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72화 (172/196)

172회

미궁

"이 시바알!!“

술래잡기 하자는 마공학자를 무시하고 게이트의 핵인 ‘코어’를 파괴하려고 했다. 어차피, 핵심은 코어니까. 헌데, 아무리 찾아도 코어라는 놈이 보이질 않았다.

답답해서 ‘정보의 방’에 물어보니,

마공학자가 들고 있던 리모컨이 코어란다.

즉,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공학자의 ‘나 잡아봐라’에 응해야 한다는 건데.

“하..”

내가 부들부들 거리자, 옆에 있던 레이가 머리로 내 머리를 쓰다듬듯이 쓸었다.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간지러우면서도 부드러웠다.

크르릉.(은빛 늑대들 부를까?)

“음..”

술래잡기라는 게 본디,

술래가 많을수록 유리하는 법이기는 했다.

하지만 미궁의 넓이를 생각하면,

드넓은 사막에 늑대 수십 마리를 풀어놓는 꼴.

“더 좋은 방법이..”

나는 말을 하며,

앞 쪽을 쳐다봤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마공학자의 연구실이었는데, 공학자의 연구실답게 생소한 기구들과 일지 같은 게 사방에 널려 있었다.

마공학자는 탈출하듯이,

워프를 했다.

그렇다는 건 이곳에 뭔가 단서 같은 게 남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미궁 공략집’이라던지.

아니면 미궁의 구조나 탈출 방법이라던지.

나는 눈에 보이는 것과,

손에 잡히는 걸 닥치는 대로 훑고 만지작거렸다.

딱히 성과로 보이는 소득은 없었다.

“이건 뭐야?”

연구실 벽면에 보이는 여러 대의 기계판.

동그란 스위치가 환 공포증을 유발하게 할 만큼 촘촘하게 달려 있는 기계판이었다. 전원버튼에 모두 불이 들어온 걸로 보아, 가동 중인 것 같은데.

“레이, 누가 봐도 이거 굉장히 수상한 것 같지 않아?”

크르르.

성큼성큼 기계판을 향해 걸어가는 레이.

앞발로 기계판을 부술 것처럼 가격했다.

쿵!

소리와 함께,

드르륵.

앞발을 회수하면서 기계판을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십 개의 스위치가 꺼진 기계판.

가만히 잠자코 있어보니, 별 다른 변화는 없었다.

“잘못 짚었나.”

기계판에서 시선을 돌리려고 할 때,

레이가 내 허벅지를 톡톡 건드렸다.

크릉.(주인.)

“응?”

크르르.(저기 봐.)

나는 레이가 앞발로 가리키는 기계판을 쳐다봤다.

“왜?”

크르. 크르르.(불이 켜졌어.)

“음?”

수십 개의 스위치는 여전히 내려가 있었고,

나는 별 다른 차이를 느끼질 못했다.

레이가 거짓말 할 리는 없고.

나는 팔짱을 끼고 뚫어져라 기계판을 쳐다봤다.

5분. 10분.

한참을 보고 있을 때,

내려 간 스위치 중 하나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목적을 달성한 스위치 위에,

전원 불이 켜졌다.

나는 손을 들어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레이.”

크르릉.(응.)

“다 꺼버려. 아니다.”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는 만월검을 꺼내 들었다.

“다 부셔버리자, 그냥.”

사소한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생긴 궁금증이었다.

‘마공학자는 어떻게 이런 광활한 미궁을 유지할 수 있는가.‘

미궁은 한 번 지으면 땡!이 아니었다.

놀이공원과 비슷했다.

유지비용이 분명히 필요했고, 제 아무리 마공학자가 대악마라고는 해도 미궁의 크기를 생각하면 감당불가 수준이었다.

답은 내 앞에 있는 기계판이었다.

긴가민가했는데, 꺼진 스위치가 올라가는 걸 보고 확신을 했다.

어딘가에서,

리모콘으로 스위치를 올렸겠지.

‘그럼..’

기계판 내부에는 동력장치인 마정석이 있겠고.

크기는 어마무시 할 테고.

내가 챙기면 개이득일 테고.

“달빛 가르기.”

만월검의 표면을 뒤덮는 달빛.

가볍게 기계판을 향해 휘둘렀다.

콰아앙!!

폭발하는 것 같은 굉음이 들리기는 했지만,

흠집만 조금 났을 뿐 기계판은 건재했다.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휘둘렀다.

콰아앙!

쾅! 콰앙!

조금씩 생기는 균열과,

달빛 가르기의 여파로 도미노가 쓰러지듯, 스위치가 대거 고개를 떨궜다.

‘달빛 제 3초식. 달의 축복 2단계.’

나는 템포를 올리며,

균열이 일어난 곳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균열은 틈이 되고,

틈은 아가리를 벌렸다.

“....”

불쾌하고도 소름끼칠 정도로 사악한 마나가 나를 노려보듯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광물과 광석에는 등급이 있었는데,

만월검의 주재료인 월석은 등급이 존재하지 않았다.

발견한 게 내가 최초였고,

월석으로 만든 아이템 역시 내가 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등급을 굳이 따지자면 1등급 보다 높은 0티어 정도가 아닐까? 월석 이전에 천석으로 만든 만월검을 들고 있었는데, 천석 같은 경우는 1티어 광물이었다.

그리고 시중에서 흔히 보이는 마정석 같은 경우에는 4티어 정도의 광물이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마정석이 그러면 4티어 광물이냐. 아니다. 마계에서 발견 되는 마정석은 일반 마정석과 결이 달랐다.

일반 마정석에 비해 혼탁하고 가공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존재 했지만 완벽하게 정제를 했을 때, 가치는 일반 마정석에 비해 가치가 10배 이상이었다.

티어로 따지면 2티어 정도의 광물이라고나 할까? 완벽하게 정제를 했다는 가정 하에.

“와..”

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윤택이 날 정도로 완벽하게 정제가 된 마정석이 검은 빛깔로 나를 유혹하듯이 마기를 철철 흘러내고 있었다. 그것도 크기가 소형 자동차만한 크기였다.

저 정도 크기의 마정석이면,

시중에 판다고 가정을 했을 때.

조 단위의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살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이게 대악마 클래스인가!!”

나는 강제로 속살을 드러낸 기계판의 판때기를 완전히 손으로 뜯어내며, 마정석 앞으로 다가갔다. 레이는 마정석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싫은지, 이빨을 드러내며 천천히 나를 따라왔다.

나 역시 레이처럼,

마기는 불쾌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참을 만했다.

암, 참아야지. 횡재를 했는데.

나는 손을 들어 마정석 위에 올렸다.

치이익.

물과 불이 닿은 것처럼,

연기가 피어올랐다.

손바닥이 약간 따가웠지만,

참을 만했다.

“포인트 상점.”

내 한 마디에,

마정석의 위치가 순식간에 이동했다.

새하얀 포인트 상점에 거대한 마정석이라.

인테리어 같기도 하고, 썩 보기 나쁘지는 않았다.

“여기 잠시 있어. 나중에 좋게 써 줄 테니까.”

탁탁.

마정석을 예쁘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몇 번 때리고는 포인트 상점을 닫았다.

“음?”

저 앞에 눈이 시뻘게진 마공학자가 경악스러운 얼굴로 내 뒤편을 쳐다보고 있었다.

피식.

괜히 웃음이 나왔다. 소 잃은 외양간에 소를 찾으러 온 모양인데, 이미 늦었다.

마공학자는 분명 알고 있었다.

내가 외양간에 해를 가할 것이라는 걸.

하지만 안일하게 대처했다.

외양간에 있는 소를 훔칠만한 여건이 안 되리라, 제 딴에 확신을 한 대가였다. 확실히 내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빠르고 깔끔하게 마정석을 훔치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인벤토리를 소지하고 있는 만물상도 머뭇거렸을 터였다. 보따리에 마정석을 옮기는 순간 보따리에 있는 아이템들이 마정석에 의해 다 오염 됐을 거니까.

오직 이 세상에서 유일한 특권을 가진 나만이 할 수 있었던 일. 마공학자가 알 리가 없었다.

“이..이 놈..”

빈집 털린 마공학자가 부들부들 거렸다.

위이잉.

끼익. 끼이익-!

그의 뒤로 미궁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변화는 마치 폐장한 놀이공원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온 몸으로 마기를 풀풀 휘날리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마공학자를 무시하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눈알을 굴렸다.

“저기 있네.”

나는 구석편에 있는 책상이 있는 쪽으로 대시를 했다.

두께가 5cm는 돼 보일 정도로,

두꺼운 파일철이었다.

파일철 안에는 서류더미가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원래라면 아무런 쓸모가 없어서 무시 했던 건데,

마정석을 얻은 순간 얘기가 달라졌다.

“이것도 요긴하게 쓸게.”

나는 파일철을 들어,

마공학자를 보며 흔들었다.

빈집털이도 모자라, 대놓고 털어가려는 내 모습에 참지 못하고 내게 달려드는 마공학자.

마공학자는 다른 악마에 비해 이성적이다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한 번 정신 줄을 놓으면 정신 못 차리는 법이었다.

크르르!!

마공학자의 앞을 막아서는 레이.

내 능력인 달빛 초식을 응용하며 상대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약체라고는 해도 대악마는 대악마인지, 레이에게 전혀 꿀리지 않는 마공학자.

“레이, 조금만 더 놀고 있어.”

전투양상을 살펴보다가 나는 앞에 보이는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쓸 만한 거 더 있나 찾아보게.”

“이..악마 같은 놈!!”

뭐래.

자기가 악마면서.

그리고.

‘달의 축복, 3단계. 월광쇄도.’

“뻥이야.”

아무리 미궁의 기능이 정지 됐다고는 해도,

이 놈이 작정하고 도망치려고 한다면 골치가 아파졌다.

대놓고 잡아달라고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레이와 대적하고 있던 마공학자.

순간적으로 뒤로 돌아가는 내 움직임을 놓쳤고, 나는 눈앞에 보이는 표적에 만월검을 휘둘렀다.

‘달빛 제 7초식. 달의 광휘.’

그것도 무자비한 연타로.

광휘에 휩싸인 만월검이 정지한 듯한 시간 속에서 마공학자의 등을 도륙했다.

서로 카운터인 속성이라 그런지,

만월검이 쑥쑥 잘도 박혔다.

“까아악!!”

까마귀가 우는 것 같은 비명을 내 지르는 마공학자.

나한테지지 않겠다는 듯이,

레이도 나와 같은 7초식을 사용했다.

달빛에 휩싸인 레이의 앞발.

곰처럼 무자비하게 마공학자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

“캬아악!!”

다시 한 번 터지는 비명소리.

최후의 발악이 아닌, 최후의 도주를 택한 것인지 마공학자가 딛고 있는 노면에서 검은 안개가 소용돌이치며 나타났다.

“어딜.”

‘달빛 제 3초식. 달의 축복 4단계.’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출력으로 만월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끼긱. 끼긱.

역시 달의 축복을 한 단계 높이길 잘했다.

만월검이 검은 소용돌이에 막힐 것처럼, 쇳소리를 흘렸지만 뚫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내 공격에 레이까지 합심을 하니,

마공학자가 도주하기 전에 만월검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달빛 제 8초식. 내리치는 달빛.’

콰지직!

콰직!

검은 소용돌이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금쯤 만월검에서 흘러나온 전류와 같은 달빛이 마공학자의 내장을 뒤집어놓고 있을 게 분명했다.

몇 초가 흘렀을까.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검은 소용돌이가 중력에 짓눌린 것처럼,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검은 소용돌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검은 잿가루 같은 게 옴팡지게 솟아나 있었다.

마공학자가 죽었다는 신호이자,

녀석의 시체였다.

“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할 정도로 급박하거나 대등한 싸움은 아니었다.

“하마터면 오래 걸릴 뻔 했네.”

술래잡기를 했다고 생각을 하면,

상상만 해도 지치고 끔찍했다.

다행히, 요행스럽게도 마정석을 발견해서 망정이지.

나도 하마터면 일주일이 아닌,

이주일. 혹은 더한 기간을 이곳에서 체류할 뻔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곳에 왔다면. 그들은 이번 재앙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마공학자와 술래잡기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최종보스가 약하다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게,

자칫 화근이 될 수도 있었다.

‘조심해야겠어.’

방심을 안 하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방심을 했다.

‘그래도.’

3번 게이트.

6번 게이트.

그리고 현재 내가 있는 5번 게이트까지.

최종보스와 대적 해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꽤 강하다.

S급 능력자와 비등하거나 뛰어 넘을 정도로.

어쩌면 단신으로 레볼루션 간부와 1:1을 붙어도..

“쯧.”

나는 혀를 찼다.

방금 방심을 하지 말자고 했으면서,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점점 근접해가고 있다.’

이건 오만과 자만이 아니었다.

확신이었다.

“그건 그렇고, 언제 나간다냐. 휴.”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여기서 나가는 것도 일이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마공학자가 남기고 간 잿더미.

이건 마기가 고농도로 응축 돼 있는 가루나 다름없었다.

포인트 상점에 있는 마정석에 먹이면,

마정석이 좋아 죽지 않을까?

연구실 아무데나 널려있는 비커에 잿더미를 담고 있을 때, 사라진 잿더미가 있는 곳에 뭔가가 눈에 띄었다.

하나는 5번 게이트의 코어인 리모컨이었고,

다른 하나는..

“음? 리모컨이 두 개야?”

나는 똑같이 생긴 리모컨 두 개를 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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