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93화 (193/196)

193회

최후의 결전

무분별한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다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방법이 더 나은 방법일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즉.

“갔다 오겠습니다.”

무모해 보일지언정 나 혼자 가는 편이 최선이었다.

크르릉!!

‘아, 혼자는 아니구나.’

나는 어느새 합류한 레이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배웅하는 모양새로 일렬로 늘어서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협회장을 선두로,

다들 하나같이 걱정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리고.

나라는 한 사람에게 많은 짐을 떠넘긴 것 같은,

죄책감 같은 얼굴도 떠올라 있었다.

“저 죽으러 가는 거.”

나는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며,

“아닙니다만?”

말을 했다.

“비켜!!!”

“비키라고!!”

“이 시@#(*$!!”

레이가 내 곁에 복귀를 했다는 건,

함께 떠났던 친구들 역시 이 자리에 왔다는 의미였다.

후미에서 내가 있는 곳까지 오려고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을 뒤로 하고 나는 몸을 돌렸다.

내가 한 말 그대로,

나는 죽으러 가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인사는 나중에 하는 걸로.’

나는 전방에 보이는 흑야보다 더 어두운 곳을 향해, 레이와 함께 달려갔다.

+ + +

밖에서 보면 그저 어둠 그 자체였지만,

내부 사정은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적색 빛이 감도는 곳이라고나 할까.

적색의 대기 아래에 놓여 있는,

시가지는 전부 녹이 슨 것처럼 폐허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은 쉽게 말하자면 ‘확장하는 게이트’였고,

다소 어렵게 말하자면 ‘아들’의 뱃속이었다.

찌릿찌릿.

달의 축복을 3단계를 시전하고 있는 상태임에도, 몸에 정전기가 흐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달의 축복 4단계.’

나는 한 단계를 더 격상했다.

그러자 몸을 휘감고 있던 전기뱀장어가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생각보다....”

아들은 더한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을 안 데리고 오길 잘했네.’

이곳에 발을 딛자마자,

아들에게 잡아먹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S급의 랭커 정도는 돼야,

이곳에서 1인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아들의 영역’은,

위험하고 곤욕스러운 영역이었다.

나는 만월검을 꺼내들며,

전방에 보이는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는 곳을 쳐다봤다.

저곳.

저곳에 아들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또한, 저곳에 제로도 함께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샤인은.

사악.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그런데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불쑥 검 한 자루가 내 왼 편에서 튀어나왔다.

크르르!!

내 옆에서 털을 곤두세우고 있던 레이가,

전광석화처럼 검의 주인에게 달려들었다.

레이가 앞발을 휘둘렀을 때는,

이미 멀찍이 거리를 벌린 뒤였다.

검의 주인이자 레볼루션 간부 중 최강이라 일컫는 샤인.

역시나 녀석은 아들의 영역 외곽에서,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제로-원.”

샤인은 말이 많은 캐릭터가 아니었다.

문답무용(問答無用).

샤인의 모습이 눈을 깜빡하지도 않았는데,

시야에서 사라졌다.

“보름달 가두기.”

나는 보름달로 나와 레이의 신형을 보호했다.

깡!!

간발의 차이로 보름달을 때리는 샤인.

샤인은 역할군으로 따지자면,

암살자 같은 녀석이었다.

샤인의 특기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시간을 멈추게 한 것만 같은 스피드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굉장히 빠른 암살자라고 단순하게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샤인이 괴물인 이유는 스피드와 더불어 파워까지 겸비하고 있는 점이었다.

깡깡!!

달의 축복 4단계에서 시전 한,

보름달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포인트 상점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왔다.

오래 전,

만물상에게 받은 ‘천사의 올가미’라는 아이템이었다.

대 샤인전을 위해 미리 구비해 놓은 만큼,

샤인 파훼법은 이미 내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쉬고 있어. 쟤는 나 혼자서도 충분해.”

나는 레이에게 말을 하며,

보름달 밖의 기척을 살폈다.

샤인 외에는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다.

제로에게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들’. 하나였다.

녀석은 다른 간부들은 전부 장기 말 정도로 생각을 하는 녀석이었다.

샤인이 위기에 처하면 제로가 구하러 올 가능성은, 내 생각에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경계를 늦추면 안되겠지만.

‘달빛 제 5초식. 보름달 부수기.’

균열을 넘어 파편을 떨어뜨리고 있는 보름달을 캔슬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맹수의 이빨 같은 샤인의 검이 날아왔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옆으로 틀며,

회피를 함과 동시에 천사의 올가미를 샤인에게 던지려고 했다.

천사의 올가미 사용 조건은 간단했다.

신체 접촉시 발동.

극히 일부라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역시 샤인은 빨랐다.

개소리 하지 말라는 듯이,

몸을 뒤로 빼려고 했다.

하지만 녀석은 간과한 게 한 가지 있었다.

아니,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나에 대해 데이터 수집을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웨스트 월드에 2년 동안 있으면서,

나는 새로운 이들을 훈수 리스트에 추가했다.

하나는 바로 광여제라고 할 수 있는,

세리나.

그리고 빛의 마을의 촌장이자,

엘프들의 장로격인 소피아까지.

그녀들은 전부 최상격의 이동 능력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모두 100% 그녀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나만의 고유 능력인 ‘월광쇄도’.

정시아의 이동 능력인 ‘뱀의 움직임’.

세리나의 이동 능력인 ‘광속(光束).

소피아의 이동 능력인 ‘고요한 숲의 속삭임’까지.

아무리 내가 사기적인 놈이라고는 해도,

여러 능력자의 능력을 혼합해서 막 사용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잠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동안은 육체에 무리가 가지만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웨스트 월드에서 다양하게 실험을 해 본 결론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네 가지의 이동 능력을 사용하며, 빠르기로는 따라올 자가 없는 샤인의 손목을 낚아챘다.

인형처럼 무표정하던 샤인의 눈썹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내가 잡은 건 손목이 아니라,

녀석의 자존심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만월검으로 공격을 하는 대신,

천사의 올가미를 터치다운 하듯이 샤인에게 갖다 댔다.

순간 고민했다.

그냥 공격을 감행할까 하고.

하지만 일격에 샤인을 죽이지 못한다면,

오히려 패착이 될 수도 있었다.

자충수라고나 할까.

그래서 보다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

샤인의 몸에 천사의 올가미가 닿자마자,

내 시야에 샤인의 능력 목록이 촤르륵 떠올랐다.

나는 그 중에....

“제로-백.”

샤인이 짧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질 않았다.

한 쪽 눈썹에 이어,

양 쪽 눈썹이 꿈틀거리는 샤인.

“그건 쫌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봉인 했어.”

“....”

내 말에 꿈틀거리던 눈썹이 멈춘 샤인.

궁극기라고 할 수 있는 ‘제로-백’이 봉인 당했는데도, 상당히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침착함을 되찾았다고는 해도,

한 번 봉인 당한 능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다음 생에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가라. 샤인.”

그게 레볼루션이 된 이들에게,

이루지 못할 꿈이었을 테니.

‘레드문.’

나는 10초식을 사용하며,

샤인의 가슴팍에 만월검을 찔러 넣었다.

울컥하고 샤인의 입가로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샤인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마치 부모를 죽인 원수라도 되는 마냥.

그렇게 샤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궜다.

“....”

레볼루션 간부를 죽일 때마다,

마음이 썩 편치는 않았다.

나는 샤인을 바닥에 조심스레 눕히며,

달의 축복을 한 단계 낮췄다.

샤인의 손목을 낚아챘을 때,

기회라는 생각에 달의 축복을 5단계까지 끌어올렸다.

다시 4단계가 된 달의 축복.

낑낑....

노심초사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레이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말하고 나니 깨달은 건데, 레이.”

크릉?

“나도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나봐. 평범하다는 단어가 왜 이렇게 아득한 꿈처럼 들리지?”

나는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전방을 쳐다봤다.

검은 안개가 더욱 자욱해져 있었고,

외곽지역이 1km는 더 확장해 있었다.

“가자.”

나는 레이와 함께, 서진에게 빙의한 이유와 최종 목적이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마지막을 향해.

+ + +

내가 원하는 이 세계의 결말은,

거창하지 않았다.

또한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미 내가 걸어온 길은,

누군가에게 불행한 길이었을 테니까.

내가 원하는 결말은 그저.

“마중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지.”

나는 볼을 긁적이며 건물의 잔해가 언덕을 이루고 있는 곳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물이 가득한 투명 캡슐 안에 눈을 감고 있는 어린 소년과, 그런 소년을 지키고 있는 것만 같은 모양새의 검은색으로 치장한 제로.

내 등장에도 제로는 어디서 주워온 것만 같은 의자에 앉아, 명상을 하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한 걸음 더.

그렇게 열 걸음을 나아갔을 때,

나는 제 자리에 멈춰 섰다.

사정거리.

딱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마지노선이었다.

여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더 안 쪽으로 움직이면, 제로는 나를 공격할 게 분명했다.

어떻게 보면 제로는 여유만만해 보이기도 했다. 팔짱을 끼고 있는 자세부터, 내가 지척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까지 올 때까지 방관하는 태도가.

‘오싹하네.’

단순히 거리를 두고 보고만 있는데도,

머릿속으로 경종이 울렸다.

제로는 그저 가치를 못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굳이 나서야 할.

그만큼 강하기에.

강함에서 비롯된 제로의 태도는,

내게는 어쩌면 기회일지도 몰랐다.

나는 포인트 상점을 열려고 하다가,

앞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멈칫했다.

“너는 누구인가.”

메마르면서도, 온기 하나 없는 목소리였다.

만약 어둠이라는 색에 목소리가 있었다면,

저런 목소리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진. 그 안에 있는 너를 묻는 것이다.”

“....”

나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제로의 검은 복면을 쳐다봤다.

언젠가 내 존재에 대해 의심하는 이가 나타날 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예언 능력이 있다는 거짓말을 통해 능구렁이처럼 넘겨 와서 그렇지.

그래서 딱히 당황해 할 만한,

물음은 아니었다.

다만 진실을 말하고 싶어도,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없다는 것에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죽기 전, 허송세월을 보내며 불법 토토를 하던 내가 나인가. 아니면 저승의 모니터링 요원으로 있던 내가 나인가.

그것도 아니면 서진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내가 나인가.

가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해볼 때가 있었다.

하지만 답을 내리지 못했다.

“너는 왜 내 일을 방해하는 것인가?”

딱히 대답을 바라진 않았던지,

다른 질문을 하는 제로.

“....그러게.”

제로를 보고 있는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누구보다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아니면 내가 그저 속에 꾹꾹 담아두고 있던 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처음에는 그냥 그래야만 했어.”

나는 짧지만 내 얘기를 간략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게임 속 퀘스트를 받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근데 지금은 말이야. 그냥....”

“....”

“내가 아는 녀석들이 오래오래 살았으면 해. 가능하다면 자식도 낳고, 손주도 보고. 그게 다야. 내가 지금 여기에 서 있는 이유는.”

석상처럼 가만히 있던 제로.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쳐다봤다.

“너는? 네가 그리는 미래에 너는 있나?”

툭 던진 것 같은 말 한 마디가,

비수처럼 내게 날아왔다.

나는.

나는....

아니, 나도....

“아이씨, 말려들 뻔 했네.”

나는 만월검을 고쳐 쥐며,

씨익 웃었다.

“지금 네가 내 손에 죽어준다면 대답해줄 수도 있는데. 죽어주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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