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95화 (195/196)

195회

최후의 결전

인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칠흑 같은 어둠을 보고 있는 이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인류의 미래이자 희망은 어둠 속으로 홀연히 들어간 구원자의 손에 달렸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 구원자.

서진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 때,

그런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모두 구원자의 승전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의 염원이 간절했던 탓일까?

지칠 줄 모르고 확장을 계속하던 어둠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주춤거리던 어둠이 서서히 입지를 좁히기 시작했다.

어둠을 둥글게 에워싸며,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던 인류는 이것이 청신호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서시우와 달빛 늑대가 어둠을 헤집고,

인류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제로와 인류의 마지막 전투의 막이 올랐다.

+ + +

제로와 인류의 싸움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A급 이하 능력자들은,

제로의 손짓 한 번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제로에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자는 A급 중에서도 최상급 능력자들과 S급 능력자들뿐이었다. 그마저도 힘겨웠다.

단 하나의 존재 앞에 인류는 너무나도 나약했다.

하지만.

“끌끌.”

다 찢겨나간 옷소매가 거추장스럽게 펄럭였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냉정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이무신 협회장.

그는 기가 차다는 듯이 웃으며,

전장을 훑었다.

바닥을 뒹구는 수많은 능력자들의 시체와,

비명을 지르는 부상자들의 비명소리.

그에 굴하지 않고 대항을 하고 있는,

능력자들.

“어른보다 낫구만, 그래. 끌끌.”

협회장의 시선이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능력자들을 향했다.

모두 촉망받는 미래의 유망주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완성형에 가까운 인재들이었다.

“서진의 친구들이라, 다들 범상치 않은 것인가.”

특히, 하늘을 날아다니는 피닉스의 등에 타고 있는 한설휘가 압권이었다. 그녀는 일인군단과도 같은 포스로 제로와 합을 섞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능력자 중 한 사람이었다.

“저 친구도 대단하군.”

바람의 최상급 정령인 ‘진’을 소환한 강소라. 그녀와 그녀의 정령은 제로의 공격을 허공으로 분산시키는 역할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떠맡고 있었다.

그리고 킹 코브라를 소환해, 알게 모르고 견제를 하고 있는 정시아와 후방에서 빠르고 광범위하게 부상자들을 치유하고 있는 박아름까지.

마지막으로,

“저 친구는....”

“으아아아!!!”

쓰러져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서 달려드는 불굴의 오뚝이 같다고나 할까.

이름이 금석이었나?

무대포처럼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스승인 박진과 함께 탱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전장을 훑어보던 이무신은,

고개를 돌려 어둠의 근원지였던 곳을 쳐다봤다.

어둠은 모두 걷힌지 오래였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어둠 속에서 사투를 벌였다는 흔적만,

무수히 많이 남아있을 뿐.

“....”

살아있을 거다.

분명.

아니.

“살아있어야 한다. 서진아.”

짧게 중얼거리는 이무신은,

그가 전하고 간 ‘신의 물방울’을 꺼내들었다.

지금이 사용하기 좋은

적기였다.

지친 기색은 없었지만,

제로는 지쳐있을 게 분명했다.

지금.

전쟁을 종결시킬,

타이밍이자 순간이었다.

병의 마개를 제거한 이무신은,

그대로 신의 물방울을 들이키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가 후다닥 달려와서 자신의 손을 낚아챘다.

“영감!! 지금 뭐하는 짓이야!!”

“....만물상인가?”

“그걸 왜 마셔!!”

만물상.

그가 얼마나 아이템을 사랑하는지,

이무신은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번 사태에 자신의 보따리를 대개방을 했다.

그것도 무상으로.

만물상의 아이템이 아니었으면,

지금보다 배는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을 지도 몰랐다.

“이상한 짓 하지 말고, 빨리 가서 채린이나 도와!! 저러다 죽겠어!!”

“이상한 짓이라니. 녀석, 어른에게 말버릇 하고는. 요즘 녀석들은 왜 하나같이 말버릇이....”

“누가 꼰대 아니랄까봐, 지금 그런 게 중요해? 빨리 가서 채린을...어,어...어?! 영감!!”

신의 물방울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전부 들이킨 이무신.

당황한 만물상이 양 손을 들고,

입을 뻐끔거렸다.

“내 눈으로도 등급이 책정 되지 않는 포션인데, 그걸 원 샷을....때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과다복용하면 안 되는 거 몰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아니라 영감 그러다 죽을 지도 모른다고!!”

안다.

이무신도 알고 있었다.

서진은 아이템에 윤활유처럼 바르는 정도로 사용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마시는 게 효력은 더 뛰어날 터.

“효과가 빠르구만. 끌끌.”

말을 그렇게 했지만,

내장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평생 느껴보지 못한 힘 또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마나를 발산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몸이 터질 것 같았다.

“협회장 자리는 공석이 될 것이야. 그 자리. 네게 맡기마, 만물상.”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영감 지금 눈에서 피가 흘러...아니 코랑 귀에서도....영감!!”

“너는 대한민국을 세울 자본이 있는 녀석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다는 건, 이유야 어찌됐든 자격 역시 있다는 뜻이고. 그러니, 협회장 자리는...끄윽....”

“여,영감....”

“후우...괜찮다. 채린은 출세욕이 있는 여자이니, 협회장 자리에 앉으면 아마도 너랑 결혼을 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만물상의 귀가 쫑긋거리다가,

다시 축 내려앉았다.

“그런 줄 알고, 이 영감은 마음 편히 가보도록 하마.”

말이 끝나자마자,

지면을 박차고 제로가 있는 곳으로 날아간 이무신.

아무도 이무신이 등장한 줄 눈치 채지 못했다.

심지어 제로까지도.

“업보를 청산할 시간이로군. 끌끌.”

제로의 뒤를 선점한 이무신.

백허그를 하듯이 제로의 등을 안았다.

그리고 오랜 잠을 자기 전,

나른하고도 편안한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승천(昇天).”

그게 이무신의 마지막 말이었다.

용이 승천했다.

+ + +

[5초가 지나, 개기일식(皆旣日蝕)이 비활성화 되셨습니다.]

[포인트 상점에 입장하셨습니다.]

[잔여 포인트는 8000포인트입니다.]

내가 한 행동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내 목숨은 물론이고 인류의 존망을 건 도박.

아들이 내 뜻대로 포인트 상점으로 이동을 하지 않는다면, 모든 게 끝이었다. 사실, 도박이 아닌 최후의 한 수였다.

그리고 최후의 내 한 수는.

“휴.”

통했다.

나는 아들을 포인트 상점 바닥에 눕히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미안하지만 여기 있어줘야겠다.”

나는 말을 하며,

포인트 상점을 나가려고 했다.

달빛력을 거의 소진하기는 했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나을 테니.

포인트 상점은 앞으로 아들을 감금하는 감옥 역할로 사용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포인트 상점을 나갈 수 없습니다.]

[어떤 존재가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개소리야?’

나는 당황했다.

서진에게 빙의 한 후로,

가장 당황했다.

나갈 수 없다니.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데,

나갈 수 없다니.

나는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걸 억누르며,

냉정함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어떤 존재.

이게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설마 저승의 소녀?’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눈에,

태동하듯 꿈틀거리는 아들이 들어왔다.

저 녀석이다.

내 직감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인류가 처치 못하는 녀석이라고는 해도, 신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포인트 상점에까지 영향력을 행세하다니.

그것도 자고 있는 채로.

‘야단났네.’

호랑이 굴이 아닌,

내 굴에 내가 데리고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렇다고 저 녀석을 데리고 현세에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들의 입가가 슬며시 열렸다.

“배...고파.....”

입에 이어,

눈이 천천히 뜨이고 있었다.

‘진짜 야단났네.’

일단 후퇴다.

나는 눈에 보이는 방 중에,

아무 방에나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한 번도 실험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방은 나만을 위한 공간일 테니 안전하지 않을까 싶었다.

벽에 등을 기대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로 생각에 몰두하고 있을 때.

뭔가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누가 방에 들어와 내 옷가지를 잡아당긴단 말인가.

간담이 서늘해진 채로,

나는 눈을 천천히 떴다.

7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비몽사몽 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배고파.”

눈을 비비며 말을 하는 아이.

나는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닫혀 있어야 할 방의 문을 쳐다봤다.

반쯤 열려있었다.

“....”

방에도 출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머릿속이 이번에는 완전히 하얗게 바랬다.

절망.

나는 절망했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아이가 계속해서 웅얼거렸다. 웅얼거림이 계속 될수록 목소리가 커졌고, 목소리에 마나가 실리기 시작했다.

“배..고프다고?”

“응. 배고파.”

얼굴 표정을 보니 날 잡아먹겠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내가 도피한 방은 ‘아이템 방’이었고, 나는 포인트로 음식들을 마구잡이로 사서 아이 앞에 대령했다.

염력을 사용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고기만 들어 올려 입속에 집어넣은 아이.

마치 액체를 마시듯,

고기를 순식간에 전부 먹어치웠다.

“배고파.”

식성 파악을 한 나는 이번에는 육류 위주로 세팅을 했다. 그랬더니 전보다는 밝은 얼굴로 음식을 먹었다.

“배고파.”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이런 거 말고.”

“이런 거 말고?”

“인간 먹고 싶어.”

“....”

그제야 나는 떠올렸다.

제로가 아들에게 무엇을 주식으로 줬는지.

아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대체제로 능력치가 높고 등급이 높은 몬스터의 고기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 복귀한 이후로,

빠르게 훈수 포인트가 모였기에 망정이었다.

8000포인트를 전부 소진했을 때.

드디어 아들의 하는 말이 바뀌었다.

“배불러.”

그리고.

“졸려.”

말을 하며 내 품에 파고들려고 했고,

나는 거부하지 않고 아들을 품에 안았다.

몇 번 등을 토닥이자,

금방 잠에 빠져든 아들.

나는 지금도 속속히 들어오고 있는 포인트로 간이침대를 구매해서, 그 위에 눕혔다.

“....”

살고자 하는 본능이 나를 살렸다.

그 생각이 들었다.

온 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얼굴에 경련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핵폭탄이 옆에 있다고 생각을 하면,

누구라도 나처럼 바들바들 떨지 않을까?

‘적이라는 인식이 없는 건가?’

한참동안 아들이 자는 걸 보고 있으니,

점점 머릿속에 생각이라는 게 싹트기 시작했다.

나를 적으로 인식했으면,

내 팔 다리를 잡아 뜯어서 먹지 않았을까?

“근데, 자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 아이네.”

말을 하며 나도 모르게 아들의 머리에 손을 뻗었다가,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래서 손을 회수하려고 했다.

그때 아들이 양 손을 들어올려,

내 팔을 낚아챘다.

낚아 챈 내 팔을 끌어안고,

새근새근 잠을 자는 녀석.

“....”

녀석의 온기에 내 눈이 스르르 감겼다.

자고 일어났을 때, 내 목이 붙어있길 간절히 소망하며 나는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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