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74화 (174/196)

174회

루시퍼

"와아아!!“

“서진 만세!!”

“개쩐다 진짜! 진짜 혼자 클리어 할 줄이야!!”

“존나 멋있어!”

월광쇄도를 장시간 운용한 탓에 달빛력이 바닥인 건 물론이고, 체력도 바닥을 기었다. 한 마디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나는 5번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나를 보며 환호하는 수비조를 보며 힘 없는 미소와 함께 손을 휘적휘적 거렸다.

저들이 저렇게 환호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5번 게이트를 클리어 함으로써,

잠시나마 여유와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나도 조금 쉬어야겠다.”

나는 말을 하며, 옆에서 혓바닥을 내밀고 거친 숨을 쉬고 있는 레이를 쳐다봤다. 레이도 쉼이 필요해 보였다.

‘포션 쫌 복용하고 산 정상에서 하루정도 쉬면 괜찮으려나.‘

정신적 피로도는 계속 중첩이 되고 있었지만, 육체적인 피로도와 소진 된 달빛력은 하루면 회복 가능했다. 크게 다친 곳도 없으니까.

플라이를 해제하고, 지상에 착지를 하자 많은 사람들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폼이 헹가래라도 해 줄 모양인데, 사절이다.

나는 양 손을 들어 거절의사를 표출하며,

지휘통제실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다.

협회장에게 보고도 할 겸,

특이사항이 있나 들으러.

“안녕하십니까.”

인파를 뚫고 이동하려고 할 때, 다크서클이 짙은 한 남자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5번 수비조 대장이었다.

“예.”

대표로 감사 인사를 전하려는 모양인데, 나는 짤막하게 대답하며 5번조 대장을 쳐다봤다. 빨리 하고 가라는 신호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내 말에 눈치가 있는 양반인지,

고개를 한 번 꾸벅이는 5번조 대장.

“본부에는 제가 보고를 하겠습니다.”

눈치가 있는 게 아니라, 눈치가 아주 좋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던 발걸음을 움직이려다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특이사항 같은 거 있나요?”

대장 직책이니 만큼, 본부와 교신을 자주할 테니 특이사항이 있으면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특이사항이 없다고 하면 지휘통제실을 스킵하고 바로 쉬러 갈 생각이었다.

“아니요. 딱히 없습니다.”

“그렇군요.”

눈치가 빠른 인간답게,

내 말의 요점을 바로 파악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나마 게이트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게이트의 영향이 없는 곳에서 쉬어야 했다.

게이트 영향력 안에 있으면,

달빛력이 더디게 올랐으니까.

‘음?’

몇 걸음 움직이다가,

멈칫하고 귀를 쫑긋했다.

“7번 게이트가 닫히고 있다고? 무슨 소리야, 그게? 악마는 또 무슨 말이고.”

내 고개가 천천히 뒤로 향했다.

5번조 대장은 누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의 시선 역시 나를 향해 있었다.

“잠시만.”

핸드폰을 내리며 내 앞으로 걸어오는 5번조 대장.

“아까 말씀하신 특이사항 말입니다. 7번 게이트에서 발생한 듯합니다. 통화해 보시겠습니까? 7번 수비조의 부대장입니다.”

핸드폰을 내밀었다.

“아뇨, 직접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바닥을 기는 달빛력을 쥐어짜내,

월광쇄도를 사용했다.

목적지는 7번 게이트가 있는 쪽이었다.

나는 지면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무슨 말이야, 대체?’

짧게 들은 통화 내용은 나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7번 게이트가 닫히고 있다니.

서시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 + +

서시우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인간인지,

악마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팽배한 분노 속에,

서시우는 최대한 생각을 하려고 애를 썼다.

서진의 부탁에,

7번 게이트에 진입을 했다.

그리고 초입에서 게이트 밖으로 나가려는 마물을 억제하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기억이 났다.

헌데, 어느 순간 필름이 끊기듯 기억이 말소 됐다. 드문드문 어떤 기억이 떠오르긴 했다.

7번 게이트 내부로 진입을 하며,

미쳐 날 뛰는 기억.

그 기억은 분명 내 기억이었지만,

누군가의 기억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크으윽..”

머릿속이 칼로 난도질 하는 것처럼,

아파왔다.

이 상태라면,

금방이라도 다시 정신의 끈을 놓아버릴 것 같았다.

서시우는 이를 꽉 깨물며,

전방을 쳐다봤다.

붉어진 시야에 인간들이 보였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죽이자. 죽이자.

망치로 때리는 것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참을 수 없는 욕구처럼 느껴졌다. 마치, 삶의 목적이 살생이기라도 한 것처럼.

“다..닥쳐..라. 루시..퍼.”

쇳소리가 갈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는 서시우.

이 모든 게 루시퍼 때문이었다.

이 자식이 내 몸을 강제로 뺏는 바람에..

“으으..”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눈을 감았다.

굶주린 하이에나 앞의 고깃덩어리처럼,

인간들을 보고 있자니 루시퍼가 전해오는 욕구를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형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형이 계약하라고 한 악마와 계약을 했어야 했다.

이 모든 건,

자신의 잘못이었다.

루시퍼.

녀석은 타락천사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악마였다. 그 탓에, 악마 중 유일하게 빛 속성에 대한 내성이 있는 악마였다.

서시우는 그게 탐이 났다.

어둠 속성의 유일한 약점.

빛 속성에게 약하다.

이러한 명제는 반대로도 성립이 되지만,

서시우는 명제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게 생겼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인간이다.’

서시우는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도리어 루시퍼가 비웃기라도 하듯 속삭였다.

-나도 처음에는 내가 천사인 줄 알았지. 크크..

‘나는 인간이다.’

-너는 악마다. 서시우.

‘나는 인간..이다.’

-너는 악마다, 서시우!!

“으아아!!”

머리에 담긴 것들을 토해내듯,

소리를 지르는 서시우.

그의 고함에 반응하듯,

웅성이던 인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진열을 갖춰라!”

“전투 준비!”

잘 통제되지 않는 손을 들어 올린 서시우.

“저..저는..아군..저는 인간..저는..적이 아닙니다..”

단어 선택이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저들에게 아군일까?

나는 인간일까?

저들과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고 단어를 선택해야 했다.

“탱커들 뭐하냐! 빨리 자리 잡아!”

“저는..적이 아닙니다.”

그래.

적이 아니다.

일단 이게 맞다.

일단은..

아..그런데,

왜 이렇게.

눈을 뜬 서시우.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저 새끼들 전부 죽여 버리고 싶지?

+ + +

서시우는 어둠 능력자였고,

그 능력과 재능이 상당히 출중했다.

단순히 나와 시너지를 내기 위한 포지션이 아니라, 독단적으로도 1인분 이상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 인간계에 군침을 흘리는 악마와 계약을 한 시점 이후로는 1인 군단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포텐이 만개했다.

단순히 내 능력 조력자로 묵히기는 그가 가진 능력이 아깝다는 뜻이었고, 나는 이번 대재앙에 서시우를 활용하기로 했다.

계약한 악마가 탐탁치는 않았지만, 루시퍼의 실력은 가히 마계의 군단장 급이었다. 실력 면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악마였다.

그래서 조금 불안하기는 해도,

서시우에게 7번 게이트를 부탁 했는데.

“클리어 했다니.”

나는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서시우가 독단적으로 무리를 했다는 건데. 서시우는 금석 같은 캐릭터가 아니었다.

분명 배후가 있었다.

“루시퍼 이 새끼..”

종족 배신을 때린 놈이,

일개 인간 계약자 배신 때리는 건 일도 아닐 터.

나는 발바닥이 뜨거워질 정도로,

속도를 높였다.

얼마나 열심히 달렸으면,

벌써 7번 게이트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게이트는 거의 소멸 직전까지 닫혀 있었다.

점멸하듯, 단숨에

게이트 코앞에 도착을 했다.

“하아..하아아..”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게이트 앞 쪽을 쳐다봤다.

둥글게 원을 그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 중간에는..

“협회장님?”

그리고 그의 앞에는 악마의 형상을 한,

서시우가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서시우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온 몸에 상처 투성이였다.

그럼에도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웃는 그의 입가로 탁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뒷짐을 지고 있던 협회장이,

오른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정순해 보이는 푸른 빛깔의 마나가,

협회장의 오른 손바닥에 구체처럼 모여들었다.

아무래도 저걸로 서시우를 공격할 모양인데.

“블링크.”

그렇게는 안 된다.

이미 얼마나 맞았으면 곤죽이 되어 있는 놈인데, 여기서 협회장에게 한 대 더 맞았다가는 진짜 골로 갔다.

나는 이번에 새로 얻은 능력인 블링크를 사용해, 단숨에 협회장과 서시우의 중간에 끼어들었다.

“으음?”

오른손을 앞으로 뻗으려던 협회장이 순간 의문을 표하며 멈칫했다.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공격을 멈춰주십시오. 협회장님.”

“으음..”

고민하는 듯한 협회장.

푸슈슈.

고민은 길지 않았다.

오른손에 모였던 마나가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소멸 했다.

나는 협회장에게 고개를 꾸벅이고,

쓰러져 있는 서시우를 향해 다가갔다.

“크크..크..”

사람의 행색도, 몰골도 아니었다.

만신창이가 된 걸 차치하고, 서시우는 현재 악마와 상당히 닮아 있었다.

당연했다.

지금 서시우는 서시우가 아니었으니까.

“그저 재밌나보네.”

“크크..”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죽어도, 다른 장난감 찾으면 그만이니까.”

“크흐흐..”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하냐. 내가 내 동생을 격하게 아껴서 말이야.”

“크크크..”

“너는 말이야.”

나는 포인트 상점에서,

미궁에서 획득한 대형 마정석과 파일철을 가져왔다.

“조금.”

파일철을 펼쳤다.

“아니, 많이.”

촤르륵 넘어가는 파일.

‘워프’와 관련 된 정보가 담겨 있는 파일이었다.

원래라면 마정석과 이걸로, 현세에 워프 시설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마정석이 이렇게나 큰데.

조금 써도 티도 안 날 것 같았다.

나는 원하는 페이지에 시선을 고정하며,

말했다.

“맞아야겠다.”

-워프 응용법.

이걸 이용해서,

루시퍼를 이 세계에 소환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서시우의 몸을 탐하지 않도록,

똑바로 교육을 시켜야겠지.

루시퍼는 오늘 임자 만났다고 봐야 했다.

+ + +

스윽. 스으윽.

바닥을 긁는 소리와,

“하아암..”

“하암..”

하품을 하는 소리가 단조롭게 울려 퍼졌다.

“아이고, 허리야.”

나는 허리를 한 차례 피며,

손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옆을 쳐다봤다.

“금방 끝나요.”

나는 관중처럼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3시간 전에도 그 말 했는데.”

“2시간 전에도.”

“1시간 전에도.”

“1분 전에도 그랬어.”

움찔.

정곡을 찔린 나는 다시 허리를 숙이며,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내가 분명히 시간 좀 걸릴 거라고, 가라고 했는데.”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소요될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소환진이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하지만 이제 고지가 멀지 않았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서시우의 검으로,

바닥에 나선형으로 슥슥 그었다.

마정석을 중심으로 고대 문자와도 같은 문자가 가득 채워진 동그란 소환진.

탁.

직선을 하나 그려 넣으면서,

완성했다.

“레이야, 시우 데리고 와서 여기 눕혀. 저기요, 누가 협회장님 좀 불러주세요.”

내 말에, 서시우의 몸을 한 번씩 물어뜯으며 루시퍼를 억제하고 있던 레이가 질질 끌고 마정석 옆에 눕혔다.

“예, 협회장님. 서진씨가 준비 다 됐다고 오시라는데요?”

“세리나도 데리고 오라고 해주세요.”

“세리나라는 사람도 데리고 오라는데요?”

“휴..”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서시우를 쳐다봤다.

“크크..”

미친놈.

절대 서시우의 몸에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 됐느냐?”

“서지나!”

내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던지,

금방 도착한 협회장과 세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습관적으로 세리나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려다가 멈칫했다.

‘아, 각성했지.’

쓰다듬기에는 키가 너무 커졌다.

“근데 리나는 왜 데리고 오라고 한 것이냐?”

“촉매제가 필요해서요.”

서시우라는 매개체.

마정석이라는 에너지 공급원.

그리고 본능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촉매제까지.

완벽했다.

이제 관건은 내가 그린 소환진이 얼마나 역할을 잘 수행해내냐 이건데.

“빨리 시작하자꾸나. 이러다가 시우군 죽겠다, 죽겠어.”

협회장에게 약을 팔았다.

서시우는 현재 악마에게 영혼이 저당 잡힌 상태이며, 그 악마는 7번 게이트의 최종보스라고 했다.

일부러 7번 게이트의 포탈을 소멸시킴으로서, 인간들의 방심을 유도 해 인간계에 침투 한다는 전략. 이게 바로 서시우의 몸을 좀 먹고 있는 악마의 전략이라고 하니 협회장이 납득을 했다.

“리나야 손 좀.”

내게 손을 내미는 세리나.

“피 조금만. 살짝 따끔할 거야.”

나는 손톱에 마나를 살짝 담아,

세리나의 검지손가락을 톡 찔렀다.

“아얏.”

체 했을 때 손가락을 딴 것처럼,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

“가자!”

나는 세리나의 손목을 잡고,

서시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얘 입에 떨어뜨려.”

“..응?”

“어서, 어서.”

“....”

남의 입에 자신의 피를 떨어뜨리는 행위는 딱히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말이라 그런지 마지못해 서시우의 입을 향해 핏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하는 세리나.

연신 미친놈처럼,

웃던 놈이 갑자기 험악한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PTSD 오지게 올 거다,

이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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