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78화 (178/196)

178회

쌍둥이 마녀

서시우와 그의 매니지먼트(?)가 10번 게이트로 떠났다.

젤다가 레볼루션에 가담한 건,

정말이지 애석하고 뼈가 시린 일이 자명했다.

하지만 4번 타자 한 명 뺏겼다고,

게임을 지는 건 절대 아니었다.

젤다는 타자보다는 투수에 가깝긴 했지만,

어쨌든.

아직 세상에는 FA 신분의 유망한 신인들과,

베테랑들이 즐비했다.

좌절하고 있을 시간에,

내 할 일을 하나라도 더 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서 도착한 8번 게이트 앞.

공격조들이 안에서 활약을 하고 있는지,

밖으로 세어 나오는 몬스터는 많지 않았다.

공격조가 투입 된지,

오늘로써 4일차.

내 예상 보다, 클리어 속도가 빠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

인간의 발전은 곧, 나에게도 유의미한 일이었기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게이트 안에서 이상한 게 불쑥 튀어나왔다.

눈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마물이었다.

눈사람 괴물이 나오자마자,

나를 향해 눈덩이를 집어던졌다.

내 곁에 있던 레이가 눈덩이를 파괴하며,

녀석을 향해 ‘달빛 가르기’를 시전 했다.

달빛에 폭파되다시피,

없어진 눈사람 괴물.

별 것도 아닌 놈이었지만,

녀석이 시사 하는 바는 별 게 아닌 게 아니었다.

8번 게이트와 9번 게이트가 아무리 연결 된 쌍둥이 게이트라고는 해도, 9번 게이트의 몬스터가 이렇게까지 8번 게이트 입구로 나오지는 않았다.

“....”

나는 말없이 9번 게이트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거리상 지하철 10정거장 너머에 9번 게이트가 있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그곳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줄어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지원 병력을 8번 게이트에 보낸 거야?‘

8번 게이트로 9번 게이트 몬스터가 나온 건, 8번 게이트 안에 그만큼 9번 게이트 몬스터가 많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는 건.

9번 게이트 내부는 널널하다는 뜻?

“오호.”

이러면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혼자서 9번 게이트 공략에 나서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8번 게이트에서 지원군이 오기는커녕,

9번 게이트에서 지원군을 보내주고 있는 입장이니.

내가 가서 난리를 피워도 8번 게이트에서 지원군이 올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마공학자의 빈집에 이어,

혹한의 마녀 빈집이라니.

“이번에는 어떤 아이템이 있을까나~”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8번 게이트가 아닌,

9번 게이트를 향해 날아갔다.

+ + +

“화산(火山).”

한태문의 말 한 마디에,

말 그대로의 불의 산이 혹한의 마녀 앞에 나타났다.

거대한 장벽과도 같은 불의 산.

지옥불 마녀의 불과 비견 될 정도로,

대단한 능력이었다.

오죽하면 혹한의 마녀도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한태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후퇴해라!!”

몸의 반이 얼어붙어 있는 한태문이,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소리를 질렀다.

공략 실패였다.

다른 게이트에 비해 이번 게이트는 차원이 달랐다.

우선적으로 혹한의 마녀를 처치 후,

지옥불 마녀를 처치한다는 계획은 허황된 꿈이었다.

혹한의 마녀와 지옥불 마녀.

두 마녀는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고 스킬을 사용했다.

동시에 공략하는 게 아니면,

이 싸움은 승산이 없었다.

한태문의 말에 응하는 능력자는 많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눈에 파 묻혀있었고,

많은 이들이 화상을 입은 채 목을 잡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러다 전멸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화산 폭발(火山 爆發).”

한태문이 만들어낸 불의 산이 폭발하듯이 터져나갔다. 혹한의 마녀가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데미지를 주려는 생각이 아니었다.

시간벌기용이었고, 한태문의 바람대로 약간의 시간을 벌었고, 한태문은 지상으로 착지를 했다.

그나마 설민호를 비롯한 스카이 길드가 분전을 하고 있었지만, 말 그대로 분전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분전하는 대상은 마녀가 아닌 마물들이었다.

“설민호 길드장!!”

앞에 보이는 화염차(火焰車)와 화염차를 이끄는 화마(火馬)를 베어 넘긴 설민호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한태문을 쳐다봤다.

눈썹 위에 눈이 얹어져 있었고,

코는 불에 그을려있었다.

입술은 동상에 걸린 듯 새파랗게 질려 있었지만, 볼은 홍조를 띈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비틀비틀.

문제는 외상이 아닌 내상이었다. 급격한 온도 차이가 계속 됨에 따라, 신체 내부가 적응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찬 데 있다가 갑자기 따뜻한 데 들어가면 순간 현기증이 살짝 나는 정도가 아니었다. 장기가 뒤틀리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비틀거리는 설민호를 등에 업는 한태문.

“정신 차리게!! 지금 거동이 가능 한 자는 당장 이곳에서 빠져나가! 당장!!”

소리 없는 메아리였던 것일까?

아무도 빠져나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니, 아무도 빠져나갈 기력과 정신이 없었다.

“크으윽..”

한태문의 별명은 전장의 화신이었다.

무수히 많은 전장에서 살아남았고,

어떠한 전쟁에서든지 승리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임기응변이 들어 있었고, 위기 돌파 능력 또한 발군이었다.

하지만 현 상황은 아무리 한태문이라도,

대처 방법이 전혀 떠오르질 않았다.

혹한의 마녀와 몇 합을 나눈 후, 곧바로 후퇴 명령을 내렸지만 그것도 느린 판단이었다.

‘도대체 지금 나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가.’

상황은 점점 극악으로 치닫고 있었고,

한태문 역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최선의 판단은 하나였다.

여기 있는 공격조 인원들을 버린 채,

혼자서 탈출을 한다.

그리고 내부에서 일어난 상황을 보고하고,

그에 맞는 대책. 혹은 공략 방법을 세운다.

이대로 전멸한다면,

내부에서 일어난 일은 아무도 모르게 된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살아남으면,

차후를 도모할 중요한 정보를 인류는 습득할 수 있었다.

한태문은 혼자서라면,

탈출이 가능해 보였다.

‘많이 나약해졌군, 한태문.’

한태문은 자조하듯이 웃었다.

또래는 전부 은퇴하거나, 2선. 혹은 3선에 물러나 있는데 자신 혼자만 1선에서 길드장 노릇을 하고 있는 이유는 전장이 좋아서였다.

그리고 전장에서 함께 하는 동료가 좋아서였다.

치열한 전장에서의 피어난 동료애.

군대로 친다면 전우애.

그런 것이 한태문은 좋았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절대 느끼는 못하는 감정.

방금 든 판단은 나이가 듦에 따라 나약해져서, 본인도 모르게 혼자만 살 궁리를 한 게 분명했다. 한태문은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금 최선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려고 했다. 시간과 여건이 허락한다면.

“길드..장님. 버리고.. 도망치십시오.”

등에 업혀 있는 설민호가 웅얼거리듯이 말했다.

“조용히 있게.”

“도망..치십시오.”

“어허. 다행히도 아직 죽은 이는 많지가 않아. 우리를 가지고 놀다 죽이려는 모양인지, 얼렸다가 녹였다가 하며 장난을 치고 있네. 그러니 최대한 많은 인원을 살려서..”

설민호에게 말을 하기 보다는,

독백에 가깝게 말을 하던 한태문.

혹한의 마녀가 나온 통로에서 아직도 끝이 아닌지 뭔가가 튀어나왔다.

우리 원군은 없는데, 적은 더 늘어만 가는 실정에 한태문은 쓰게 웃었다. 악마가 괜히 악마가 아닌지, 참으로 악독한 녀석들이었다.

“음?”

한태문이 못 볼 걸 본 것처럼 눈을 여러 차례 깜빡였다.

“같은 편이..아닌가?”

통로에서 나온 늑대형 마수 한 마리와, 인간형 악마 한 명. 통로에서 나오자마자 불같이 삿대질을 하며 화를 내더니, 허리춤에 있는 검으로 혹한의 마녀를 베어버렸다.

상처가 깊은지, 일시적으로 눈보라가 멈췄다. 눈보라 밑에서 활기차게 인간들을 학살하던 몬스터들 역시 움직임을 멈췄다.

지옥불 마녀와, 그녀의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간 정전이 된 것처럼,

적막이 가려 앉은 가운데 누군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는 통로에서 나온 인간형 악마의 것이었다.

“아이템을 전부다 얼려놓으면 어쩌란 거야!! 어엉?! 하나도 못 챙겨왔잖아, 망할!! 으응??”

소리를 지르던 인간형 악마.

고개를 갸웃하며 지상을 내려다봤다.

“어어어?!”

당황한 얼굴 표정을 짓더니,

무언가를 고민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사라진 신형.

그가 다시 나타났을 때는, 품에 뭔가를 잔뜩 안은 채였다. 멀리서 보기에는 포션으로 보였다.

“가만.”

악마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보던 한태문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악마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노안이 온 것인지,

악마의 얼굴이 꼭 자신이 아는 그 녀석과 닮아 있었다.

“여러분, 포션 비가 내려갑니다!”

품에 안고 있던 포션 다발을 지상으로 뿌리는 악마. 목소리도 자신이 아는 그 녀석과 닮아 있었다.

“서진이냐!!”

한태문이 공중에 떠 있는 악마를 향해 소리쳤다.

“어엇?!”

자신을 쳐다보는 악마가 당황한 듯,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어르신?!”

어르신이라니.

서진은 자신을 ‘할배’라고 칭하는데.

역시 저 놈은 악마가 틀림없다.

이 모든 건 저놈들이 희망고문을 주기 위한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희망고문 후 맞이하는 절망이 더 깊은 법이니까.

“다들 포션을 사용하지..”

말을 하던 자신의 입에 뭔가가 덥썩, 물렸다.

크르르.

웬 하얀 늑대 한 마리가,

손으로 포션병을 자신의 입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읍읍..”

거부하려고 했지만, 뭔 놈의 늑대가 힘이 이렇게도 쎈지..

‘이 녀석은..’

서진이 데리고 다니는 늑대인데.

“최상급 포션인가 봅니다. 근데, 서진씨가 왜 저 통로에서 나왔을까요?”

등에 업혀 있던 설민호가 멀쩡해진 목소리로 등에서 내려왔다.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목젖까지 찌르는 포션을 마시는 한태문.

“어르신..이라고?”

한태문은 설민호의 말이 아닌, 다른 말에 포인트가 꽂혀 있었다.

몸이 빠른 속도로 치유 되는 걸 느끼며,

서진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어르신..”

저 놈이 진짜 서진이 맞다면.

이러한 호칭의 변화는..

‘설휘와 결혼을 하기 위해, 미리 내게 잘 보이기 위함?!’

이미 승낙을 할 생각인데.

녀석, 참.

참..녀석도.

허허, 참.

기특하도다!

+ + +

“와..진짜....”

9번 게이트 끝자락에 위치한,

얼음 왕국.

왕국을 지키는 아이스 골렘을 전부 때려눕히고, 궁전에 입성을 했다.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8번 게이트로 넘어갔는지 이곳까지 거의 무혈입성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진짜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혹한의 마녀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보이는 마녀는 안 보이고 금은보화가 가득한 창고들만 보였다.

그래서 조금 슬쩍 하려고 했더니,

전부 얼려놓아서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한설휘의 능력이 있었고,

불로 녹이려고 했다.

“엥?”

얼음 표면만 살짝 녹을 뿐이었다.

“소각. 장작 태우기!”

아무리 애를 써도,

이걸 녹이려면 한 세월이 걸릴 것 같았다.

“아..”

나한테는 오래전 레인보우 새의 둥지에서 얻은 속성 반지가 있었다. 30%의 각 속성 저항력이 있는 반지. 그 덕에 추위에 대한 저항력이 생겨 어찌어찌 견디고는 있었지만, 점점 콧물이 나올 정도로 춥게 느껴졌다.

이걸 녹이다가, 내가 먼저 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소각. 소각. 소각.”

미련 없이 각 방마다,

한 번씩만 시도해봤다.

혹시나 동결 마법이 약하게 걸린 곳이 있을까 싶어서.

미련은 없다.

그냥 혹시나..

“어디 간 거야?”

50개의 방을 미련 없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렀고, 나는 울컥하는 마음으로 혹한의 마녀를 찾아다녔다.

어디에도 혹한의 마녀가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마녀를 찾아 돌아다니던 중,

발견한 마녀의 방.

마녀의 방 안쪽에,

누가 봐도 특이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그 안에 보이는 여의주 같은 구슬.

“코어네?”

뭐지?

코어도 내팽겨 치고 도대체 어디 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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