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68화 (168/196)

168회

광여제(光女帝).

"왜 이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왜!!“

캐리어에 짐을 꾸리던 신지수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들고 있던 옷가지를 옷장에 집어던졌다.

첸이 죽은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세리나가 위험하단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죽을 사람이 그렇게 없나? 그렇게 없냐고! 왜 애꿎은 사람들만 잡아가려는 건데! 어엉?!”

천장을 보며 삿대질을 하는 신지수.

“후..”

구역질처럼 올라오는 분노를 애써 삼키며,

짐을 마저 꾸리기 시작하는 신지수.

꾸릴 짐이 많지는 않았다.

이곳에 와서 반쯤 정신이 나가 있던 탓에, 짐을 제대로 풀지도 않고 있었으니까.

짐을 다 꾸리고,

세리나가 있는 방 쪽으로 걸어갔다.

숲 속의 잠자는 공주처럼,

세리나는 이곳에 온 이후 한 번도 잠에서 깨어나질 않았다.

끼이익.

“리나야, 여길 떠나야 해.”

방문을 열었을 때,

신지수는 눈을 여러 차례 깜빡였다.

“리나야?”

기포처럼 봉긋 솟아 있는 이불.

하지만 어디에도 세리나의 머리나 발이 안 보였다.

그렇다는 건,

이불 안에 들어가 있다는 소리인데.

‘이상하네.’

세리나는 한 번도 부동자세에서 자세를 푼 적이 없었다. 이불 안에 들어갔다는 건, 몸을 움직였다는 소리인데.

‘깨어난 건가?’

천천히 이불을 향해 걸어간 신지수.

“리나야, 혹시 일어났어?”

조심스레 이불을 들쳤다.

“....”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

방을 한 차례 둘러보더니, 장롱을 전부 열어 젖혔다. 눈에 보이는 건 침구류와 옷이 전부였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세리나 방을 나선 신지수는 화장실을 시작으로 넓직한 공간이란 공간은 전부 들쑤셨다.

“아..”

한 차례 탄성을 내 뱉은 신지수의 동공이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하늘로 솟은 건지,

아니면 땅으로 꺼진 건지.

세리나가 온데간데없었다.

“어딜 간 거야, 도대체..”

평상시였다면, 막연하게 깨어났나?라고 생각을 하며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었다.

세리나를 노리는 놈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했다. 그것도 무지막지한 놈들이.

“리나야. 세리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집을 나서는 신지수.

집 주변을 시작으로,

근처를 뛰어다니다가 문득 한 곳을 쳐다봤다.

빼곡한 나무가 위치한 산의 초입.

저 안쪽에는 사당이 있었다.

이곳에서 세리나가 갈 곳은 사당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 순간, 신지수의 발걸음이 그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사당과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닭살이 돋을 만큼 불쾌한 마나가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직감이 경고했다.

가지 말라고.

하지만 만약 저곳에.

저런 곳에 세리나가 있다면.

“이..”

어금니를 깨문 신지수는,

오히려 걸음을 빨리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채린아!!”

사당 앞에 도착 했을 때,

신지수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괴한에게 잡힌 채린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혈관이 돋아나 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지상에 있는 사신 길드원들 역시 상태가 채린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불청객, 신지수를 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신지수는 이 상황을 바꿀만한 힘이 없었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도망..쳐.

채린의 입모양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신지수?”

절망의 구렁텅이에 발을 들인 신지수는,

굳어가는 머리를 빠르게 회전하려고 애를 썼다.

그때, 누군가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강..찬..”

신지수는 저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헌터 학교 재학 당시, 숱하게 자신에게 고백을 했던 선배였으니까. 물론 전부 거절하기는 했다.

어쨌든.

현재 강찬의 모습은 사람과 악마의 중간 지점에 있는 듯 했다.

악마가 사람이 된 것인지,

사람이 악마가 된 것인지.

“이게 얼마만이야? 응?”

강찬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점점 짙어져갔다. 미소에 기름칠이라도 하듯, 혀로 입술을 끈적하게 핥았다.

반대로 신지수의 입은 메말라갔다.

“안 본 사이..”

강찬의 시선이 천천히 신지수의 발부터 훑으며 올라갔다. 그러다 가슴 부근에서 시선이 멈춘 강찬.

“더 예뻐진 것 같네. 크크..”

“....”

불쾌함을 토로한다거나,

그의 말에 역겨움을 표출할 수가 없었다.

‘죽는다.‘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가 현재 신지수의 경각을 거세게 울리고 있었다.

“눈빛이 왜 그래?”

말을 하며 다가오는 강찬과의 거리는 이제 5m도 남지 않았다.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봐, 겁나? 겁내하지 않아도 돼.”

제 딴에는 상냥하게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신지수의 귀에는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죽일 생각은 없어. 당장은.”

다시금 강찬의 시선이 신지수의 온 몸을 훑었다.

공포와 두려움이 점철되어,

입술을 씹는 신지수의 머릿속으로 한 남자가 떠올랐다.

‘태산아..’

더불어, 또 다른 남자가 박태산의 어깨를 밀어내며 떠올랐다.

‘서진아..’

누구든 좋으니까.. 아무나..

쉬이익-! 쉬익!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악!!”

“크아아!!”

그리고 들리는 비명소리.

절망 속에 고개를 떨구고 있던 신지수가 고개를 들었다. 사신 길드원들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가던 괴한들이 전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채린의 목을 잡고 있던 괴한 역시 당황한 얼굴로 채린을 손에서 놓고 사방을 경계했다.

사아아~

신지수의 주변으로 미풍이 한 차례 불었다.

“뭐..뭐냐!”

미풍과 함께 나타난 섬광과도 같은 하얀 빛줄기에 강찬이 당황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모든 상황은 일순간 진공 상태에 빠진 것처럼, 정지 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 하얀 빛줄기는 만족한다는 듯이 전장의 허공 위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끼이익.

이 자리에 있는 모두 돌발 상황에 하얀 빛줄기를 쳐다보고 있을 때, 닫혀있던 사당 문이 천천히 열렸다.

열린 문으로,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천사가 강림한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순백해 보이는 여자였다.

모델처럼 시원하게 뻗은 키와,

팔 다리.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고귀해 보이는 얼굴.

모든 걸 아우르는 새하얀 피부.

거기에 더해 자체발광이라도 하듯, 하얀색 마나가 나풀거리듯 온 몸을 에워싸고 있었다.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질감이 느껴지는 여자.

그녀를 쳐다보던 신지수의 입이 천천히 벌렸다.

“..세리나?”

믿을 수 없었지만,

현재 세리나의 모습은 살아생전 세나의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그렇다는 건,

답은 하나였다.

세리나가 각성했다.

+ + +

가을바람이 세차게 내 몸을 때렸고, 눈에 보이는 풍경이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정체 되지 않고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레이,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왔어.”

크르르!!

빛의 마을로 가는 길.

나는 말을 탄 것처럼, 레이의 등에 앉아 있었다.

편하게 가기 위함이 아니었다.

내가 달리는 것보다,

레이를 타고 가는 게 더 빨랐다.

한시라도 빨리 가야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막 게이트 하나를 파괴하고 나온 터라,

레이가 조금 지쳐있기는 했지만 내 마음을 아는지 앞만 보고 질주 했다.

레이의 질풍과도 같은 질주로 인해,

벌써 빛의 마을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이트 길드.’

내가 아는 그들은 선인은 아니었지만,

악인도 아니었다.

헌데 이번에 악인으로 돌아섰다. 내가 알던 미래와는 전혀 다른 전개였다.

‘어째서.’

뭔가 촉매제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강찬.’

문뜩, 한 사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채린과 사신 길드를 묻으려고 한 대가로, 징계를 먹은 나이트 길드의 부길마.

강찬이 이번 사건의 원흉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크르르!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레이가 낮게 울었다.

어느새인가 레이는 빛의 마을에 도착해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사당이 보였다.

“고생했다, 레이.”

나는 레이의 등에서 내리며,

‘월광쇄도’를 사용해 사당이 있는 쪽으로 내달렸다.

강찬에 대한 의심.

사신 길드와 세리나에 대한 걱정.

모든 건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크아악!!”

사당에 도착하자마자,

곧 죽을 것 같은 비명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내 시선이 우선적으로,

비명소리를 쫒았다.

나이트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이강석이 어깨를 깊게 베인 채, 비틀비틀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 돋아나 있는 두 개의 뿔을 확인한 나는 빠르게 전장을 훑었다.

거의 자리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대부분이 바닥에 쓰러져 있거나,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한 사람.

유일하게 전투의 흔적 없이,

멀쩡한 여자가 사당 지붕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뭔가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익숙한 실루엣이었지만,

여기에는 없어야 할 여자였다.

나는 사당 지붕으로 점프를 했다.

“교관님.”

움찔.

내 부름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한 차례 떤 신지수.

천천히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진?”

“예.”

나는 대답을 하며,

신지수 앞에 시체처럼 놓여 있는 한 여자를 쳐다봤다.

숨 쉬기가 버거운지,

꿀럭꿀럭거리는 목울대.

입 밖으로 뭉텅이처럼 튀어나오는 검은 피.

그녀의 목에 타투처럼 새겨져 있는 검은 손바닥 자국을 보며, 나는 재빨리 포인트 상점을 열어 포션 하나를 사왔다.

-구름 사과의 과실

“이걸로 치유해보세요. 효과가 있을 거예요.”

신지수의 치유 능력은 세간에서 알아줄 정도였지만, 악마에게 감염 된 사람에게는 별 다른 효과가 없었다. 성녀나, 고위 사제라면 모를까.

악마의 힘에는 치유 효과에 대한 저항력이 깃들어져 있었기에, 원활하게 치유를 하기 위해서는 빛 속성을 가지고 있는 치유사가 필요했다.

구름 사과의 과실은 신지수에게 없는 빛 속성을 잠시나마 부여해 줄 수 있는 포션이었다.

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생명연장까지는 할 수 있을 터.

빨리 이 자리를 마무리하고,

채린 뿐만 아니라 그녀의 길드원들을 치유협(치유사 협회)에 데리고 가야 했다.

내게 포션을 받아든 신지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포션 마개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가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괜찮을 거예요.”

포션 마개를 대신 열어주며,

나는 앞쪽을 쳐다봤다.

말은 태연하게 했지만,

나는 지금 속으로 상당히 열이 받아 있는 상태였다.

채린.

그녀는 내게 있어 조금은 특별한 여자였다.

제일 처음 나와 손을 잡은 여자이자,

내게 큰 보탬이 되는 조력자였으니까.

그런 내가 화를 죽이며,

날뛰지 않고 있는 이유는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때문이었다.

새하얀 검신의 검 한 자루가,

이강석을 계속해서 압도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상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강찬을 틈틈이 견제까지 했다.

검 한 자루가, 악마의 열매를 먹은 S급과 A급 능력자 둘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는 격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홀로 움직이는 순백의 검.

‘광휘의 검.’

녀석이 사당 밖으로 나온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여신처럼 빛을 발하고 있는,

한 여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광여제(光女帝)라는 말이 퍽이나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