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71화 (171/196)

171회

광여제(光女帝).

“세리나는?”

눈은 채린을 향한 채,

세리나의 안부를 묻는 신지수.

그녀에게는 본인에 대한 걱정이 없어보였다.

“괜찮아요. 믿음직한 양반에게 부탁해 놨거든요.”

내가 그럴 줄 알고 여기 오는 길에,

듬직한 인간 한 명 불러 놨다.

마침, 치유소 안으로 성큼성큼 태산 같은 발걸음을 내딛으며 들어오고 있었다.

“신지수!!”

박태산은 현역 헌터가 아닌,

2선. 혹은 제3선에 있는 교관이었다.

그래서 후방조에 편성이 되어,

임무 수행을 하던 중이었다.

내 호출에 곧바로 달려온 박태산은,

그 답지 않게 큰 목소리를 내며 우리 옆으로 다가왔다.

으득으득.

신지수와 채린을 번갈아 쳐다보는 박태산의 이가 맹수처럼 갈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만.”

신지수의 멘탈은 박태산이 수습을 해주겠고. 나는 내 할 일을 가야할 때였다. 내 의지를 읽은 레이가 신지수의 품에서 폴짝 뛰어, 내 옆에 착지를 했다.

“서진아.”

가려는 내 어깨에 손을 얹는 박태산.

그의 얼굴에 다양한 감정이 오갔다.

“몸조심해라.”

다양한 감정은 한 데 어우러져,

한 문장으로 귀결 됐다.

그 한마디가 전부였지만,

나는 박태산에 내개 하려는 많은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네.”

나는 치유소를 나섰다.

+ + +

“와, 되게 좋네요. 여기.”

나는 방의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천장에서 백열등이 아닌, 마나석이 은은하게 빛나며 실내를 비추고 있었는데 펜트 하우스처럼 호화스러운 것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역시 5성급 호텔이라 이건가.

“다, 서진님 덕분입니다.”

공격 3조 대장인 설민호가, 차를 내려놓으며 내 앞에 앉았다.

“제가 뭘 한 게 있다고요.”

나는 말을 하며 찻잔을 들었다.

대재앙이 발생하기 전,

아버지에게 한 마디만 했을 뿐이었다.

부산에 있는 창조 그룹 소유의 호텔들을 임시적으로 개조해 달라고. 능력자의 마나 회복과 피로도를 빠르게 없앨 수 있도록.

천장에 보이는 마나석이나,

욕실에 마련 된 특급 입욕제.

그 외에도 돈 주고 산다면 몇 백은 기본은 할 만한 포션까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 와중에 꿀빠네 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건 전부 보다 빠른 속력을 내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잘 쉬고, 잘 먹고. 잘 자야지,

회복 속도가 빠르지 않겠는가?

지금 설민호만 봐도, 오늘 오전 게이트에 나올 당시 상당히 피로해 보이던 얼굴이 뽀얗게 광채를 내고 있었다.

“이강석, 그 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죽었어요.”

“..그렇군요.”

내 단출한 대답에 설민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조금 더 질문이 이어질 거라 예상했지만, 설민호는 그 뒤로 이강석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간 짧은 시간에, 생과 사를 넘나들었기 때문일까? 나는 생과 사를 넘나든 적은 없지만, 어쨌든.

나를 보는 설민호의 눈에 신뢰가 보이는가 싶더니, 지금은 굳건해 보일 정도로 단단해 보였다.

그가 더 이상 묻지 않은 이유는 그 이유이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죽었다고 하면 죽은 거니까.

헌데, 내가 죽였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나를 보는 눈빛이 묘하게 초롱초롱했다. 부정을 하려고 했으나 말이 길어질 것 같아, 관뒀다.

나는 힐끔 왼 손을 검집 위에 올리고 있는 설민호를 보며, 창밖을 쳐다봤다. 그가 나에 대한 신뢰 수치가 어느 정도 쌓이자, 그는 나와 대화를 할 때 무조건 검집이나 손에 검을 쥐었다.

그래서 어리숙한 설민호의 모습을 못 본 지 꽤 됐다.

반쯤 닫힌 커텐 너머로 보이는 낮인지 밤인지 모를 하늘. 게이트를 닫는 속도가 빨라서인지, 남은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마기의 농도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로인해 전생보다 마계화 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이번에도 안 기다려주실 거죠?”

“....”

단언하는 듯한 설민호의 목소리.

나는 고개를 돌려 설민호를 쳐다봤다.

“그래서 저를 찾아오신 거구요.”

표정을 보니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이래서 눈치가 빠른 사람은 좋다니까.

아무리 회복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고는 해도, 피로도라는 놈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었다. 공격 3조가 완전히 회복하려면 며칠의 시간은 걸렸다.

“선발대로 가시면, 저희가 후발대로 이전처럼 따라 붙겠습니다.”

설민호가 다소 미안해하면서도,

분해보이는 얼굴로 말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나를 따라 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생긴 감정변화 같았다.

내가 설민호를 찾아온 이유.

그의 말이 맞기는 했지만, 다른 부분이 있었다.

“후발대로 안 오셔도 돼요.”

“..예?”

“곧, 공격 1조가 4번 게이트를 클리어 하고 나올 겁니다. 그들이 나오면 회복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8,9번 게이트 공략 하시면 됩니다.”

8번과 9번 게이트는 쌍둥이 게이트였다.

서로 연결 돼 있었고, 공격조가 합심을 해야 했다.

합심을 해도 클리어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7번에서 10번 게이트는 난도가 상당하니까.

그래서 내가 적절하게 합류를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강석이 남기고 간 똥.

5번 게이트를 빨리 클리어 해야 하고.

“5번 게이트를 혼자서 클리어 하겠다는 겁니까?”

불신에 찬 목소리는 아니었다.

걱정과 우려. 그 정도라고나 할까.

“혼자는 아니죠.”

나는 말을 하며,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레이를 쳐다봤다.

5번 게이트는 다른 게이트에 비해 몬스터나 악마가 약한 편이었다. 환경이 미궁이라는 점 때문에. 하지만 내게 미궁은 그저 꼬인 길이나 다름없었고, 오히려 내가 혼자 클리어 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게이트 하나를 혼자서(한 마리와 함께) 클리어 했다는 사실은 꽤나 명성이 될 것도 같고. 그 명성은 앞으로 세간에 대한 내 발언에 힘이 될 터.

본래라면 계속 공격 3조와 동행을 하려고 했다. 헌데, 상황이 바뀌었다. 디아블로가 세리나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어린놈이 겁도 없이!’ 같은 말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너무 서진이라는 인물의 스펙과 직업. 나이에 너무 얽매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집안에 밉보이거나,

10대라서, 학생이라서 하지 않아야 하는 행동.

과몰입도 이런 과몰입이 없었다.

신분과 나이가 아닌, 내가 이곳에 온 본분을 자각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 사건이 끝나면 학교 자퇴하는 것도 생각해봐야겠네.’

학교에서 얻을 건 다 얻었다.

이미 친구들에게 훈수는 치사량 넘게 뒀고.

그들은 이제 알아서 강해지는 것만 남은 상태였다.

“그래도 혼자는..”

설민호가 낮게 중얼거렸다.

“혹시나 제가 잘못 되더라도 스카이 길드에는 피해가 없게 하겠습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뒷말을 자꾸 늘어뜨리는 설민호.

어떻게든 나를 만류하고 싶기는 한데,

그럴 방법이 생각나질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걱정거리를 덜어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그럼 이만~”

나는 잠들어 있는 레이를 품에 안으며,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언제 쯤 출발하실 예정입니까?”

신발을 신고 있는데,

뒤에서 설민호가 말했다.

신발을 신고,

고개를 돌려 설민호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지금이요.”

+ + +

“대단하군. 대단해! 내 미로가 이렇게 빨리 간파 당할 줄이야!”

미친놈.

나는 속으로 욕을 하며,

마(魔)공학자를 쳐다봤다.

2m 남짓의 인간 모습을 하고 있는 마공학자는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앞에 놓인 설계도면을 보며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마나를 이리저리 흘려보내고 있었다.

나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저런 놈이 5번 게이트 최종보스라니.’

저 놈을 만나는데 무려 일주일이나 걸렸다.

나는 손에 쥐고 있는 나침판을 부수려다가 참았다.

무려 3000p나 주고 산 ‘콜롬버스의 나침판’.

이 녀석 덕분에 전혀 헤매질 않고 미궁의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치트키를 쓴 것처럼 미궁을 주파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왜 일주일이나 걸렸냐.

미궁에 도사리는 몬스터가 엄청나서?

미궁에 즐비한 함정이 대단해서?

다 틀렸다.

“시발..”

다시 생각해도 치가 떨렸다.

상상도 못할 정도로 거대한 미궁의 넓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았다.

그냥 진짜 속된 말로 존나게 길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미궁을 1자로 피면 지구를 몇 번이나 왕복할 정도로 추정이 됐다.

‘저 새끼는 분명히 멍청한 놈이다. 분명해.’

미궁을 설계할 실력도 없으면서,

길이만 존나게 길게 해 놓은 게 틀림없다.

얼마나 길었으면 레이까지 지쳐서,

옆에서 혀를 빼물고 허덕이고 있었다.

‘헐!!’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여기 오는데 일주일이 걸렸다는 건.

“돌아가는데도..”

결정했다.

원래라면 지쳐서 대충 죽이려고 했는데,

안되겠다.

“너는 곱게 죽을 생각하지 마라.”

만월검을 빼내며,

능지처참에 달하는 고통을 선사해주려고 할 때.

“그렇군, 그렇군. 이 부분이 미약했구만. 수정을 완료했다. 크크..”

수정은 개뿔.

미궁의 길이만 또 늘려놨겠지.

나는 나를 보며 히죽이는 마공학자에게 도약했다.

“나 잡아봐라~”

지척에 이른 순간, 마공학자가 호주머니에서 리모컨 같은 걸 꺼내 들더니 삑하고 눌렀다.

“....”

검은 소용돌이가 녀석의 몸을 감싸더니,

사라졌다.

“나 잡아..봐라?”

녀석이 남기고 간 말을 되 내이는 내 이마에 혈관이 툭 튀어나왔다.

“하하..하..”

이거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클리어 하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크흠..”

이무신 협회장은 비흡연자였다.

헌데, 지휘통제실에 온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잦은 기침에 협회 직원들이 힐끔힐끔 거릴 정도였다.

“크흐음..”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한 협회장의 시선이 기계처럼 뻣뻣하게 뒤편을 향했다. 다과를 먹고 있는 세리나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후후..”

바람 부는 듯한 웃음소리와 함께 고개를 원위치한 협회장. 협회 직원들에게는 가급적 세리나를 쳐다보지 말라고 언질을 해 놓은 상태였다. 부담스러워 할 테니.

그래서 아무도 세리나를 쳐다보질 않았다.

오히려 기침을 해대는 협회장을 쳐다볼 뿐.

협회장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땀방울을 닦아냈다.

‘긴장을 하다니..’

나이 40을 넘긴 이후로,

긴장과는 담을 쌓고 지냈는데.

“크흐음..”

다시금 헛기침을 하는 협회장.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눈치세례에,

말라가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세나의 딸.

그녀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후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갑작스레 나타나서,

협회장은 아직도 믿기 힘들었다.

세나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딸이 이미 어엿한 여인이라는 사실이.

궁금한 게 태산이었고,

태산만큼 가슴이 아려왔다.

세리나의 외향은 지 어미를 꼭 빼닮아 있었다. 옛 생각이 안 날래야, 안 날수가 없었다.

착잡하고, 미안하고.

반갑고, 어여쁘고.

오만 감정이 동시에 드는 까닭에,

첫 마디를 꺼내는 게 너무 힘이 들었다.

‘잘 컸구나.’

아니다.

언제 봤다고.

‘어미를 닮았구나.’

당연하지.

딸인데.

‘다과는 입에 맞니?’

그나마 제일 낫다.

“....”

결심을 한 이무신 협회장.

쭈뼛쭈뼛 사랑 고백을 하려는 어린 아이처럼 세리나를 향해 다가갔다.

“크흠.”

헛기침 한 번으로 시동을 건 협회장.

세리나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쳐다봤다.

“다..”

준비해 온 멘트를 치려고 할 때,

갑자기 바닥에서 불쑥 검 한 자루가 튀어 올라왔다.

협회장도 익히 알고 있는 검이었다.

세나의 주무기였었으니까.

이름이 광휘의 검이었던가.

에고 소드라, 참으로 영특한 검이었다.

문제는 과할 정도로 세리나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나머지, 움직임을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는 거였다.

긴장에 이어,

당황이라는 걸 해버린 협회장.

“뭐..뭐시여! 시부럴!”

첫 마디를 멋들어지게 꿰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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