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회
광여제(光女帝).
"생각보다 잘 싸우는데?“
나는 공중에서 공격3조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리 나와 레이가 체력을 많이 깎아놨다고는 하지만.
“합이 좋네. 합이 좋아.”
스카이 길드가 주축인 공격3조.
설민호의 지휘 아래, 6번 게이트의 지배자를 궁지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6번 게이트의 지배자는 거대 타란툴라였는데,
다리가 다 잘려나가고 몸통만 덩그러니 남아 저항을 하고 있었다.
그 저항도 얼마가지 못갈 것 같기는 했지만.
‘공격 3조는 생각보다 약하지 않습니다.‘
설민호의 말이 허언이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이 정도의 전투력이라면 나중에 꽤 쓸만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격3조의 연계 플레이에,
마침내 타란툴라가 고개를 떨궜다.
“브라보~”
나는 박수를 치며,
지상에 착지를 했다.
“서진씨.”
몸에 잔뜩 타란툴라의 녹색 피를 묻히고 있는 설민호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저런 놈을 혼자서 상대하고 계셨던 겁니까?”
나를 보는 설민호의 눈빛에,
약간의 경외심이 엿보였다.
“시간만 끌고 있었는데요, 뭘.”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설민호씨.”
“예?”
나는 말이 길어지려는 설민호의 말을 자르며,
앞쪽을 가리켰다.
“게이트에서 얻은 전리품의 우선권은 공격조에게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뭐하고 있어요? 전리품 안 챙기고. 타란툴라 피랑 안에 잘 뒤져보면 타란툴라 새끼가 몇 마리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타란툴라의 피.
타란툴라의 새끼.
이 정도면 해도 빌딩 한 채 정도는 살 정도의 값어치가 있는 전리품이었다.
스카이 길드가 실력이 좋음에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스폰서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금줄이 생기면,
탄력을 받을 테고.
그럼 전생보다 더 빠르게 성장을 할 테고.
즉.
‘내게 도움이 되겠지.’
원래라면 내가 챙길 생각이었지만,
공격3조의 실력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보험 하나 들어 놓는 것도 괜찮지.’
“근데, 레이.”
크릉?
“아직도 먹고 있어?”
크르릉.(질겨.)
6번 게이트의 문지기였던,
장수풍뎅이.
녀석의 심장은 영약이었고,
레이에게 먹였다.
헌데, 아직까지 입에서 오물오물 거리고 있었다.
“그래, 천천히 씹어 삼켜.”
체할라.
+ + +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6번 게이트를 닷새 만에 클리어한 후,
지휘통제실에 설민호와 함께 들렀을 때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했다.
“공격2조가 전멸 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나와 마찬가지로 설민호 역시,
믿기 힘든 표정으로 되물었다.
“전멸은 아니네. 몇몇 인원은 악마의 열매를 먹고, 악마 측에 가담을 했으니.”
“몇몇 인원이라 하면..”
“나이트 길드 길드장과 그의 길드 간부들이라네.”
“....”
달라졌다.
내가 알던 미래와.
어느 정도 다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강석이 악마의 열매를 먹을 줄이야.
나는 눈앞에 보이는 지휘통제실 모니터를 쳐다봤다.
어디에도 이강석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그들은 현재 어디 있습니까?”
“오늘 아침에 게이트에서 나와, 북진 중이네. 후방조에 있던 사신 길드와 몇몇 길드에게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참이야.”
‘북쪽이라고?’
북쪽에 뭐가 있다고,
북쪽으로..
‘설마?’
“저도 따라붙겠습니다.”
“자네가? 막 게이트에서 나오지 않았나.”
“괜찮습니다. 게이트 안에서 충분히 쉬었거든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레이를 데리고 지휘통제실을 나섰다.
“그냥 쉬는 게 어떻습니까?”
나를 따라 나온 설민호가 말했다.
“추정 인원이 10명 남짓이라고 하니, 아무리 악마의 열매를 먹었다고 해도 사신 길드라면 충분히 처치할 수 있을 겁니다.”
설민호는 아직 모른다.
악마의 열매를 먹은 능력자의 무서움을.
이강석은 S랭크의 능력자.
만약 대악마가 경작한 악마의 열매를 먹었다면..
‘사신 길드라고 해도 위험할 수 있다.’
내가 가려는 이유는 비단 사신 길드의 안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북쪽.
내가 추측하는 이유가 맞다면..
‘세리나.’
이강석의 목적은 세리나일 이유가 컸다.
게이트에서 일정 거리를 벗어나면,
악마의 힘이 약해졌다.
하지만,
악마의 열매를 먹은 인간은 아니었다.
어떤 악마인지는 몰라도,
이강석에게 세리나를 죽이라고 사주를 한 것 같은데.
‘세나에게 지대한 원한이 있는 놈이라면 한 놈 있기는 하지.’
10번 게이트의 지배자이자,
최종 보스.
‘디아블로.’
어떻게 녀석이 세리나의 존재를 알아차린지는 몰랐지만,
서둘러야 했다.
내 추측이 맞다면 이강석이 먹은 악마의 열매는 디아블로가 경작한 악마의 열매였다.
“쉬고 계세요.”
공격2조가 전멸했고, 공격2조가 클리어 해야 했던 5번 게이트가 아직 열려 있었다. 앞으로 남은 게이트는 공격1조와 공격3조가 모두 도맡아야 하는 상황.
나는 레이의 등에 올라타며 말했다.
“내일 바로 5번 게이트 공략하러 가야하니. 레이, 가자.”
세리나가 있는 빛의 마을로 출발했다.
+ + +
“크하하! 힘이 넘치는구나, 찬아!”
“크크크!”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고 있는 이강석과 강찬.
머리에 돋아난 세 개의 뿔하며,
옷이 찢어질 정도로 거대해진 몸까지.
혈관이 터질 것처럼,
살 위로 도드라지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들의 뒤로 뿔이 두 개 달린 이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어서 더 많은 인간의 피를 맛보고 싶구나! 크흐..크흐흐!”
살면서 이처럼 쾌락적인 기분은 처음이었다.
공격2조를 전부 죽였지만,
아직도 이강석은 목말랐다.
“계집 하나를 죽이면 더 큰 힘을 준다고 한 게 확실 하냐, 찬아?”
“그렇다니까!”
“좋구나!!”
지금 보다 더 큰 힘이라니.
‘사신 길드. 태양 길드. 기다려라.’
위계질서가 바뀌는 날이 멀지 않았으니.
“이 쯤인 것 같은데 말이지.”
이강석이 속도를 늦추며,
앞 쪽을 쳐다봤다.
흔한 시골 마을의 풍경.
저곳에서 희미하지만 ‘빛’ 속성 마나가 흘러 나왔다.
“저곳이다!”
타타탁!
농가의 지붕을 밟으며,
산속으로 들어가는 이강석.
사당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찬아.”
“나도 느껴져.”
사당 안에서 뾰족하다 못해,
날카로운 ‘빛’의 기운이 응어리져 있었다.
악마의 열매를 먹은 터라,
그 기운이 상당히 불쾌하게 느껴졌다.
“떨어져라. 한 방에 날려 버릴 테니.”
오른손을 들어 올리는 이강석.
그의 손에 검은색 마나가 피어나며,
응집하기 시작했다.
“하압!”
기합과 함께,
이강석의 손을 떠난 칠흑의 마나 구체.
탄환처럼 사당으로 날아갔다.
쌔애액!
마나 구체가 사당에 당도했을 무렵,
바람 찢는 소리와 함께 실타래 같은 하얀 줄이 사당을 감쌌다.
쿠웅!
하얀 줄에 막힌 마나 구체.
사당이 지진 난 것처럼,
한 차례 진동했다.
“미행당하고 있는 건 알았지만.”
표정 변화 없이 사당 지붕 쪽을 쳐다보는 이강석.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군. 채린.”
채린과 함께 10명에 달하는 인원이 사당 지붕에 안착하듯, 착지했다.
“그러게요. 앞 질러갈 걸 그랬나보네요.”
사당을 감싼 거미줄을 회수하는 채린.
싸늘한 표정과 시선으로 이강석과 그의 뒤에 있는 일행을 내려다봤다.
"협회장님의 명령으로, 당신들을 현장 사살하도록 하겠습니다.“
“크크..크흐흐..”
채린의 말이 재밌기라도 한 듯,
얼굴을 감싸 쥐고 웃는 이강석.
“레인저 길드와 바이란 길드가 포위망을 지금쯤 형성하고, 좁히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도주할 생각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강석이 웃던 말던,
자기 할 말을 하는 채린.
오른손을 하늘 높이 들었다.
“지주진을 펼쳐, 상대 움직임을 우선적으로 봉쇄한다. 가라, 사신들!”
앞으로 손을 뻗는 채린.
그녀의 신호에 뒤에 서 있던 인원들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촤르륵.
인원들이 지주진에 필요한 위치를 잡을 때 동안, 시간을 끌 요량으로 거미줄을 앞으로 쏘아 보내는 채린.
거미줄이 이강석을 포함해 강찬과 악마의 열매를 먹은 나이트 길드원들의 머리 위를 덮었다.
채린의 ‘거미줄’ 능력은 A급 중에서도,
상위에 랭크 돼 있는 능력이었다.
제 아무리 악마의 열매를 먹었다고 해도,
조금의 시간을 끌어줄 수 있을..
“..말도 안 돼.”
눈을 부릅뜬 채린은 황급히 거미줄을 재차 시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성가신 벌레를 쫓아내는 것처럼,
이강석이 손을 몇 번 저었을 뿐인데 채린의 거미줄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지주진을 펼치려던 사신 길드원들.
거미줄의 부재에 자리를 잡기는커녕,
달려드는 나이트 길드원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전투의 양상은 깊게 들여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악마의 열매를 먹은 나이트 길드원들이 압도적으로 사신 길드원들을 압박하고, 공격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공세였다.
“우리를 너무 얕본 것 같은데. 채린.”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역겨우니까.”
“크큭..역겹다라.”
한 번의 도약으로 채린이 있는 사당 지붕에 안착을 한 이강석. 도약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채린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곁을 내주고 말았다.
“강한 힘을 추구하는 게 뭐가 잘못 된 거지?”
채린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는 이강석.
“나는 내게 온 기회를 잡은 것뿐이다, 채린.”
채린의 멱살을 손에 쥐고 들어올렸다.
“드디어 내게 찾아온 기회를 잡았을 뿐인데, 역겹다고? 크크..크하하!!”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웃던 이강석이,
정색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너는 모른다. 기회라는 게 얼마나 불공평하고 얼마나 불합리한지.”
“크윽..”
“그런데 말이야.”
“큭..”
“이제와 생각을 해 보니, 기회는 꽤나 평등한 것 같단 말이지. 크크.. 안 그런가, 채린?”
이강석의 손에 붙들려,
허공에 발길질을 하고 있는 채린.
딱히 이강석이 능력을 시전한 것 같지는 않았다. 헌데, 아무런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이강석의 시선을 마주했을 뿐인데.
‘겁에 질린 건가? 내가?’
내적으로 적신호가 크게 울리긴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 상황을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
아득한 공포.
이강석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 너머에 마치 다른 존재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죽여 버리기에는 아까운 외모이긴 하다만.”
씨익 웃는 이강석.
“살려둘 정도는 아니군. 크크.”
멱살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기 시작하는 이강석. 점점 채린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며, 입에서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채린을 도와주기에는,
사신 길드원들 역시 하나, 둘씩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다.
‘서진씨..’
이 곳에 오기 전,
서진에게서 연락이 있었다.
가급적 시간만 끌고 있으라고.
자신이 도착할 때까지.
채린 역시 그럴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주진을 펼치려고 한 것인데..
‘아무래도..’
시간도 끌지 못할 것 같았다.
‘세리나랑, 지수는 도망쳤을까?’
미리 연락을 취했으니,
도망쳤겠지.
채린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부여잡으며, 어금니 쪽을 혀로 핥았다. 작은 캡슐 같은 게 느껴졌다.
사신 길드에서 만든 ‘맹독’이었다.
자살. 혹은 길동무를 데려가기 위해,
사신 길드원들은 전원 하나씩 가지고 다녔다.
‘폭탄형 맹독이니..’
이걸 씹는 순간, 채린의 입에서 터지듯이 맹독이 사방으로 흘러나갈 터.
‘서진씨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겠지.’
맹독이 이강석을 처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부탁해요, 서진씨.’
맹독 캡슐을 씹으려고 할 때.
“내가 사신 길드를 따라잡기 위해, 얼마나 조사를 했다고 생각하나?”
이강석이 손을 채린의 입에 쑤셔 넣었다.
맹독 캡슐을 빼내는 이강석.
멀리 던져버렸다.
“저길 보라고. 채린.”
지상에서 나이트 길드원들이 방금 이강석이 했던 것처럼, 사신 길드원들의 맹독 캡슐을 제거하고 있었다.
“우리는 단 한 번의 기회면 충분했다. 단 한 번이면!! 사신 길드와 태양 길드를 따라잡을 수 있었단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단 한 번의 기회를 얻었지.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우리가 이 기회를 놓칠 것 같아? 크크..크하하!!”
끝났다.
라고 채린은 생각했다.
광포한 이강석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생을 마감하려고 할 때.
“채린아!!”
멀리서 익숙하지만,
지금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수?’
신지수가 헐레벌떡 사당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