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88화 (188/196)

188회

뒷정리

창조 그룹의 본가에,

꽤 여러 사람이 모였다.

내가 저녁을 먹자는 핑계로 소환한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내 동창들이었다.

내 동생인 서시우와,

녀석의 반쪽이라고 할 수 있는 박시향을 제외하면.

“아주버님~”

오랜만에 봤는데도,

박시향은 간드러지게 나를 불렀다.

“응?”

“이것도 드셔보세요.”

“어,어.... 땡큐.”

나는 내게 건네는 만두를 젓가락으로 집으며,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이들을 쳐다봤다.

“아름아 이거 먹어 봐.”

“아름아 이것도.”

정시아와 강소라가 박아름을 살뜰히 챙기고 있었다.

회의실 이후 박아름과 길게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모든 걸 내려놓았던 눈빛이 점점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이것도 먹어라.”

툭.

무심한 듯 시크하게 박아름의 그릇 위로 스테이크 조각을 던지는 금석.

“크흠.”

멋쩍게 고개를 돌렸다.

회의실에 들이닥쳐서 난리 피울 땐 언제고.

그 기세를 평상시에 조금만 유지를 하면 박아름과 아름다운 핑크빛 미래를....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바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

한설휘였다.

오랜만에 입은 원피스가 어색한지,

자꾸 옷을 매만지는 한설휘.

“좋기는 한데, 우리만 이러고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어.”

지금 여전히 세상은 난리였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재앙이 휩쓸고 간 여파는,

잔인하게도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내일부터 서시우는 정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참여를 하게 되고, 여기 있는 인원들 역시 ‘봉사’라는 명목아래 바쁘게 움직여야 할 입장이었다.

헌터 학교는 임시 휴교를 했다.

“하루 정도는 괜찮아.”

이런 여유로운 시간이 또 있을지,

장담을 할 수 없으니까.

나는 턱을 괴고 마당에 뛰어노는 레이와 뚜뚜를 쳐다봤다. 녀석들은 공중에서 약 올리는 피닉스를 잡기 위해, 계속 제자리 점프를 하고 있었다.

여유란.

‘참으로 좋네.’

미래를 잠깐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설휘.”

나는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있는,

한설휘의 얼굴을 쳐다봤다.

계속 보면 질릴 법도 한데,

한설휘 얼굴은 날이 갈수록 새로웠다.

성인에 접어들면서,

점점 완숙해져간다고나 할까.

“응?”

한설휘가 나를 쳐다봤다.

“힘든 일이 있으면, 여기 있는 녀석들한테 기대. 괜히 혼자 끙끙 거리지 말고.”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친구 좋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아, 그리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투로,

말을 덧 붙였다.

“나 내일 떠나.”

“....응? 떠난다니, 갑자기?”

“할 게 있어서.”

내 말에 뭔가 묻고 싶은 게 많은 얼굴이었지만, 입술을 몇 번 달싹이더니 짧게 대답했다.

“....응. 알았어.”

“더 안 물어?”

“대답 안 해 줄 거잖아.”

“해 줄 수도 있지.”

“해 줄 거야?”

“아니.”

“죽을래?”

“그것도 아니.”

나는 기지개를 펴며 앞을 쳐다봤다.

소란스럽던 녀석들의 시선이 전부,

우리를 향해 있었다.

“떠난다고?”

“어디 가는데?”

“나도 같이 가.”

한 마디씩 하는 녀석들.

“안 돼.”

내 단호한 말에 폭동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몸을 일으키려는 정시아와 금석. 그때, 이 자리에 없는 동기생이 저 멀리 대문으로 들어왔다.

“세리나 왔다.”

각성한 세리나의 모습을 처음 보는 아이들은, 전부 넋이 나간 얼굴로 이쪽으로 걸어오는 세리나를 쳐다봤다.

타이밍 좋게 등장한 덕분에,

내가 떠난다는 사실은 빠르게 잊혀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가까운 곳에,

단시간 갔다 온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었다.

웨스트 월드.

나는 내일 그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 + +

다음 날,

나는 헌터 협회를 찾았다.

“....”

묵묵히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는 이무신 협회장.

“레볼루션이라니....”

가뜩이나 피곤한 얼굴이던 협회장의 얼굴에,

그늘이 더 짙게 드리웠다.

지명수배가 내려진 라이언과 제로.

그리고 얼마 전 등장한 포포까지.

나는 그들의 정체를 협회장에게 폭로했다.

그들은 장작이었고,

나는 장작을 태울 성냥을 들이밀었다.

“첸이 죽었습니다.”

“....뭐?”

“살해당했습니다. 레볼루션의 손에.”

마지막으로 나는 기름을 부었다.

“레볼루션의 목적은 인류를 멸망시키는 겁니다.”

됐다.

이 정도 말했으면 협회장이 알아서,

처리를 하겠지.

아마도 빠른 시일 내에 전 세계가 왈칵 뒤집어지지 않을까, 예상됐다.

+ + +

웨스트 월드.

또 다른 말로는 ‘어나더 월드’라고 불리는 곳.

모든 게 베일과 비밀에 싸여 있었으며,

알려진 정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웨스트 월드에 발을 들인 인간이 생환한 경우가 거의 없었으니까.

생환을 한다고는 해도,

정신이 반쯤 미쳐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 까닭에, 웨스트 월드는 물론이고 주변 지역들까지 인간의 흔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사르륵.

사르륵.

허리까지 오는 억센 풀이 옷에 쓸리는 소리가 고요함 속에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레이, 멈춰.”

한량한 선비처럼, 레이 등에 타고 있던 나는 레이의 등을 손으로 두드렸다.

풀숲이 점점 숲처럼 울창해지고 있을 무렵,

진짜 숲이 전방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나무 숲처럼 울창하고,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나무들이 빼곡히 자리 잡은 숲의 모습.

나무들이 얼마나 촘촘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지, 내부가 어두컴컴하게 보일 정도였다. 지금은 햇볕이 쨍쨍한 오후였는데도.

‘웨스트 월드.’

바로 저곳이 내 목적지였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웨스트 월드는,

분명 위험천만하고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죽음의 땅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모니터링 요원 시절에 웨스트 월드도 심심찮게 관전했거든.’

모니터실의 모니터에는 웨스트 월드의 내부를 보여주는 모니터도 존재 했었다. 다만, 내가 인간인지라 눈길이 많이 안 갔을 뿐.

웨스트 월드는 인간이 아닌,

이종족이 사는 땅이었다.

주종족이라고 할 만한 종족은,

엘프와 드워프였다.

그들은 매우 보수적이었고,

종족 우월주의가 심했다.

그게 인간의 진입장벽이 높은 이유였다.

하지만 웨스트 월드는 다른 차원에 있는 땅이 아니었다.

지구에 버젓이 똬리를 틀고 있었고,

인간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분명 존재했다.

나는 우선 그들을 통해,

웨스트 월드라는 곳에 입문 할 생각이었다.

나는 레이의 등에서 내리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혼자서 내릴 수 있어.”

내 손길을 거부하며,

레이의 또 다른 탑승객이 레이의 등에서 내렸다.

나는 살짝 멋쩍어진 손을 목 뒤로 옮기며 물었다.

“진짜 괜찮겠어? 내가 권유하기는 했지만, 아직 늦지 않았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도 돼.”

“....”

마네킹처럼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몸매의 여성이 눈을 깜빡이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몸매만큼이나 얼굴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아, 물론 좋은 의미로.

“세리나.”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지그시 이름을 불렀다.

세리나는 모든 게 불완전 했다.

내가 봤을 때는.

정신도,

육체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것 같기도 했다.

인간들이 세리나의 능력을 탐내하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그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재앙이 휩쓸고 간 여파로 인해 세상이 혼란한 와중에도, 세리나에게 접근하는 이들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으니까.

세나의 숨겨진 딸.

세나에게 물려받은 역대급 빛 능력.

그리고 압도적인 외모와 몸매까지.

세리나는 한마디로 흥행보증수표이자,

백지수표였다.

그렇다고, 세리나가 어린 아이도 아닌데 과잉보호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나는 세리나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엘프는 세리나를 품어주고,

치유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떤 엘프를 만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누구인가.

미래를 알고 있고,

포인트 상점이라는 치트키를 가지고 있는 남자다.

온화하고 ‘빛’ 속성을 지니고 있는 엘프를 찾는 건, 누워서 떡....은 아니고. 아무튼 어렵지는 않았다.

엘프는 태생적으로 한 가지 속성 이상을 무조건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에, 내가 주의할 건 ‘온화’한 엘프를 찾는 것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세리나를 인간 세상에 남겨두고 싶었다.

각성과 함께 레볼루션 간부와 1:1을 붙어도 될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손에 넣었으니까. 물론, 당장은 무리였다.

전투 경험이 전무 했으니까.

어쨌든 세리나라는 패를 버리는 게 아니라 덮어두려는 이유는 그녀의 상태도 상태거니와, 그녀의 성향 때문이었다.

날 만나기 전까지,

도서관에서 동화책을 읽던 어린 소녀.

그녀는 전쟁과 전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세리나에게 접근을 한 이유는,

그녀가 불행하지 않길 바라서였다.

첸의 죽음은 내 영역 밖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는 쳐도.

앞으로의 인생은 최소한 불행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각성 후, 손바닥 뒤집듯이 내 마음이 흔들릴 뻔 했지만 마음을 다 잡았다. 세리나는 놓아주기로.

“세리나?”

나는 재차 세리나를 불렀다.

시선을 돌려 울창한 숲일 바라보던 세리나.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한국에 있기 싫어. 특히 네가 없는 한국은 더 싫어.”

할 말을 다 했는지 입을 꾹 다무는 세리나.

본래 세리나는 수줍음이 많았을 뿐이지,

말수가 적은 캐릭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각성한 본인에게 아직 적응을 못한 건지, 아니면 첸의 죽음을 목격한 충격 때문인지 싫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말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뭐가 어찌 됐든.

“그래, 그럼.”

나는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하고 있는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른 손으로는 세리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자.”

웨스트 월드에 가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웨스트 월드에 침을 바르고 있는 레볼루션을 견제하기 위함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성장하기 위함이었다.

웨스트 월드는 인간이 사는 땅에 비해,

마나 농도가 짙고 풍부했다.

최소 10배 이상.

그 말인즉슨,

성장하기 최적화 된 곳이라는 뜻이었다.

아, 하나 더 있다.

내가 웨스트 월드를 가려는 이유.

‘신의 물방울.’

가능만 하다면,

이걸 구해야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아이템 중,

가장 등급이 높지 않을까 싶은 아이템.

굳이 등급을 매긴다면 ‘신급’이라고나 할까?

포인트 상점에서 혹시나 궁금해서 가격표를 확인한 적이 있었는데, 가격이 무려.

‘10만 포인트.’

가격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이건 구매 할 생각도 하지 말아라.

라는 뜻을.

내게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면,

그 뜻을 거역할 수도 있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모으다보면 모으지 않겠는가.

하지만 더 이상 학교 다닐 때처럼,

여유롭게 훈수를 둘 수 있는 입장과 상황이 아니었다.

이무신 협회장에게 오늘 아침,

레볼루션의 정체에 대해 알렸다.

협회장의 성격을 고려해보면, 레볼루션의 존재는 머지않아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레볼루션에 대한 탄생배경까지.

레볼루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완전히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전쟁의 서막이,

곧 찾아올 예정이었다.

‘한설휘는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어제 힘든 일이 있으면 친구들에게 기대라고는 했는데.

자신의 할아버지인, 한태문이 레볼루션을 탄생시킨 장본인 중 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게 분명한데.

‘내가 지금 남 걱정 할 때냐.’

나는 달의 축복 2단계를 시전했다.

홀로 생각을 하는 사이,

우리는 어느덧 웨스트 월드에 발을 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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