으며 이경헌은 옛 기억에 쓰게 웃었다. 형제가 향하는 곳은 이기현이 좋아해 보고서에 늘 언급되는 가게였다. 막 코너를 돌아 사라진 그들을 따라 돌려는 순간 눈앞을 가로막는 그림자가 있었다.
“…….”
표정 없는 얼굴이 이경헌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경헌은 그림자의 주인을 확인하고 혀를 찼다.
“오늘은 웬일로 조카님이 오셨군.”
매번 이렇게 조금만 이기현의 가까이 가려고 하면 방해꾼이 따라붙는다. 이번은 평소보다 늦은 편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어차피 이경헌도 자칫 화를 입을까 싶어 이기현에게 접근할 생각이 없었는데도 늘 그랬다. 박종오는 뒤를 한번 돌아보고 형제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이경헌에게서 한걸음 물러나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외숙부님.”
완벽하게 친탁을 한 박종오를 이경헌은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어디를 뜯어보아도 여동생의 특징이 전혀 보이지 않는 얼굴을 마주할 때면 아들을 살리고 싶어 발버둥 쳤던 이연화가 이해되지 않기만 했다. 그래도 신께서 배신자의 아들이자 여우의 권속인 이자를 살려 둔 것은 옳은 판단이라 여겼다. 이기현의 권속들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었다.
“잘 지내고 있습니까? 좋아 보이네요.”
“외숙께서 이곳은 어쩐 일이십니까.”
“볼일이 좀 있어서요. 조카님은 ‘일’을 하는 중이신가?”
박종오는 일이라는 말에도 동요 없는 까만 눈동자로 이경헌을 응시했다. 이경헌의 물음이 전혀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이 앞으로 더 이상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나도 알아요. 그냥 하도 오랜만에 뵌지라 멀리서 지켜보려고만 했습니다.”
“곤란합니다. 박사님께서 광장에 머무르시는 시간 동안 외숙께선 이곳에 있으시면 안 됩니다.”
그게 이경헌 내외가 낙원에 살 수 있는 조건 중 하나였다. 이기현에게 접근하지 않을 것, 이기현에게 그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들켜선 안 될 것. 만에 하나라도 액신을 자극해서는 안 되기에. 이기하는 제 짝이 도망칠 수 있는 모든 수를 잘라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충동마저 싹트지 않길 바랐다. 제 짝을 부정하는 요소도 모조리 경계해 섬에 남아 있는 인원들은 이기현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혹은 완벽하게 훈련받은 인원들로 제한했다.
“그러지 않아도 나도 목숨이 중한 것은 압니다.”
섬을 운용하기 위해 이경헌은 필요한 인적 자원이었다. 가주의 대리자로 일을 해 왔던 전력대로, 섬에서도 이경헌은 이기하 대신 얼굴을 드러내는 일을 도맡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낙원에 올 자격 따윈 얻지 못했을 거라는 걸 이경헌도 잘 알고 있었다. 박종오는 그래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섬이 안전하길 바라는 건 내 쪽이니 수고를 들일 필요 없대도.”
이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이기현의 앞에 나타날 생각은 없다고 언짢은 티를 내며 타일렀다. 액신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온갖 장치를 설계하고 궁리하는 게 자신의 일이었다. 액신이 허튼 마음을 품을까 걱정하는 건 신에 뒤지지 않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멀찌감치서 막 가게를 나서는 형제의 모습이 보였다. 이기하는 커다란 화분과 케이크 상자를, 이기현은 꽃을 품에 한 아름 안고 있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무척이나 꽃을 좋아했다. 온갖 선물들을 고사하고 꽃만을 받아들이는 이기현의 취향 덕분에 해마다 본가의 정원을 가꾸는 게 가주의 주된 업무였을 정도였다.
그들이 걷는 길목으로 바람이 좀 전보다 거세게 불었다. 이리저리 날리는 머리카락을 흔들며 이기현이 잔뜩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을 본 이기하가 짐을 내려놓고 걸치고 있던 머플러를 풀어내더니 형의 목에 둘러 주기 시작했다. 이기현은 그 손길을 얌전히 받고 있었다. 머플러 모양을 잡는 것이 끝나고 이기하는 빤히 자신을 올려다보는 형의 미간에 웃으며 입술을 눌렀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늘 그래 왔다는 듯이.
지켜보던 이경헌은 분명 이기현이 밀어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처한 얼굴을 하고 바깥에서 이런 스킨십을 하지 말라며 타박할 것이라고. 예상대로 이기현은 살짝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기현은 발꿈치를 들더니 동생의 뺨에 가벼운 키스를 되돌려주었다. 입술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기하가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이기현을 끌어안았다. 꽃이 망가진다고 급하게 밀어 내고 있지만 이기현의 표정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연인들이 할 법한 장난을 치며 그들은 나직이 웃음을 흘렸다. 이경헌이 그토록 바라던, 신과 제물이 한 쌍으로서 살아가는 광경이었다.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지켜보는 눈에 힘이 들어갔다. 비단 신과 제물이어서가 아니라, 넋을 놓고 주시하게 되는 힘이 그들에게 있었다. 저렇게 되기를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랐기에 이경헌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한숨으로 밀어냈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만신창이가 되어 저주를 퍼붓던 그때의 소년을 떠올리겠는가. 그의 내면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죄책감이 이기현의 미소에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참 보기 좋지 않나요?”
흐뭇함을 감추지 않은 목소리로 이경헌은 박종오에게 동의를 구했다. 흔들림 없던 박종오의 미간에 설핏 금이 간 것은 그때였다.
“이만 돌아가셔야 합니다.”
동의가 아닌, 한층 딱딱해진 목소리로 퇴거 명령을 반복했다. 이번에도 불복한다면 억지로라도 끌어내겠다는 의지가 드러났다. 이래서 권속이란, 이경헌은 아쉬운 마음으로 그들이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발걸음을 돌렸다.
금세 어둑해진 거리에는 약속을 위해 나온 인파가 가득했다. 야시장이 열렸는지 그쪽을 향해 걷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박종오의 눈을 뒤로하고 사람들 속으로 몸을 숨기며 이경헌은 형제가 광장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아마도 꽃을 품에 안고 손을 잡은 그대로 집을 향해 걸어가겠지. 도중에 차를 가져오라고 할지도 모르고, 두 사람만을 위해 비워 둔 레스토랑에 가거나 강변을 걸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간에 이경헌은 오늘 밤도 형제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이곳은 바로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모형 낙원이니까.
한 쌍의 신이여. 영원히, 영원히 이 지상에 머무르며 홍복을 내려 주소서.
이경헌은 인파를 따라 야시장으로 향하는 길에 섞여들며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기현의 품에 가득하던 꽃은 틀림없이 붉은색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도 그럴 것이 제물에게는 붉은색이 제일 잘 어울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