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84화 (184/196)

184회

신수(神手)

“....”

“....”

디아블로와 나는 서로를 쳐다봤다.

먼저 운을 뗀 건 나였다.

“너는 눈앞에 보이는 걸 너무 안 믿은 거 아니야?”

“....”

내 복부를 강타한 마기.

불에 닿은 얼음처럼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나도 깜빡하고 있던,

내 패시브 능력이 발동한 덕분이었다.

달의 가호.

‘달빛력이 최대치에 이르면 달빛막을 형성해, 공격을 1회 막을 수 있다.(대상의 공격력에 따라 달빛력 차등 감소. 대상의 공격력이 달빛 계승자보다 현저히 낮을 경우 발동을 안 할 수도 있음.)’

능력을 얻은 후에 한 번도 정타로 맞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여태껏 한 번도 발동이 한 적이 없었는데.

“이제 내 차례지?”

달빛력이 한 번에 2천이 나갔지만, 대미지를 입은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였다.

나는 붉게 물든 만월검을 디아블로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단순히 휘두르는 동작이었지만 나는 현재 달의 축복을 4단계를 시전하고 있는 상태였다.

“큭....”

양 팔을 들어 가까스로 방어를 한 디아블로.

불 꼬챙이에 닿은 것처럼 양팔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달빛 제 7초식. 달의 광휘.’

누구나 쳐 맞기 전까지는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법이었다. 나는 빛의 속도로 디아블로의 육체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내가 현재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출력과 스피드.

거기에 더해 서시우의 서포팅까지.

나는 마계의 마왕이라고 불리는 디아블로를 얼핏 보면 가지고 놀듯이 요리를 했다.

“큭..크윽..”

디아블로의 방심이 불러온 결과였다.

녀석 역시 나처럼 처음부터 3단계나 4단계.

혹은 5단계로 변신을 했다면 결과는 분명 달랐을 터였다.

나는 디아블로의 양 팔을 잘라냈다.

“크으윽!!”

도망치려는 디아블로.

“보름달 가두기.”

곧바로 퇴로를 차단했다.

“너는 지금. 내 손에 죽어야 하는 운명이거든. 그러니까 튈 생각 하지마.”

조금의 틈이라도 줬다가는, 3단계와 4단계를 스킵하고 곧바로 5단계로 변신할 기세였다.

그건 내 입장에서,

불허(不許)였다.

나는 지금 디아블로에게 충분히 불허를 내릴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일방적으로,

압도(壓倒)를 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힐끔 하늘을 올려다봤다.

서시우가 시전 한 녹턴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포식의 악마’와 계약을 한 것치고는 능력 유지 시간이 대단히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의 축복, 5단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서시우의 능력이 힘을 잃기 전에 끝장을 봐야 했다.

서시우의 녹턴이 있다면,

나는 단시간동안 달의 축복을 5단계.

즉, 달의 축복 마지막 단계를 시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분명 몸에 부하가 걸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디아블로를 완전히 죽이기 위해서는,

나도 희생을 해야 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 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찰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짧은 시간.

그 시간에 디아블로의 양팔이 새살이 돋아난 것처럼, 돋아날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기세가 변하기 시작했다.

“달의 축복 5단계.”

투둑.

신체 내부에서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아악.

한 번의 대시.

스윽-!

그리고 한 번의 사선 베기.

반전을 꾀하던 디아블로의 육체가 양단이 되며,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인간이 어찌 이런 힘을....”

온 몸의 근육이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느낌 속에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인간이 아닐지도.

+ + +

상공의 대장전은 빠르게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지상은 생각보다 시간이 끌렸다.

대장의 목을 땄는데도,

마왕군은 오히려 전의를 불태웠다.

“미천한 것들이!!”

“한 놈이라도 더 데리고 가주마!!”

결사항전.

혹은 임전무퇴.

인간이었다면 오히려 전의를 잃을 법도 한 상황이었지만, 상대는 인간이 아닌 악마들이었다. 악마들 주제에 난중일기라도 읽은 것인지.

나는 녹턴이 사라진 붉은 하늘 아래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상전은 공격조가 마왕성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열세였다. 레이와 피닉스가 날 뛴 덕분에.

그럼에도 마왕군은 물귀신처럼 공격조를 물고 늘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공격조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지금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5초정도였나.

내가 달의 축복 5단계를 시전한 시간이.

혈관이 터진 것처럼,

온 몸이 피멍으로 물들어 있었다.

금석의 능력인 ‘자기 치유’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바닥을 뒹굴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상을 그저 관전을 하고 있을 때,

마왕성 입구 쪽에 망부석처럼 가만히 서 있는 서시우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서시우가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형.”

서시우는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나가 고갈될 때까지 녹턴을 사용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서시우 옆에서 서시우와 비슷한 몰골을 하고 있는 어린 악마를 쳐다봤다.

‘이 녀석은 왜 이래?‘

다 죽을 것처럼 숨을 허덕이는 게, 꼭....

나는 어린 악마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는 어른 악마를 쳐다봤다. 어른 악마는 아무 멀끔해 보였다.

“....서시우.”

“응?”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다.

녹턴의 지속 시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을 했다.

“너 설마 얘랑 계약했냐?”

내 말에 동공의 갈피를 잃은 서시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기에, 베르베르는 이 쪽인 것 같은데 말이지.”

내 시선이 어른 악마를 향했다.

“그,그게 형. 베르베르씨를 구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어. 근데 이게 미래를 보면 이득인 게, 베르베르씨 말에 따르면 나르의 잠재력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그랬어. 성장만 하면 자신보다 더 대단한 포식의 악마가 될 거라고....형. 미안.”

고개를 푹 숙이는 서시우.

서시우의 말 때문인지 베르베르와 나르.

그리고 그들의 옆에 있는 꼬마 악마가 내 눈치를 살폈다.

“나르가 베르베르의 자식이라는 소리?”

내 말에 서시우가 고개를 살짝 위아래로 흔들었다.

“흠.”

나는 나르의 얼굴을 쳐다봤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계속 내 눈치를 살피며 여동생으로 보이는 어린 악마를 자신의 뒤에 숨기고 있었다.

“미래지향적인 것도 나쁘진 않지.”

나는 말을 하며,

주변을 살폈다.

“다른 애들은?”

“공격조에 몰래 합류한다고 갔어.”

걸리면 한태문한테 거하게 혼날 텐데.

나는 전장의 소음 위로,

공중을 쳐다봤다.

“휘뚜루!!”

입에 불을 잔뜩 머금은 피닉스가 제 집 안방인 것 마냥, 날아다니고 있었다.

“어엇?! 너는 인간인데?! 미안! 마뚜루!”

융단폭격처럼 불똥을 뿌려대고 있었는데,

조준점이 상당히 부정확해 보였다.

“미안하다고 했잖아!! 이이....그냥 다 태워버릴래!! 휘뚜루!!”

불협화음을 못 견딘 인간들의 성화에,

흥분한 피닉스.

몸집을 성체로 부풀리며,

입에 거대한 불길을 머금기 시작했다.

“도망쳐!!”

“도망쳐라!!”

공격조가 황급히 내가 있는 입구 쪽으로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 사이사이에는 악마도 간혹 섞여있었다.

입에 가득 불길을 머금은 피닉스.

꿀꺽.

그대로 삼켜버렸다.

“뻥인데~ 휘뚜루~~”

저 녀석은 아군일까,

적군일까.

그래도 피닉스 덕분에 전장은 빠르게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 + +

길다면 길었던 대재앙의 막이 드디어 내렸다.

막이 내린 후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있긴 했지만,

The end.

라고 마침표를 찍어도 괜찮았다.

10번 게이트를 클리어한 공격조는 축포를 드는 대신, 닫혀가는 10번 게이트를 빤히 쳐다봤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맨홀 뚜껑처럼 작아진 10번 게이트.

이번 대재앙을 통해 나는 확신을 얻었다.

‘나는 강하다.’

레볼루션과 조우를 한다고 해도,

안 쫄아도 될 만큼.

이러면 향후 계획을 수정을 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 수정이 아니라 앞당길 필요가 있었다.

10번 게이트가 모두 닫혔을 때.

마치 지금 내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한,

메시지가 울려왔다.

[신수(神手) 두기에 성공 하셨습니다.]

[훈수 포인트가 10000 포인트 적립 됩니다.]

[최초로 신수(神手) 두기에 성공 하셨습니다.]

[최초 보상으로 5000 포인트가 추가 적립 됩니다.]

[보유 포인트가 20000이 넘으셨습니다. 새로운 ‘방’이 신설 됩니다.]

확신에 근거로 삼기에는 충분한,

자양분이었다.

신수라니.

15000 포인트라니.

이번 대재앙에 투자한 포인트를 모두 회수한 것은 물론이고, 넘칠 정도로 많은 포인트를 획득했다.

워런 버핏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남는 장사를 했다.

‘근데 새로운 방이라는 게 뭐지?’

궁금해서 당장 열어보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해산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나중에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내 쪽으로 다가오는 한태문과 설민호를 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해산하는 분위기를 다시금 집결시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쿵쿵!

지면을 강하게 두드리는 소리.

하나의 소리가 아닌,

수많은 소리가 한 데 모여 내는 소리였다.

어느덧 내 옆으로 다가온 한태문과 설민호.

“무슨 소리지?”

“그러게요?”

의문을 표하고 있는 우리들 곁으로 헐레벌떡 누군가가 뛰어왔다. 복장을 보니 협회 직원인 것 같았다.

“미발견 게이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언데드 대군이 나타났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

게이트는 10번 게이트가 끝이었다.

클리어 보상까지도 방금 받았는데.

한태문과 설민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 쪽을 향했다.

“부상 인원은 치유소로 보내고, 그나마 멀쩡한 인원을 추려서 가보도록 하죠.”

나는 여전히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당장 육안으로 보기에는 피멍이 전부 사라져 있었지만, 내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변수가 발생했고,

나는 눈으로 확인을 해야 했다.

‘뭐야 대체?’

도대체 뭐하는 놈이,

뒷북을 친단 말인가.

+ + +

“아....”

나는 탄식을 내뱉었다.

시가지에 등장한 언데드 대군은 말 그대로 대군이었다. 도로를 점령하는 것도 모자라, 건물들까지 점령을 한 상태였다.

수비조와 후방조로 편성 된 인원들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언데드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범람하는 언데드군.

내가 탄식을 내뱉은 이유는,

이 녀석들이 어마어마한 대군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게이트의 존재 때문이 아니었다. 언데드군은 게이트에서 나온 녀석들이 아니었다.

이 녀석들은....

“포포, 이 새끼....”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레볼루션의 간부가 왜 등장을 한단 말인가.

샤인과 지숙.

라이언과 레드.

그리고 포포.

레볼루션의 다섯 간부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포포.

녀석은 까다롭다면 까다롭고,

쉽다면 쉬운 간부였다.

네크로맨서의 능력은 타의 추정을 불허했지만,

개인 전투 능력은 간부들 중 최약체였다.

네크로맨서 포포.

지금 눈앞에 보이는 언데드군은 그 녀석의 소행이었다.

원래 시나리오대로 라면,

레볼루션은 웨스트 월드에 집중을 하고 있어야 했다.

헌데 인원을 이곳에 투자했다.

그것도 게이트를 모두 클리어 한 직후에.

상처와 피곤함에 찌들어 있지만,

마음만은 가벼워지고 방심에 물든 지금.

계획적이고,

노렸다고 봐야했다.

레볼루션의 의도대로 소모전을 펼치면,

우리만 손해였다.

애초에 이건 소모전이 아니었다.

언데드는 소모되는 개념이 아니었으니까.

“레이.”

크르릉.

“소라를 데려와.”

크릉!

레볼루션 입장에서는 묘수를 뒀다고 생각을 했겠지만, 나는 방금 ‘신수’를 둔 사람이었다.

수읽기는 실패했지만,

나는 대국에서 질 생각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능력자들을 대거 줄일 생각이었나본데.

‘그렇게는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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