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89화 (189/196)

189회

최후의 결전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오래 전, 비밀리에 진행 됐던 ‘인체실험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레볼루션이라는 인체 실험체들이 결성한 악의 집단까지.

판도라의 상자를 연 이무신 협회장은,

대중에게 딱 한 마디를 했다.

“죄 값은 나중에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말한 ‘나중에’라는 말뜻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레볼루션을 처치한 후.

그때를 말하는 것일 테니.

대한민국에는 레볼루션 전담 부서가 신설이 됐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의 시간이 흘렀다.

+ + +

“2년에 겨우 1L라니.”

그렇다는 건 1년에 겨우 500ml라는 소리였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유리병을 보며,

어이없게 웃었다.

내가 웨스트 월드에서 취하고자 했던,

신급 아이템인 ‘신의 물방울’.

획득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웨스트 월드의 정중앙에 있는 세계수에서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양이 너무 적다는 점이었다.

딱 1L정도만 더 있으면 좋겠는데.

“쩝....”

나는 아쉬운 대로 입맛을 다시며,

지상을 내려다봤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세계수의 꼭대기였는데, 거의 구름과 인접할 정도로 상공이었다. 그래서인지 지상의 모든 물체가 개미처럼 보였다.

“오늘은 꼭 나를 잡겠다는 것 같은데.”

세계수 주변으로 몰려든 작은 점들.

굳이 확인을 해보지 않아도,

전부 엘프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수시로 도둑질을 하러 오는 도둑놈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이상했다.

그동안 루팡처럼 요리조리 잘 빠져나갔는데, 지상에 모인 숫자를 보니 다음번에는 진짜로 잡힐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하나.

나는 오늘 이후로,

여기에 안 올 생각인데.

나는 신의 물방울이 담긴 유리병을 품에 집어넣으며, 유유히 어디론가 날아갔다.

+ + +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오늘도 세계수에 갔다 온 거야?!”

빛의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귀가 뾰족한 엘프 하나가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여~ 소피아.”

나는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소피아는 빛의 마을의 대장이자 촌장인 엘프였다. 그리고 엘프 중 거의 유일하게 인간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엘프이기도 했다.

‘2년 전에 소피아를 찾느라고 애를 무지하게 먹었지.’

소피아를 찾은 덕분에,

2년 동안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다.

“가뜩이나 우리 마을에서 인간을 숨겨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가운데. 너 자꾸 엘프들 자극하고 다니면 아무리 내가 너희 인간들한테 호의적이라고는 해도 더는....”

“소피아.”

“응?”

내 앞에 멈춰 선 소피아가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세리나는?”

“빛의 정원에 산책하러 간다던데?”

“오케이, 땡큐.”

“고맙기는. 응? 야!! 내 얘기 아직 안 끝났어!! 하, 인간의 말 돌리는 솜씨는 당해낼 수가 없다니까!!”

나는 세리나가 있을 빛의 정원으로 걸어갔다.

+ + +

2년 전 세리나는 산송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세리나가.

“아이, 간지러워!”

지금은 꽃과 어린 엘프들 사이에 둘러 싸여서,

해맑게 웃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곳에 머물면서 세리나는 생기와 활력을 되찾았고, 거기에 더해 소피아와 심심찮게 대련을 했다.

소피아는 인간의 등급으로 따지면 최소 S급 이상의 실력자였고, 세리나는 날이 갈수록 자신이 가진 능력에 빠르게 적응을 해나갔다.

크르릉!!

정원에 노니는 형형색색의 나비를 쫓아다니던 레이가 내 옆으로 뛰어왔다. 레이의 등에는 어린 엘프 두 명이 타고 있었다.

“진!!”

“어디 갔다 왔어!!”

어린 엘프들이 폴짝 뛰어올라,

내 품에 안겼다.

“알면 다쳐.”

나는 말을 하며,

세리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서진아!”

나를 발견한 세리나가 꽃밭에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에 그거 뭐야?”

나는 양 팔로 안고 있던 엘프 둘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세리나는 머리에 꽃왕관을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퍽이나 잘 어울렸다.

세리나는 엘프들과 섞여 있어도,

전혀 위화감이 안 들었다.

귀만 조금 뾰족하면 엘프라고 착각을 할 정도였다.

“애들이 만들어줬어.”

수줍게 웃으며, 바닥에 앉아서 열심히 뭔가를 만들고 있는 어린 엘프들을 쳐다보는 세리나. 어린 엘프들은 꽃왕관 뿐만 아니라 목걸이와 팔찌. 신발 같은 것들을 만들고 있었다.

“잘 어울리네.”

“진짜?”

“응.”

“헤헤.”

세리나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동화책을 열심히 읽던 세리나.

그녀는 지금 마치 동화에나 나올 법한 공주처럼 보였다.

이런 여자에게,

소설이나 읽으라고 권했다니.

“무슨 일 있어, 서진아?”

“응?”

“표정이 조금.... 딱딱해 보여.”

“딱히? 애들이랑 놀고 있어.”

“어디 가?”

“밖에 바람 좀 쐬러 갈까 싶어서.”

같이 바람 쐬러 가자하려고 할랬는데,

역시 아니다.

혼자 가는 게 좋아 보였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렸다.

한 달 전.

웨스트 월드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레볼루션의 자취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전쟁 준비가 끝났다는 것.

오늘 아침.

‘정보 방’을 통해 확인을 해보니,

며칠 전 전쟁이 시작 됐다는 소식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미리 한국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신의 물방울’에 대한 욕심 때문에 그러지를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를 할 수가 없었다.

레볼루션과 인류의 싸움.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 된지 고작 며칠이 흘렀을 뿐인데도, 인류가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원래 시나리오 대로라면, 레볼루션은 앞으로 몇 년 간은 음지에서 기반을 다지는 작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나로 인해,

많은 게 틀어지고 앞당겨지고 말았다.

전생에 비하면,

많이 약한 상태라고 봐야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인류측도 마찬가지였다.

딱 하나.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나만이.

나 서진만이 전쟁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나만이 이번 세계관에서,

압도적으로 강해졌으니까.

나는 내친김에 상태 창을 열었다.

-이름: 서진

나이: 19세.

체력: SS(20)

근력: SS(72)

지혜: S(2)

민첩: S(10)

달빛력: 50000

모든 스탯을 S급을 찍었다.

운용할 수 있는 달빛력도 3만에서 5만으로 늘어나 있었다.

서진은 게임으로 따지자면 후반 캐리력이 엄청난 캐릭터였다. 후반까지 잘 성장만 할 수 있다면.

그런데,

잘 성장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처음 서진에게 빙의했을 때,

나는 불만이 많았다.

초반부에 캐리력이 있는 캐릭터에 빙의를 했다면 스노우볼을 빠르게 굴려나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만약 모든 캐릭터가 전부 만렙을 찍었다고 가정했을 때, 누구에게 빙의할 것이냐 묻는다면 나는 고민 없이 대답을 할 게 분명했다.

서진이라고.

나는 내 상태 창을 닫고,

레이의 상태 창을 열었다.

-이름: 레이

나이: 6살.

종족: 달빛 늑대.

체력: S(10)

근력: S(92)

지혜: SS(25)

민첩: S(50)

달빛력:25000

레이 역시 나와 마찬가지였다.

내 분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내 스탯과 많이 흡사했고, 이곳에서 많이 성장을 했다. 만약 내가 죽더라도 레이를 통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 정도로.

그래서 말인데.

크르릉.(싫어.)

“....”

교감 능력의 부작용(?)이었다.

이심전심이 따로 없었다.

나는 레이를 보험 삼아서,

빛의 마을에 남겨두고 가고 싶었다.

레이와 함께라면,

레볼루션과 대적할 힘이.

그들을 처치할 확률이 상승하는 건 무조건이었지만, 혹시나 실패 한다면? 혹시나 잘못 된다면?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런 것도 있고, 레이가 혹시나 죽을까봐 걱정 되는 마음도 있었다.

크르르.(주인. 나 달리기 엄청 빨라.)

피식.

그걸 말이라고.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레이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럼, 가볼까?”

“어딜?”

“응?”

“어딜 가냐고.”

앞에 보이는 빛의 마을 입구로 걸어가려고 할 때, 뒤에서 누가 걸어왔다.

소피아였다.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보는 소피아.

“설마 또 세계수를 털러 간다거나?”

눈가를 가늘게 좁히는 그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럼 드워프한테 또 사기를 치러 간다거나?”

이번에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산책.”

나는 소피아의 말 꼬리를 잘랐다.

“산책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아니. 진짜 산책 가는 거 확실해?”

“그럼요.”

“흠....너무 멀리 나가지는 마. 엘프들이 너 찾는다고 혈안이 돼 있으니까. 누누이 말했지만 혹시나 잡히면 나는 모르쇠를 잡아 땔 거라고?”

“네.”

“오케이~”

등을 돌리고 걸어가려는 소피아.

“소피아.”

내 말에 고개를 살짝 돌렸다.

“왜?”

“제가 고맙다는 말을 했던가요?”

몸을 완전히 틀어,

나를 쳐다보는 소피아.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한 적이 없나 보네요.”

“너 산책 가는 거 아니지? 솔직히 말해. 안 내쫓을 테....”

“고마웠어요, 소피아.”

“으엑!!”

갑자기 몸에 닭살이 돋은 것처럼,

자신의 몸을 껴안고 비비는 소피아.

“도대체 오늘은 또 어떤 짓거리를 하려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좋아해요, 소피아.”

“흐잌!!”

“내 심장은 오직 당신만을 위해....”

“흐어엌!!”

오밤중에 귀신을 본 것처럼,

후다닥 달아나는 소피아.

‘낯간지러운 걸 되게 싫어하네.‘

“방해꾼도 사라졌으니까, 출발하자. 레이.”

크릉!

2년만의 귀환이자,

본격적인 전쟁을 위해.

레이와 나는 빛의 마을을 나섰다.

+ + +

대한민국은 빠른 속도로 지옥도로 변해갔다.

소수의 인원으로 인해.

내로라하는 능력자들이 레볼루션을 막기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바람 앞의 등불이나 다름없었다.

레볼루션은 그야말로 괴물.

인간이 당해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나마 S급 능력자들이 활약을 하고는 있었지만, 고요속의 외침과도 같았다.

대한민국의 최후방에 파견 된 레볼루션 전담 5팀. 그들이 맡고 있는 업무는 민간인들을 최대한 전장에서 멀어지게 하는 일이었다.

수송선에 민간인들을 안내하던 정시아.

“진짜 너무한 것 같지 않아?”

“뭐가?”

옆에 서서 정시아와 같이 민간인들을 안내하던 강소라가 정시아의 얼굴을 쳐다봤다.

“우리도 곧 성인이라고. 그런데 왜 우리는 후방에 박아 두냐고. 언제까지 애 취급이야, 도대체!!”

“목소리가 너무 커, 시아야.”

검지를 입가에 갖다 대는 강소라.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길드장님들이 말했잖아. 어려서가 아니라, 우리가 대한민국의 미래니까 그런 거라고.”

“그거나 이거나. 아, 짜증나 진짜.”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묶던 정시아의 시선이 옆쪽을 향했다.

아직 피난하지 못한 민간인들을 데리고,

한설휘와 박아름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민간인들을 모두 수송선에 태우고,

달랑 넷만 남게 됐을 때.

“복귀하자.”

짤막하게 한설휘가 말을 하며,

걸어갔다.

“야.”

그런 한설휘를 세우는 정시아.

“5팀 대장은 엄연히 채린 언니인데, 왜 자꾸 네가 대장 행세야?”

“....”

“보자보자 하니까, 진짜.”

“설휘야 오늘 시아 기분이 조금 저기압이라서 그래. 시아야 나랑 둘이서 얘기 좀 해.”

한설휘와 정시아 사이에 끼어 있던 강소라가,

정시아의 손목을 잡았다.

탁.

강소라의 손목을 뿌리는 정시아.

눈을 치켜뜨고 한설휘를 쳐다봤다.

“너희 할아버지가 인체실험에 가담한 거? 이제는 받아들일 때도 됐잖아. 서진이 행방불명 된 거? 너만 힘들어? 너만 힘드냐고!! 언제까지 우리가 네 기분에 맞춰줘야 하는 건데!!”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은 정시아.

“큼....”

급발진한 걸 자신도 느꼈는지,

헛기침을 한 차례 했다.

하지만 표정은 그대로였다.

“....미안해.”

그대로던 표정이 한설휘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자, 멋쩍게 변해갔다.

“됐어.”

멋쩍음을 한 마디로 무마하려던 정시아.

“됐어?”

뒤에서 들리는 앳된 목소리에,

홱 하고 몸을 뒤로 돌렸다.

귀공자처럼 생긴 남자가 헤실헤실 웃으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가 됐어? 응?”

어린아이처럼 장난기 가득해 보이는,

남자의 얼굴.

“왜 대답을 안 해? 응응? 나랑 놀기 싫어??”

정시아는 저 남자를 본 적이 있었다.

레볼루션의 간부, 레드.

‘저 녀석이 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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