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76화 (176/196)

176회

젤다의 거취

“여어어~”

정시아가 장난스럽게 양 손을 흔들었고,

“서진아!”

한설휘가 발그레한 얼굴로 내 품에 달려오다가 멈칫했고,

“흐음.”

금석이 나를 보고 콧김을 한 번 뱉어냈다.

멍멍!

뚜뚜는 프로펠러처럼 꼬리를 흔들며,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다가 레이를 발견하곤 그리로 뛰어갔다.

제법 오랜만에 얼굴을 봐서 그런지,

반가웠다.

지금이 이른 아침만 아니었으면,

더 반가웠을 텐데.

아침 7시.

내가 간다니까 굳이 이 시간에,

오피스텔로 찾아왔다.

“휘뚜루~ 마뚜루~”

이 녀석은 왜 출근 안 하나 했다.

“여전히 귀엽네, 귀요미들~ 휘뚜루~”

나타나자마자 레이와 뚜뚜의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상황과 분위기가 평상시 같았지만,

지금은 엄연한 전시상황이었다.

일찍 일어나서 눈이 무겁긴 했지만,

나는 동물들은 내버려두고 인간들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바로 용건으로 들어갈게.”

회포를 풀고, 간단하게 아침이라도 차려 담소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지금은 전시상황.

단도직입적인 내 말에, 한설휘와 정시아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술과 눈썹을 달싹였다. 하지만 별다른 태클은 걸지 않았다.

“시우 좀 도와줘.”

“시우?”

“네 동생?”

정시아와 한설휘가 의아해하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반면, 시우라는 말에 금석이 주먹을 쥐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100전 100패였나, 200전 200패였나.

금석은 학기 중에 한 번도 서시우에게 대련을 이긴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걸 가지고 악감정을 가질 녀석이 아니기에 나는 계속해서 말을 했다.

“10번 게이트에 들어가는 일이야.”

시우라는 이름보다, 녀석들이 더 흥미를 가질만한 요소를 꺼냈다.

후방조라 몸이 한창 근질근질 거리던 차에,

내 말은 효자손처럼 들릴 터.

역시 내 짐작이 맞았는지,

세 사람의 몸이 내가 있는 쪽으로 기울었다.

“부담스러우니까 쫌 떨어져. 시우. 너도 같이 와서 들어. 네 일인데, 너도 들어야 할 거 아니야.”

나는 발로 계속 다가오는 세 사람의 허벅지를 밀어내며, 서시우가 있는 방을 쳐다봤다. 반 쯤 열려있는 방에서 서시우가 쭈뼛거리며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 미안한 건지,

아니면 형의 친구들이라 불편한 건지.

고개를 숙이며 어색하게 웃는 서시우.

거실을 스윽 둘러보는 척,

부자연스럽게 창가 쪽에 착석을 했다.

“시우야!”

어릴 때부터, 누나 동생 사이인 한설휘가 엉덩이를 들고 정답게 이름을 부르며 서시우 곁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오~시우. 더 잘생겨진 것 같은데? 누나한테 장가올래?”

정시아가 눈웃음을 치며,

말을 했다.

“큼..”

금석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서시우를 한 번 노려볼 뿐 별 다른 반응은 없었다.

우당탕탕!

주방 쪽에서 들리는 난잡한 소리.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오랜만에 재회한 동물들이 신나게 친목질 하는 소리였으니까.

짝!

“자, 그럼.”

나는 손뼉을 한 번 치며,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공격조가 8,9번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10번 게이트에 진입하기 전, 한 발 먼저 10번 게이트에 진입을 해서 어딘가에 있을 서시우와 계약할 악마를 찾아 계약을 해라.

계약 후,

공격조가 투입하기 전 무사 귀환 하라.

짧게 내 계획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한 번, 루시퍼와 계약을 한 전적이 있는 서시우였기에 발품을 팔아 계약을 해야 했다. 그게 아니라, 가만히 기다려도 악마들이 알아서 계약서를 들고 찾아 올 테지만 불법이나 악랄한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루시퍼와 계약을 했던 인간.

계약 파기 이유가 루시퍼의 죽음이었다.

이러한 사유와 이유는 서시우에게 관심을 가지던 품질 좋은(내 기준에서) 악마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 충분한 이유이자 사유였다.

남은 건,

불순물 같은 진짜 악마들 뿐.

그랬기에,

서시우는 직접 계약서를 들고 발품을 팔아야 했다.

혼자 발품을 팔기에는 환경이 너무 위험하니,

동료가 필요한 거고.

“핵심은 공격조가 투입하기 전에 게이트를 빠져 나와야 한다는 거야.”

10번 게이트는 다른 게이트와 비교했을 때,

특수하다고 할 만한 게이트였다.

특수보다는 게이트의 주인이자 군주인 디아블로가 너무 자만과 오만으로 똘똘 뭉쳐 있다고나 해야 할까?

녀석은 인간계에 간섭을 2회차 하고 있었지만,

달라진 게 딱히 없었다.

아니, 하나 있긴 했다.

디아블로 본인의 힘이 1회차에 비해 조금 더 강해진 것. 녀석이 1회차와 같은 태도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마 그 때문이리라.

어쨌든, 다시 얘기를 돌아와서.

10번 게이트를 하나의 나라라고 치면 10번 게이트는 제국이었고, 다른 게이트는 왕국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왕국들이 줄줄이 멸망해도 제국은 평온했다.

왕국은 그저 약했을 뿐이다.

그저 그 뿐.

제국은 경각심을 가지고 있을 뿐, 제국의 수도인 ‘마왕성’을 공격하기 전까지는 제국의 모든 악마가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전쟁이 발발 했다고는 해도,

일반 시민 축에 속하는 악마들은 제 할 일을 했다. 왕국처럼 만백성이 눈을 뒤집고 인간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게 아니라.

농사짓는 악마는 농사를 짓고,

노동하는 노동자는 노동을 했다.

하지만, 공격조가 투입이 되고 마왕성을 공격하는 순간.

농기구를 들고 봉기를 하듯,

눈을 왕국의 백성처럼 까뒤집었다.

마왕성이 여왕벌인 셈이었다.

그러니, 벌집을 건드리기 전 작전을 완수해야 했다. 만약, 작전 시간이 길어져 고립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공격조에 합류하면 되는 거지?”

정시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벌집을 건드리고 탈출을 하는 것보다,

양봉업자 곁으로 가는 게 더 안전하니까.

“형, 누나. 제가 꼭 보답하겠습니다.”

아까의 어색함은 어디 갔는지,

서시우가 눈을 빛내며 형, 누나들을 쳐다봤다.

“근데, 서진아. 본부에는 뭐라고 말해? 우리 후방조로 편성 돼 있어서, 마음대로 자리 비우면 쫌 그런데.”

한설휘의 우려에,

나는 핸드폰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걱정 하지마. 너희 오기 전에, 이미 조치 취해놨어. 채린씨가, 일어났더라고. 그래서..”

나는 말을 하며,

정시아를 쳐다봤다.

재밌겠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이고 있던 어깨의 무브먼트가 사라지고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부탁 좀 했지. 채린씨가 후방조 대장이잖아. 야, 괜찮냐?”

“....”

아무런 티도 안 내고, 별다른 말도 없길래 괜찮은 줄 알았는데.

초창기 채린의 동생이자, 정시아의 친언니 같던 채리나가 카멜레온한테 죽었다. 그런데 이번에 채린까지 죽을 뻔 했다.

정시아가 이 세상에서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는 인물은 내가 빙의하기 전까지만 해도 채리나와 채린 두 사람이 전부였다.

지금은 꽤 전개가 달라져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정시아에게 채린은 부모 이상의 존재였다.

“뭐가? 뭐가, 괜찮아? 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뒤늦게 씩씩한 척 말해 봐도,

이미 늦었다.

나는 테이블에 있는 티슈를 뽑아,

정시아에게 건네며 말을 했다.

“내일이면 퇴원하고 정상적인 활동도 가능하다니까, 너무 걱정..”

나는 말을 삼켰다.

채린이 이강석에게 당했을 당시만 해도,

너무 화가 났다.

그런데 그 후에.

‘나는 채린을 떠 올리며 걱정한 순간이 한 순간이라도 있었나?’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으면서.

“....”

너무 이 세계를 구해야한다는 압박감이라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에 동기화를 끝낸 나머지, 역설적으로 현실 감각이 무뎌져 내려버린 것일까?

우당탕탕!!

아주 작고, 사소한 포인트에서 시작된 사색. 해답은 인간의 존재이유를 생각하는 것처럼 깊은 심연과도 같았다.

쿠당탕탕!!

나는 고개를 들었다.

주방 쪽에서 레이가 후라이팬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거실 쪽으로 스윽 얼굴을 들이밀었다.

크르르.

그러더니,

나를 보고 웃는다.

피식.

그 모습에 나도 따라 웃었다.

“야! 야아아아!!”

정시아가 내 귀에 소리를 질렀다.

“아, 시끄러!”

나는 정시아의 얼굴을 밀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데, 10분 동안 멍하니 있냐? 불러도 대답도 없고.”

“서진아 괜찮아?”

“아프면 말해라.”

10분?

몇 초 생각한 것 같은데.

나는 걱정하는 이들의 면면을 쳐다봤다.

다들 얼굴은 달라도 표정은 비슷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들.

정시아를 보니, 눈가에 보였던 촉촉함이 사라져 있었다.

“슬슬, 일어날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답도 없는 생각이 미친 듯이 머리를 두드릴 때는, 단순하게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였다.

“무슨 생각 했냐니까? 전여친 생각이라도 했냐?”

정시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녀의 물음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한설휘가 멈칫 몸이 굳었다. 굳은 자세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나를 쳐다보는 한설휘.

“모태솔로인데, 전여친은 무슨.”

생각해보니, 지금 생도 그렇고 전생에도 모태솔로였던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뻣뻣해 보이는 한설휘를 쳐다봤다.

어쩌면 이번 생은 다를지도.

“너도 모태솔로잖아. 정시아.”

내 말에 흠칫 몸을 떠는 정시아.

“아,아니거든!”

아니면 아니지,

왜 치부를 들킨 것처럼 얼굴이 시뻘게질까나?

띠리링~ 띠리링~

홍시가 된 정시아의 얼굴을 보며,

더 놀리려고 할 때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만물상.

“음?”

이 양반이, 이시기에 무슨 일이람.

한국에서 추방 된 후에,

거의 처음이었다.

“나 전화 좀. 계획은 설명해줬으니까, 각자 준비할 거 있으면 준비해서 오늘 늦지 않게 출발 해.”

나는 말을 하며,

서시우가 나온 방으로 들어갔다.

“여보세요.”

-야이 새끼야!!

받자마자,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우리 린이 다쳤다며!! 왜 말 안했냐고! 죽고 싶냐!!

우리?

린이?

우리 린이는 알까?

만물상이 자신을 어떻게 칭하는지?

“어떻게 아셨어요?”

만물상의 직업은 아이템 수집가였고,

직업 특성상 세계 각지에 인맥이 파다했다.

한국에도 인맥이 장난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내 생각보다 인맥이 더 대단한지 채린이 다친 것까지 알았다.

-그게 중요하냐? 어때? 상태는? 포션 좀 보낼까? 아니면 랭커 중에 내가 아는 치유사가 한 명 있는데, 그 놈 보내주리?

호들갑은.

이미 그의 대뇌망상 속에 채린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훤히 보였다.

“괜찮대요. 오늘 아침에 연락 왔어요.”

-아..그래? 근데 왜 나한테는 답장이 없지? 100통 넘게 보낸 것 같은데. 아, 하긴. 내 답장은 너와는 달리 정성스럽게 쓰려면 시간이 걸릴 법도 하니까.

“....”

-그건 그렇고 현재 한국 상황은 어떠냐? 지금 다른 나라들은 난리도 아니다, 난리도. 아프리카 쪽은 완전히 마계화 됐다니까?

이번 재앙인 마계 침공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 된 재앙이 아니었다. 세계 각지에 마계 게이트가 열렸다.

다만, 최종 보스인 디아블로가 한국에 원한이 있는 관계로 한국이 조금 더 빡센 상황인 것만 빼면 세계 각지는 지금 전쟁 통이었다.

아프리카가 마계화 되는 건,

예정 된 수순이었다.

다른 나라는 조금 애를 먹고 있긴 하겠지만, 한국이 디아블로를 잡아주기만 하면 전체적으로 악마의 힘이 약화가 되니까 빠르게 정리할 수 있을 터.

나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간섭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원래 스토리대로.

그 이유는 난세에 영웅이 등장하는 법이었고, 이번 재앙을 토대로 내가 좋게 봐 둔 능력자들이 발 돋음을 하기 때문에.

쉽게 말해 자양분인 셈이었다.

-야, 서진아.

국제적인 이슈에 대해, 실컷 떠들던 만물상이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내 이름을 불렀다.

“예.”

-유물들과, 랭커들이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재앙은 또 다른 누군가의 자양분이기도 했다. 이번 재앙은 레볼루션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시기였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만물상의 입에서 거론 됐다.

-최상위 랭커 중에서는 젤다가 사라졌다.

“..젤다가요?”

-그래.

젤다라니.

‘이건 쫌..’

문제가 되겠는데.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