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75화 (175/196)

175회

루시퍼

“동생이야?”

“응.”

나는 세리나의 말에 대답하며,

내 허벅지에 누워 있는 서시우를 내려다봤다.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서시우는 내가 포인트 상점에서 사온 포션으로 빠르게 외상이 치유 되고 있었다.

그 덕에 점점 호흡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나는 전방을 쳐다봤다.

복날에 개 패듯이 협회장에게 뚜드려 맞고 있는 현생한 루시퍼. 결과적으로 보면 성공적으로 루시퍼를 소환했다. 그 덕에 서시우의 몸에서 루시퍼가 나갔고.

다만 소형차 크기의 마정석이 3분의2가 줄었고, 루시퍼의 몸이 배터리가 다 한 것처럼 투명해졌다. 급조한 탓에 완벽하게 소환을 하지 못했고, 루시퍼는 곧 소환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단시간에 미친 듯이 쳐 맞고 있으니까.

‘대단하네.’

나는 협회장의 무력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루시퍼를 어린아이 데리고 놀 듯 다루고 있었다.

협회장은 일반적인 능력자와 다른 에이징 커브를 그렸다. 일반적인 능력자는 나이가 들며, 기량이 쇠퇴했다. 하지만 협회장은 나이가 들수록 상승곡선을 그렸다.

나이로 인한 신체적인 부분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의 능력만큼은 시간이 지날수록 농익는 능력이었다.

이무기로 시작한 그의 능력이,

이제는 용과 근접해 있었다.

“어딜 자꾸 한 눈을 파느냐.”

루시퍼는 협회장과 싸움이 안 된다고 판단을 했는지, 자꾸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협회장에게 가로 막혔다.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푸른빛의 마나가 루시퍼를 감싸듯 튀어 올랐다.

승천한 마나는 폭포수처럼,

루시퍼를 향해 내리쳤다.

“크아아!!”

루시퍼의 비명.

서시우의 몸에 빙의 했을 때는,

실실 웃더니.

꼴좋다.

“협회장님 나이스샷~”

“회장님, 다시는 발도 못 딛게 다리몽둥이를 확 분질러 버리시죠!”

“협회장님, 나 죽어. 꺄아아~”

“오빠 나 죽어! 덜렁덜렁~”

관중이 그새,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재앙의 원흉인 악마를 협회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이가 시원하게 패고 있는 모습은 꽤나 그들에게 쌓여있는 피로도를 쾌감으로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음?”

어디서 덜렁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끄으으..”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서시우가 신음을 하며 눈꺼풀을 들썩였다.

“깼냐?”

“으으..형?”

아직 눈을 뜨지도 않았는데,

목소리를 알아듣다니.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우애가 이렇게나 깊어졌나?

뿌듯함을 느끼며,

서시우가 눈을 뜨기를 기다렸다.

눈꺼풀이 무거운지 여러 번 달싹이던 서시우가 반쯤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봤다.

“형..”

말을 하는 서시우의 눈과 표정이 죄인처럼,

가라앉았다.

“내가 뭐랬어. 루시퍼는 아니라고 했지?”

“..미안. 흐..윽..”

아무리 능력자 사회고,

능력이 강하다고는 해도.

서시우는 아직 10대 후반에 불과했다.

많이 무서웠을 테고,

감당하기 벅찼을 테지.

“내가 다 수습했으니까, 걱정 말고 자고 있어. 일어나면 얘기하자.”

나는 말을 하며 반쯤 떠 있는,

서시우의 눈꺼풀을 손으로 내렸다.

별 저항 없이 감긴 서시우의 눈꺼풀.

눈꺼풀이 젖어드는 걸 보며, 나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안 본 사이,

루시퍼의 오른팔이 있던 곳이 허전해져 있었다.

곧, 다른 신체부위도 신체에서 탈락할 예정이었지만 하나하나 맛보고 뜯고 즐길 시간이 없었다.

“협회장님, 마무리 하시죠!”

“그럴 참이었다.”

내 말에 시종일관 뒷짐을 지고 있던,

왼손을 앞으로 가져가는 협회장.

양 손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마나가 꽈배기처럼 뒤엉키기 시작하더니, 용의 머리로 변해갔다.

“하찮은 인간들이!!”

루시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화가 나서 주체를 못할 것 같은,

얼굴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루시퍼는 나와 레이가 협공을 해도 현재로는 이기기 힘든 상대였고, 앞서 말했듯이 녀석은 거의 1인 군단과도 같은 악마였다.

충분히 화가 날만도 했다.

상대가 인간 최강,

협회장이 아니었다면.

무대가 인간계가 아닌,

마계였다면.

녀석은 충분히 화를 재앙으로 바꿀 수 있을 힘을 가지고 있었다.

“혼자 갈 것 같으냐!!”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 듯,

루시퍼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폭파하듯이 발사 됐다.

협회장의 용머리가 루시퍼를 집어삼킨 건,

시간상 0.1초 정도 후였다.

찰나보다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 정도로 짧은 시간에, 루시퍼가 발산한 투사체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용의 아가리를 피해 수십 가닥이 관중들을 향해 쇄도했다.

협회장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대응을 하고 싶었지만,

달빛력도 체력도 모든 게 고갈 된 상태라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빛의 가호.”

그때 내 바로 옆에서 들리는,

나지막한 중얼거림.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빛에 비친 거울과도 같은 배리어가 생겨났다.

슥. 슥.

배리어에 잡아먹히듯,

사라지는 검은 투사체들.

루시퍼의 최후의 발악은,

한 여자로 인해 아무 일도 일어나질 않았다.

“뭐야? 뭐지?”

나는 황당한 얼굴로,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세리나를 쳐다봤다.

“너 뭐야? 뭔데?”

황당하다.

그저 황당하다.

아무리 각성하면 곧바로 만렙인 건 알고 있었지만, 루시퍼의 젖 먹던 힘이었다. 그걸 우산으로 소나기를 막듯이 쉽게 막아버리다니.

역시..

처음부터 공들인 보람이 있었구나!!

+ + +

“비켜. 내가 죽일게.”

정시아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한설휘와 금석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휴.’

정시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정시아라고 해서 사람을 죽이는 게 쉬운 건 아니었다. 아무리 악마의 열매를 먹었다고는 해도. 더더욱 그게 같은 학교 학생이라면.

“20명 째야, 20명.”

정시아가 넌덜머리난다는 듯 중얼거리며, 반 죽어 있는 앳된 남학생의 머리를 단검으로 푹 찔렀다. 머리에 이어 급소란 급소는 죄다 찔렀다.

악마의 열매를 먹은 인간은 쉽게 죽지 않았다. 흡사 좀비처럼. 그간 후방조로 활동하며 얻은 데이터였다.

확실히 죽이기 위해서는,

찢어발기는 수준으로 숨통을 끊어야 했다.

“윽..”

뇌수와 내장이 쏟아져 나왔고, 정시아의 가슴이 금방이라도 토를 할 것처럼 울렁거렸다.

“후우..후..”

가까스로 구역질을 참은 정시아.

쉼 호흡을 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시체에게서 몸을 돌렸다. 잔뜩 움츠려 있는 한설휘와 금석이 존경한다는 시선을 보내왔다.

‘나 되게 여리고 이슬 같은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아주 센 캐릭터였다.

사람도 아주 막 죽여 버리는.

정시아는 아무 티를 내지 않으며,

그들에게 걸어갔다.

단검에 묻은 피와 잔해물은 마나로 날려버렸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악마의 열매를 먹은 인간은 모조리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살려둘 수가 없었다.

그 말은 누군가는 손에 피를 묻혀야 했다.

그 누군가가 이 파티에서는,

공교롭게도 자신인 것뿐이라고 정시아는 생각했다.

“덩치 값 좀 해라. 덩치 값 좀.”

화를 낼 수도 없고.

괜히 손바닥으로 금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게 싸우는 걸 좋아하는 놈이,

죽이지는 못하겠다니.

이런 전시상황에서.

보통 호전적인 성격일수록,

이런 상황에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앞에 나서지 않나?

‘알다가도 모르겠네, 모르겠어.’

주인을 닮았는지, 뚜뚜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석의 가랑이 사이에 숨어서 앞발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는 뚜뚜.

‘이건 짐승이야, 사람이야?’

“다..다음에는 내가 죽여 볼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말하는 한설휘.

이 얘기만 19번째다.

“여..역시 마귀..”

이 얘기 역시.

두 사람의 똑같은 래퍼토리를 들으며,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는 정시아.

“오? 뭐지?”

“왜? 왜에?”

“뭐냐?”

핸드폰을 보는 정시아를 향해 한설휘와 금석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5번 게이트랑 7번 게이트, 클리어 했다고 나와 있는데? 아 쫌, 님들 머리 좀? 그리고 내가 알려줬잖아. 협회 사이트 들어가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정보 알 수 있다고.”

“배터리가 없어.. 시아야..”

“집에 놓고 왔다.”

진짜, 휴.

“5번 게이트면 서진이가 혼자 들어간 데 아니야? 그럼 혼자 클리어 했다는 거네? 게이트 하나를? 우와~!”

“뭐야 그 리액션?”

“아니, 그렇잖아 시아야.”

“그렇긴 한데, 그런 리액션은 너무 작위적일 정도로..뭐지, 그 표정? 표정은 전혀 작위적이지 않네?”

얼굴에 홍조가 떠올라 있는 한설휘.

수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서진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

받아들이는 감정이 남다른 건가?

정시아는 서진이 5번 게이트를 클리어한 소식을 보고, 별 감흥이 없었다.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고나 할까?

애초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서진이니까.

“역시 내 라이벌답군.”

“음?”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정시아가 금석을 쳐다봤다.

이 녀석 표정도 한설휘 못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흥분한 기색을 보였다.

“서진이 언제부터 네 라이벌이었어? 황금돌대가리, 네 라이벌은 걔..삐죽머리 있잖아. 이름이 류진이던가? 아무튼 걔잖아.”

“내가 인정한 라이벌은 서진뿐이다.”

“걔도 그렇게 생각한대?”

“....”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법이란다. 알겠니, 골드스톤씨?”

“내 가랑이는 튼튼하다.”

“어휴.”

고개를 흔들며, 핸드폰을 쳐다보는 정시아.

“서진한테 문자나 보내볼까? 수고했다라는 말도 할 겸.”

인터넷 창을 끄려던 정시아.

띠링.

문자 팝업창이 액정 중간에 떠올랐다.

누군가가 보낸 문자였다.

-서진: 내일 뭐해?

“음?”

마침 연락하려고 했는데.

정시아는 잘 됐다는 생각에 답장을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옆에서 같이 핸드폰을 보던 한설휘가 동그란 눈을 연신 깜빡이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왜?”

“..뭐야?”

“뭐가?”

“내 연락은 하나도 안 받던데.. 둘이 연락하고 있었어? 그리고 내일 뭐해라니.. 시아야..”

정시아는 잠깐 생각했다.

충분히 오해를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격정적인 오해를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니야, 그런 거. 봐봐.”

정시아는 서진과의 문자창을 켜서 보여주려고 했다.

그때 다시 울리는 핸드폰.

띠링.

-서진: 조금 비밀스럽고 중요한 얘기라,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데.

“....”

“....”

서로를 쳐다보는 정시아와 한설휘.

둘 사이에 알 수 없는 적막이 흘렀다.

+ + +

“후방조 일이 바쁜가.”

나는 핸드폰을 쳐다봤다.

금석은 아무리 연락해도 연락을 안 받고. 한설휘는 전원이 꺼져 있고. 정시아도 문자에 답장이 없었다.

나는 추가적으로 한 통 더 보냈다.

-설휘랑 석이랑 같이 있는 것 맞지? 내일 내가 너희 있는 곳으로 갈게.

“미안해, 형.”

문자를 보내고 있는데,

옆에서 시무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서시우.

우리는 현재 내가 학교에 입한 전,

홀로 지내던 오피스텔에 와 있었다.

게이트의 영향권 밖에 있기도 했고,

내가 포션을 들이부은 덕에 이미 외상은 완치 된 상태였다.

남은 건, 멘탈적인 부분인데.

“괜찮다니까.”

계속 우쭈쭈를 해주고 있으니,

이것도 빠르게 괜찮아질 것처럼 보였다.

“루시퍼는 소멸한 것 맞지?”

내 말에 이불을 살짝 걷어내,

얼굴을 드러내는 서시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꼭 내가 알려준 악마랑 계약해야 해.”

“..형.”

“왜?”

“꼭 악마랑 계약해야 해?”

PTSD가 생긴 건 이해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둠 능력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루시퍼 같은 꽝만 안 걸리면,

오히려 계약 하는 게 더 득이었다.

“이번 재앙이 끝나면, 힘을 잃은 악마들이 빈대처럼 너한테 달라붙으려고 할 거야. 차라리 그런 상황 보다는 계약을 하는 편이 나아. 아니, 나은 게 아니지. 야.”

나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주먹으로 서시우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원래 좋은 거야. 악마랑 계약하는 거. 서로 윈윈만 할 수 있으면. 그러니까, 나를..이 형을 믿어. 절대 너한테 피해 안 가게 할 테니까. 오히려 나한테 고맙다고 절이나 하지 마. 오케이?”

“..으응....”

“형 친구들이 도와줄 거니까, 편하게 생각 해. 형 친구들 존나게 쎄.”

한 번 형이라고 뱉고 나니,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 있었다.

“알았어. 형도 가서 쉬어. 오늘 복귀 했다면서.”

“..그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다.

레이는 이미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원래라면 산에 올라가려고 했는데,

피곤해서 나도 그냥 여기서 잘 생각이었다.

“근데, 형.”

“응?”

“아까 형 옆에 계시던 여성 분, 형 여자..친구야?”

내 옆에 누가 있었더라.

아, 세리나.

“아니? 전혀?”

“아..그래?”

“뭐야, 그 반응은? 너한테 시향이 있잖아?”

“..아니 그냥, 되게 반짝여보여서.”

반짝이다라.

어둠 능력자 눈에는 빛 능력자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나도 달‘빛' 능력자인데?‘

나는 고개를 돌려 서시우를 쳐다봤다.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흠..”

오랜만에 박시향한테,

전화나 해볼까.

예비 아주버님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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