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87화 (187/196)

187회

뒷정리

“크하하!! 대장로!!”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하셨소!!”

‘이런 걸?’

박아름은 내리깔고 있던 시선을 살짝 들었다.

이런 걸.

언어 유희적으로 보면 이런 ‘걸’이 맞긴 했지만, 자신을 보는 시선은 그런 눈빛 따위가 전혀 아니었다.

모든 걸 체념했고,

모든 걸 단념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인간 취급은 해주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분 같은 게,

울컥 차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침을 삼키며,

애써 억눌렀다.

곧, 끝난다.

곧, 모든 게 끝난다.

그러니 조금만 참자.

“지금 저 어린 아이를 희생 시키자는 말입니까, 대장로?”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에 깁스를 하고 있는 태양 길드의 수장.

한태문이었다.

“지금 다들 제 정신입니까?”

성한 팔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한태문.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는 올바른 방안과 해결책을 찾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어찌 어린 아이들의 희생만 강요합니까? 그게 어른으로서 할 짓입니까?”

“한태문 길드장.”

“아니, 제 말이 틀립니까? 협회장님? 이 인간들이 하는 말을 보시라고요!!”

“일단 앉지. 흥분 좀 가라앉히고.”

“....”

한태문이 자리에 앉고,

바통터치를 하듯 이무신 협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장로의 선견지명에 감탄했습니다.”

대장로를 향해 고개를 한 번 숙인 협회장.

“하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협회장의 눈빛은,

마치 잡아먹을 듯 흉흉해져 있었다.

“신수의 그릇이라 한들, 소녀가 아닙니까. 소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고.”

잠깐 협회장의 눈길이 박아름을 향했다.

따스하다.

라고 박아름은 생각했다.

“만약, 저 소녀가 여러분들의 자식이라고 해도 쉽게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협회장이 천천히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을 차례차례 쳐다봤다.

“저 또한 암흑기를 겪은 늙은이 중 한 사람으로서, 정화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

“협회장.”“말씀하시지요.”

마주보는 대장로와 협회장.

“신수만 빼내는 겁니다. 신수만.”

“....”

“그게 전부인데 뭘 그렇게 어렵게 가려고 하십니까?”

“신수를 빼내게 되면 저 소녀는....”

“아니, 그래서. 뾰족한 수라도 있습니까?”

“그걸 이제 다 같이 생각을 해보자는 거지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기저기서,

잡음처럼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기네들이 일 처리를 똑바로 못 해서 지금 이 사단이 벌어졌는데, 참 양심도 없지.”

“그러니까. 아니면 세나의 딸이라도 내 놓던가.”

“제가 누누이 말했잖습니까. 능력자들의 위상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고. 국가적으로 억제를 해야 한다니까요.”

회의실 내부에,

적과 아군의 경계선이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다수결로 하죠.”

경계선이 완전해 졌을 때,

누군가가 말했다.

다수결이라.

이건 불 보듯 뻔한 결과를 가져올 게 분명했다.

이 자리에 있는 능력자의 수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지만, 대장로를 포함한 권력가들은 열 손가락이 넘어가는 숫자였다.

권력가들은 전부 탐욕적인 얼굴로,

박아름을 쳐다보고 있었다.

반대로 능력자들은 안타까운 얼굴로,

박아름을 쳐다보고 있었고.

다수결.

그 딴 거 할 필요도 없었다.

“저....”

박아름은 입을 열려고 했다.

자신이 희생을 선택 했다고.

그러기로 했다고.

그러니,

어서 이 자리에서.

아니, 그냥 모든 것에서 해방을 시켜달라고.

그런데 그때,

닫혀있던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이 자식들!! 내 친구한테 지금 무슨 개소리들 하는 거냐!!”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는,

의문의 난입객.

멍멍!!

그의 앞으로 강아지 한 마리가 주인에게 호응을 하듯 짖어댔다.

“내 친구 내놔라!!”

막무가내였다.

회의실 앞으로 걸어가려던 난입객.

“아하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뒤따라 들어온 두 여성에게 붙잡혔다.

“설..휘?”

한 명을 알아본 한태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휘야 네가 여긴 어떻게....”

“그....러게요?”

“왜 갑자기 존댓말을....”

“호호....”

금석의 뒷덜미를 잡고 끌고 나가는 정시아와 한설휘.

“수고하세요!”

“죄송합니다.”

상반 된 인사말을 남기고,

회의실 문을 닫았다.

“....”

“....”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모두 방금 사태에 대해 한 마디씩 하고 싶은 얼굴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있었다.

“자, 그럼 다수결을....”

쾅!

다시 열린 회의실 문.

이 자리에 있는 유명인사보다,

더 유명인사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열린 문으로 등장했다.

“한 대. 두 대. 세 대. 네 대.”

그는 다짜고짜 회의실 내부에 설치 돼 있는 카메라를 손가락으로 세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전 국민이 시청하고 있다고 봐야겠네.”

혼잣말을 하는 그.

“여기가 애들 놀이터입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곳곳에서 불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메라를 세다가,

이번에는 사람의 면면을 살피던 서진.

씨익.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창조 그룹의 장남 서진입니다.”

“자네가 여긴 어떻게?”

대표로 이무신 협회장이 물었다.

“아, 그게 말이죠.”

회의실 앞으로 걸어가는 서진.

“흐음....”

관상을 살피듯 박아름의 얼굴을 살피다가,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박아름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친구들이 연달아,

등장하다니.

금석과 한설휘.

그리고 정시아까지.

그들이 등장했을 때까지만 해도 너무 바람처럼, 스쳐지나가서 마음의 동요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결혼식장, 기억 나냐?”

고개를 들이밀어 속삭이듯이,

말을 하는 서진.

“오늘 2탄 찍는다고 생각해.”

“....”

고개를 뒤로 빼는 서진.

낮게 웃으며 다시 자신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손이 많이 가네, 박아름.”

“....”

“새우깡도 아니고. 아, 미안. 들렸냐? 혼잣말인데 마지막은.”

박아름은 고개를 숙였다.

서진의 손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모든 걸 내려놓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 고개를 들면,

왠지 살고 싶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박아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박아름의 머리를 두드리던 서진.

몸을 틀어,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저도 정화 작업에 있어서,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서진의 말에 반응이 양극으로 갈렸다.

“근데, 그게 꼭 세리나나 박아름일 필요는 없죠.”

서진의 시선의 뒷문을 향했다.

잘생긴 정도를 넘어선 청년.

서시우가 뒷문에 서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제 동생이 희생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국민들을 위해. 시우, 앞으로 와.”

서진의 말에 쭈뼛거리며,

형의 옆에 서는 서시우.

“제 동생이 희생해서 ‘포식의 악마’와 계약을 한다면, 세리나나 박아름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요?”

“아, 제가 강요라고 했나요? 아직 정정하시네요, 대장로님. 정확히 들으셨습니다.”

“뭐,뭣?”

“서진군, 그게 무슨 말인가?”

서글서글하게 웃는 눈매로 대장로를 쳐다보고 있던 서진의 시선이 이무신 협회장을 향했다.

“제 동생은 어둠 능력자라 악마와 계약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할 필요는 없죠. 오히려 악마와 계약을 하게 되면 제약도 많이 생기고 마이너스한 요소가 엄청나게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 동생이 모두를 대신해서 희생을 하겠습니다.”

서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서시우.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포식의 악마는 마기를 대량 흡수할 수 있는 악마입니다. 그러니, 제 동생이 희.생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포식의 악마와 계약을 하게 된다면 빠르면 1년 내로 정화 작업을 완료할 수 있습니다. 빠르면 반년도 안 걸릴지도 모르죠.”

툭.

서진이 팔꿈치로 서시우의 옆구리를 한 번 찔렀다.

“마....맞아요. 제가 능력자가 되려는 이유는 사회에 공헌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꼭 제가 희....희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악마와 계약은 너무나도 하기 싫지만, 저 하나 희생으로 이 사태가 마무리가 된다면 저는 괘,괜찮습니다.”

대본을 보고 읽는 것처럼,딱딱한 서시우의 말투.

하지만 아무도 이상함을 느끼질 못했다.

“허허....”

“흐으음.....”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의 눈알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대장로와 협회장.

박아름과 서시우.

네 사람을 향해서.

어떤 동아줄을 잡아야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지 쉽게 판단이 안 서는 얼굴들이었다.

그때 불편한 심기를 표정으로 드러내고 있던 대장로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태가 어느 때인데, 악마와 계약이라니요. 이게 가당키나 하다고 봅니까?”

그의 말에 몇 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으나, 이건....”

대장로가 설파를 하려고 할 때,

갑자기 뒤쪽 벽면에 위치한 화이트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주점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속옷만 빼고 옷을 풀어 헤치고 있는 여러 명의 남자들.

그들의 옆으로는 그들처럼,

나체에 가까운 여성들이 잔에 술을 따르고 있었다.

“아,아니....”

“이게 무슨....”

“크흐음....”

대장로 편에 서서 긍정의 표를 던지고 있던 사람들이 단체로 몸을 들썩였다.

본인들이었다.

영상에 나오고 있는 남자들은.

“당장 안 끄고 뭐 하는 것이냐!!”

대장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현재 영상 속에서 대장로는,

한 여성의 가슴에 손을 뻗고 있었다.

“당장 끄래도!!”

“보름달 가두기.”

뒷문과 앞문을 틀어막은 서진.

남는 의자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영상을 쳐다보며 말했다.

“왜요? 재밌기만 한데. 새로 나온 야동인가?”

“이..이놈!! 지금 당신들 뭣들 하는 거야!!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당장 이 자식을 내 쫓고 영상을 안 끄면!!”

대노하는 대장로와는 달리,

영상 속 대장로는 희희낙락 그 자체였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 되면 내가 차기 협회장 자리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야.”

볼륨을 얼마나 키워놨는지,

영상 속 대장로의 목소리가 회의실에 가득 찼다.

“아이고, 당연한 말씀입니다.”

“한 잔, 받으시지요. 협.회.장.님.”

그리고 뇌물을 주는 권력가들의 모습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서진의 멱살을 잡고 흔들던 대장로.

“이건 음모다. 음모다!! 누군가가 나를 음해하기 위해....”

“거짓입니다.”

뭔가 변명을 하려던 대장로.

언제 옆으로 왔는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성녀를 쳐다봤다.

“진실의 거울은 저 영상이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계집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널 누가 키워줬는지 잊은 것이냐!!”

“....”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회의실.

그 와중에 서진이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짝짝.

“이제 마무리 하죠.”

+ + +

대장로와 장로들.

그리고 다수의 권력가들.

뇌물수수죄를 비롯해,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악행 사실들이 익명의 제보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다.

직위해제는 당연했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입장이 됐다.

‘정화’작업은 박아름이 아닌,

서시우가 희생하기로 했다.

그로인해 서시우는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명성을 단번에 얻게 됐고, ‘영웅’이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혀,형....”

“좋은 게 좋은 거야.”

서시우는 명분이 필요했다.

악마의 능력을 편하게 쓰기 위해서.

그래서 박아름을 구할 겸,

겸사겸사 명분을 만들어줬다.

말이 희생이지, 서시우는 정화 작업을 하면서 마기를 흡수할 경우 더 강해졌다. 엄밀히 따지면 서시우가 아닌, 녀석이 계약한 악마가.

내 입장에서는 누이 좋고,

매부도 좋은 그럴 결과였다.

“근데,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오랜만에 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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