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70화 (170/196)

170회

광여제(光女帝).

“수비조에서 조금 도와줬으면 하네.“

이무신 협회장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숙이거나 살며시 시선을 외면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 수비조의 대장들이었다. 수비를 하며 부상자들이 속출하기는 했지만, 공격조와 후방조에 비해 인원 손실이 가장 적은 조이기도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절대 인원이 널널한 건 아니었다. 당장 꾀죄죄한 몰골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알 정도였다.

그래서 말을 하는 이무신 협회장의 마음도 편하진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을.

수비조는 총 10개의 조가 있었고,

각 조에서 10명씩만 차출하더라도 합치면 100명의 인원이었다.

무시할 수 없는 숫자였고,

이러한 숫자는 당장 공백이 생겨버린 공격조와 후방조에 크나큰 보탬이 될 터였다.

“이보게들.”

모두 힘든 상황이고,

모두 힘든 처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무신 협회장은 강요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반응을 보니,

협회장이라는 직함이 가진 힘을 내비쳐야 할 것만 같았다.

“정 그렇다면..”

강제적으로 인원을 차출하려고 할 때,

구석에 앉아 있던 인원이 손을 천천히 들었다. 레인저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협회장님.”

“뭔가?”

“세나님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뭐?”

자다가 봉창을 두드려도 유분수지.

협회장의 미간이 눈에 띄게 찌푸려졌다.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일뿐더러,

협회장은 세나를 무척이나 아끼고 귀여워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딸이라니.

봉창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괴변에 가까웠다.

이런 협회장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리에서 일어난 레인저 길드 길드장.

“허언이 아닙니다. 당신도 봤잖아, 바이란.”

그녀의 말에 맞은편에 앉아있던 바이란 길드의 길드장인 바이란이 긍정의 신호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기가 차다는 듯이 웃는 협회장.

그리고 다른 이들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레인저 길드장과 바이란을 쳐다봤다.

세나.

그녀가 누구던가.

현대에서 역사상 충무공과 명성과 업적이 비견 될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대한민국의 영웅이었고, 그녀를 모르는 국민은 현세에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관심도.

주목도.

이목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그녀에게 아무도 모르는 딸이 존재 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협회장은 못 박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 하는 그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시체가 없었지.’

오래 전, 암흑기를 종결 시키는 마침표를 찍은 세나.

사람들은 그녀가 힘과 생명력이 다해 육체가 사라진 줄 알고 있었다. 협회장 본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능력자의 범주는 일반적인 상식을 넘나들었고, 능력자의 죽음 또한 일반적이지 않을 때가 많았으니까.

헌데, 그게 아니었다면?

그 당시에 죽은 게 아니었다면?

세나라는 인물은 협회장에게 역린 같은 인물이었다.

그녀의 죽음은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을 했지만, 그녀의 희생은 지극히 ‘강요’에 의한 희생이었으니까.

암흑기 당시, 협회장은 희생을 강요하지 않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부정을 하지도 않았다.

침묵.

참으로 비겁한 행동이었다.

침묵이 어떤 결과를 토로하는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양심이라는 걸 지키고자 했지만, 침묵 속에 양심은 암세포처럼 퍼졌다. 현재까지도.

만약,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비겁했던 자신의 과거를 사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세나의 딸이라..’

만약, 그녀의 딸이 진짜로 있다면.

그렇다고 가정을 한다면.

옛 일을,

고개 숙여.

어머니의 희생에 대해,

더 많은 고개를 숙여.

‘사죄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로구나.‘

한동안 눈을 내리깔고 있던 협회장이 눈을 들어올렸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치면,

저도 모르게 기댈 곳을 찾기 마련이었다.

레인저 길드장은 1차 암흑기 때,

구원자나 다름없던 세나를 기억하며 그녀의 환생을 바라는 것 같은데.

“증거가 있습니까? 아니,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진짜 세나님의 딸을 봤다면 영상으로 가져오셨어야죠.”

“제가 몇 번이나 말합니까? 경황이 없었다고요, 경황이.”

“그리고 세나님의 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닮은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맞아. 나도 방금 그 생각 중이었어요, 현석씨.”

“바이란, 가만히 있지만 말고 당신도 뭐라고 말 좀 해요!!”

협회장이 짧은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회의실은 상당히 시끄러워져 있었다.

세나 딸의 존재유무.

그에 대한 쟁점이 다 죽어가던 회의실에 활력을 공급한 셈이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활력 요소가 아니었고, 협회장은 금방이라도 언성이 높아질 것 같은 이들을 중재하려고 했다.

그때, 아무 말도 안하고 있던 한 남자가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이요?”

몇 몇이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세나의 딸이 당신 말대로 있다고 칩시다. 그래서 뭐요? 그게 현 상황에서 중요합니까? 보모 역할이라도 하고 싶거든 알아서 하시고, 현실에 집중 좀 하십시다. 이 시간에도 당신네들 길드원들 죽어나가고 있다고.”

맞다.

그의 말은 정곡이었다.

좌중의 분위기가 엄숙해지려고 할 때,

유일하게 레인저 길드장만 표독스럽게 현 상황을 정리한 남자를 쳐다봤다.

“제가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말 한 줄 아세요?”

“그럼 뭐, 세나의 딸이 세나처럼 막강한 빛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답니까?”

명백한 비아냥거리는 어조였다.

“그렇다면요?”

“..이봐요. 장난도 정도껏 합시다. 어릴 때 히어로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것 아닙니까? 뜬구름 잡는 얘기도 정도가 있지.”

“악마의 열매를 먹은 이강석 길드장을 한 번의 공격으로 처치하는 걸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리고 당신. 세나님이 당신 친구도 아니고,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마시죠.”

“..후우. 협회장님. 이 여자의 망상을 계속 두고 보실 겁니까?”

“망상..이요? 망상이라고요? 저는 제가 본 그대로를..”

협회장의 손짓에,

어금니를 깨물고 입을 다무는 레인저 길드장.

“본 회의에 집중하도록 하지.”

협회장의 말은,

앉으라는 신호였다.

“거석신앙 아니라, 그냥 돌 아니에요?”

자리에 앉으며,

앞쪽에 앉아있는 바이란을 째려보는 레인저 길드장.

말 수가 없는 줄은 알았지만,

저 정도면 그냥 돌덩이가 아닌가 싶었다.

레인저 길드장이 홀로 부들부들 되며,

본 회의가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회의실 문이 열리며,

앳된 얼굴의 남자가 고개를 회의실 안으로 쑥 내밀었다.

“회의 중에 죄송한데, 협회장님? 잠시, 저랑 얘기 좀.”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난입에,

여러 사람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대놓고 불평을 쏟아내는 사람은 없었다.

창조 그룹의 장남이자,

달빛 능력자인 서진.

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앉아서 회의도 못했을 터였다.

마치 미래를 예건한 것 같은 작전.

작전에서의 활약상.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이번 재앙의 수훈갑이었다.

“흐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회의 중에 불러내다니.

그것도 협회장을.

불쾌할 법도 했지만,

서진에 대한 신뢰도는 거의 절정에 달해있는 상태의 협회장.

그저 궁금하다는 기색을 내비치며,

자리에서 일어날 뿐이었다.

문 쪽으로 걸어가려고 할 때,

협회장은 돌연 걸음을 멈추고 문 쪽을 빤히 쳐다봤다.

시선이 서진을 지나쳐,

그의 뒤에 숨듯이 서진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는 여자.

협회장은 손을 들어 자신의 눈가를 비볐다.

그리고 다시 쳐다봤다.

귀신은 아니다.

다시 한 번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봤다.

환생이라고 하기에는,

미묘하지만 차이점이 있는 얼굴이었다.

순간 협회장의 시선이 레인저 길드장을 향했다.

짜증 섞인 얼굴로 입술을 삐죽이고 있었다.

“....”

걸음을 빨리하여,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협회장.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이들 역시,

서진의 뒤에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입술을 삐죽이던 레인저 길드장.

그녀의 입술이 제 자리를 찾아가며 미소로 번졌다.

+ + +

“세나님의 딸, 세리나입니다.”

내 말에 세리나가 협회장을 향해,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세리나를 쳐다보는 협회장의 얼굴은 사진이라도 찍어놓고 싶을 정도로 카오스 상태에 빠져 있었다.

“아..아니..”

제대로 말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가 그러던 말던,

나는 내 할 말을 쏟아냈다.

“마왕이 세리나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협회장님이 쫌 맡아.. 아니, 지켜주세요. 이번 재앙이 끝날 때까지. 각성한지 얼마 안 돼서,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니까 세리나한테 너무 많은 질문은 하지 마시고요.”

염치를 떠나,

버릇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협회장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에 대한 무게를 알고 있었다. 그 무게에 비하면 내가 하는 부탁 정도는 부탁도 아니었다.

굳이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세리나를 보호해 줄 인물이 바로 협회장이었다.

웅웅~

세리나를 보호하듯,

그녀 주변을 둥글게 돌고 있던 광휘의 검이 한 차례 울었다.

그의 울음에 무표정하던 세리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광휘의 검이 한 말은 간단했다.

-네 엄마랑 사이좋던 인간이네. 이렇게 안 늙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쭈글쭈글 해져 있지?

불안한 듯,

계속 내 옷자락을 잡고 있던 세리나.

광휘의 검이 보증을 선 덕분에,

악력이 헐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럼 저는 본래 임무로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헐거워진 세리나의 손길을 걷어내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세리나의 동그란 눈이 나를 쳐다봤다.

무지할 정도로 순수한 눈동자였다.

“금방 올게.”

말을 하며,

나는 가볍게 웃었다.

내 미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세리나.

이무신 협회장과 광휘의 검.

이중 보안이면 안심이었지만,

혹시 몰라 레이도 두고 갈까 했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게이트의 난도를 생각해 보면, 레이가 무조건적으로 필요했다.

“음..세리나..라고 했..니? 크흠..큼..”

레이와 함께 자리를 뜨는 내 뒤로,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의 당황스러움이 물씬 풍겨왔다.

+ + +

대재앙이 발생했을 시,

각 역할군 마다 대재앙의 특징에 따라 활약상이 조금씩 다른 편이었다.

하지만 어떤 대재앙이 발생하더라도,

전장의 뒤편에서 묵묵히 그 누구보다 활약하는 역할군이 있었다.

‘치유사.’

그들의 역할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만 않을 뿐,

그들은 숨은 MVP이자 일등공신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어둠 속성에 반하는 빛 속성을 내포하고 있는 사제들은 전장에도 합류를 할 정도로 그 활약상이 눈부셨다.

전장에서 다소 떨어진 임시 치유소.

“쫌, 어때요?”

공격 3조에 합류하기 전,

치유소에 발을 들였다.

그 까닭은 내 눈앞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여자 때문이었다.

내 물음에 채린의 옆에 앉아있던 신지수가,

자신 옆에 있는 의자에 턱짓을 했다.

고개를 드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나는 신지수 옆에 앉으며,

채린을 쳐다봤다.

목 부근에 보이던 검은색 손자국이 조금 옅어져 있었고, 얼굴은 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완치되려면 조금 걸릴 거래. 그래도 응급처치가 잘 돼서, 괜찮을 것 같대.”

말을 하는 신지수의 얼굴에,

안도하는 빛이 스쳤다.

“고마워, 서진아. 너 아니었으면, 친구 하나 잃을 뻔 했네.”

나를 쳐다보며 웃는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나는 대답 없이, 레이를 들어 신지수의 무릎에 올렸다.

내 생각을 읽은 레이가 그녀의 손을 비롯해,

얼굴을 핥았다.

달빛 속성 여파로,

눈물과 피로 얼룩진 손과 얼굴이 씻은 것처럼 말끔해져갔다.

아무런 저항 없이,

레이에게 핥음(?)을 당한 신지수.

힘 없이 손을 들어,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나는 치유소 내부를 훑었다.

건강하지 않은 풍경 속에,

3명의 치유사가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부상자에 비해,

치유사가 현저히 부족한 모습이었다.

“사신 길드원들은 괜찮아요?”

“..5명은 소생 불가능 하다고 그러고, 다른 5명은 치유하면 어찌어찌 괜찮아진다네.”

“....”

간부진으로 보였는데.

이번 대재앙이 끝나면,

길드의 구도와 판도가 대격변이 일어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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