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79화 (179/196)

179회

쌍둥이 마녀

8번 게이트의 속성은 불이었고,

9번 게이트의 속성은 얼음이었다.

하지만, 코어는 정 반대였다.

8번 게이트의 코어는 얼음이었고,

9번 게이트의 코어는 불이었다.

두 마녀는 잔머리를 굴렸다.

9번 게이트를 공략하려면 냉기 속성에만 신경 써서 올 것이다. 그러니, 코어를 반대 속성으로 치장하고 무장하면 아무리 적들이 쳐들어와도 코어는 무사할 것이다. 8번 게이트도 마찬가지였다.

두 마녀의 잔머리는 실제로 통하던 전략이었다. 내가 모니터로 이 세상을 관전하던 시절, 각 게이트의 속성을 파악한 협회가 화염 속성인 8번 게이트에는 그와 반대되는 물. 혹은 냉기 속성 능력자들을 투입했고, 냉기 속성인 9번 게이트에는 한태문의 태양 길드를 투입 했었으니까.

투입된 인원들은 힘겹게 끝에 다다랐지만,

코어를 파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후퇴를 해야 했고,

그동안 마녀들은 회복을 했다.

그래서 다 잡은 물기를 다시 잡아야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지만 이번 생은 나라는 치트키가 있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

‘모든 게이트는 한 번의 공략으로 끝낸다.‘

이번 재앙의 내 모토였다.

나는 마녀의 구슬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가며, 주변을 계속해서 살폈다.

“뭐지?”

혹한의 마녀가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함정인가?”

나는 만월검을 손에 쥔 채,

계속 눈으로 혹한의 마녀를 찾았다.

크르릉.(여기 아무도 없어, 주인.)

나보다 감각이 예민한 레이의 말에 나는 확신했다.

“집 나두고 어디 간 거야?”

짚이는 데가 없는 건 아니었다.

궁전 밖에 형성 되어 있는 거대한 포탈. 단순히 원군을 보내는 포탈 치고는 비정상적으로 크다고 생각을 하긴 했는데.

‘혹한의 마녀가 원군으로 넘어 간 건가?‘

“흠..”

나는 일단 앞에 보이는 9번 게이트의 코어를 파괴하기로 했다. 의문점은 8번 게이트에 가 보면 자연스럽게 해결 될 일.

눈앞에 먹음직스럽게 덩그러니 놓여있는 코어를 향해 만월검을 치켜들었다.

‘달빛 제 10초식. 1형.’

만월검의 검신이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레드문.”

붉게 물든 검신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리치왕을 죽일 때 한 번 사용했던 초식이자, 나 홀로 독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초식.

마지막 초식이니 만큼, 극의라고 표현을 해도 좋을 정도로 강력한 초식이었다.

임팩트와 사용 효과는 크게 화려하지 않았다. 어떤 것이라도 일격에 벨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과 예리함. 그게 전부인 초식이었다.

수수해보여도,

결코 수수하지 않았다.

나는 레드문 외의 다른 초식은 패시브처럼 사용 중인 달의 축복 말고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만월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코어를 감싸고 있는 불길은, 8번 게이트의 보스인 지옥불 마녀의 불길로 한설휘의 화염보다 고차원에 속한 불이었다.

그런 불길이 만월검에 닿자마자, 물을 끼얹은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갈라졌다. 갈라진 불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마녀의 구슬.

불길을 가르는 걸로 멈추지 않은 만월검이 그대로 코어를 향해 뻗어갔다.

콰직.

만월검에 닿은 코어에 금이 갔고,

속절없이 파편으로 변해갔다.

나는 게이트에 입성한 순간부터 달의 축복 2단계를 시전 중이었다. 달빛석을 흡수함으로써, 달빛력이 대폭 늘어난 후 달의 축복 2단계를 유지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도, 달빛력을 많이 잡아먹지도 않았다.

달의 축복 2단계와 더불어 레드문.

이 두 가지 능력으로 코어를 손쉽게 파괴 해버렸다. 다른 게이트의 코어는 몰라도, 8,9번의 코어는 파괴하는데 조금 애를 먹을 줄 알았는데.

들썩. 들썩.

우쭐거리는 어깨를 가만히 내버려두며,

레드문을 해제했다.

다시 새하얀 검신으로 돌아오는 만월검.

드드드.

쿠쿵. 쿠웅-!

지진이 난 것처럼 서서히 떨려오는 바닥과,

바닥으로 떨어지는 여러 조형물들.

코어가 사라짐으로서,

게이트가 닫히는 신호였다.

“운이 좋았네.”

우쭐거리는 어깨를 진정시키는 말을 작게 중얼거렸다.

말 그대로 운이 좋았다.

혹한의 마녀가 집을 비운 탓에,

무임승차처럼 코어를 파괴 했으니.

혹한의 마녀가 집을 비울 수 있는 근거는 제 딴에 많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어이없는 결과를 낳아버렸다.

“빠져 나가자.”

바닥에서 시작 된 균열이 바닥을 타고 올라와 천장까지 번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궁전이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나는 레이와 함께 궁전을 빠져나왔다.

“아..”

무너지는 궁전.

저 안에 사장되는 아이템이 도대체 몇 개란 말인가.

얼음 안에 꽁꽁 감쳐두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포인트 상점에 대량으로 저장해 뒀을 텐데.

코어를 파괴해도,

아이템 부분에 있어서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무너지는 궁전을 보고 있자,

화가 더 날 지경이었다.

한 번, 마공학자의 빈집을 턴 후 빈집털이의 맛을 알아버린 나였다.

“혹한의 마녀, 이거 만나기만 하면..”

말을 하며,

레이와 함께 발길을 돌려 게이트 입구 쪽으로 가려고 할 때.

내 눈에 보이는 8번 게이트와 이어진 거대 포탈.

“....”

원래라면 9번 게이트 입구로 나간 후,

8번 게이트로 가야했다.

하지만, 내가 저 포탈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굳이 빙 돌아서 가지 않아도 됐다.

저 포탈은 지름길인 셈이었다.

이용만 할 수 있다면.

나는 포탈 앞으로 다가가,

블랙홀과도 같은 내부에 손을 집어넣었다.

빨아들일 것처럼,

스산한 바람이 내 팔을 감쌌다.

나는 손을 도로 빼서,

육안으로 확인했다.

별 다른 이상은 없었다.

나는 몇 번 더,

손을 넣었다가 뺐다를 반복했다.

“여기로 들어가도 될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레이?”

내 말에 코를 킁킁 거리는 레이.

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나를 쳐다봤다.

크르릉..(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가자고 하면 가겠다.

라고 뒤에 작게 중얼거렸다.

“오케이. 몸에 달빛을 둘러. 혹시 모르니까.”

나는 말을 하며,

내 몸에 달빛을 둘렀다.

“고!”

레이가 몸에 달빛을 두른 걸 확인 한 나는, 레이의 등을 툭 치며 먼저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포탈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묘한 감각이 내 몸을 떠밀었다 .

누가 뒤에서 미는 것 같기도,

앞에서 끌어당기는 것 같기도 한 감각.

어두운 터널에 몸을 맡긴지 10초도 안 지났을 때, 암전 됐던 시야가 서서히 밝아졌다. 시야가 완전히 밝아졌을 때, 내 몸을 감싼 묘한 감각이 일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진 위에서 짓누르는 듯한,

중력.

나는 곧바로 플라이를 시전하며,

앞 쪽을 쳐다봤다.

다른데 세지 않고,

정확히 8번 게이트에 온 것 같았다.

왜냐하면.

“저..저..”

바로 앞에 혹한의 마녀의 등짝이 보였기 때문에.

혹한의 마녀는 지상을 내려다보며,

미친년처럼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웃고 있는 것 같은데.

얼마나 재밌으면 내가 온 줄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부들부들 거리는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다가, 만월검을 들고 아무런 예고 없이 혹한의 마녀의 등을 사선으로 그었다.

무방비 상태였기에, 크리티컬이 터진 것과도 같은 효과를 불러온 한 차례의 공격.

“아이템을 전부다 얼려놓으면 어쩌란 거야!! 어엉?! 하나도 못 챙겨왔잖아, 망할!!”

도둑질을 하러 간 도둑이 도둑질을 못해서 울분에 찬 목소리. 완전, 도둑놈 심보였지만 열이 받는 걸 어쩌리.

고통에 정신을 못 차리는 혹한의 마녀를 보며, 한 번 더 열을 올리려고 할 때 내 시선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으응??”

혹한의 마녀가 원군으로 참전을 할 정도로 공격조가 맹활약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내 눈에 보이는 지상은 패잔병들이 살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는 참혹한 현장이었다. 멀쩡히 서 있는 인간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인간과 눈이 마주쳤다.

“어어어?!”

내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번졌다.

창조 그룹과 오랜 연을 맺고 있는 길드의 수장이자, 한설휘의 할아버지인 한태문. 그가 상처 입은 맹수처럼, 등에 설민호를 업은 채 다소 무기력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세계적인 랭커와 견줄 정도로 강자였다.

그런 한태문의 무기력한 얼굴이라니.

아무래도 혹한의 마녀라는 ‘차질’혹은 ‘변수’가 이 사단의 지대한 공헌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계획대로라면 공격조는 피해를 입기는 했겠지만 8번 게이트를 클리어 했어야 했다.

내 착오였다.

그리고 내 판단 미스였다.

만에 하나 혹한의 마녀가 원군으로 합세할 것이라는 가정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고, 그 결과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였다.

한태문의 얼굴을 보던 나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고,

포인트가 아깝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상에 있는 인간들을 전부 저 상태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눈보라와 불보라가 몰아치는 환경은,

독에 감염 된 것처럼 상태를 빠르게 악화시킬 게 분명했다.

대부분이 길어야 10분도 넘기기 힘들어 보였다.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한태문도 30분이 최대로 보였다.

나는 무려 5천 포인트를 포션을 사용하는데 지불했다.

동상 특효약.

화상 특효약.

체력 회복 최상급 포션.

마나 회복 최상급 포션.

산삼으로 만든 기력 강화 특제 포션.

등등 현 상황에 맞는 갖가지 포션을 좋은 것들로만 대거 구매를 했다.

포션을 품에 한 아름 안고,

포인트 상점을 닫았다.

“여러분, 포션 비가 내려갑니다!”

닫자마자 지체 없이 포션을 지상으로 후두두 떨어뜨렸다.

“서진이냐!!”

한태문이 포션 다발을 게슴츠레 쳐다보다가,

나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어엇?!”

한태문의 목소리에 가시가 돋아나 있는 착각이 들었다. 어디 갔다가 이제야 왔냐는 책망하는 것 같았다.

나는 괜히 마음이 뜨끔해진 기분에,

괜히 그를 한 번 불렀다.

“어르신?!”

나는 몰랐어요.

아무것도 몰랐어요.

결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표정이 무섭도록 굳어가는 한태문. 어찌나 노했는지, 포션도 입에 대지를 않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레이의 등을 두드렸다.

“레이. 가서 포션 아무거나 입에 집어넣어.”

한태문의 노여운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전, 나는 레이를 향해 명령을 했다.

내 말에 나처럼 플라이를 시전하고 있던 레이가 공중을 가르며 한태문을 향해 발사되듯 날아갔다.

다행히 포션의 효과가 좋았는지,

한태문의 얼굴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 것도 같았다.

“이..인간 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드디어 정신을 차린 것인지 혹한의 마녀가 표독스럽게 눈을 치켜뜨며 나를 쳐다봤다.

“왜, 악마 년아?”

“뭐,뭣?”

“뭐, 이년아.”

“이..이..인간 놈이!!”

8번 게이트와 9번 게이트는 확실히 까다롭고 난도가 높았다. 극상이거나 극하의 온도를 불러오는 기후와 환경 때문이었고, 지금처럼 마녀의 지근거리까지 거리를 좁히기가 쉽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마녀는 분류하면, 직업으로 분류하면 마법사였다. 마법사는 근접전에 취약하다는 직업 약점은 마녀라고 해서 예외는 없었다.

내가 포탈에서 나오자마자, 다짜고짜 등을 벤 이유도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이템을 취하지 못한 분노는 절호의 기회에 공격력을 약간 더 가미했을 뿐이었다.

쌍둥이 아니랄까봐, 멀리서 지옥불 마녀가 이쪽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고 있었다. 지상에 있는 몬스터와 하급 악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표적은 오직 나 하나였다.

혹한의 마녀가 위기에 처한 탓도 있었지만, 지상에 있는 인간들은 이미 그로기 상태라 내버려둬도 괜찮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은데.

“쯔쯧.”

나는 혀를 찼다.

내가 지옥불 마녀였으면, 나를 일단 내버려두고 지상에 있는 인간들을 확인 사살을 했을 텐데. 참으로 아쉬운 판단이었다.

포션빨을 무시하고,

인간의 회복력을 무시하다가는 큰 코 다치지.

그렇고말고.

기왕 이렇게 나한테 이목이 집중 된 김에, 전세와 분위기를 한 번에 뒤바꾸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족들과 인간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을 때.

“블링크.”

혹한의 마녀 앞으로 이동했다.

“레드문.”

한낱 인간이 대악마를 단숨에 죽여 버리는 모습은 가히 전세역전의 신호탄이라 해도 무방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