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회
베르베르 구출 작전
"회복이 빠르네요?“
나는 10번 게이트 앞에 도열한 공격조를 보며 말했다.
인원은 꽤 줄어있었지만,
출정하는 인원의 상태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마지막 게이트니만큼, 치유협회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더구나.”
내 옆에 있던 한태문이 10번 게이트를 보며 말을 했다. 그의 말에 동조하듯 설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제 이번 대재앙의 마지막 관문만 남겨두고 있었다.
나는 내 계획을 공격조의 대장들.
한태문과 설민호에게 이미 전파를 한 상태였다.
“가실까요?”
우선 첫 번째 계획은 간단했다.
게이트로 들어가,
마왕성이 있는 곳까지 직진하는 것.
내 말에 한태문과 설민호가 공격조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무혈입성 하듯이 마왕성이 지척까지 도달했다.
우리가 강해서냐?
그건 아니었다.
10번 게이트의 주인이자, 마계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디아블로. 녀석이 마왕성으로 모조리 악마들을 불러들였기 때문이었다.
굳이 요새인 마왕성이 있는데 밖에서 각개전투를 할 이유가 없었다. 디아블로 입장에서는.
전쟁에서 성이 가지고 있는 이점은,
명확하고도 뚜렷했으니까.
공성과 수성.
10번 게이트는 이 싸움이었다.
“생각보다 작군요.”
마왕성을 쳐다보던 설민호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상상력이 풍부했던 것뿐이지,
마왕성은 결코 작지 않았다.
한 나라의 왕이 기거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가시처럼 울퉁불퉁한 외벽과,
경고하듯이 외벽 틈 사이에 박혀 있는 해골들.
그리고 첨탑 위에 불결할 정도로 둥글게 회오리 치고 있는 검은 마력까지.
공성하는 입장에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만한 외관이었다.
“자, 그럼 바로 작전을 시작할까요?”
괜히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여기까지 행군을 하느라 공격조가 조금 지쳐 있기는 했지만, 쉬어봤자 쉬는 게 아니었다.
마계에서.
그것도 가장 강한 마기가 흐르는 이곳에서 인간은 자체적으로 ‘회복’이라는 걸 전혀 할 수가 없었다.
회복은커녕 마기에 오래 노출 될수록,
상태이상에 걸릴 확률이 높았다.
“진짜 괜찮겠느냐?”
한태문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무리 서진씨라고 하지만....”
설민호 역시 한태문과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럴 만도 했다.
첫 번째 작전에 이은 두 번째 작전은 나 홀로. 아니, 레이와 둘이서 수행하는 작전이었으니까.
공성과 수성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성문이었다.
나는 레이와 둘이서 성문을 개방하기로 했다.
만약, 공격조가 외벽을 통해 내부로 침입을 하려고 한다면 사실상 전멸이라고 봐야했다. 공격조를 제대로 활용을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안전한 성문을 통해 입장을 해야 했다.
그러니,
내가 리스크를 짊어지기로 했다.
달빛 능력을 잘만 활용하면,
리스크라고 할 것도 없었다.
“갔다 올게요~”
나는 일부러 여유로움을 흉내 내며 플라이를 시전 했다. 나와 함께 플라이를 시전 하는 레이.
우리는 함께 마왕성을 향해 날아갔다.
마왕성의 지척에 이르렀을 때,
외벽에 진을 치고 있던 악마들이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위협적이지 않은 공격들이었고,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걸로 피할 수가 있었다.
내 움직임에 몇몇 악마들이 등에 날개를 펼쳤다. 뿔의 숫자를 보니 전부 중급 악마들이었다.
‘달빛 제 6초식. 달빛소나기.’
외벽 위로 이름 그대로 달빛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 초식에 날개를 펴던 중급 악마들이 에프킬러에 맞은 모기처럼 맥을 못 추며, 추락을 했다.
공격조가 진입하기 쉽도록,
필요이상으로 외벽의 마왕군을 정리하고 있을 때.
콰아앙!!
갑자기 마왕성 내부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화르륵!!
그리고 하늘을 향해 치솟는 불기둥 하나.
마계의 불꽃이라고 하기에는,
청아한 붉은 빛을 띠고 있는 불꽃이었다.
“....에이 설마.”
어딘가 낯이 익은 불꽃이었지만,
나는 설마 싶었다.
서시우 일행은 지금쯤 악마와 계약을 마치고, 게이트 밖으로 나가 있을....
쿠당탕!!
마왕성의 성문이 부서지듯이 열렸다.
그곳에서 악마와 인간의 혼합 파티가 다급하게 빠져나오고 있었다.
게이트 밖으로 나가 있어야 할 녀석들이,
마왕성을 나가고 있었다.
서시우와 한설휘.
금석과 정시아.
그리고 어른 악마 하나와 어린 악마 둘까지.
“피닉스 데리고 가야한다니까!!”
한설휘의 목소리.
“버려!! 아무리 염옥인가 하는 불이 맛있어도 그렇지 디아블로를 깨우면 어떻게 하냐고!!”
이건 정시아의 목소리.
“누나들, 일단 진정하세요!!”
이건 서시우의 목소리였다.
금석은 뚜뚜와 함께 인원들의 최후방에서, 따라 나오는 악마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왜 이 녀석들이 여기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잡몹을 처리하면서 가장 나중에 만나야 할 보스 몬스터가 이른 시간에 모습을 드러내버렸다.
솟구치는 불기둥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디아블로.
인간형의 모습이 빠르게 사라지며,
괴수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
등장한 것도 모자라,
등장과 동시에 2페이즈 돌입이었다.
이 사건의 발단과 원흉은.
“휘뚜루!! 쪼잔한 놈!! 불 조금 먹었다고 그러냐!! 휘뚜루 마뚜루!!”
내가 있는 쪽으로 도망쳐오고 있는 피닉스겠지.
“어엇?! 휘뚜루?! 너는!!”
입에 잔뜩 불길을 머금은 피닉스가 나를 보며 날개를 들어, 삿대질을 했다.
“레이.”
크르르.
“먹어버려.”
크르릉!!
“멍청한 늑대!! 저리 안가?! 휘뚜루!!”
공중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레이와 피닉스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2페이즈에 돌입한 디아블로를 과정 없이 마주하게 된 건, 시간상으로 보면 시간절약을 하게 된 셈이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과정을 스킵하는 바람에,
잡몹들과 함께 상대해야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디아블로 하나 상대하는 것도 벅찬데.
실제로 상급 악마들이 괴수형으로 변한 디아블로 주변으로 모이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서시우!”
나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지상으로 내려갔다.
“어,어....형? 그게 그러니까....”
당황해 하는 서시우.
이렇게 된 정황에 대해 양 손을 들어,
자초지종을 설명하려고 했다.
나도 들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서진아!”
“야!!”
한설휘와 정시아와도 말을 섞을 시간이 없었다.
“계약은 했어?”
나는 말을 하며,
서시우 옆에 서 있는 악마들을 쳐다봤다.
성인 악마 하나와,
어린 악마 둘.
셋 중 누가 봐도 성인 악마가 내가 서시우에게 말을 한 포식의 악마, 베르베르일 확률이 높았다.
“응. 하긴 했는데....”
“녹턴 시전 해.”
“....응?”
계획에 차질이 생겼으니,
계획에 없던 인물의 도움이 필요했다.
서시우의 능력은 차질이 생긴 계획의 빈틈을 메우기에 아주 적합한 인물이었다.
“아무래도 디아블로를 바로 죽여야 할 것 같거든.”
나는 말을 하며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보스를 먼저 처리한 후, 잡몹을 처리한다.’
완전 계획의 역순이었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내가 성공만 한다면.
그리고 어쩌면 기존 계획보다 더 나은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내가 성공만 한다면.
“피닉스.”
나는 레이의 머리 위에서 장난치고 있는 피닉스를 불렀다.
“휘뚜루?”
“나 좀 도와줘라.”
“마뚜루?”
“네가 싼 똥 내가 대신 치워줄 테니까, 나 좀 엄호해줘.”
“휘뚜루 마뚜루?”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는 피닉스.
“염옥 배터지게 먹고 싶지 않아?”
“휘뚜..루?!”
“배터지게 먹게 해줄게.”
“휘뚜루!!”
오케이.
이쪽은 준비완료고.
나는 지상 쪽을 내려다봤다.
베르베르로 추정되는 악마가 아닌,
어린 악마 하나와 대화를 나누던 서시우.
눈을 감고 정신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저쪽도 준비완료인 것 같고.
나는 시선을 들어 디아블로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이족보행 황소처럼 변해 있는 디아블로의 붉은 안광이 번뜩이며, 내가 있는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디아블로는 총 5단 변신을 하는 놈이었고,
변신을 할 때마다 점점 강해졌다.
내 목표는 디아블로가 다음 변신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게 아닌, 완전히 죽여 버리는 것이었다.
만약 틈을 주고,
탈피를 하듯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면.
그러다 마지막 변신까지 해버린다면.
내 영역 밖이었다.
만약 디아블로가 완전체가 되어버린다면, 이무신 협회장을 비롯해서 1선에서 물러나 있는 금석과 박태산의 스승인 박진 선생 같은 인물들을 대거 소집을 해야 했다.
전생처럼.
내가 최전방에서 날뛰고 있는 이유는 전생과 같은 결과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최대한 전력 손실을 막아야 했다.
주적은 따로 있었으니까.
마계 특성상 붉은 빛을 띠던 하늘이 점점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마왕성 상공을 중심으로.
“레이. 전력으로 간다.”
나는 말을 하며 ‘달의 축복’을 4단계로 끌어올렸다.
고요하던 달빛이 체내에서 끓어오르듯,
온 몸을 뜨겁게 만들기 시작했다.
아우울~
레이 역시 마찬가지인지,
온 몸이 달빛에 휩싸여 있었다.
아직 나는 4단계를 완전히 운용하기에는 스탯이 부족했다.
하지만.
완전히 검게 물든 하늘.
저 하늘이 나를 보듬듯이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달은 어둠속에서 더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법이었으니까.
“가자. 월광쇄도.”
굳이 내가 가지 않아도,
디아블로의 수하들이 마중을 나오고 있었다.
나는 만월검으로 공기를 베어내듯,
가볍게 악마들을 베어내며 앞으로 날아갔다.
궤도를 이탈하거나 고개를 옆으로 돌릴 필요도 없었다.
크르르!!
레이와,
“휘뚜루!!”
피닉스가 든든하게 양 옆을 보좌하고 있었으니까.
100m가 넘는 거리를 눈 깜짝하는 사이에 좁혔고, 어느새 디아블로의 전신이 코앞에 나타나 있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하군.”
말과는 다르게 별 감흥 없는 얼굴의 디아블로.
고개를 돌려 내 뒤편을 쳐다봤다.
공격조가 개미떼처럼 마왕성을 향해 진군을 하고 있었다.
“세나의 핏줄은 같이 안 왔나보군.”
“....”
이번에 내가 실패를 한다면 세리나의 도움을 받아야겠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디아블로가 세나에 대한 원한이 깊은 걸 알고 있었다. 악마의 열매를 먹은 인간들을 파견해, 세리나를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하지만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네 눈앞에 있는 나는 네 생각보다 더 대단한 인간이라고.
그러니 집중을 하라고.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마족 패시브라고 할 수 있는 ‘자만’과 ‘오만’은 방심의 또 다른 말이었고, 방심은 곧 내게 기회였으니까.
휘뚜휘뚜!
피닉스가 미쳐 날뛰고 있었다.
녀석의 날갯짓에 악마들이 잿더미로 변했고, 마왕성이 점점 불바다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디아블로의 얼굴은 평온했다.
“내가 성격이 조금 급해서 그런데.”
나는 만월검을 치켜들었다.
“먼저 공격해도 괜찮지?”
내 말에 콧방귀를 한 번 뀌는 디아블로.
오래전 세나에게 방심하다가 큰 코 다쳤으면서, 참 한결 같았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마족도 매한가지였다.
‘달빛 제 10초식. 레드문.’
만월검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레이는 이미 앞발을 붉게 물들이고,
피닉스와 더불어 악마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간다.”
나는 친절히 멘트를 날리며,
앞으로 대시를 하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디아블로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인간은 한결같군. 눈앞에 보이는 것만 믿으니 말이야.”
아무래도 방심을 한 건 디아블로가 아닌,
나였던 것 같았다.
내 뒤에서 들리는 디아블로의 목소리.
그리고 느껴지는 마기의 흐름.
“....”
내가 몸을 돌렸을 때는 이미,
한곳으로 응집한 마기가 나를 강타한 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