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73화 (173/196)

173회

미궁

내 오른손에 들려 있는 리모컨은 확실히 5번 게이트의 코어였다. 심장이 맥박 하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내 손을 거부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내 왼손에 들린 이건 뭐란 말인가.

코어와는 달리 얌전하게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빤히 쳐다보다가,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아이템 같은데, 마공학자가 드랍한 아이템이니 분명 범상치 않을 게 분명했다.

‘아이템 방’에서 감정 스크롤을 구매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스크롤을 사용했다.

[감정 스크롤의 등급이 낮습니다. 일부 감정이 누락될 수도 있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이것 봐라?”

대악마가 드랍한 아이템이니 만큼,

‘고급 감정 스크롤’을 사용했다.

그런데 등급이 낮다는 알림음이 들려왔다.

그렇다는 건 ‘최고급 감정 스크롤’을 사용해야 한다는 건데.

최고급 갑정 스크롤은 시중에 팔지도 않았다. 1티어 감정사도 아직까지 고급 감정 능력밖에 없었다.

애초에 최고급 감정 스크롤을 요하는 아이템이 이 시기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예를 들어 내가 소지하고 있는 만월검 정도 수준의 아이템.

“5..5천 포인트?!”

나는 기겁을 하며 눈앞에 둥둥 떠 있는 양피지를 쳐다봤다. 양피지 위로 친절하게 가격이 표시 돼 있었다.

고급 감정 스크롤은 2천 포인트였는데,

최고급은 무려 2.5배나 비싼 5천 포인트란다.

그동안 포인트 상점의 물가를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건 날강도가 따로 없었다.

나는 왼손에 들려있는 리모컨을 쳐다봤다.

긁어봤더니,

꽝이거나 후지면 어떡하지?

그럼 5천 포인트를 날리는 게 아닌가.

5천 포인트는 ‘강수’를 무려 10번이나 둬야지 쌓을 수 있는 수치였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 ‘강수’를 10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5천 포인트를 현금으로 환산하면,

내가 생각 했을 때 100억 이상의 가치였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가 있어.”

하지만 만약 남는 장사라면?

“아..미치겠네.”

나는 혹시나 편법이 먹히나 하고,

‘정보 방’에 쪼르르 달려가서 검색했다.

-리모컨 아이템에 대한 정보.

요구하는 포인트는 감정 스크롤 보다 더 비싼 6천 포인트였다.

“....”

스크롤을 사용하는 수고를 덜어주니,

1천 포인트를 더 내라?

정보 방 문을 거세게 닫으며 도로 아이템 방에 돌아왔다.

이쪽 날강도가 그나마 정이 있었다.

‘그래도 강도는 강도란 말이지.‘

“이거 환불 가능할까요?”

최대한 공손하게 말을 하며,

구입했던 고급 감정 스크롤을 허공에 내밀었다.

[포인트 상점에서 구입한 아이템은 청약철회가 가능합니다. 단, 아이템 상태에 따라 환불이 불가능 할 수도 있습니다.]

“환불!”

다행이다.

환불이 된다니.

이러면 최고급 감정 스크롤을 구입..

[환불가는 1000p입니다. 환불 하시겠습니까?]

“....”

반값을 후려쳐?

방금 샀는데?

“저기, 선생님?”

[흥정은 불가합니다. 환불하시겠습니까?]

“..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반이라도 건진 게 어디야.

나는 내 손에서 사라지는 고급 감정 스크롤을 보며, 눈물을 머금고 말을 했다.

“최고급 감정 스크롤을 구매..하겠..읍..으으..니다..”

살이 떨어지고,

피가 말라가는 느낌이다.

내 피와 살 같은 포인트.

어쩔 수 없었다. 최고급 감정을 할 수 있는 감정사가 등장하려면 적어도 수년은 걸렸다. 그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혹시 꽝일지도 모르니,

감정을 안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최고급 감정 스크롤이 필요한 아이템인데, 적어도 쓸 만한 건 주겠지.

내 손에 들어온 ‘최고급 감정 스크롤’.

나는 눈을 감고 내가 아는 신이라는 신에게는 전부 기도를 드리고 부욱-!하고 스크롤을 찢었다.

절단면에서 황금빛 액체 같은 게,

슬라임처럼 튀어나왔다.

나는 그 위로 리모컨을 올렸다.

황금빛 액체가 리모컨을 먹어치울 것처럼 감쌌다. 빈틈없이 리모컨을 뒤덮었을 때.

[감정하시겠습니까?]

메시지가 울렸다.

“..예.”

과연..과아연....

황금빛 액체가 리모컨을 탐하듯이 꿀렁꿀렁 거렸다. 꿀렁거림은 서서히 잦아들었고, 황금빛 역시 옅어지기 시작했다.

[감정이 끝났습니다. 아이템 정보를 확인 하시겠습니까?]

황금빛 액체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남은 건 감정 전의 상태와 똑같은 리모컨.

가끔 감정을 하면 아이템 외관이 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외관이 변하는 경우는 보통 아이템 등급이 무조건 높다고 봐야했다.

나는 실망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공학자의 비상 리모컨

설명: 혹시 모를 비상시에 사용하려고 마공학자가 만든 리모컨. 성능이 기존 리모컨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며, 버튼이 많이 생략 되어 있다.

*1버튼: 1km 내로 워프 가능.(마계 한정.)

*2버튼: 암흑 계열 몬스터를 세뇌 및 조정 가능.(암흑 속성 관련 능력치가 높을수록 등급 높은 몬스터의 세뇌와 조정이 가능하다.)

*3버튼: 지형 변형.(100m 이내의 지형을 임의로 재설치 할 수 있다.)

*4~20번 버튼은 버튼만 있을 뿐 기능이 없다.

“....”

처음 든 생각은 ‘코어’ 리모컨은 얼마나 성능이 좋을까?였다. 두 번째 든 생각은 이 아이템은 마계에서 사용하면 참으로 유용하겠구나.였다.

세 번째로 든 생각은..

“밟아서 가루로 만든 다음에 불에 태우고, 연기도 승천하지 못하게.. 이..이..”

화가 난다.

매우 화가 난다.

이거 완전 마계 전용 아이템이 아니던가?

사실상 이번 재앙이 끝나면,

마계와의 접점은 크지 않았다.

즉, 쓸 일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이런 아이템을 5천 포인트를 주고..

“이..이..”

말도 안 나올 정도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

부들부들.

비상 리모컨을 쥔 내 손이 떨려왔다. 마공학자 이 새끼, 나 엿 먹으라고 일부러 남긴 게 확실했다.

역시 악마라는 건가.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악마가 드랍한 아이템은 일단 의심부터 했어야 했는데.

“음?”

한참동안 비상 리모컨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부들거리고 있을 때 미처 확인하지 못한 아이템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버튼 설명 부분에서 열이 확 받아서,

스킵 할 뻔한 정보였다.

-1~3번 버튼 중 하나를 능력으로 습득 할 수 있습니다. 습득 시, 버튼 효과가 능력자에 맞게 조정 됩니다. 조정 범위는 최소 0%에서 최대90%까지이며, 상향 조정. 혹은 하향 조정 됩니다. (습득 시 비상 리모컨은 소멸 됩니다.)

“오오!”

지옥과 천당을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쓸모없음’에서 ‘조금은 쓸모 있음‘으로 바뀐 까닭에 순간이지만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말 그대로 순간이었다.

리모컨은 마족 전용 아이템이니,

조정은 분명 하향 조정.

내 속성이 마족과 정 반대인 걸 감안하면,

대폭 하향 조정 될 게 분명했다.

하향 조정 되더라도,

쓸 만한 버튼은 하나밖에 없었다.

1버튼.

2버튼과 3버튼은 날 것 그대로 습득을 해도 크게 쓸모가 없었지만, 1버튼의 워프 능력은 하향 조정 되더라도 쓸모가 있었다.

지금 내 심사가 꼬여서 그렇지,

워프 능력은 S급 능력이나 다름없었다.

관건은 거리인데.

“습득.”

열어보면 알겠지.

[1~3버튼 중 어떤 버튼을 습득하시겠습니까?]

“1번.”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손바닥에 스며들 듯이 사라지는 비상 리모컨.

[1버튼, ‘워프’를 습득 하셨습니다.]

“능력 창.”

나는 능력 창을 열어,

정보를 확인했다.

-워프: 100m 내로 워프 가능(사용 시, 달빛력 100소모)

1km이던 거리가 100m로 변경 돼 있었다.

하향 조정의 최대치인 90%를 당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한 결과였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크게 실망을 하거나 낙담을 하지 않았다.

“워프 보다는 블링크에 가깝네.”

마법사 계열 능력자 중, 극소수만 습득하고 있는 근거리 순간이동 능력. 블링크 보다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지만, 워프라고 하기에는 이동거리가 너무 좁쌀만 했다.

그래서 나는 편하게 블링크라고 부르기로 했다.

달빛력을 많이 잡아먹지도 않고,

잘만 쓰면 효과를 톡톡히 볼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5천 포인트가 머릿속에 아른거렸고, 나는 ‘능력 방’에 들어갔다.

-블링크: 10m 거리 순간이동 가능. *4000p

-블링크: 20m 거리 순간이동 가능. *6000p

-블링크: 50m 거리 순강이동 가능 *10000p

블링크는 딱 세 종류가 있었고,

값을 확인한 나는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위로가 된다.

아니, 오히려 5천 포인트를 잘 썼다.

지옥과 천당의 하류에서 맴돌던 기분이,

천당으로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볼 일을 끝낸 포인트 상점을 닫았다.

홀로 남아 있던 레이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크르르.(병원 가야하는 거 아니야, 주인?)

“응?”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걸어온 레이.

크릉. 크르르.(감정 기복이 너무 심한 것 같아.)

교감 능력을 통해 내 기분을 느낀 모양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슬슬 나갈까?”

여기까지 오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그렇다면 가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미궁의 기능이 정지했고,

마공학자라는 훼방꾼이 사라졌으니.

아무래도 훨씬 빨리 가지 않을까?

“가자.”

레이와 함께 출발했다.

우리는 꼬박 3일 걸려 나가는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고, 나가기 전 ‘코어’ 리모컨을 파괴했다.

+ + +

“서진님이 5번 게이트에 들어 간지 10일, 1,3번 공격조가 8번 게이트에 진입한지 3일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10번 게이트를 막고 있던 수비조에서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5번 게이트의 수비조 일부를 10번 게이트에 지원 보내도록 하게.”

“..예?”

“왜 그러나?”

“반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휘통제실.

협회장이 옆에서 보고를 하고 있던 협회 직원을 쳐다봤다. 협회장과 눈이 마주친 직원이 열변이라도 토할 것처럼, 5번 게이트를 비추고 있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10일이 지났습니다. 10일이요. 여전히 게이트에서는 몬스터가 주구장창 흘러나오고 있고요. 서진님이 공략 실패를 했다고 봐야합니다. 그러니, 수비조 인원을 투입해서 구출을 하던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혼자 클리어 한다는 객기를 부렸다고는 하나, 그는 창조 그룹의 장남이니까요. 혹시 잘못 되면 아무리 협회라도..”

“서진군의 말이 틀린 사례가 있던가?”“예?”

“이번 작전에서 서진군의 말이 틀린 적이 있냐, 이 말일세.”

“그건..”

직원은 손에 들고 있는 볼펜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서진은 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환생 같았다. 그 만큼 그가 했던 말은 대부분 일치하고 적중했다.

옥의 티라고 한다면 공격 2조의 이탈이랄까?

“나는 서진군의 판단을 믿네. 10일 안에 클리어 한다고 내게 호언장담을 했으니, 오늘 내로 나올 거야. 분명.”

“그래도 당장 5번 게이트의 수비조를 일부 빼는 건..”

그때였다.

갑자기 7번 게이트를 비추고 있던 화면이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협회장님! 7번 게이트가 닫히고 있습니다!”

“나도 보고 있네.”

협회장의 시선이 7번 게이트를 비추고 있는 10개의 화면을 빠르게 훑었다.

7번 게이트가 닫히고 있었다.

아무런 인원도 투자하지 않은 게이트가.

서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7번 게이트는 내버려두시면 됩니다. 제가 믿을 만한 아군을 한 명 섭외해 놨거든요. 걔가 알아서 틀어막고 있을 겁니다.’

7번 게이트가 닫히고 있는 원인은,

분명 서진이 말한 아군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았다.

서진은 틀어막는다고 했지,

클리어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진이 본인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7번 게이트부터는 난도가 상당하다고.

“닫히는 게이트에서 악마가 튀어 나왔습니다! 뿌..뿔이 무려 세 개입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협회장은 본인이 직접 가봐야겠다고 생각 했다.

“7번 게이트 수비조에게 일러두게. 내가 직접 간다고.”

“안 그래도 7번 게이트 수비조 대장에게서 막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는가?”

“그..그게 양 손을 들고..자신은 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답니다. 투항의사가 아니라 그냥 적이 아니라고만 한답니다.”

모니터로 보이는 악마는 말 그대로,

양 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수비조는 그를 둥글게 에워싸고 있었고.

“악마는 교활한 놈이니, 적당한 거리를 두고 붙잡아두고 있으라고 전하게.”

말을 하는 협회장이 뒤쪽을 쳐다봤다.

“같이 갈 테냐?”

자리에 서서, 고개를 부산하게 움직이며 모니터를 보고 있던 세리나. 협회장의 말에 고민을 잠시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간 많은 대화는 아니지만, 협회장은 세리나가 어떤 아이인지 대충은 알 수 있었다.

세리나 앞으로 다가간 협회장.

오른손을 들었다.

파란색의 마나가 일렁이더니,

손바닥만한 파랑색 도롱뇽이 나타났다.

“순하고 똑똑한 놈이니,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협회장이 도롱뇽을 내밀었다.

도롱뇽을 받아든 세리나.

그녀의 손에 올라가자마자 얌전히 몸을 웅크렸다.

“갔다 오마.”

“조심하세요, 할아버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세리나.

“끌끌.”

손녀가 생긴 기분을 느끼며,

지휘통제실을 나서는 협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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