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회
최후의 결전
포포와 샤인.
새롭게 합류한 대마법사 젤다.
마지막으로 레볼루션의 수장인 제로까지.
그들은 개별적으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점점 한 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그런데 한 놈.
한 놈이 보이질 않았다.
레드.
웨스트 월드에서 대한민국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나는 현 상황에 대해 빠르게 ‘정보 방’을 통해 스캔을 했고 1차 목적지를 정했다.
개별 행동에서 더 나아가,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레볼루션 간부.
바로 레드가 있는 곳이었다.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말썽꾸러기라고는 해도, 레드는 레볼루션의 간부였다. 먼저 제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제거하는 순간 제로가 바로 내 존재를 눈치를 챌 게 분명했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만약 레드와 대치하고 있는 게 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몰랐지만.
나는 레드의 머리통을 흔들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쳐다봤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표정과 행동을 멈춘 채 내 얼굴을 쳐다보는 시선들.
정시아와 강소라.
박아름과 금석.
그리고 한설휘까지.
2년.
내가 느낀 그 시간은 고작이었다.
고작 2년이 흘렀을 뿐인데,
다들 앳된 티가 많이 벗겨져 있었다.
반갑게 손이라도 들어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나는 지금 양 손을 모두 사용 중이었다.
한 손에는 만월검을.
한 손에는 레드의 머리를 들고 있었으니까.
“크크크....”
마지막으로 숨을 헐떡이는 뚜뚜를 핥고 있는 레이를 보고 있을 때, 레드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널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지 알아? 키헤헤헤!!”
“..나도.”
“응?”
나는 손에 들고 있는 레드의 머리를,
녀석의 몸뚱이가 있는 곳으로 무성의하게 던졌다.
레드는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녀석을 죽이기 위해서는 본체를 죽여야 했다.
레드의 목 부근에서 혈관이 뻗어 나와 머리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려고 했다.
“나도 널 만나고 싶었어.”
나는 말을 하며 만월검을 양 손으로 잡았다.
“첸 어르신의 복수를 꼭 내 손으로 하고 싶었거든. 달빛 제 1초식.”
달빛 가르기.
새하얀 빛이 만월검에서 뿜어져 나갔다.
아직 머리와 몸을 잇고 있는 레드.
붉은 막을 형성해, 자신의 몸을 에워쌌다.
레드는 고작 저 정도로,
내 초식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현재 나는 겨우 달의 축복 2단계를 시전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내가 레볼루션에 대해 조사를 하듯, 그간 레볼루션은 나를 포함해 능력자들의 능력을 계속해서 조사하고 분석을 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포인트 상점의 ‘정보 방’.
내게는 차원이 다른 치트키가 존재했으니까.
나는 레드를 포함해 레볼루션의 간부들의 현 실력과 상태를 낱낱이 알고 있었다. 대가로 거의 모든 포인트를 소모하긴 했지만.
어쨌든.
“넌 막을 수 없어.”
레드에게 쇄도한 달빛은,
화염처럼 레드를 집어삼켰다.
2년 동안 ‘신의 물방울’을 수집함과 함께,
나는 드워프들을 들쑤시고 다녔었다.
만월검을 제작해 준 토레스는 분명 인간계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대장장이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순혈 드워프가 아니었다.
인간과 드워프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드워프.
그의 손기술과 순혈 드워프의 손기술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토레스의 손에서 태어나,
순혈 드워프가 어루만진 만월검.
단언컨대, 현존 최강의 무기였다.
만월검의 스펙 업을 간과한 레드.
아무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산화하듯, 연기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운이 좋았네.’
만약 레드가 본 실력을 다했다면,
나는 여기서 꽤나 체력소모를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기습이 성공했고,
정보의 차이가 유불리를 극명하게 나눴다.
나는 만월검을 집어넣으며,
친구들을 쳐다봤다.
모두 뚜뚜가 있는 곳에 모여 있었는데,
시선은 내 쪽을 향해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박아름이 뚜뚜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뚜뚜의 숨소리가 점점 일정해지는 걸로 보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았다.
“야.”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 중,
정시아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2년만인가?”
“....2년만인가? 야. 너 어디 유학이라도 갔다 온 것처럼 말하네? 도대체 어디서 뭐하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냐고!! 말이라도 해주고 갈 수 있는 거 아니야?”
“말했잖아. 떠난다고.”
“장난해? 옆 집 놀러가는 것처럼 말해놓고, 기약 없이 떠난 걸 정당화 하겠다는 거야, 지금? 야, 서진!! 우리는 네가 어?! 죽은 건 아닐까하고....”
짝!
정시아를 옆으로 밀치고 내 앞에 나타난 한설휘.
다짜고짜 내 뺨을 때렸다.
“하,한설휘.”
당황한 정시아가 만류하려고 했지만,
한설휘는 막무가내였다.
연이어 내 뺨을 때리려고 손을 들어 올리는 한설휘.
내가 아무런 저항 없이 쳐다보고만 있자,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이 꿈틀거렸다.
“너 알고 있었지?”
“....”
“우리 할아버지가 인체실험에 가담한 거?”
“....”
“왜 말 안 해줬어?”
“....”
“그동안 어디 있었어?”
“....”
“연락은 왜 안 했어?”
“....”
“왜. 왜.... 왜!!”
점점 울분에 가득 차는 한설휘의 목소리를 죄인처럼 가만히 듣고 있을 때, 누군가 등을 밀었다.
강소라가 뭔가를 하라고,
강하게 눈짓을 하고 있었다.
“....”
나는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한설휘를 끌어안았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한설휘는 마치 고슴도치 같았다.
하지만 나는 계속 그녀를 끌어안았다.
2년간 그녀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얼마나 내가 무책임하게 떠났던 건지.
그녀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안 떠나.”
그래서일까.
약속하지 못할 말을,
위로의 말이랍시고 내뱉고야 말았다.
이 순간 잠시라도,
한설휘를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에.
내 말에 뭍에 올라온 생선처럼,
파닥이던 몸이 잠깐이지만 온순해졌다.
“근데, 있잖아.”
나 바로 가봐야 한다는 말을 하려다가,
도로 삼켰다.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는 한설휘의 눈빛.
말 한 번 잘못했다가는,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은 괜찮을 지도.’
나는 잠깐이지만 한설휘를 계속 안고 있기로 했다.
+ + +
활기를 되찾은 뚜뚜가 레이와 함께 부둣가를 뛰어다녔다. 덤으로 피닉스가 녀석들의 머리 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휘뚜루 마뚜루~~”
오랜만의 재회에 신난 모습이었다.
“와~ 나도 웨스트 월드 한 번 가보고 싶다.”
“야, 아무리 그래도 말 해주고 가지. 우리가 뭐, 웨스트 월드 간다고 하면 따라간다고 했을까봐?”
인간들 역시 짧은 시간이지만,
짧은 회포를 풀었다.
한설휘는 여전히 뿔이 나 있는 얼굴이었지만, 내 옆에 꼭 붙어 있었다.
“크흠. 흠흠.”
맞은편에 앉아 있는 금석이 계속해서 콧김을 뿜어대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표정이 꼭 몸이 근질근질 거린다는 얼굴이었다.
나랑 대련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인데,
나는 고개를 가볍게 절레절레 흔들었다.
“크흐음!!”
못마땅한 얼굴로 몸을 살짝 옆으로 트는 금석. 옛날 같았으면 바로 대련하자고 달려들었을 텐데.
나는 여명이 찾아오는 수평선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중에 보는 걸로.”
내 계획은 짧지만 친구들에게 모두 설명을 했다.
이번 전쟁에서 현재 내 곁에 있는 녀석들의 역할은 비중이 있었다. 내가 써먹으려고 손수 키운 녀석들이었으니까.
후방에서 썩고 있을 인재들이 아니었다.
“레이, 가자.”
위험하더라도 전장에 있어야 할 녀석들이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는 짧은 배웅을 받으며,
다음 격전지로 향했다.
+ + +
화르륵!!
화염이 난무하고,
치지직!!
인위적으로 생성 된 먹구름에서 번개가 내리치고.
휘이잉!!
태풍과도 같은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곳.
“어이없네.”
나는 젤다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입에 실소를 머금었다.
젤다는 분명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법사였다. 하지만 그는 태생적으로 인간이었다.
모든 속성 마법을 다룰 수 있었지만,
분명 한계가 존재했다.
하지만 레볼루션의 도움을 받아서인지,
한계선이 희미해진 것 같았다.
캐스팅 동작 없이 연속적으로 서로 다른 속성 마법을 구사하는 일.
이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헌데, 그걸 젤다는 지금 손쉽게 해내고 있었다.
나는 허공에서 마치 일인군단처럼,
군림하고 있는 젤다를 쳐다봤다.
백발노인의 모습이었지만,
표정은 마치 만백성을 오시하는 황제와도 같았다.
젤다는 본래 심성이 겸손한 인물이 아니었다. 헌데, 레볼루션과 한 패가 된 후에 머릿속에서 겸손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삭제한 것처럼 보였다.
“레인저 길드를 엄호해!!”
“진영 유지....꺄악!!”
“X....발!!”
“저게 사람이야, 괴물이야?!”
나는 손에 끼고 있는 속성 반지를 쓰다듬으며,
지상을 쳐다봤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젤다가 만들어낸 인공적인 자연 재해에,
능력자들은 혼비백산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장거리 공격이 가능한 레인저 길드를 통해, 공격을 시도하고는 있었지만 젤다의 옷자락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학살의 현장이었다.
그럼에도 레인저 길드를 포함한, 여러 길드들이 후퇴하고 있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언젠가는 젤다의 마나가 마른다.’
바로 그때.
그때를 노리면 된다.
버틸 힘이 있다면 마법사를 상대로 충분히 세울 수 있는 전략이었다. 아무리 대마법사라고는 해도, 마나는 무한하지 않을 테니.
만약 내가 이곳에 적절하게 오지 않았다면.
‘전략 착오로 전멸을 당했겠지.’
젤다의 마나는 무한하지 않았다. 하지만 레볼루션에 가담하며 획득한 아이템으로 인해 거의 무한에 가깝게 마나를 사용할 수 있었다.
세계수의 지팡이.
‘내 기억으로 옵션이 어마어마한 마나 재생률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달빛 4초식인, 보름달 가두기를 머리 위로 시전하며 레인저 길드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레인저 길드를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는 또 다른 길드가 있는 쪽이었다.
“채린씨.”
사신 길드의 전매특허 기술인 지주진의 중심에 서 있던 채린.
힘겨워 보이는 고개를 돌려,
내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2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그간의 노고가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가뜩이나 지금은 전시 상황.
표정마저도 어둡기 그지없었다.
“....어?”
그런 그녀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살짝 벌렸다.
“서진....씨?”
나를 보는 표정이 꼭 귀신이라도 보는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표정은.
“서진씨!!”
가뭄의 단비.
아니, 그 이상을 내게서 느낀 것 같은 표정이었다.
구세주를 만난 표정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녀의 바람대로 나는,
이 전장을 끝낼 구세주가 맞았다.
“인사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일단.”
나는 한 차례 전장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퇴각하세요.”
“....네?”
“그리고 협회장님이 있는 곳에 합류하세요.”
“저....서진씨?”
안다.
아무리 내가 신뢰도를 쌓아놨다고는 해도, 뜬금포로 2년 만에 등장해서 하는 말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으니 어이가 없고 곧바로 납득을 못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도 젤다의 마법에 전투불능을 넘어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으니.
“저 혼자면 충분합니다.”
레이는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내가 내린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젤다.
분명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대마법사인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의 태생은 마법사였다.
오늘 젤다에게 태생적 한계란 무엇인지,
톡톡히 알려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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