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회
쌍둥이 마녀
혹한의 마녀는 대악마답게, 근접 캐릭터가 아니었음에도 거의 내가 블링크를 시전함과 동시에 얼음장벽 같은 쉴드를 생성했다.
반응속도가 짐승 보다 더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오판한 게 한 가지가 있었다.
나는 블링크로 순간 기습을 노리기 위해, 사용한 게 아니었다. 대악마 정도라면, 블링크에 쉽게 대응할 줄 알았으니까.
내가 블링크를 사용한 이유는.
‘그냥 거리 좁히려고.’
단순한 이유였다.
마녀는 혼자 어림짐작을 한 것이고.
“인간 따위의 같잖은 수에 넘어갈 것 같으냐!! 꺄하하하!!!”
단순한 이유였지만, 마녀의 착각으로 인해 꽤나 효과적인 효과를 불러왔다.
악마 아니랄까봐, 나한테 베인 게 아까 전인데 표정이 악마 특유의 시건방진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달빛 초식 제 7초식. 달의 광휘.’
직선으로 뻗은 붉은 검 끝이 얼음 장벽을 부수고, 사선으로 두 번 그은 검날이 마녀의 가슴을 X자로 그었으며, 새하얀 목선을 탐하듯 목을 향해 뻗어나가는 만월검.
사악-!
두부를 자르는 것처럼 매끄러운 동작이었고, 소리는 만월검의 자취인 바람 가르는 미세한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착각이 아닌, 2차, 3차 대비를 견고히 했으면 지금처럼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미 늦었다.
나는 만월검을 회수하며,
내가 만든 작품(?)을 감상했다.
어찌나 빠른 속도로 만월검을 휘둘렀는지,
이제야 혹한의 마녀의 신체에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가슴팍이 개봉된 듯,
X자로 뿜어져 나오는 검은 피.
미끄러지듯이 목과 분리되기 시작하는 머리.
상황을 뒤늦게 인지한 혹한의 마녀의 표정변화.
찡그리던 표정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을 때는 이미 머리와 몸이 분리된 상태였다. 몸에서 떨어져나간 머리가 지상으로 추락했고, 주인을 잃은 몸 역시 머리를 따라 추락했다.
‘달빛 제 6초식. 달빛 소나기.’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듯,
허공에서 떨어지는 달빛 줄기들.
애도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크아아!
끄르끅!
혹한의 마녀를 지키기 위해 달려온 몬스터들을 멸하기 위함이었다. 달빛 소나기에 적중당한 몬스터와 악마들이 고통을 내지르며 전깃불 위의 오징어처럼 몸을 가만히 두지를 못했다.
혹한의 마녀가 소환한 눈보라가 옅어지는가 싶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대기를 채우는 건 극염보다 더 뜨거운 열기뿐이었다.
그리고 열기보다 더 뜨거운,
지옥불 마녀의 표정.
만약 내게 누군가가 ‘혹한의 마녀와 지옥불 마녀 중 상대를 고를 수 있다면 누구를 고를래?’라고 질문을 한다면 나는 1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한 명을 택했다.
지옥불 마녀.
그 이유는 내게는 한설휘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설휘의 능력 중에는 ‘불의 찬사’라는 능력이 있었다.
능력: 불의 찬사
설명: 불의 가호가 함께 한다.
*불 속성에 대한 친화력 100%.
친화력을 바꿔 말하면 저항력도 된다는 말이었다. 지옥불 마녀의 불은 그냥 불이 아니었지만, 속성 친화력이 무려 100%다. 거기에 더해 속성 반지의 30%까지 합하면 도합 130%의 친화력. 혹은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나였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추위에는 쥐약이었지만 나처럼 불 속성 친화력이 무척이나 높은 인간이 한 명 존재했다.
한태문.
그가 포션빨이 잘 받는지,
지상에서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회복을 한 태양 길드원들이 한태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능력자들은 대기에서 전해지는 열기에 포션을 먹었음에도, 제대로 회복조차 못하고 있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나마 설민호를 비롯한 스카이 길드원들이 괜찮아 보였다.
‘지상은 한태문과 설민호에게 맡기면 될 것 같고.‘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 나는 임무를 완수하고 내게 날아온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 이게 아니라.
복수심에 불타오른 반쪽자리 마녀를 이곳에서 지우는 일. 조금 나를 띄우면서 말하자면 대장전이라고나 할까?
나는 남아있는 달빛력을 확인했다.
-달빛력: 15000
반 정도가 줄어들어 있었고, 달의 축복을 2단계로 계속 시전하고 있는 탓에 지속적으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마계 특성상 소진을 해도,
회복이 되질 않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쉽게 쉽게 왔더니,
생각보다 잔여 달빛력이 많았다.
이 정도면 ‘달의 축복 4단계’를 시전해도 될 듯 싶었다.
괜히 간 본다고 소모전을 할 필요가 없었다. 소모전을 하면 나만 불리했다. 이곳은 마계였으니까.
지옥불 마녀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는 대충 알고 있으니, 초반부터 전력으로 간다.
“달의 축복 4단계.”
터질 듯한 힘이 내 몸을 충만하게 채우기 시작했다.
+ + +
힘듦을 피로도와 비례한다면, 단연 피로도가 가장 높은 이들은 치유사였다.
공격조든,
수비조든,
후방조든.
그들은 짧긴 해도 휴식 시간이 존재했다.
하지만 치유사에겐 조금의 휴식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재앙이 시작 된 이후로, 치유사들은 마나가 생기는 족족 치유 능력을 사용했고, 마나가 다 떨어지면 응급조치라도 해주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능력자 역할 분포도에서 인원이 가장 적은 축 중에서도 적은 축에 속하는 게 바로 치유사였으니까.
부상자는 날이 갈수록 증가 하는데,
치유사는 한정 되어 있고.
그냥 죽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시국에 사지는 멀쩡한데, 건드리면 칼을 꺼낼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치유사였다.
건들지 마라. 시발 진짜.
치유사의 전반적인 표정이었다.
하지만 단 한 명.
재앙이 시작되고 나서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린 적이 없던 치유사가 한 명 있었다.
“가..감사합니다.”
인사에도 무표정으로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는 치유사. 기계처럼 바로 옆에 환자를 돌보기 위해 이동했다.
이번에는 팔 한쪽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처럼 덜렁거리는 환자였다. 그의 팔에 닿을 듯 말 듯 자신의 팔을 가져다 댄 치유사.
“힘들지 않으세요?”
정해진 수순을 밟아가듯 치료를 하려고 할 때, 환자가 물었다.
힘들다.
하지만 이렇게 다친 사람들을 내버려두는 게 더 힘들다.
그래서 그냥 치료하는 중이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왜냐하면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하나님을 영접하기 위한 신자처럼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힘들다고 해버리면,
기다리는 환자들이 슬퍼할 테니까.
“이순신 헌터 학교 학생이시죠?”
이 환자는 말이 많다고 생각했다.
다친 상처가 많이 아프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환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본 것 같아요. 학교 대항전 할 때 폰으로. 아..으윽..”
일부러 상처에 손을 살짝 가져다 댔다.
그랬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 후로 10명이 넘는 환자를 돌 본 치유사는 병실을 스윽 둘러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름아, 오늘은 이만하면 됐어. 가서 쉬자.”
기다렸다는 듯,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웃으며 다가왔다.
조금 더 환자를 돌보고 싶었지만,
치유사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사제를 따라갔다.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치유사는.
박아름은 알고 있었으니까.
+ + +
치유사협회 건물의 상층부에 다과실.
문패는 분명 ‘소회의실’이라고 걸어놨지만,
박아름은 이곳이 다과실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곳에서 다과를 먹으며, 하하호호하는 소리밖에 들어보지 못 했으니까. 그러니 이곳은 회의 하는 공간이 아닌 담소를 떠들며 다과를 먹는 공간인 것이다.
호로록.
그래서 박아름은 테이블 중간에 산처럼 쌓여있는 과자를 자신 앞으로 끌어와서 차와 함께 먹는 중이었다.
박아름은 커텐 때문에 반쯤 가려진 창밖을 쳐다봤다.
우중충한 하늘과 우중충한 지상.
하지만 치유협 건물 주변만큼은 예외라고 말하는 듯 몬스터나 악마가 한 마리도 보이질 않았다.
치유협의 상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기가 빗겨갔다.
치유협은 그런 곳이었다.
마기마저 비켜가게 할 성스러운 곳.
호로록.
따뜻한 녹차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꿀렁.
그러다, 뭔가에 걸린 듯 멈춘 느낌이 들었다.
박아름은 앞에 보이는 과자를 아무거나 뜯어서 입에 집어넣었다. 요 근래 자꾸 이랬다. 자꾸 목에 걸렸다.
과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아름은 녹차를 입에 들이 부었다.
막힌 곳을 과자로 뚫어버릴 모양새였다.
하지만 배만 찰 뿐,
여전히 답답했다.
목인지,
아니면 다른 곳인지 어딘가가.
하지만 표정은 평온했다.
“아름아, 왔어?”
누군가가 다과실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성녀라고 부르는 여자였다.
재앙이 시작된 후,
박아름은 매일 같이 성녀와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이 시간은 필요한 시간이었다.
저들에게 있어서.
“오늘 어땠어?”
성녀가 어린 아이에게 말하는 것처럼,
맞은편에 앉아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조금 들이밀었다.
“....”
매일 같은 질문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도 박아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익숙하다는 듯이 성녀가 배시시 웃으며,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박아름은 과자 봉지를 뜯고 있는 성녀를 쳐다봤다.
항상 자신만 보면 웃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전혀 즐거워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슬퍼보였다.
저게 가증스러운 걸까?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진짜로 웃는 것 같았으니까.
“아름아 그거 알아? 사람들이 너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니요.”
“제2의 성녀라고 그러더라! 알고 있었어? 아름아?”
요 근래 환자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걸 듣기는 했다. 하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성녀라는 타이틀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거 맛있네. 이거 먹어봤어?”
성녀가 자신이 먹고 있는 과자봉지를 흔들었다.
박아름은 고개를 저으며,
창밖을 쳐다봤다.
무의미한 시간과 대화였다.
나라는 사람의 상태. 사실 지금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나라는 ‘것’.
어쩌면 그게 더 옳은 표현일지도.
나라는 것의 상태를 알기 위해 존재하는 이 시간. 이 시간 속에서 박아름은 매일 여러 명의 사람을 떠 올렸다.
친구.
그들과 있을 때는 즐거웠던 것 같은데.
특히..
“아름아 보고 싶거나, 만나고 싶은 사람 없어?”
“멍멍이.”
“응? 강아지?”
고개를 세차게 젓는 박아름.
“멍멍이가 강아지 아니야?”
강아지처럼 구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박아름은 친구들 중 그가 제일 좋았다. 머리를 쓰다듬으면 꼭 강아지를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민철씨한테 말해서 강아지 한 마리 데리고 오라고..”
똑똑.
누군가가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제였다.
그의 방문과 표정이 뜻하는 건 하나였다.
“내 딸! 내 딸을 내놔라!! 이 개 자식들아!!”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지상에서의 목소리.
목소리에 마나를 담았는지 고층까지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박아름이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박대식.
얼마 전까지 아버지였던 사람.
그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박아름은 큰 배신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곧 모든 게 끝날 테니까.
“아름아.”
다과실을 나갔던 성녀가 돌아왔다.
수습을 했는지,
더 이상 박대식의 목소리는 들려오질 않았다.
“싫으면 싫다고 해도 돼.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계속 웃는 얼굴이던 성녀의 얼굴이,
한 없이 진지했다.
저 말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오늘의 다과타임은 여기까지라는 것.
왜냐하면 마지막 말로 항상 저 말을 했으니까.
“괜찮아요.”
박아름은 대답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싫다고 했을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
자신들이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았던가.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적나라함 속에는 강요 아닌 강요가 들어가 있었다.
박아름은 그들의 바람대로,
해 줄 생각이었다.
자신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차피 싫다고 해도 선택권은 없었다.
선택권 없이 태어났으니까.
아니, 만들어졌으니까.
신수(神水)의 그릇으로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