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92화 (192/196)

192회

최후의 결전

상성은 절대적이 아니었다.

상대보다 상성에서 밀릴지언정, 실력이 압도적이라면 상성을 극복할 수 있는 게 능력자들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상성에서부터 우위를 점한 능력자가,

실력까지 우위라면?

“로브 안에 갑옷이라도 껴입고 있나보지?”

피로 붉게 물든 만월검을 위로 치켜 올리며,

나는 젤다를 쳐다봤다.

한 쪽 팔이 잘리고, 로브가 제 구실을 못할 정도로 찢겨 나갔음에도 무표정하게 나를 오시하듯 쳐다보고 있는 젤다.

치직. 치직.

만월검을 뒤덮고 있는 젤다의 피가,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 스파크가 튀기며 증발했다. 대마법사라 그런지 피에도 마나가 흐르는 모양이었다.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다.”

덤덤하게 입을 여는 젤다.

“한정적이며, 유한하며, 한계가 분명한. 그런 보잘 것 없는 생물이라는 말이다.”

“....”

“너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은 결코 정해진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독백인지, 내게 하는 말인지.

나는 젤다의 읊조림 같은 말을 들으며,

힐끔 지상을 내려다봤다.

여전히 능력자들이 남아있긴 했지만,

그 수는 소수였다.

각 길드의 정예 멤버라고 할 수 있는,

인원들.

혹시나 내가 패배했을 경우,

후속조치를 하기 위한 인원들인 것 같았다.

인원의 중심에 서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던 채린이 주먹을 쥐고 들어 올려 보였다.

나는 고개를 짤막하게,

한 번 끄덕였다.

내 요구는 분명 무리한 요구였다.

갑자기 나타나 젤다와 대적하고 있는 인원에게 퇴각 명령을 내리라고 했으니.

하지만 채린은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채린.

그녀를 만난 건 우연이었지만,

지금은 필연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했다.

‘고맙다는 말을 했었나, 내가.’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고개를 들었다.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인간이 하등한 이유에 대해 말을 늘어놓던 젤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말의 어조와 분위기가 달라졌다.

뿐만 아니라, 점점 죽어가던 모닥불처럼 힘을 잃어가던 젤다의 마나가 갑작스레 팽창하듯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회광반조(回光返照)의 징조였다.

하지만 젤다는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아닐걸?”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달의 축복을 3단계에서 4단계까지 끌어올렸다.

“너도 그냥 한낱 인간일 뿐이야.”

월광쇄도를 시전하며,

젤다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가볍게 만월검을 젤다의 심장에 찔렀다. 젤다의 주변으로 회오리치던 형형색색의 마나가, 그의 가슴팍으로 모여들었다.

치지직!!

스파크가 튀며,

만월검이 잠깐 주춤거렸다.

‘달빛 제 10초식. 제 1형, 레드문.’

주춤거림이 사라졌고, 나는 젤다의 뒷덜미를 만월검을 쥐고 있는 반대 손으로 잡았다.

억압 된 젤다는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가슴으로 향하는 만월검을 쳐다봤다.

“내가 말했잖아. 너는 그저 인간이라고. 약간 특별한.”

푹.

만월검이 젤다의 심장을 꿰뚫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의 규격을 뛰어넘은 존재는,

단 한 명이었다.

젤다는 그 사실을 모르고 너무 오만했다.

레볼루션의 최종병기라고 할 수 있는,

‘아들.’

이 녀석은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벌써부터 피곤하네.”

만월검을 회수하며, 생명력이 다한 젤다를 손에서 놓으며 중얼거렸다.

아들을 내가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그나저나.”

나는 시선을 돌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를 쳐다봤다.

저 너머에는 또 다른 격전지가 있었다.

레볼루션의 포포.

그리고 스카이 길드의 길드장인 설민호.

레이와 친구들을 보내놨으니,

별 탈이 없다면.

‘저기도 지금쯤 끝났겠고.’

나는 고개를 바로하며,

정면을 쳐다봤다.

적어도 10km 이상은 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도, 쉴 새 없이 오감을 자극하는 기류가 이곳까지 흘러왔다.

많은 격전지 중,

대전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였다.

레볼루션의 수장인 제로.

그리고 가장 까다로운 녀석인 샤인.

마지막으로 최종병기 아들까지.

모두 내가 보고 있는 전장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갈까요?”

나는 지상에서 입을 벌리고 나를 보고 있는 이들을 향해 말을 했다.

종착이 멀지 않았다.

+ + +

“대장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설민호 대장님?”

“....”

포포와 대적하고 있는 이곳은 제2격전지였고,

설민호는 이곳의 총책임자이자, 총사령관 역할을 맡고 있었다.

초반 양상은 팽팽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전황이 서서히 불리해져갔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퇴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던 설민호였다.

언데드와 인간의 싸움은 일반적인 싸움이 아니었다. 지구전으로 가면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숙주인 포포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소모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대장님?”

“대장!”

설민호의 다급하고 경각심에 극에 치닫고 있던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그리고 후퇴라는 단어도 머릿속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그 사람이 나타났나 보군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설민호는 앞쪽을 쳐다봤다.

그 사람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는,

하얀 늑대 한 마리가 포포의 머리를 입에 물고 승리의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으로 눈에 익은 앳된 얼굴들이,

빠르게 혼란스러운 전장을 수습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요?”

현 상황에 대한 의문을 표하고 있던 한 사람이 고개를 갸웃하며 설민호를 쳐다봤다.

대답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설민호.

“저희도 이 전쟁의 끝을 보러 가볼까요?”

제2격전지.

상황종료.

+ + +

제1격전지이자, 본대 싸움이라고 볼 수 있는 전장.

의외로 다른 전장에 비해,

사상자도 많이 없었고 피해도 크지 않았다.

시가지 중심에서 암세포처럼 서서히 퍼져나가는 어둠의 그림자. 반경 1km까지 어둠이 퍼졌고, 점점 반경을 넓혀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응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둠 안에 한 번 들어간 인원은 두 번 다시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그래서 작전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사상자가 많지 않은 이유였다.

“내가 가보겠네.”

침묵이 깊게 내려앉은 임시 회의실. 침묵을 깬 건, 누구보다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던 이무신 협회장이었다.

본래라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협회장을 만류했을 터였다. 하지만 아무도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정체불명의 어둠.

그 안은 그야말로 수수께끼 그 자체였다.

탐색조를 더 파견하자니,

못 돌아올 확률이 자명한 사실이고.

그렇다고 전군을 이끌고 다 같이 가자니,

그것 또한 너무나도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렇다고 어둠이 계속 확산 되는 걸 방치하자니, 그것 또한 문제였다.

어쩌면 협회장의 말은 정답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는,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능력자였으니까.

비록 은퇴한지 꽤 오래 됐다고는 해도.

쿵쿵쿵!!

침묵이 점점 긍정으로 굳혀질 무렵,

복도가 요란하게 울렸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뛰어오는 소리였고,

머지않아 회의실 문이 부서질 정도로 거칠게 열렸다.

“보고 드립니다!!”

모두의 시선의 뒷문을 향했다.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고,

큰 소리로 외치는 보고자.

“제2격전지! 제3격전지! 모두 승전보가 울렸다는 소식입니다!!”

“뭐..뭐라고?”

“그것이 진짜인가!!”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가 없었다.

모두들 엉덩이를 들썩였고,

자리에서 일어나 축배라도 들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협회장의 한 마디에,

모두들 다시금 침착을 되찾았다.

“더더욱 내가 나서야 할 이유가 생겼구만, 그래. 껄껄.”

다른 곳에 승전보가 울렸다 해도,

돌고 돌아 본대는 이곳이었다.

이곳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결국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패하는 결과를 낳을 게 분명했다.

“늙은이 주제에 뭘 나서, 나서기는.”

팔짱을 끼고 시종일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한 남자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50대는 넘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체격은 벽돌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부지다못해 단단해 보였다.

“말조심해라, 박진.”

“지랄하고 자빠졌네. 어이, 한태문이.”

테이블에 다리를 올리며 한태문을 쳐다보는 박진. 표정이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얼굴이었다.

“세나가 죽을 때도 조심하더니, 지금도 조심해서 늙은이까지 죽게 두려고?”

“박진!!”

박진의 말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건,

한태문이 아니라 이순신 헌터 학교의 교장인 이순신 교장이었다.

“그나마 말이 통하던 건 첸 녀석이 유일했는데, 쯔쯧. 첸이 살아있었더라면 지금 너희처럼 방관자처럼 있지 않았을 거다. 분명히. 너희는 예나 지금이나....”

“그만.”

협회장이 손을 들어, 오래 전 친구 사이였던 이들을 만류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 번 붙은 시비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번지려고 했다.

그때 벽에 기대서 쉬고 있는 보고자 옆으로,

누군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저도 반대에 한 표요!”

상황에 맞지 않게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는 미소년.

서진이었다.

+ + +

서둘러 온 보람이 있었다.

‘표정들 한 번 살벌하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협회장이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왔느냐.”

“넵.”

웨스트 월드에 있으며,

나는 딱 두 사람과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협회장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은.

“형!!”

회의실 말단에 앉아 있는 내 동생.

서시우였다.

서시우는 2년 사이,

소년에서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냥 남자도 아니고,

아주 잘 생기다 못해 얼굴에서 광이 날 정도로 잘생긴 남자가.

협회장과 서시우.

이 두 사람은 이번 전쟁에서 핵심 열쇠들이었다.

그게 내가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은 이유였다.

나는 서시우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며,

회의실에 모여 있는 면면을 쳐다봤다.

전부 한국을 움직이는 거물들이었다.

“협회장님은 저희 측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러니, 그에 맞게 사용해야 합니다.”

내 등장에 웅성거리던 장내.

내 말에도 여전히 웅성거림은 이어졌지만,

시선은 모조리 내게 꽂혔다.

“녀석아. 사용한다니. 그게 어른에게 할 말버릇이냐?”

협회장이 팔꿈치로 내 허리를 푹 찔렀다.

“그래서 무슨 대책은 있고?”

협회장이 고개를 살짝 들어,

내 얼굴을 쳐다봤다.

“대책보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잠시 제 말에 귀를 기울여주시겠습니까, 여러분들?”

행방이 묘연하던 달빛 계승자가 갑작스레 나타나, 귀를 기울여달라고 하면 과연 누가 알겠다하고 귀를 쫑긋할까.

이 사실을 협회장 역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첨언을 했다.

“지금부터 서진 학생이 하는 말은 협회장인 나를 대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한 번 들어나 주시지요.”

곳곳에서 ‘저 새끼 뭐야?’라고 의문을 표하던 기세가 사그라들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나는 검지를 들었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리다가, 내 얼굴을 가리켰다.

“저를 믿고 얌전히 기다리는 것.”

이게 내 방법이자,

내 작전의 일목요연한 요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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