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기하 (38/47)

이기하

‘너는 이상해.’

눈앞의 여자애가 말했다. 5월, 교복 위에 카디건을 입는 계절이었다. 교목으로 지정되어 있는 이팝나무에는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다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고백을 하러 패기 있게 앞에 다가와 놓고 여자애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깨는 움츠린 채 고개는 떨구고, 시선은 피해 놓고 힐끔힐끔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면 깜짝 놀라고.

나는 그녀가 했던 행동들을 하나씩 복기하면서 물었다.

‘내가 뭐가 이상한데?’

‘왜 자꾸 나한테 그런 걸 묻는지 모르겠어. 이상하잖아.’

‘이상하다는 게 무슨 뜻이야?’

‘모르겠어. 그냥…… 이상해.’

‘좀 더 자세하게 말해 줘. 그래야 내가 참고해서 고칠 수 있으니까.’

상냥하게 묻자 여전히 얼굴을 붉히면서도 한번 의심하기 시작한 눈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고백했는데도 자꾸…… 내 고백엔 대답도 안 하고 묻기만 하고 있잖아.’

‘그야 날 좋아하는 사람이 왜 나를 좋아하는지, 또 어떤 점은 싫은지 궁금하니까.’

‘그럼 내 고백은……?’

‘아, 고백…… 그래. 고백해 줘서 고마워.’

‘그게…… 끝이야……?’

여자애는 내 말에 울상을 지었다. 좀 전에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굴어 놓고는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었다. 내 얼굴을 훔쳐보며 붉어졌던 얼굴은 두려운 것이라도 보는 양 어떻게든 내 시선을 떨쳐 내려 노력 중이다. 초조해진 얼굴, 정처 없이 떠도는 눈동자, 위축된 등줄기.

‘아니 안 끝났어. 그래서 어디가 어떻게 이상해 보이는데? 소름 끼치는 거야?’

징그러워? 무서워? 끔찍해? 고용인들이 뒤에서 내게 소리 죽여 내뱉던 평가를 그녀에게 나열했다. 결국 그녀는 미안하다고 울면서 뛰어나가 버렸다. 혼자 남겨져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겨우 한 번, 고백을 거절당했다고 뒤돌아 버리는 마음이 진심이었을 리 없다. 상대가 잠깐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했다고 접어 버리는 게 진짜 좋아하는 거였을 리 없었다. 자신의 이상을 상대에게 투영해서 기대감을 가져 놓고 그게 아닌 걸 확인하자 버려 버린 것뿐이다.

시간 낭비를 했어. 결국 궁금했던 것은 하나도 듣지 못했고.

그래서 이번 애는 대체 내 어디가 좋았다는 거였을까. 카디건에 손을 넣고 오솔길을 빠져나왔다.

좋아한다는 것과 실망이 같이 성립되는 이유를, 나는 정말 모르겠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좋아하면 상대의 모든 것을 받아 줘야 하는 게 아니던가? 그런 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 감정들은 대체 무엇이지?

나의 좋아함이란 절대적인 것이었다. 상대가 무슨 짓을 해도 떠날 마음이 들지 않는 것. 어떤 것을 보아도 흔들리지 않을 굳건한 애정. 그런 게 좋아한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정도로 깊은 마음이 ‘좋아함’이라는 거라고. 하지만 저렇게 잠깐이라도 상대에게 실망하면 언제든 도망가 버릴 수 있는 게 타인들의 좋아함이라니, 역시 이해할 수 없다. 그 사람이 말해 줬던 좋아한다는 소리도 그런 종류의 좋아함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모두가 입을 모아 내가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으니 내가 정말 이상하고 비정상인 것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와 같길 바라는 마음까지 이상한 건 아니겠지.

교사를 반 바퀴 돌아 습관대로 상급반이 있는 층을 올려다보았다. 창틀 근처에서 떠드는 사람은 꽤 있었지만 내가 찾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창틀에 반쯤 걸터앉아 있는 짧은 머리의 한 상급생이 내 시선을 느끼고 내려다보았다. 몇 번 형의 옆에서 보았던 얼굴이다. 형이 싫은 티를 내는데도 친한 척을 하며 어깨동무 따위를 하거나 팔을 끌어당기거나 하던.

그도 나를 알아보고 눈빛이 변했다. 내게 호감을 품게 한다는, 고백하러 왔던 애들이 말했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웃는 것을 보고 그가 인상을 구겼다. 그렇게 서로를 응시하다 결국 저쪽이 먼저 자리를 피했다. 형을 불러오면 좋을 텐데 나를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이니 그럴 일은 없을 테지.

비어 버린 창틀을 보며 그렸던 미소를 싹 지웠다. 종이 울리는 소리에 교사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형이 싫어하는 비. 한껏 차오르는 비의 기척들.

나의 형이 여우라는 것을, 나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갓난아이일 때에도. 형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머리 위로 뾰족하게 솟은 두 개의 귀. 그가 기분이 좋을 때면 허리 밑으로 풍성한 꼬리가 물결쳤다. 지각이 없던 아이였을 때 나는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살랑거리는 형의 꼬리를 한번 붙잡아 보려고 열심히 허공을 휘젓곤 했다. 그것이 허상임을 알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눈이 일찍 열린 만큼 전생의 기억도 빠르게 되찾았으므로.

내 몸속에 들어왔었던 신의 자취를, 비 오는 날 고여 든 물웅덩이 위로 비치던 날개와 물결치는 꼬리를 기억해 냈다. 그래서 알았다. 당신이 그때의 그 여우 신이었다는 것을.

‘기하야!’

마중 나온 차에 타지 않고 일부러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주 현관의 홀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형이 내 쪽으로 반갑게 뛰어왔다. 그의 뒤로 어김없이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뒤에 있던 친구무리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멀어지는 형을 불렀지만 형은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대충 손을 흔들었다. 그 속에서 아까 창틀에 앉았던 상급생의 얼굴을 발견하고 일부러 더 친밀하게 형의 옆에 몸을 붙였다.

‘우산 없었구나? 누나들이 안 챙겨 줬어?’

대답하지 않고 멋쩍게 웃었다. 형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가방을 뒤적거렸다. 내가 없었으면 형은 우산 따윈 쓰지 않고 그대로 교문 앞의 차까지 뛰어갔을 게 분명했다.

‘갑자기 웬 비래. 짜증 나게.’

그가 짜증이 났을 때는 이렇듯 등 뒤에서 아지랑이 같은 날개가 뻗어 나왔다. 이것을 볼 때면 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실체가 없는 것임에도 그것이 언제든 모양을 갖추고 형을 다른 곳으로 데려갈 것만 같았다.

‘우산 하나니까 좀 더 바짝 붙어.’

형이 내 어깨를 감싸 안더니 자기 쪽으로 바짝 끌어당긴다. 당연히, 내 가방 안에는 우산이 있었다. 형은 자기 쪽으로는 거의 우산을 쓰지 않고 내 쪽으로만 기울여 주었다. 나보다 다부졌지만 가느다란 몸이 들이치는 비에 젖어 굴곡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예보에 비 소식이 없었는데 갑자기 쏟아지네요.’

‘그니까 말야. 비 오는 건 진짜 최악이야.’

뒷좌석에 몸을 구겨 넣으며 투덜거린다. 나는 형과 달리 비 오는 날이 너무 좋았다. 먹먹하게 잠기는 분위기도 좋았고 형의 체취가 물에 젖어 좀 더 심하게 나는 것도 황홀했다.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물방울을 털어 내는 그의 앞에 손수건을 내밀었다.

‘고마워.’

곧 눈을 휘며 웃는다. 저런 얼굴을 할 때는 영락없는 여우 그 자체다. 형은 손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닦아 내고 얼굴을 묻었다. 내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키고 싶지 않아 자세를 바로하고 앉았지만 형이 어깨에 기대와 소용없어져 버렸다. 젖은 머리카락이 물풀처럼 목덜미에 달라붙어 있었다. 빗소리가 굉장해. 그는 심장 소리를 빗소리로 오인하고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비가 내려서 다행이었다.

장마가 아닌데도 한동안은 비가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사이좋게 서로 기대어 시간을 보냈다. 재미없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형은 읽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가 미리 앞의 권을 읽고 내게 넘겨주면 그 뒤에 내가 그것을 읽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어 달라는 요청을 많이 해서 그런가 같이 붙어서 책을 읽는 것은 우리의 습관이 되어 버렸다.

오늘 선택한 것은 스릴러가 가미된 추리 소설이었다. 여기가 이해되지 않아요. 내가 이해 못 하는 부분을 일부러 물어보는 것을 그는 좋아했다. 그러면 왜 그런 내용이 나왔는지를 아주 상세하고 성실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형이 열정적으로 구는 그런 모습이 좋아서 더 이해가 안 가는 척을 하곤 했다.

먼저 마지막 장을 덮은 이기현이 피곤하다고 기지개를 켜며 내 무릎을 베개 삼아 기댔다. 허벅지를 누르는 무게에 별안간 나는 행복해졌다. 내가 마지막 권을 다 읽기 전까지 형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형은 내 무릎 위에 머리를 얹은 채로 휴대 전화를 만지작거렸다. 글은 어느새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무릎과 허벅지를 누르는 형의 머리와, 그의 손가락이 화면을 누르며 빚어내는 문장만 보일 뿐이다. 약속이 취소됐는데도 친구들이란 자들은 끈질기게 형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형은 자신을 까칠하다 규정하고 남들을 밀어냈지만 오히려 그런 면이 자석같이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반대로 나는 남들에게 학습된 친절로 무장했지만 점점 곁에 사람이 줄어들었다.

다들 내가 어렵다고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상하다고.

고용인들도, 집안 어른들도 장자인 형보다 나를 대하는 것을 더 어려워했다. 동급생은 물론이고 심지어 선생들마저 내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개를 조아렸다.

형도 이랬어야 했는데, 나밖에 없도록 곁에 아무도 남지 말아야 하는데. 형에게 유리라는 되지도 않는 별명까지 붙여 가며 칭얼거리는 친구들의 메시지에 미간이 구겨졌다. 몇 번이나 거절을 반복하던 형은 기어이 짜증을 냈다.

‘끈질긴 새끼들이네.’

화면을 꺼 버리고 빤히 나를 올려다본다. 나도 형을 내려다보고 있었기에 눈이 마주쳐 버렸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벌써 다 읽었어? 어, 아니네.’

한참 남은 책장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허벅지를 누르던 무게가 떠나자 나는 행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재미없지?’

‘이게…… 여기가 이해가 안 돼서요.’

일어나려고 무릎을 접던 형이 내 말에 바로 옆에 앉았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부분을 들여다본다.

‘아, 이거는 앞에서 윌리엄이 증거를 훼손했다고 했잖아. 그게 사실 애초에 훼손되어 있었다는 소리야. 그것도 뒤집어씌운 거지.’

‘그럴 필요가 있었어요? 어차피 윌리엄은 감옥에 가 있잖아요.’

‘끝까지 피해자인 척을 해야 하니까. 실비아랑 같이 살려면 죄에 가담해 있는 것을 들키면 안 되잖아.’

‘왜요? 제인은 살인에 가담한 것도 아니었는데…….’

‘실비아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겠지. 원래 방조죄도 무겁거든.’

하암, 형은 지루한지 하품을 했다. 던져둔 휴대 전화의 화면이 간간이 점멸하는 것을 보며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좀 배고파요.’

‘그래? 그럼 뭐라도 먹을 거 가지고 올까.’

그렇게 머리를 몇 번 쓰다듬더니 몸을 일으켜 방 밖으로 나갔다. 그의 손이 스쳤던 귓불이 서늘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체온이 높은 내 손으로 매만졌다가는 순식간에 녹아 사라져 버릴 그 감촉을 몇 초라도 더 붙들고 있었다.

형의 방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같이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놀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이 떠졌다. 어떤 것이 머릿속을 두드려 깨운 듯 이상스러운 기상이었다.

사방은 어두워 한밤중인 듯했다. 잠들기 전에 내리던 비는 그쳐 버렸다.

아쉬워하며 형이 누운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때 무언가 낯선 소리가 들렸다. 아주아주 작은 동물이 숨을 내뱉는 듯한 소리, 정말 작아서 시계의 초침 소리에도 묻히는 소리.

소리의 진원지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형이었다. 내게서 등을 돌리고 누워 있는 그의 몸이 이따금씩 잘게 흔들렸다.

‘……형?’

그냥 꿈을 꾸는 건 줄 알고 지켜보고 있자니 좀 이상했다. 간헐적으로 내뱉는 호흡에는 끙끙거리는 신음이 섞여 있었다.

악몽을 꾸는 건가? 몸을 반쯤 일으켜 눈을 비비곤 형의 몸에 손을 대려 했다.

‘형님, 왜 그러세…….’

아.

천만다행히도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손끝이 그의 피부에 닿기 직전 멈췄다. 달뜬 신음 소리, 달큼한 냄새, 이따금 내뱉는 뜨거운 호흡. 그는 악몽을 꾸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꼼짝도 하지 못하고 숨을 멈춘 채로 이기현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형은 괴로운지 양미간에 주름이 깊게 패어 있었다. 식은땀도 맺혔다. 더운 것을 좋아해 시트를 둘둘 말고 자던 형이었지만 오늘은 시트도 차 버리고 반바지는 반쯤 걷어 올라가 허벅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가느다란 형의 신체에 걸맞는. 보기 좋게 잔근육이 붙어 있는 매끈한 하얀 허벅지가.

‘읏…….’

그 순간 하반신에 열이 쏠리며 순식간에 가운데가 솟구쳤다. 뭘 참아 낼 새도 없이 완전히 발기한 것이 바지를 들어 올리며 꺼덕거렸다. 당황하여 아래를 확인하는 눈이 흔들렸다. 억지로 눌러 놓았던 누름돌이 기어코 깨져 버린 듯한, 마구잡이로 팽창하는 욕망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내 안에 이렇게나 원색적인 충동이 도사리고 있는 줄 처음 알았다.

‘흐윽…….’

꿈속의 상대가 누구인지 형은 퍽 괴로워했다. 처음에 그를 보고 악몽인지 몽정인지 모호했던 게 당연했다. 형은 쾌감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쪽에 외려 가까워 보였다. 허벅지에 껴 둔 베개를 마운팅하듯 천천히 문지르며 꿈 안에서조차 즐기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땀에 젖어 달라붙은 얇은 티셔츠로 날개 뼈가 솟구쳤다가 내려가는 게 보였다. 꽤 오래 시달리고 있었는지 배어난 땀으로 목덜미에도 머리카락이 가닥가닥 감겨 있었다. 시트를 부여잡은 손등에 뼈가 불거졌다. 땀이 맺힌 이마를 침대에 누르며 꺼질 듯한 앓는 소리를 낸다. 지독하게 느린 움직임으로 바르작거리는 형을 보며 내가 더 견딜 수 없어졌다. 입 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깜박이지도 않고 그가 하는 것을 담고 있는 눈에 핏발이 섰다.

짧게 신음하던 형의 마른 등줄기가 깊게 굽혀졌다. 응……. 온몸을 경직하며 베개를 꼬옥 껴안는다. 간신히 절정에 도달한 것이다. 화악, 그의 몸에서 끔찍하리만치 좋은 향기가 퍼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신음을 틀어막았다. 윽, 윽, 악문 잇새로 다스리지 못한 흥분이 튀어나왔다. 자꾸 튀어 나가려는 몸이 움찔거렸다. 손 한 번 대지 않은 바지 앞이 짙게 물들었다.

형을 만지고 싶어, 핥고 싶어, 더듬고 싶어, 빨고 싶어, 물고 싶어, 내 밑에 깔아뭉개고 움직이지 못하게 짓누르고 싶어.

하고 싶어. 하고 싶어. 하고 싶어. 하고 싶어―.

움직임을 멈춘 몸 대신 심장이 폭발하듯 달음박질쳤다. 손을 뻗어 형의 뒷덜미에 닿을락 말락 하게 가져다 댔다. 그때 닿지도 않은 형의 몸이 흠칫 뛰었다. 나는 그가 일어나기 전에 손을 거두고 급히 자리에 다시 누워 자는 척을 했다.

‘…….’

속옷을 완전히 적셔서인지, 아니면 악몽 같은 몽정에서 드디어 벗어난 것인지 형은 거의 벼락 맞은 듯 몸을 일으켰다. 보지 않고도 그가 혼란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이게…… 무슨……. 신음하며 내가 자는 것을 확인하는 듯하더니 다급히 침대를 벗어나 뛰어나간다. 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나는 눈을 떴다. 참고 있던 숨이 거칠게 쏟아졌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진분처럼 체취가 떠돌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그가 급하게 떠나느라 침대 밑에 떨어졌던 베개를 주워 들었다.

……돌이킬 수 없다.

그의 다리 사이를 차지했던 베개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얼굴에 가져다 댔다. 베개에는 아쉽게도 아무런 점액질도 묻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향기만은 고통스럽도록 짙게 남아 있다. 형의 살갗 냄새, 형의 정액 냄새. 그것에 깊게 코를 묻었다. 한껏 향기를 들이켰다. 혀를 내밀어 향의 입자를 핥아 올렸다. 부풀어 있던 가랑이 사이가 더할 수 없이 팽팽해졌다.

나는 앞으로 형을 예전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없게 될 것을 직감했다. 사이좋은 형제의 연극은 막을 내렸다고. 돌이킬 수 없다고.

서글프진 않았다. 원래 이랬어야 하는 자리를 찾아온 것임을 알 수 있었기에. 단지 너의 흥분에 휩쓸려 좀 이르게 다가온 것뿐이다.

베개를 품 안에 넣고 온 힘을 다해 꽉 조였다.

형은 아침이 되도록 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부터는 따로 자자.’

퀭한 눈을 한 형이 아침 식사를 흐트러뜨리며 불쑥 꺼낸 말이었다. 밤새 돌아오지 않던 그를 내 방에서 발견했다. 도망가 봤자 갈 수 있는 장소가 내 흔적이 가득한 곳이었으면서, 따로 자자는 말에 희미하게 웃음이 나오는 것을 숨겼다.

‘갑자기 왜요……?’

‘어제 침대가 너무 좁아서 못 자겠더라고, 그래서 네 방에 가서 잤단 말이야.’

내가 반발할 것을 미리 예상하고는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나는 여기서 어쩔 수 없이 웃어 버리고 말았다. 내 눈치를 슬슬 살피던 형의 얼굴이 딱딱해지는 것을 보고 얼른 웃음을 지웠다.

‘제가 조심할게요. 정말 움직이지도 않고 옆에서 조용히 잘게요. 저 잠버릇 없어요. 아시잖아요.’

‘너 요새 부쩍 덩치가 커져서 불편해서 그래. 불편해서 어제 잠…… 잠을 못 잤다니까.’

포크로 야채를 찍는 손놀림이 빨라졌다. 나는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킹사이즈가 불편하세요? 그럼 제가 밑에 요를 깔고 잘게요.’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했던 경우의 수는 오로지 내가 침대 위를 고집하는 것뿐이었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굳이 왜……? 네 방은 내 방보다 크잖아. 불편하게 그럴 필요 뭐 있어.’

‘제가 그러고 싶어요.’

이건 거의 쐐기였다. 내가 그런 식의 억지를 부리면 형은 들어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기현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안 돼요……? 눈을 내리깔고 시무룩해하며 쐐기에 못질을 더했다. 그는 당황하여 도와주지도 않을 고용인들을 쳐다보았다. 그녀들은 물을 더 달라는 것으로 오해하고 괜히 주전자를 들고 다가와 잔에 채워 주었다. 형이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모른 척하고 야채를 입에 집어넣었다.

‘형제끼리는, 원래 다 커서는 같은 침대서 자는 게 아니래.’

그렇죠? 돌아서는 고용인에게 묻는다. 그녀는 다정한 미소를 돌려주었다.

‘우리 도련님들은 사이가 좋아서 참 보기 좋답니다. 자랑스러워요.’

이미 내게 복속된 이들이 이기현이 원하지 않는 답을 하고는 되돌아갔다. 형은 또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명분을 찾지 못하고 애꿎은 야채를 찍어 대며 화풀이를 했다. 식사가 끝나고 등교하는 차에 오르며 이기현은 결국 속마음을 말하고 말았다.

‘자꾸 네가 나를 안고 자려고 하니까, 내가 불편해서 그래.’

안고 자는 것도 이기현이 불편해하기 시작해서 함께 목욕하는 것을 그만두었을 때 같이 관뒀다. 어차피 내 덩치도 커지기 시작해 형의 품에서 자는 게 무리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냥 같은 침대를 쓰기만 한 게 벌써 언제 적 얘기인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항변했다.

‘안지 않은 지, 오래됐잖아요. 그리고 불편하다시니 제가 밑에서 잔다니까요.’

‘그것도 불편해. 같은 공간에서 자는 게 불편하다는 소리였어.’

‘제가 불편해지셨어요? 이제 싫증 나신 거예요?’

‘너, 무, 무슨 소리야. 싫증 나다니?’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왜 그러시는데요. 이유도 없이.’

나를 의식하는 거지. 그렇지? 너는 드디어 나를 의식하기 시작한 거야.

우리가 좀 다투는 듯하자 백미러로 지켜보는 운전기사의 눈에 흥미가 담겼다. 이기현은 어깨를 움츠리고 잔뜩 목소리를 낮췄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내 방이니 내 맘대로 한다는데 왜 이렇게 고집부려.’

‘형님이야말로 고집부리고 계시잖아요. 이해 안 되는 변명만 하시고.’

한숨을 내쉬며 형의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내 몸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형은 바짝 긴장하며 몸을 뒤로 물렸다. 어……? 가방을 품에 끌어안고 나를 올려다보는 겁먹은 눈이 생경했다.

혀를 차며 이기현의 손목을 잡았다. 내 손이 큰 탓에 붙잡힌 형의 손목이 가냘파 보였다. 다 잡고도 손안의 공간이 남았다. 그런 쪽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니 형의 요소 하나하나가 다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알았어, 네 마음대로 해. 알겠다니까.’

손을 빼낼 변명도, 함께 자지 않을 변명도 찾아내지 못한 형은 결국 항복 선언을 했다. 너는 정말 제멋대로라며 투덜거리는 것은 그의 마지막 허세였다. 만족스러운 기분에 얌전한 동생으로 돌아가 형의 어깨에 길게 기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후에 우리가 같은 침대를 쓰는 일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운명의 날이 서늘한 소리를 내며 우리 앞으로 착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 * *

벽에 걸린 사립 학교의 교복을 만지작거렸다. 중학교 때와 반대로 감색 바탕에 흰색 옷깃이 달린 것이다. 여학생용은 피터 팬 칼라, 남학생용은 단순한 셔츠 칼라라 이것을 볼 때마다 형이 여학생용을 입으면 어떨지 상상하게 된다. 말끔하게 세탁해서 잘 다려진 옷감에서는 달콤한 냄새가 났다. 샤워를 마친 형이 방 안으로 들어오다가 교복 앞에 선 나를 발견했다.

‘교복은 왜?’

제대로 말리지 않은 머리카락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만지작거리던 손을 놓고 형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머리를 터는 내 손에 얌전히 몸을 맡겼다.

‘고등학교 교복이 더 예쁜 거 같아서요.’

‘내년이면 너도 똑같은 걸 입게 될 건데 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내년에도 내가 학교에 진학할 거라 믿고 있는 그 말에 조금 씁쓸해졌다.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손을 놀렸다. 두피를 누르며 물기를 걷어 내는 손길에 그는 목을 울리며 좋아했다.

‘맘에 들면 한번 입어 볼래?’

‘……그래도 돼요?’

‘안 될 게 뭐 있어? 미리 어떨지 한번 보자.’

형은 재빨리 교복을 걷어 와 내 품에 안겨 주었다. 나보다 더 기대에 찬 눈이다. 그는 내가 교복을 입고 있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중학교 때도 자신과 같은 것을 입었는데도 가끔씩 내 모습을 넋을 놓고 쳐다보다 고개를 돌리곤 했다. 그가 좋아하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동생의 모습에 제일 부합되는 차림이어서였을까.

생각에 잠겨 잠옷의 단추를 끌러 냈다. 형은 민망해하며 시선을 괜히 비껴 딴청을 부렸다. 몽정을 한 이후에 저런 식으로 유독 나를 의식하는 행동을 했다.

제자리에서 그대로 잠옷을 벗고 교복을 꿰었다. 옷감에 배인 이기현의 체취가 은은하게 몸을 감싸 안는다. 의외로 품이 크지 않게 몸에 딱 맞았다. 성장을 추월하는 것이 코앞이었다.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정리한 뒤 등을 돌리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어때요?’

휴대 전화를 보고 있는 척을 하던 이기현이 내렸던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크게 떴다.

‘우와, 진짜…….’

어김없이 홀린 듯한 표정을 하고는 귀까지 빨갛게 붉혔다. 진짜 잘 어울린다, 완전 네 옷 같아. 순수한 칭찬과 감탄을 섞어 몇 번이나 중얼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내 몸에 손을 뻗었다.

‘너 키가 엄청 자랐구나. 내 옷이 딱 맞네?’

그러다 내 앞에 바짝 서더니 눈높이가 거의 같은 것을 확인하고 당황해했다.

‘언제 이렇게 컸어? 이제 진짜 추월당하게 생겼네.’

늘 그의 앞에선 어리광부리기 위해 몸을 낮추고 머리를 숙였기에 그에게는 내가 순식간에 자란 것으로 여겨질 만도 했다. 형은 감탄하며 내 몸 이곳저곳을 매만졌다. 근육이 잡혀 있는 팔뚝이나 벌어져 있는 어깨선이나. 품을 보려고 허리를 붙잡았을 때는 아무리 나라도 조금 당황했다.

‘앗, 미안…….’

주물거리던 손을 얼른 떼며 그가 사과했다. 과한 반응이라 오히려 분위기가 이상해져 버렸다. 이렇게 때때로 기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 것도 형의 몽정 이후였다. 정확하게는, 나 혼자만 의식하던 것을 형도 의식하면서부터 분위기가 묘해진 것이다. 형은 나와 달리 감정을 갈무리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듯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 동요하고 그것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나야 일부러 과시하듯 더 그러는 거였지만 숨기고 싶은 기색이 역력하면서 저러는 것은 남들 눈에는 자백과 다름없어 보일 텐데.

‘이제 그만 자자.’

가솔들은 이미 내가 형을 어떻게 할 예정인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를 제물로 맞이할 준비가 형 모르게 한창이었다. 사춘기 소년 둘이 여전히 같은 침대를 쓰는 것에서 몇몇 이들은 이미 우리가 그런 사이가 됐다고 넘겨짚어 버리기도 했다. 적어도 인간을 원하고 있다는 데서 그들은 안도하고 있었다. 친혈육을 탐하겠다는데 지탄의 목소리를 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고 조용히 형의 곁에 누웠다. 이미 내게 등을 돌리고 이기현은 침대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잠을 청하는 중이다. 일부러 더 바짝 다가갔다. 내 기척을 등으로 느끼고 그가 몸을 좀 더 동그랗게 말았다.

저번의 언쟁 때 바닥에 자겠다고 선언했지만 형은 또 한발 물러나 침대 위를 허락했다. 그 뒤로 간혹 한밤중에 침대를 박차고 욕실로 들어가는 움직임을 느꼈다. 속옷을 적시는 것은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연하다는 듯 꿈속의 상대는 형이었다.

얼른 꿈속에서 했던 것을 현실에서도 하게 되길 바랐다. 나를 의식해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저 목덜미를 깨물 수 있는 날을 기다렸다.

그때 나는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당신의 명대로 신이 되고, 당신이 내 제물이 되면 모든 것이 뜻대로 될 것이라고.

너도 나를 사랑하니까. 틀림없이 사랑하고 있으니까.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고 네가 내 품에 얌전히 안길 것이라는, 크나큰 착각에 빠져 있었다.

* * *

‘너는 내 동생이 아니야.’

너는 이상해, 라는 말을 하던 수많은 여자애들과 같은 얼굴을 하고 이기현은 말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 돌연변이라도 보는 듯한 눈을 하고.

‘너는…… 너 같은 게 그 애일 리 없어.’

그리고 그녀들처럼 내게서 멀어진다. 다른 이들과 달리 너만큼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받아 줄 거란 예상이 빗나갔다. 상기된 표정을 두려운 것으로 바꾸고 멀어지던 여자아이들의 뒷모습이 아른거렸다. 주제에 감히 누굴 비난했던 건가. 좋아하는 이에게 원하는 이상을 투영하고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이었으면서.

‘가까이 오지 마.’

혼란스러워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팔을 벌리면 언제나 내 곁으로 달려오던 이기현은 완전히 낯선 얼굴을 하고 내게서 멀어지고 있다. 나를 저렇게 거부하는 반응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형님……. 당황하여 부르면 이기현은 그렇게 자신을 부르지 말라고 악을 썼다.

‘내보내 주세요. 저기요! 내보내 달라고!’

문 열란 말이야! 주먹을 쥐고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린다. 그 모습이 너무 절박하고 공포에 가득 차 나는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멀찌감치서 바라만 보았다. 악다구니를 쓰며 문을 흔들어도 그의 말에 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말도 안 돼…….’

이윽고 진이 빠진 이기현은 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파묻으며 어떻게든 내게서 자신을 차단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나대로 도무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네가 나를 선택한 거였어. 그래서 내 미래를 버리고 너를 위해 신을 받아들였어. 그런데 네가 왜 나를 외면하는 거야……?

아버지가 피를 토하며 외쳤던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너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너도 그 사람을 가질 수 없을 거라고.

내가 무얼 간과했던 거지?

‘가까이 오지 말라고.’

억지로 붙잡힌 고양이처럼 온몸의 털을 바짝 세우고 경계하며 이기현은 으르렁거렸다. 형님이라고 부르면 자신의 귀를 뜯어 버릴 듯 굴어 어떻게 그를 불러야 할지도 모른 채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잊었어도 나에 대한 마음은 진심일 테니까 내가 당신을 원하는 것이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가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었다. 너는 전생에도 나와 한 쌍이었으니 현생 역시 한 쌍인 게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 얘기 좀 해요.’

‘싫어.’

‘드릴 말씀이…….’

‘싫다니까!’

간신히 용기를 쥐어짜 내 건넨 말조차도 뿌리쳐 버린다. 상처 입고 또 상처 입었다. 다친 마음은 속수무책으로 비틀렸다. 너에게 나를 거절할 자격은 없어, 너는 내 몫이란 말이야. 꾸며 냈던 얇은 가면은 효용을 다하고 부서져 내렸다.

‘후회하게 될 거예요.’

파괴적인 상상을, 계획을 떠올리며 나는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네가 이토록 나를 거부한다면 거부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면 돼. 네가 원하는 게 고작 신의 대리와 착한 동생 역할뿐이었다면 나도 내가 원하는 역할의 너를 만들고 취하면 그만이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

‘형님.’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너는 내 동생이 아니라고!’

그 소리는 안 하는 것이 좋았을 텐데.

잠자코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뻥 뚫려 피가 줄줄 새어 나가는 듯했다. 내가 강한 햇빛에 눈을 찡그리기만 해도 다정하게 이마 위로 손 그늘을 만들어 주던 너였다. 그런 너였는데.

너는 내 형이 아니라고, 내가 그리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을, 나는 할 수 없다.

……그래 맞아. 당신이 좋아하던 그 동생은 죽었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실패했다. 아비처럼. 그의 실패가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이 신을 상대로는 무슨 짓을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 목줄을 걸어야 했다. 고삐를 늦추지 않고 휘둘러 내게 복종하도록 만드는 수밖에.

나는 문 앞에 웅크리고 있는 형의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워질수록 이기현의 눈에 공포가 들어찬다. 조금이라도 내게서 더 물러나려 애쓰며 문고리를 붙잡고 덜그럭덜그럭 흔들었다.

그의 앞에 도달해 웅크린 몸에 손을 뻗었다.

‘싫어…….’

‘싫어도 상관없어요.’

싫어도 상관없다. 그건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앞으로 수없이 받아들여야 할 거절들을 위한.

양손으로 그의 얼굴을 그러쥐었다. 하지 마……. 자색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오른다. 이렇게 혐오감만을 띨 수 있는 눈이었구나. 이 와중에도 그게 예뻐 보이는 자신이 기가 막혔다. 손에 힘을 주어 천천히 끌어당겼다. 허리를 숙이고 그에게 고개를 기울였다. 코끝이 스치며 어설프게 입술이 겹쳐졌다. 찌릿, 닿은 순간 표면에 전기가 통하는 듯했다. 입술을 벌려 경악하는 숨을 그대로 삼켰다. 처음 맛본 형의 입술은 바짝 마르고 꺼칠했다.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달리 메마르고 차갑다. 그런데도…… 지독히 흥분됐다.

물릴 것을 각오했으나 이기현은 뜻밖에 가만히 굳어 있기만 했다. 정지 버튼이 눌린 것처럼 그대로 서서 내가 고개를 움직이며 입술을 탐하는 것을 받아 주었다. 고집스럽게 다물고만 있는 그의 입술 위를 핥고 꺼끌꺼끌한 표면을 내 타액으로 적시며 빨아들였다. 그건 키스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허기를 채우는 행위에 가까웠다. 나의 첫 키스는 그렇게 성마르고 미숙한 것이었다. 정신없이 혀를 움직이다 이기현의 입술 사이를 가르려 했다. 그리고 그대로 밀쳐졌다.

‘…….’

이렇게 힘이 약했었나? 너는 이리도 약한 존재였나?

온 힘을 다해 밀어 낸 듯 했지만 나는 겨우 한 뼘 정도 밀려났을 뿐이었다.

‘안…… 안 돼.’

형은 내 타액으로 젖은 입술을 덜덜 떨면서 우리는 이러면 안 된다고 고장 난 테이프처럼 몇 차례나 반복했다.

‘여우 신 때문이야, 신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게 네 몸에 들어가서 그래서.’

‘…….’

‘그래서 네가 이런 옳지 않은 짓을 하는 거야.’

하, 기막힌 숨이 터졌다. 그가 신이라고 지칭하는 권능, 고독들은 모두 내 몸에 들어온 지 벌써 까마득히 오래된 얘기였다. 여전히 착한 동생의 흔적을 찾아내려 애쓰는 가여운 그에게 멀어진 만큼 더 다가갔다.

‘그런가 봐요.’

‘그…….’

‘그러니 살려 주세요. 형님.’

살려 달라는 말에 이기현의 반항이 멈췄다. 애원하며 조금 더 과감하게 그를 끌어안았다. 이러다 죽을 거 같아, 못 참겠어, 속삭이며 드러난 목덜미에, 귓가에, 뺨에. 입술을 눌렀다.

‘기하야.’

눈앞에 나를 두고도 그는 멀리 있는 나를 찾듯이 불렀다. 부르는 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피하려고 애쓰며, 그러면서도 밀어내지는 못하고 내 이름만 부르고 또 부른다. 한 치의 재고도 없이 등을 돌려 도망가 놓고는 이제 와 애타게 찾는 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 여기 있어요, 당신이 찾던 그 착한 동생, 네 눈앞에 있는 내가 그 아이라는 대답 대신 형의 등을 끌어안았다. 몸을 굽혀 마주 안아 오는 팔은 없었지만 포근한 체취만은 그대로라 그의 품 안에 얼굴을 묻었다. 힘을 가하지 않았는데도 형은 내 팔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다음 날, 확인을 위해 문이 열리자마자 품 안에 있던 형이 뛰어나가 버렸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에 눈을 찡그렸다. 고용인들과 이경헌이 당황한 얼굴로 멀쩡한 침대를 놔두고 문 앞에 누워 눈을 비비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붙잡을까요?’

상황 파악은 이경헌이 조금 더 빨랐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 밤새 잠을 못 잔 듯한 이기현과 달리 나는 불편한 바닥에서도 꽤 오래 잠이 들었다.

‘괜찮아요. 두세요.’

‘가주님…… 기현 님이…….’

들어오는 연락을 확인한 고용인이 다급히 고했다. 뛰쳐나간 이기현이 집 밖으로 나갔다고. 도망칠 것을 대비해 이미 상당 구역을 우리 집안 것들로 대치해 놨지만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이 땅엔 갈 데가 없을 텐데, 너를 받아 줄 곳은 내 품 말고는 아무 데도.

‘추적자가 따라붙었습니다. 원하시면 언제라도 데려올 수 있습니다.’

몸을 덮고 있던 장포(長袍)를 들어 올렸다. 분수에 맞지 않게 무려 용 문양이 새겨져 있다. 벌써 이기현의 체온은 날아가 버리고 체취만이 희미하게 남았다. 옷감에 코를 묻고 남아 있는 체취를 한껏 들이켰다.

‘어디로 가고 있다는데요?’

‘방향을 보면 아마도 학교로 가는 듯합니다.’

하긴 우리는 집, 학교만을 전전하는 삶을 살았다. 집을 벗어난 어린 그가 자력으로 갈 수 있는 데라곤 학교밖에 떠오르지 않긴 했을 것이다. 선생들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하러 갔을지도. 교직원 대부분이 복속인인 것은 모를 테니까.

‘형에게 교복을 가져다주세요.’

‘네……? 하지만.’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오늘부터 이기현은 나와 함께 이 방에서 신과 제물로서 살아가게 되어 있었다. 이미 학교 측에도 연락해 둔 상태다. 사회와의 접점을 모두 끊어 내고 서로만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도록. 그렇게 하겠다고 명을 내린 것이 다름 아닌 나였다. 내 변덕에 이경헌은 이유를 묻고 싶은 얼굴을 하면서도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을 옮겨야겠어요. 아무래도 형이 여기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네요.’

아버지가 머물던 방, 예로부터 신들이 제물과 함께 머물던 방, 그리고 전생의 너와 내가 갇혀 있던 방. 그가 이곳을 싫어할 이유가 당장 몇 가지나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방 곳곳에 발려진 여우의 피 냄새는 사라졌지만 천장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저 고독들의 시선을 느꼈을 수도 있는 것이고.

‘하지만…….’

무심코 말대답을 연속했던 집사장의 몸이 큰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힘 조절을 하지 않아 컥, 하고 피를 한 움큼 토해 낸다. 바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바닥을 기는 그 대신 이경헌이 허리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다시 교육시키겠습니다.’

‘우리가 썼던 안채를 터서 개조해 주세요. 형과 내 방을 연결하면 여기만큼의 크기는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문가로 한 발자국 내딛자 이경헌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지켜보고 있던 고용인들의 얼굴에도 새삼스레 두려움과 경악이 서렸다. 어떤 저항도 없이 내 몸은 손쉽게 별채를 빠져나왔다.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는 여우 신. 별채에 구류하고 권능만 취하며 살았던 그들에게 나의 존재는 경외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내 그림자 안에 숨어 있던 고독들도 별채를 벗어나 바깥으로 쏟아졌다. 더 이상 숨겨 둘 필요가 없어 빗장을 풀어 버렸다. 고독들은 활개 치며 본가의 하늘 위를 서서히 잠식했다. 모처럼 화창한 하늘을 회색빛으로 물들이는 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침상엔 언제든 꽃을 장식할 수 있게 준비해 주시고요.’

‘어떤 종류를 원하십니까?’

물음에 잠시 말을 멈췄다. 손끝에 물이 들도록 예쁜 꽃을 골라서 꺾던 옛 기억이 스쳤다. ……머리맡에 상사화를 놔둔다 한들, 너는 나를 기억할 수 있을까.

‘향이 은은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를 품에 안고 꽃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이름과 꽃말을 알려 주던 이기현의 말을 빌렸다.

‘꽃고비처럼 예쁘고 꽃말이 사랑스러운 것으로.’

엊그제 형은 상사화의 꽃밭을 거닐면서도 아무것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내가 저 방에 마지막으로 남겼던 마음은 네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때, 특별하게 여기며 마음에 품은 것은 나 하나였다. 너에게는 그저 어리고 미숙한 제물 아이에 불과했던 나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걸맞다. 어차피 상기시켜 봤자 사료 속의 역사를 기억하기라도 한다면 나는 짝이 아니라 원수의 핏줄 중 하나에 불과해질 것이다.

등을 무겁게 짓누르는 고독들의 무게를 느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이제 시작.

모든 것을 뜻대로 바꿀 수 있는 힘이 내게 있다.

‘내 옷에는 용을 새기지 말아요.’

뒤를 따르는 이들에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얼굴들을 하고도 조금 전 집사장에게 일어났던 것을 보아선지 선뜻 묻는 이가 없었다. 대대로 신을 이은 자의 옷에는 용 문양이 새겨진 정복이 주어진다. 멸망한 군주라도 여태껏 왕 취급을 해 주는 것이다. 그 군주의 욕심이 집안을 넘어서서 인간이라는 종을 없애 버릴 뻔했는데도.

‘역시 용보다는 이무기가 좋겠습니다.’

승천하지 못하고 땅에 처박혀 있는 쪽이, 우리에게 훨씬 걸맞지 않느냐며 웃었다. 따라 웃는 이는 없었다. 잔뜩 겁에 질려 서로를 바라보며 눈치만 살핀다. 계승의 첫날에 전통을 벌써 두 개나 부수었으니 세 개째 바꾸는 것을 승복할 수 없다는 투였다. 그나마 눈치가 남아 있던 한 명이 얼른 대답하고 나섰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멍청한 것들을 거느리고 있으면 윗선이 힘들어진다. 앞으로도 바꿔야 할 것들이 한없을 것임에 혀를 찼다. 내 발걸음 뒤로 몇 개의 발소리가 더 따라붙었다.

여름이 물러가고 본격적인 가을의 하늘이다. 한없이 펼쳐진 시린 파란색을 보면서 네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지 생각했다. 울고 있으려나. 없어진 나를 찾으면서.

친애하는 나의 형님.

무엇이든 좋으니 당신 머릿속이 온통 나로만 가득 차 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진작에 그런 몸이 되어 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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