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86화 (186/196)

186회

신수(神手)

다른 방과 달리 문패가 달려 있지 않았다.

[1시간 이용료는 1천 포인트입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다짜고짜 포인트를 요구했다.

도대체 뭐하는 방이길래,

1시간에 1천 포인트를 요구한다는 말인가.

1천 포인트는 훈수를 천 번 둬야 했고,

강수를 두 번이나 둬야하는 포인트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른 방을 쳐다봤다.

아이템 방.

능력 방.

정보 방.

스탯 방.

나만의 상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방들은,

전부 성능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열려는 이 방도,

충분히 1천 포인트의 값어치를 하지 않을까?

잠깐 갈등을 하던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1천 포인트가 자동 지불 되셨습니다.]

[남은 시간은 59분 59초입니다.]

천장의 조명은 어두웠지만, 벽면에 위치한 수많은 모니터들로 인해서 그렇게 어둡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방의 구석에 위치한 하나의 탁자와,

그 위에 있는 어마어마한 서류 뭉치들.

나는 이 방을 알고 있었다.

“....모니터링 방과 똑같이 생겼네.”

내가 저승에서 모니터링 요원으로 근무 했을 시절, 내가 사용했던 공간과 모든 게 일치했다.

나는 모니터를 눈으로 잠깐 훑어보다가,

탁자 위에 쌓인 서류에 손을 뻗었다.

“....”

[아 진짜 답답하네.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했으면 됐을 텐데. 아 진짜....]

낯이 익은 단어와 문장.

이 곳은 공간만 일치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근무했던 모니터링 방이 확실했다.

새로 생긴 방의 정체는 모니터링 방이었다.

“돈 날렸네.”

방의 진실을 알게 된,

내 감상평이었다.

내 머릿속은 컴퓨터가 아니었다.

그래서 모든 걸 기억하진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모두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혹시나 기억나질 않는 부분이 있으면 ‘정보 방’을 이용하면 될 일이었다.

모니터링 방의 매리트.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없....

“리모컨?”

나는 서류더미에 파 묻혀 있는 길쭉한 물건을 집어 들었다. 친절하게도 아무 버튼에 손을 살짝 가져다 대자, 메시지가 울렸다.

[빨리 감기 버튼입니다.]

[되감기 버튼입니다.]

[클로즈 업 버튼입니다.]

내가 근무하던 시절에는 리모컨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아무런 조작 없이 지켜봤을 뿐이었다.

1분 1초 모든 순간을.

그런데 리모컨이라니.

만약 내가 근무했을 때도 있었더라면,

나는 많은 부분을 스킵하고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탁자 옆에 있는 간이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쳐다봤다.

우연의 일치인지,

현재와 비슷한 시기가 모니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핵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초토화 되어 있는 한국.

그리고 능력자들.

결국 디아블로를 죽였고,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패배를 한 것과 다름없는 모습.

내가 빙의한 현재와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현재는 인원과 건물의 손실이 있긴 해도,

막대하진 않았다.

충분히 복구 가능했고,

충분히 재기할 수 있는 정도였다.

결정적으로 레볼루션과 대항할 수 있는 대항마들을 대부분 보존 했다.

대항마는 최소 A급 이상의 능력자들을 의미했다. 아무리 레볼루션이 일당백이라고는 해도, 백을 넘기면 그만이었다.

나는 리모컨을 조작해,

빠르게 앞으로 넘겼다.

거의 막바지쯤까지 넘겼을 때,

리모컨 조작을 멈췄다.

레볼루션과 인류의 마지막 전투.

전투를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인류에게는 희망이 없었고, 최후의 발악에 가까운 전투였다.

나는 레볼루션의 수장인 제로가 나오는 모니터를 클로즈업 했다. 녀석을 감싸고 있는 검은 천과 붕대가 많이 찢겨져 나간 모습이었지만, 큰 타격은 없어보였다.

반대로 제로와 대치를 하고 있는 이무신 협회장은 해탈한 듯이, 피투성이 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업보인 것인가.]

낮게 중얼거린 협회장.

뒤쪽을 쳐다봤다.

작은 키의 꼬마 하나가 전장을 놀이터처럼 누비며, 자비 없이 인간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다양한 능력을 구사하는 꼬마였다.

[키키키!! 재밌다!!]

말을 하는 꼬마의 양 손에는,

인간의 머리 두 개가 들려 있었다.

협회장은 그 모습을 보고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개를 돌려, 다시 자신의 상대인 제로를 쳐다보는 협회장.

[우리의 업보는 우리가 거두는 게 맞겠지.]

협회장의 전신에서 푸른 마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던 제로.

양 손을 들어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너희의 업보는 죽음이다. 우리가 아닌 너희, 인류의 죽음.]

그 말을 시작으로 제로와 협회장의,

싸움이 시작 됐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시선을 떼지 않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다가 되감기를 했다.

그리고 배속도 0.5배속 정도로 낮췄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제로의 움직임을 뚫어져라 보던 나는, 이번에는 타겟을 바꿔 날 뛰고 있는 꼬마에게 포커싱을 맞췄다.

[입장한지 4시간이 지났습니다.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시간 연장을 하시겠습니까?]

오래도 있었네.

4시간이면 얼마야.

‘4천 포인트?‘

나는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나갈 거야.”

[5분 안에 퇴실하지 않을 시, 1시간 연장하는 걸로 간주 됩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리모컨을 탁자 위에 올리며, 내가 보고 있던 모니터를 쳐다봤다.

모니터링 방에 대한 생각은,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모니터링 방 역시 다른 방과 마찬가지로,

지불한 값어치를 하는 방이었다.

제로.

그리고 레볼루션 내에서 ‘아들’.

혹은 ‘막내’라고 불리는 꼬마.

두 녀석에 대한 정보는 내게도 많지 않았다.

후반부나 돼서야 본격적으로 등장을 할뿐더러, 전투씬도 그렇게 많지가 않았으니까.

서진에게 처음 빙의했을 때,

나는 지나가는 투로 ‘정보 방’에 물어본 적이 있었다.

레볼루션 간부들의 약점이 뭐냐고.

그때 요구한 포인트는 무려 3만 포인트였다.

나는 그걸 계속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포인트를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남은 포인트를 다른 곳에 지출을 해도 될 것 같았다.

제로와 아들.

4천 포인트로 그들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간파하는 데는 성공했다.

나는 모니터링 방을 나갔다.

내게 남은 포인트는 1만 8천 포인트.

일단 오늘은 킵을 하기로 했다.

나중을 위해.

+ + +

크르르.(주인.)

“일어났어?”

정보 방을 나오자마자, 레이가 내 팔뚝에 머리를 비볐다.

“좀 더 자, 레이.”

나는 말을 하며, 레이를 반듯하게 눕혔다.

아우웅.....

하품을 하는 레이.

눈을 천천히 감았다.

아무래도 내가 사라져서,

잠에서 깬 듯 했다.

나도 레이처럼 누우려다가,

정면을 쳐다봤다.

티비에서 귀를 사로잡는 소리가 들려서였다.

재앙만 발생했다하면, 귀신같이 몸을 숨기고 있다가 재앙이 끝날 때쯤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사람들.

바로 국회의원들.

그리고 그에 준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

그들 사이사이에는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는,

능력자들이 섞여 있었다.

이무신 협회장과,

길드장들.

“세나의 딸이 왜 갑자기 등장을 했겠냐, 이 말이요. 내 말은!! 하늘이 내려주신 거 아니겠소!! 정화 작업은 세나의 딸에게 맡깁시다.”

“제 생각도 의원님과 같습니다. 어차피 빛 능력자가 아니면 정화 작업을 못 하니, 나이가 어린 게 걸리기는 하지만 뭐.... 인류를 위해서라면 세리나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세나의 딸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대재앙 와중에도,

세리나에 대한 소문은 퍼졌다.

그래서인지,

국회의원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주장했다.

그에 대한,

이무신 협회장의 답변은.

“안 됩니다.”

단호했다.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오염 된 구역을 그대로 방치하자는 겁니까? 애초에 당신네들이 일 처리를 제대로 했으면 오염 된 구역이 생기지도 않았을 거 아니요?”

단호하고 강경한 태도의 협회장에게 쏟아지는 비난 여론.

그 광경을 화면을 통해 보고 있는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진짜, 미친놈들이네.”

일부러 악마들을 유도해서 저것들을,

전부 죽일 걸 그랬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재앙이 발생하면 방구석에서 어린아이 마냥 손가락 빠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인간들이, 재앙만 끝나면 무슨 여포가 돼서 저렇게 설치다니.

협회장에게 집중포화가 쏟아지고 있을 때,

누군가가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크흠.”

그리고는 헛기침을 크게 한 번 했다.

“제가 한 마디만 해도 되겠습니까?”

사제복을 입고 있는 나이 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빠르게 조용해졌다.

사제복의 남자.

그가 가진 지위를 나타내는 대목이었다.

치유협의 대장로.

사실상 치유협에서 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였다.

“굳이 세리나양을 희생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좋은 수라도 있는 거요, 대장로?”

대머리인 머리를 손으로 스윽 문지르는 대장로.

천천히.

하지만 아주 노골적으로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그렇습니다.”

의기양양한 대장로의 말에 장내가 한 차례 술렁였다.

“대장로님....”

대장로 옆에 앉아 있던 성녀가, 고개를 저으며 만류하는 뜻일 내비쳤지만 대장로는 성녀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래 전, 저희는 암흑기를 겪었습니다.”

일장연설처럼 시작된 대장로의 말.

결론은 이거였다.

“혹시나 해서, 대비책을 마련해 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라.”

회의실 안으로, 젊은 사제 하나가 앳된 여학생의 팔뚝을 잡고 입장했다.

“여러분들에게 인사드립니다. 신수의 그릇입니다.”

박아름.

그녀가 등장했다.

그리고.

“형, 일어났어?”

“도련님!!”

때마침 내가 있는 병실에 서시우와,

이실장이 등장했다.

“타이밍 좋네.”

나는 레이가 깰 세라,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타이밍? 무슨 말이야, 형?”

“도련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쉿. 조용히 좀 해, 이실장. 애 자는 거 안 보여?”

나는 말을 하며 레이를 턱으로 가리켰다.

“....예.”

뒷목을 긁는 이실장.

“몸은?”

“괜찮아. 나는 딱히 한 게 없잖아. 형은 어때?”

“나도 딱히 한 게 없어서.”

“도련님이 왜 한 게 없습니까? 제가 믿을 만한 정보통을 통해 들었는데 디아블로와 1:1로....”

“이실장.”

“예?”

“바빠?”

“아니요? 오늘 내일, 도련님 간병하라는 명이 떨어져서 저는 도련님 옆에서 그간 못한 대화와 해우를 풀며 도란도란....”

“이실장.”

“예?”

“저기 누워있어. 나 돌아올 때까지. 레이가 일어나면 놀아주고.”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이실장의 몸을 힘으로 억지로 움직였다. 그리고 내가 누워 있던 병상에 눕혔다.

“도,도련님?”

“한숨 자.”

나는 고개를 돌려 서시우를 쳐다봤다.

“나랑 저기 좀 같이 가자.”

나는 손으로 티비를 가리켰다.

“저기? 저기 어디?”

“지금 생중계 되고 있는 회의실. 저기 말이야.”

“응?”

“시간 없어. 가면서 설명해 줄 테니까, 따라와.”

나는 병실을 나서며,

뒤쪽을 힐끔 쳐다봤다.

“도련님....”

처량한 얼굴로 누워,

나를 보고 있는 이실장.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기는 한데,

그보다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박아름.

그녀를 구출해야 했다.

친구로서,

내가 나중에 이용해 먹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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