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85화 (185/196)

185회

신수(神手)

“서진아!”

빌딩 옥상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레이가 강소라를 등에 태운 채 등장했다.

편한 사복차림이었다.

레이의 등에서 내린 강소라.

“레이가 무작정 등에 타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말을 하며 지상을 내려다봤다.

지상은 현재 언데드군이 점거를 한 상태였다. 대치를 하고 싸우려던 능력자들을 내가 강하게 만류한 탓이었다.

사람들은 지금 사태가 대재앙의 연장선 정도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건 전혀 다른 경우였으므로, 다른 대처 방안이 필요했다.

건물이 부서지는 건 복구가 가능했지만,

능력자를 잃는 건 복구가 불가능했다.

내가 아무리 이번 재앙에 큰 공헌을 했다고는 해도, 엄연히 지휘권자는 따로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만류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무신 협회장에게 지금 이 사태가, 국제적으로 수배가 내려진 라이언과 제로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전까지는.

“게이트 전부 닫힌 거 아니야, 서진아? 아까 전부 닫혔다고 라디오에서 그러던데....”

“맞아. 근데 어떤 빌어먹을 놈이 틈새시장을 공략하려고 해서 말이지. 네 도움이 필요해, 강소라.”

“내....도움?”

“응. 진을 소환해줘.”

“....”

레볼루션의 간부, 포포.

이 녀석은 특이한 네크로맨서였다.

보통 소환수를 부리는 소환사들은,

포지션을 대체로 소환수의 후방에 잡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포포는 아니었다.

포포는 자신이 소환한 소환수에 한해서,

‘탑승’이라는 능력을 시전할 수 있었다.

말이 탑승이지,

언데드군 몸 안에 숨는 능력이었다.

포포는 분명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지상의 수많은 언데드 중에, 한 놈을 골라잡아 탑승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언데드군의 숫자가 대군이다 보니,

후방에 숨는 것보다 더 안전한 포지션일 수도 있었다.

색출할 수 있는 적군이 없다는 가정 하에.

“나 아직 능력치가 형편없어서....”

망설이는 강소라.

그녀는 요정의 숲에서 내게 말했다.

아직 자신은 진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진이 현세에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부족한 자신의 능력을 진이 부담을 해야 한다고.

그래서 진은 온전한 상태로,

현세에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강소라가 온전히 진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되기 전까지는.

하지만 괜찮았다.

진에게 거창한 주문을 할 생각이 없었다.

‘딱, 포포를 색출하는 정도.’

그 정도면 아무리 약화 상태의 진이라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녀석은 바람의 최상급 정령이었으니까.

“....알았어.”

내가 아무 말 없이 지그시 쳐다보자,

강소라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가능할까?”

내 말에 눈을 감는 강소라.

빌딩 옥상이라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는데,

세찬 바람이 갈무리 되듯 강소라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갈무리 된 바람은,

천천히 하나의 형상을 형성해갔다.

도사처럼 하얀 도복을 입고 있는,

인간 형상의 정령.

진이 현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기가 너무 탁하네. 이곳은.]

나오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는 진.

시선이 잠깐, 강소라에게 머물렀다가 곧바로 나를 향했다.

[나를 부른 건 너지?]

정령계에서 강소라를 지켜보고 있어서인지, 서론을 길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며,

지상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죽은 자들 사이에 있는 산 자를 찾아줘. 진.”

[....]

아무 말 없이 강소라를 쳐다보는 진.

둘이서 교감이라도 나누는지 강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찾아주기만 하면 돼?]

“그거면 돼.”

진이 완전한 상태라면 포포를 색출과 동시에,

죽여 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진의 상태로는 무리가 있었다.

아무리 포포가 레볼루션 간부 중,

개인 전투 능력이 최하위라고는 해도 레볼루션 간부였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자니,

이제 겨우 고갈 됐던 달빛력이 2000 정도 차오른 상태였다.

공격조와 수비조.

그리고 후방조까지.

그들 역시 상태가 안 좋은 건 매한가지였다.

위기를 기회로 삼고 싶었지만,

상황이 영 아니었다.

위기를 넘기는 정도.

지금은 딱 그 정도가 적당했다.

‘그래도 겁 정도는 줘야겠지.’

포포의 정신연령은 어린 애 수준이니,

효과가 있을 수도 있었다.

빌딩 옥상에서 사뿐히 뛰어내리는 진.

허리케인의 축이라도 된 것처럼,

바람이 진의 몸을 둥글게 감싸기 시작했다.

진을 감싸던 바람.

역회전에 걸린 것처럼 일순간 방향을 반시계 방향으로 바꿨다. 진을 중심으로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져가는 바람.

마치 레이더망을 펼치는 것만 같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능력을 시전하던 진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찾았다.]

간결한 그의 말에,

나는 플라이를 시전 했다.

내가 옆으로 다가가자,

손가락을 들어 지상의 한 쪽을 가리키는 진.

대형마트가 있는 쪽이었다.

[저기 좀비 무리가 보여?]

진의 말처럼,

대형마트 앞에는 소규모의 좀비 무리가 형성 돼 있었다.

[중간에서 계속 두리번거리고 있는 좀비. 저 녀석이 네가 말 한 산 자야.]

좀비는 대체적으로 고개를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유독 인간처럼 고개를 움직이는 좀비가 한 마리 있었다.

“땡큐.”

나는 감사인사를 전하며,

초식을 시전했다.

‘월광쇄도. 그리고 달의 축복 3단계.’

이 조합이면 5분 정도 유지할 수 있으려나.

나는 진이 지목한 좀비에게 빠르게 날아갔다. 내가 다가가고 있었음에도, 포포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아, 있긴 했다.

다른 좀비들처럼 자아가 없는 척 허공에 손짓을 하며 나를 잡으려고 했으니.

포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정체가 발각된 줄.

내가 아니었으면 포포는 관음증 환자처럼,

계속 좀비 행세를 했을 텐데.

“아, 좀비 새끼들 존나게 시끄럽네 진짜.”

나는 만월검을 손에 쥐며,

지상에 착지했다.

“피곤해 죽겠는데.”

목을 돌리며,

내게 다가오는 좀비들을 쳐다봤다.

포포는 다가오는 시늉만 하고,

다가오지는 않았다.

“왜 지랄이야?”

나는 신경질적으로 말을 하며,

인상을 구겼다.

원래 몰래카메라라는 것이, 성공하려면 최대한 모르쇠를 떨어야 했다. 나는 적당히 너스레를 떨며 만월검을 휘둘렀다.

칼로 두부를 자르는 것처럼,

좀비가 부드럽게 잘려나갔다.

“왜 지랄이냐니까?”

홍수가 밀려오듯 나를 표적으로 몰려드는 좀비들.

나는 1초식인 ‘달빛 가르기’를 시전 해,

단숨에 포포로 향하는 길을 텄다.

그리고는 한 번의 도약을 통해,

포포 앞에 도착을 했다.

“너 말이야, 너.”

나는 만월검을 좀비 안에 숨어 있는 포포를 겨냥해, 턱 끝에 들이밀었다. 일부러 공격은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바람 앞의 등불처럼,

달빛력이 바닥나기 직전이었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일부러 기세등등하게,

지금 이 상황이 몰래카메라였다는 걸 알렸다.

포포는 몰랐다.

내가 가진 패가 겨우 한 끗 정도라는 걸.

“너 포포잖아.”

내 말에 계속 좀비 행세를 감행하던 포포가 주춤거리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제로가 시킨 거야, 아니면 네 독단적인 행동인거야?”

나는 일부러 제로를 언급하며,

만월검을 까딱까딱 거렸다.

‘제발 내 뻥카가 먹혀라.’

속으로 기도를 하면서.

“크..르르....”

“이 새끼 말로 해서는 안 들어 쳐 먹을 놈이네.”

나는 달의 축복을 3단계에서 한 단계 격상을 했다.

달의 축복 4단계.

나는 이제 앞으로 1분 안에 포포와 평화협정을 맺어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내 기세가 변하자,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하는 포포. 불안장애처럼,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이미 주변은 포포와 대면을 하는 순간,

레이에게 교감을 통해 의지를 전달한 상태였다.

현재 포포와 내 주변은 언데드의 시체로,

산을 형성해가고 있었다.

아우울~!

레이로 인해.

“아, 진짜.”

내 연출에 결국에는 좀비 가면을 벗어던진 포포.

신경질을 내며,

좀비 몸에서 빠져나왔다.

키 작은 남자 아이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탑승하고 있던 좀비의 몸을 걷어찼다.

“어떻게 알았어?”

팔짱을 끼고 물어보는 포포.

표정이 그렇게 위축된 얼굴이 아니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흠. 그렇긴 해. 아~ 아버지가 달빛 계승자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포포의 입가에 미소가 천천히 떠올랐다.

“지금은 왠지 건드려도 될 것 같은데?”

“....”

네크로맨서라 그런지,

마력 탐지하는 능력이 발군이었다.

포포는 내 달빛력이 불완전하게 떨ㄹ고 있는 걸 눈치 챈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내가 가진 패를 아직 오픈하지 않았다.

그러니.

“건드려 봐. 자신 있으면. 달빛 초식 제7초식.”

“자,잠깐만.”

기세는 아직 내가 위다.

당황해하며 손사래를 치는 포포.

“이상하다. 능력을 사용 할 마나가 있을 리가 없는데.”

그렇게 말을 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이 녀석,

지금 나를 떠보고 있었다.

포포의 말대로 나는 지금 이제 아무 초식도 사용할 수 없었다. 달의 축복도 근근이 유지중인데 점점 단계가 한 단계씩 내려가고 있었다.

“역시. 없구나? 마나?”

이래서 눈치 빠른 건 싫다니까.

겁주면 쫄아서 도망칠 줄 알았더니,

내 예상이 틀렸다.

내려갔던 포포의 입꼬리가 다시금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밑장 빼기라고 들어봤냐?”

“응?”

플랜B정도는 이제 기본으로 준비를 했다.

예상과 계획이 틀어졌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니까.

“이 노오옴!!”

하늘에서 고함과 함께,

엄청난 마나의 파동이 벼락처럼 내리쳤다.

“어른이 치사하네. 칫.”

그게 포포의 마지막 말이었다.

내가 가진 ‘블링크’ 스킬을 포포도 가지고 있는지, 눈 한 번 깜짝한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콰콰쾅!!

애꿎은 바닥에 꽂힌 벼락같은 마나.

“어디 갔느냐?”

이무신 협회장이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훑었다.

이무신 협회장이 도주하는 포포를 놓쳤을 리가 없었다. 그가 그런 멘트를 치는 이유는.

스르륵.

내가 마나 탈진으로 쓰러질 걸 알고 있어서였다.

나는 협회장의 품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 + +

대재앙이 지속되는 동안 달빛력을 충전하기 위해 잠깐 잠깐 쉰 걸 제외하면 쫌. 아니 많이 무리하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나 탈진으로 기절을 할 줄이야.’

나는 눈을 떠,

새하얀 천장을 쳐다봤다.

코에 닿는 병원 특유의 알코올 냄새가 전혀 나질 않았다. 오히려 향기로운 냄새가 후각을 자극 했다.

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본가네.’

창조 그룹의 본가.

내게는 부모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곳.

남는 방을 1인 병실로 개조를 한 것인지,

내가 있는 방은 꼭 병실을 오마주한 것 같았다.

VVIP 1인 병실 같다고나 할까.

나는 팔에 꽂혀 있는 수액을 내려다보다가,

옆을 쳐다봤다.

작은 강아지 크기로 변한 레이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레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주인을 잘못 만나서,

허구한 날 싸우고만 다니니.

“고생이 많다, 레이.”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하냐.

이제 본 전쟁이 시작인데.

나는 벽면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광고를 별 생각 없이 보다가, 퍼뜩 아직 정산을 안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신수를 뒀고,

막대한 포인트를 적립했다.

그리고.

‘새로운 방이 개설 됐다고 했는데.’

무슨 방일지,

어디 한번 확인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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