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회
베르베르 구출 작전
“사막을 걷는데, 귀신이 사방에서 쳐다보는 기분이야.”
“그러게. 며칠이 지났는데 으스스한 게 안 없어지네.”
정시아와 한설휘가 대화를 하며,
추운 것처럼 양 손으로 몸을 감싸며 비볐다.
“....”
선두에서 걷던 서시우는 메마르고 광활한 흑색 토지를 전체적으로 한 번 스윽 훑었다.
오늘로써,
이곳에 온지도 3일차였다.
그동안 형이 말한 악마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었지만.
‘끝이 안 보이네.’
미로에 갇힌 것처럼,
광활한 토지를 하염없이 걷기만 할 뿐이었다.
서진의 조언대로, 물과 음식을 충분히 준비해놨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고립사 했을 정도로 10번 게이트는 드넓었다.
가끔 등장하는 몬스터와 하급 악마들은 아무런 위협이 되질 못했지만, 점점 일행이 지쳐가는 게 눈에 보였다.
일행이 지쳐갈수록, 서시우는 점점 마음이 조급해졌다.
다 자신을 위해 동참을 한 사람들이었다. 만약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다면 너무나도 미안할 것 같았다.
서진은 말했다.
일주일 안에 계약을 성사 시키라고.
그 말은 일주일 후에 공격조가 10번 게이트 공략에 나선다는 걸 의미했다.
“누나들, 제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 정찰조를 자초했던 금석이 뚜뚜와 함께 멀리서 돌아오고 있는 게 보였다.
“저 앞에 마을 같은 게 있다.”
돌아온 금석의 말은 서시우가 하려던 말을 삼키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그런데, 마을이라니?
서시우는 금석이 손을 들어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흑색 대지밖에 보이질 않았다.
“이열~ 황금돌대가리~”
“고생했어, 석아. 뚜뚜도.”
분명 그럴진대, 한설휘와 정시아는 마을이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금석을 칭찬했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정시아가 물었다.
“이쪽? 이쪽으로 가면 돼?”
그때 서시우는 깨달았다.
한설휘와 정시아는 그저 금석의 말을,
말 그대로 믿은 것뿐이구나.
그만큼의 믿음이 보이지 않는 마을을 보이게끔 할 정도구나. 저들의 신뢰와 믿음은 대단하구나.
그러고 보니, 이 세 사람은 서진이 말 할 때도 지금과 별반 다르질 않았다.
그냥 믿었다.
말 그대로 그냥.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이유 없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서시우는 알고 있었다.
“시우야~ 안 오고 뭐해?”
금석과 뚜뚜의 뒤를 따라가던 한설휘가 고개를 돌려 손짓을 했다.
맹목적인 믿음과 신뢰.
서시우는 최근에야 한 명 생겼다고 생각했다.
형이라는 존재.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건 아니었다.
언제나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고,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여자.
박시향.
그녀 역시....
“....”
평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당연하게 생각을 했으니까.
그런데 새삼스레 그녀와 자신의 관계를 생각해보니 참으로..
“당연한 게 아니었네.”
박시향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서시우는 앞으로 걸어갔다.
+ + +
흑색 돌부리가 일렬로 늘어선 곳을 지나자마자, 풍경이 확 바뀌었다. 아무래도 결계가 쳐져 있었던 모양인데.
“마을은 마을인데..”
스산하고 적막한 바람이 폐허처럼 보이는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다.
인간의 관점으로 본다면, 폐허에 가까웠지만 마족의 관점으로 본다면 어쩌면 이게 정상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네 사람은 마을로 추정 되는 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모두의 시선이 집의 골격이 반쯤 무너져 내려 있는 곳을 향했다.
왈왈!!
뚜뚜가 그 앞에서 짖고 있었다.
“저기 뭔가 있다.”
뚜뚜의 말을 알아들은 금석이 성큼성큼 뚜뚜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뒤 따르는 일행들.
무너져 내린 지붕과 기둥 사이로,
왜소해 보이는 남자 아이 하나와 여자 아이 하나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인간과 닮아 있었지만 머리에 돋아난 작은 뿔이, 아이들이 악마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악마라고는 해도 아이들이라 그런지, 크게 경계심이 생기진 않았다. 그렇다고 방심을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거기서 뭐하고 있니?”
일행 중 가장 상냥한 한설휘가 쪼그려 앉아, 최대한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한 눈에 봐도 오들오들 떨던 두 아이.
남자 애가 오빠인지, 한설휘의 말에 냉큼 여자 아이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우,우린 인간한테 아무런 원한이 없어! 그러니 가!”
고개를 들어 일행을 쳐다보는 한설휘.
다들 알아서 하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가 도와줄 수도....”
“야, 설휘야.”
“응?”“아무리 아이들이라 해도 악마인데, 도와주는 건 쫌 그렇지 않아?”
“....그런가.”
한설휘는 아이들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저 아이들은 자신들이 여기서 사라지는 게 도와주는 것 같기도 했다. 가기 전 한설휘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베르베르 마을이 어디인지 알아?”
“..베르베르 마을?”
“응.”
남자 아이의 눈에 경계심이 극에 달하는 게 보였다. 입을 꾹 닫는 아이.
딱히 알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설휘.
“근방에 다른 마을도 있지 않을까?”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으며 이동을 하려 할 때였다.
“오,오빠. 우리 마을에 대해서는 왜 묻는 거야?”
“쉿! 조용히 해! 아직 근처에 있으면 어쩌려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로 말할 것 같으면, 헌터 학교의 최우수 학생들은 기본이며 기본 A급을 넘어선 인재들이었다.
그들의 청각은 귀 기울이지 않아도,
아주 멀리 있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네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형, 누나들. 일단 이 건물 구조물부터 치워볼까요?”
“오케이~”
“조심해. 아이들 다칠 수도 있으니까.”
“으랴차차!!”
아이들의 은신처가 순식간에 벌거숭이가 되어버렸다.
“오,오빠....”
“이,이....”
당황한 아이들이 당장이라도 달아날 것처럼 굴었지만, 쉽사리 움직이지를 못 했다. 뒤를 막아서고 있는 뚜뚜 때문이었다.
멍멍!!
뚜뚜는 그냥 놀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신들보다 덩치가 큰 뚜뚜는 위험 요소나 다름없었다.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
서시우가 상냥한 음색으로 말을 했다.
“나는 너희와 종족은 다르지만.”
서시우의 몸에서 흘러나온 흑색의 마나가 천천히 아이들을 향해 뻗어갔다.
“비슷한 면이 있거든.”
처음에는 뒷걸음질을 치던 아이들.
서시우의 마나에 몸이 닿는 순간 따뜻한 미풍에 닿은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였다.
“너,너어!! 어둠 능력자야?!”
표정을 보니,
뭔가 반기는 것 같기도 한....
“우리 아빠가 얼마나 찾았는데, 왜 이제야 나타난 거야!!”
다다다다!
서시우에게 달려 든 남자 아이.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는 서시우는 적당히 주먹을 받아주며, 아이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너만 빨리 나타났어도....”
제 풀에 지쳤는지 주먹질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는 아이.
“우리 아빠는 마왕군에 안 끌려갔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들어야 알 것만 같았다.
+ + +
-베르베르 마을 악마들은 인간한테 호의적이야. 그러니까 어렵지 않을 거야. 인간 중에서도 악마를 숭배하는 사람들 있잖아? 베르베르 마을도 비슷해.
서진은 그렇게 말을 했다.
그의 말은 옳았다.
각자 나르와 체르라고 소개를 한 두 아이.
처한 상황 때문에 경계심을 가졌던 것뿐이지, 한 번 경계심을 허물자 인간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으로 서시우 일행을 대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천천히 먹어. 많으니까.”
품에 여자 아이, 체르를 앉히고 있는 한설휘가 상냥하게 말했다. 배가 고파 보여 챙겨 준 음식을 나눠줬더니 허겁지겁 먹고 있는 중인 나르와 체르.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정시아와 서시우. 그리고 금석까지.
“어떡하지?”
정시아가 체르와 나르가 있는 쪽을 보며 말했다.
서시우가 계약해야 하는 악마는 체르와 나르의 아버지인 베르베르였다. 그런데 베르베르가 마왕군에 끌려갔단다.
그렇다는 건 마왕군이 있는 마왕성에 가야한다는 건데.
“....그러게요.”
서시우의 음색이 암울했다.
이번 재앙의 최종보스인 디아블로가 있는 마왕성에 무슨 수로 간단 말인가. 간다 해도 베르베르를 찾아서 계약을 무사히 하고 빠져나올 수가 있을까?
아무리 수재들을 모아놨다고 해도,
방법이 전혀 떠오르질 않았다.
“조금 일찍 올 걸 그랬나 봐요. 하하....”
서시우가 암울을 넘어서 허탈하듯이 말했다.
나르의 말을 들어보면, 인간과 계약을 한 악마는 마왕군 소집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만약, 인간과 친밀한 악마일 경우 내부 정보를 실시간으로 빼돌리는 스파이 짓을 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력 외 판정.
서시우 말대로 조금만 빨리 왔어도, 베르베르는 지금 체르와 나르와 함께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직 공격조가 투입되려면 시간 조금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자.”
급할수록 돌아가라.
정시아가 공감하는 격언 중 하나였다.
조급하면 괜히 생각나려던 것도 안 나기 마련이었다.
“너는 무슨 좋은 생각 없냐? 황금돌대가리?”
“있다.”
“뭔데?”
평소였다면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테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귀를 기울이는 정시아.
서시우도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돌려 금석을 쳐다봤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는 것처럼, 금석도 이제는 한 번쯤 쓸 만한 아이디어를 낼 때도 되지 않았을까?
“몰래가서.”
“몰래가서..”
“몰래가서..”
금석의 말에 과몰입을 하는 정시아와 서시우.
“데리고 나오면 된다.”
“데리고 나오면..아놔 진짜.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왜, 그냥 디아블로도 우리가 죽이고 10번 게이트 코어도 파괴하자고 하지?!”
김이 팍 샜다.
그게 어려우니까 지금 머리를 싸매고 있는 건데.
“하하....”
서시우는 금석의 캐릭터를 잘 몰랐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얘들아.”
서시우와 정시아가 금석의 말을 탁상공론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한설휘가 체르와 나르의 손을 잡고,
다가왔다.
“체르가 그러는데.... 나는 들어보니까 할 만하다고 느꼈거든. 그게 그러니까....”
일행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본 한설휘.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몰래가서 베르베르씨를 데리고 나올래?”
“....”
“....”
끼긱.
정시아의 목이 기계처럼 천천히 금석을 향해 움직였다.
“야. 책임져. 요즘 가뜩이나 피닉스 닮아가서 속상했는데, 어떻게 너도 닮아갈 수가 있지? 우리 설휘 책임지라고 황금돌대가리!!”
금석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정시아.
뚜뚜가 옆에서 앞발로 말렸다.
반면, 자리에 쪼그려 앉아 나르를 쳐다보는 서시우.
“누나한테 해준 얘기, 형한테도 해줄 수 있어?”
어릴 때부터 한설휘 말은 곧잘 듣던 서시우였다. 그리고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을 때였다.
나르의 얘기를 듣던 서시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능하겠는데요?”
한창 드잡이를 하던 정시아.
“시우..너 마저.... 황금 돌대가리의 전염성은 얼마나 대단한 거야? 알고 보면 ‘전염’ 능력 있는 거 아니야, 황금 돌대가리?”
“시아 누나. 일단 얘기부터 들어봐요. 나르야, 미안한데 이 누나한테도 한 번만 더 설명해줄래?”
입가에 잔뜩 밥알을 묻히고 있는 나르.
뭔가를 먹어서 힘이 나는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체르가 마왕성으로 가는 지하도를 알고 있어. 지하도는 악마들 중에서도 아는 악마가 적다고, 아빠가 그랬어. 그러니까 오히려 지하도에는 지금 악마가 별로 없을 거야. 인간들을 대비하기 위해서 거의 대부분 지상에 올라와 있을 테니까.”
“너 몇 살이니? 말을 왜 이렇게 잘해?”
“나 140살인데?”
“아....그..러세요?”
“응.”
“뭐, 어쨌든. 확실히 지상보다는 지하가 안전하긴 하겠네. 너희밖에 모르는 길이니까 인간이 그리로 오리라는 생각을 거의 안 했을 확률이 높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말을 하던 정시아가 얼굴을 굳히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혹시나 방비를 했으면? 혹시나 몇 없는 악마들이 존나 센 악마들이면?”
“마귀.”
“응?”
금석을 쳐다보는 정시아.
이어진 그의 말에 피식하고 웃었다.
“우리도 존나 세다.”
하긴.
그렇긴 하네.
“표정들을 보니까 이미 결정 난 것 같은데? 서시우, 네가 이번 파티 대장이니까 네가 말해.”
“뭐를요? 아....”
머쓱하게 어깨를 으쓱하는 서시우.
“이동할까요? 지하도로?”
서시우가 시동을 걸었고,
“안 그래도 몸이 찌뿌둥했는데, 가보자고!!”
이왕 가기로 한 거 기운차게 엑셀을 밟는 정시아.
공격조가 투입되기,
이틀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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