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회
에필로그
기묘한 동거가 시작됐다.
처음 1년 동안,
나는 심장과 뇌를 몸 밖에 꺼내놓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해인,
2년차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레볼루션의 최종병기.
속칭 아들.
이 녀석에게 이름도 지어줬다.
이름이 없다기에.
월랑(月狼).
3년차.
우리는 제법 친해졌고,
나는 월랑의 지능이 상당히 높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사실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외면을 하고 있었을 뿐.
3년차에, 나는 월랑을 교육시키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받아쓰기부터, 덧셈 뺄셈.
더 나아가 중고등 교육 과정까지.
한 달.
한 달 만에 월랑은 나의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미친 놈인 줄 알았다.
아무튼.
하얀 백지 같던 머리에 지식이 들어가자,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월랑은 내게 질문을 많이 했다.
나는 대부분 대답을 해줬다.
모르는 게 있으면 정보 방에 들어가서 같이 알아봤다.
4년차.
나는 월랑에게 선(善)과 악(惡)에 대해 천천히 주입식 교육을 시키기 시작했다.
월랑은 선과 악의 구분이 없는 아이였다.
제로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이었을 뿐이었다.
“사회의 구조는 악할수록 더 살기 좋은 거 아니야? 그럼 악이, 선이잖아. 선은 바보 멍청이들이고. 아니지! 그냥 힘 센 놈이 정하는 거잖아!”
나는 후회했다.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기 전에, 월랑이 무뇌(?) 수준이었을 때 성향을 먼저 확고히 다져놨어야 했는데.
나는 계속 노력했다.
최소한 월랑이 사람을 무의미하게 죽이는 일은 없도록. 그런 일은 생기지 않도록.
내 노력의 성과가 있었던 걸까.
인간고기를 타령하던 월랑의,
식습관이 개선 됐다.
4년차가 지나고 5년차도 지났다.
6년차가 됐을 때.
처음 봤을 때와 비교했을 때 여전히 어린 아이의 외향을 하고 있는 월랑이 내게 말했다.
“나 밖이 궁금해! 엉아!”
월랑이 포인트 상점을 나간다는 건,
시골 아이가 서울로 상경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잘 갈무리하던,
핵폭탄이 터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고민했다.
나도 밖이 나가고 싶었기 때문에.
하지만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정보 방을 통해 간간히 밖의 소식을 접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안정기에 접어든 태세였다. 이제야 레볼루션이 휩쓸고 간 아픔과 슬픔을 과거로 보내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
나는 그들의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하며,
어느새 6년차가 저물어갈 무렵.
“오랜만이네?”
꿈을 꿨다.
저승의 소녀가 나오는.
처음에는 꿈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저승의 소녀가 아마도 나를 부른 것 같았다.
모니터실에 소환 된 나는,
소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 정도면 인정할게.”
“....예?”
테이블 위에 앉아서, 턱으로 수많은 모니터 중 한 곳을 가리키는 소녀.
내가 방금까지 있던 포인트 상점이었다.
현재는 월랑 홀로,
만화책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저 아이는 더 이상 레볼루션에 있던 그 아이가 아니게 됐어. 네 노력 덕분에. 뭐, 그렇다고 저 아이가 완전한 선인이 된 건 아니지만. 아무튼.”
“....”
“세상을 구했으니, 약속한 대로 보상을 줄게.”
나는 소녀의 말을 귀로 들으며, 눈으로는 내가 알고 있는 이들이 보이는 모니터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본래의 너. 김수철이 죽었던 세상에서 환생시켜줄까? 아니면 김수철의 수명을 늘려줄까? 말만 해. 나는 전지전능하니까~”
김수철.
까먹고 있었다.
본래의 내 이름.
“그것밖에 제게 선택지가 없나요?”
“아니? 다른 차원도 가능하지~ 야. 내가 관리하는 차원과 세계가 몇 개인데! 어떤 차원을 원해? 인간 말고 다른 종족으로 살아보고 싶으면 말해. 성전환도 가능하고~”
“....만약.”
나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며,
소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제가 다른 차원으로 가면 저는.... 아니, 서진은 어떻게 되나요?”
“원래는 서진의 영혼을 기억조작해서 도로 집어넣을 생각이었는데, 그녀석이 다른 차원으로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줬어.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거기에 들어갈 영혼이 더 이상 없다 이 말이지. 즉, 죽는다고 봐야지.”
“그럼....”
나는 입을 열려다가,
도로 닫았다.
본 주인이 사라졌다면,
내가 서진의 몸으로 계속.
아니, 이제는 내 몸이라고.
나라고 생각을 하고 계속 살아가도 되는 것일까?
내가 그래도 되는 것일까?
방관자의 입장에 있던,
내가?
서진인 척이 아니라,
진짜 서진이 되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음, 근데 저 세계는 머지않아 멸망할지도 몰라. 어머,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징?”
“그게 무슨....레볼루션은 전부.. 설마, 월랑이 세계를....”
“놉!!”
내 말을 단박에 자른 소녀.
“그건 아닌데~ 어차피 너는 다른 차원에 갈 몸이니까 그냥 말해줄게. 너랑 레볼루션이 웨스트 월드를 너무 헤집어놓았어. 그래서 빠른 시일 내에, 웨스트 월드의 여러 종족이 동맹을 맺고 인간과 전쟁을 벌일 예정이라고나 할까? 전쟁의 시작은 네 친구가 될 거야. 네가 웨스트 월드에 남겨두고 온 여자 애. 머지않아 죽을 예정이거든. 이름이 세리나였나? 아아~ 신경쓰지마. 어차피 이제 남.일이잖아?”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모?”
“서진으로 계속 살아간다. 라는 선택지도 존재하는 겁니까?”
히죽.
소녀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가,
곧바로 내려왔다.
“큼. 왜?”
소녀의 되물음에,
나는 시선을 돌려 모니터를 쳐다봤다.
모니터의 정중앙에 있는 모니터에서,
웃음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군가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축의금을 내러갈까 싶어서요.”
“응?”
화면에서는 신랑에 이어,
신부가 입장을 하고 있었다.
+ + +
“신부 입장!!”
사회자의 힘찬 외침과 함께, 새하얀 고혹적인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입장을 했다.
씩씩하게 입장을 한 신부.
신랑의 옆에 서자마자 신랑의 손을 꼭 잡았다.
하객은 식장을 가득 채우고도,
서 있는 사람이 수두룩할 정도로 넘쳤다.
신랑 박태산.
신부 신지수.
두 사람의 결혼식은 많은 이들의 축하 속에,
진행이 됐다.
특히나 그들의 제자들이 제일 신나 있었다.
“워!! 언니!!”
“정시아, 소리 좀 그만 질러!!”
“네 목소리가 제일 크거든, 이 기집애야?!”
“아니거든!!”
“우오오!!”
“금석 너도 조용히 해!!”
신나있는 걸 넘어서,
소란스러운 테이블로 한 여성이 걸어왔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완숙미가 물씬 풍기는 여성이었다.
“한 번만 말한다. 너희 전부, 입 닫아.”
말은 그렇게 해도 입은 싱긋 웃고 있는 여성.
“채린 언니. 근데 울어?”
“울긴 왜 울어? 이렇게 기쁜 날에.”
말을 하며 눈가를 손으로 스윽 닦은 채린은,
자신의 오랜 친구들을 쳐다봤다.
백년가약.
채린은 오늘 그 어느 때 보다도 행복했다.
마치 자신이 결혼을 하는 것처럼.
그런데 자꾸 가슴 한 편이 먹먹했다.
6년 전부터 기쁜 일이 있을 때면 느껴지던 응어리 같은 것이었다.
손으로 가슴을 문지르며,
힐끔 자신도 모르게 식장 입구를 쳐다본 채린.
다시 고개를 돌려 오늘의 주인공들을 쳐다봤다.
“결혼하면 어떤 느낌일까?”
성숙한 20대 중반의 여인이 된 한설휘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멍하니 신랑과 신부를 쳐다봤다.
입술에 침을 바르며,
그런 한설휘를 쳐다보던 친구들.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야, 황금돌대가리. 아름이 배가 자꾸 불러오는 것 같은데, 어떻게 설명할 거야? 너희 진짜 속도위반한 거 아니야? 엉?”
“무슨 소리냐, 마귀? 아름이 뱃속에는 이 몸의...웁웁...”
정시아의 말을 받아치던 금석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는 박아름. 조용히 손으로 예식에 집중하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면서 조용히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6년.
그 시간동안 다들 바쁘게 살아갔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암묵적으로 금기어가 되어버렸다.
“서진이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서진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강소라가 혼자 중얼거렸음에도,
모두 못 들은 척을 했다.
6년 전, 인류를 위해 희생한 수많은 영웅의 이름 중 ‘이무신’이라는 이름과 함께 가장 위에 기록 된 이름.
서진.
망각하기에는 전국 각지에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의 이름을 본 딴 마을과 공원도 숫하게 존재했다.
주례사가 끝이 나고,
식이 점점 끝을 향해가고 있을 때.
갑자기 천장의 구석에 위치하던 스피커가 진동을 했다.
[내빈 여러분께 안내 말씀 드립니다. 식장의 상공에 게이트가 열릴 것 같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내빈 여러분들은 직원의 대피 절차에 따라 신속히 대피를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식장의 상공에....]
박태산과 신지수의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 중에는, 일반인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당황스러운 분위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갔다 옴.”
화장실에 소변이라도 누러 가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난 금석.
입구로 가려고 할 때 다시 안내 방송이 울렸다.
[안내 말씀 드립니다.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소멸했다는 소식입니다.]
“아니, 나를 빼놓고 뭣들 하는 짓이야!!”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한 남자가 노발대발하며 식장에 들어왔다.
“언니. 언니 남자친구 왔네.”
“....모르는 사람이야.”
이무신 협회장의 뒤를 이어 협회장이 된 남자. 많은 이들은 그가 협회장이 됐음에도 여전히 그를 별칭과도 같은 이름으로 많이 불렀다.
만물상.
이라고.
“내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의 친구들 결혼식에 아무리 내가 바쁘다고 해도 그렇지!! 내가 빠질 수가 있나!!”
“나 도망간다.”
후다닥.
채린이 어디론가 쏜살 같이 달려갔다.
“자, 그러면.”
잠깐의 해프닝 때문에 지연 됐던 예식이 다시금 진행되기 시작했고, 부케 던지는 식순이 다가왔다.
“누구한테 줘야 하지?”
오늘의 신부, 신지수가 난감한 얼굴로 말을 했다.
“원래는 채린이 주기로 했었는데....”
신지수의 시선이 박아름의 얼굴과 배를 향했다.
“고민되면 나줘, 언니.”
“너는 남자친구부터 만들고 와.”
“혹시 알아? 부케 받으면 생길지?”
정시아의 말을 무시한 신지수는 채린과 박아름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 몰라. 그냥 던질 테니까, 둘 중에 아무나 받아.”
“큼.”
“왜, 자기?”
“금석한테 주는 건 어때?”
“뭐라는 거야, 이 양반이? 자, 그럼 던진다!”
부케를 들고 있던 손을 들어 올리던 신지수.
[안내 방송 드립니다.]
멈칫했다.
“안내 방송이 왜 자꾸 나오는 거야? 또 게이트라도 열렸나?”
“그러게. 이번에는 뭐지?”
수군수군 거리는 소리 속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제 할 말을 쏟아냈다.
[수십의 하얀 늑대들이 도심 한복판에 출현 했다는 소식입...응? 여기로 오고 있다고? 왜? 아, 죄,죄송합니다. 자세히 알아보고 다시 안내 방송 드리겠습니다.]
수군거리던 목소리가 멈췄다.
하나, 둘씩 설마 하는 표정들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얀 늑대라면.... 레이?”
“6년 전에 은빛 늑대들 곁으로 가버렸잖아.”
“그냥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몬스터가 아닐까?”
아우울~
아우우~
식장 밖에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언니. 빨리 부케나 던져.”
덜덜덜 떨려오는 한설휘의 손을 잡은 정시아가 눈매를 가늘게 만들며 말을 했다.
“다들 뭘 기대를 하는 거야!! 정신 차려!! 서진은 6년 전에 죽었....”
끼이익.
식장의 문이 열렸다.
한 남자가 어린 아이 손을 잡고,
등장했다.
그 남자는 멋쩍고도,
반가운 얼굴빛으로 어색하게 웃으며 한 마디 했다.
“축의금 내러왔는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진 식장.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도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남자는 볼을 긁적이며,
한 마디를 보탰다.
“혹시 그 부케. 한설휘가 받으면 안 될까요, 교관님?”
뚜벅.
뚜벅.
뭔가에 홀린 것처럼,
정시아의 손을 놓고 앞으로 걸어가는 한설휘.
온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고,
예쁘게 화장한 얼굴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남자.
나 역시도,
그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나 왔어.”
나는 간결하게 말을 하며,
어느새 달려오고 있는 한설휘를 품에 안았다.
어쩌면 나는 내가 한 선택을 후회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서진으로.
아니.
나로 살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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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안녕하세요. 성태이입니다!
따로 후기를 남길까 하다, 너무 면목이 없어 간단하게 전체적인 작품 후기를 여기에 남길까 합니다!
불성실한 연재와,
공지 없는 휴재의 반복.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로, 제가 무책임했고 나태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차기작을 쓸 예정인데, 차기작에는 예전의 저 자신을 반면교사 삼아, 성실히 연재를 하도록 노력. 아니, 무조건 성실연재 하겠습니다.
그동안 인내하며 끈기있게 완결까지 봐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다음 작품에서 꼭 만나요!! 안 그럴게요, 진짜로. ㅠ_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