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회
이강석과 강찬
화르륵.
“여기는 정리 끝났어. 시아야, 거기는?”
“여기도!”
이순신 헌터 학교의 교정에 널려 있는 몬스터의 시체들.
정시아와 한설휘가 손을 털며,
서로에게 다가갔다.
“오늘 할당량도 끝!”
정시아가 기지개를 켰다.
“다행이야.”
“응? 뭐가?”
한설휘를 쳐다보는 정시아.
“학교에 악마가 있다고 하길래, 혹시 아는 얼굴이 있나 싶어서 불안 했거든.”
“에이 설마~ 방학 시즌이기도 하고, 개학도 연기 됐다고 했는데.”
교정을 스윽 쳐다보는 정시아.
“등교하는 멍청이가 어디 있겠냐? 그리고 설마 헌터 학교 학생이 악마의 열매를 먹었겠어?”
“그치?”
“그럼 그럼~ 근데.”
계속 교정을 둘러보던 정시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황금돌대가리는 어디 갔어?”
“아까 악마 쫒아서 기숙사 쪽으로 가는 것 같던데?”
“어휴. 시야에서 벗어나지 말라니까.”
후방조라 그런지,
딱히 긴장이 되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전투 할 때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 건데.
‘말썽이야, 말썽.’
천방지축 날 뛰는 게,
짱구도 아니고 말이지.
한설휘의 손목을 잡는 정시아.
“가보자, 우리도.”
“응.”
보나마나 쓸데없이 힘을 빼며 악마와 주먹다짐을 하고 있을 게 뻔 했다.
기숙사 A동을 지나쳐,
B동을 지나치려고 할 때.
“저기, 황금돌대가리 아니야?”
“옆에 뚜뚜가 있는 걸 보니까, 맞는 것 같은데?”
“근데 왜 저렇게..”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고 있는 것 같지?”
의아한 두 사람.
금석을 일방적으로 때리고 있는 악마는,
그렇게 강해보이진 않았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걸 보아,
악마의 열매를 먹은 인간 같은데.
“황금돌대..가리..”
금석을 부르며 다가가던 정시아가 발걸음을 멈칫했다.
“..시아야.”
한설휘 역시 마찬가지였다.
“크하하!! 다 죽어라! 다 죽여주마!! 서진 새끼 나오라고 그래!”
광기에 젖은 얼굴로,
금석을 향해 쉴 새 없이 주먹을 날리는 악마.
악마로 모습이 변하기는 했지만,
상당히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쟤..”
“맞는 것 같아. 재벌 그룹 장남. 이수혁.”
한 때, 서진과 함께 망나니 쌍두마차로 불리던 이수혁. 그는 더 이상 인간 이수혁이 아니었다.
“하..”
머리를 싸매는 정시아.
“어떡하냐.”
“아무리 우리 학교 학생이라도 악마의 열매를 먹은 이상 살려둘 수는 없어.”
“나도 알아. 아는데.”
찝찝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는 정시아.
“쟤, 재벌 그룹 장남이잖아. 괜히 우리가 죽였다가 말 나올 수가 있어. 기다려봐. 채린 언니한테 물어볼게.”
“그럼 나는 쟤 좀 진정시키고 있을게. 금석이 아무래도 아는 얼굴이라 맞고만 있는 것 같아.”
앞으로 도약하는 한설휘.
“어, 여보세요. 언니. 여기에 있잖아,”
+ + +
“후우..”
공격2조의 대장이자,
나이트 길드의 길드장인 이강석.
가운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막, 샤워를 했던 터라 머리카락에 물기가 가득했다.
“주름이..또 늘었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이강석.
주름은 근심과 걱정이 비례하는지,
주름을 보는 이강석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러자, 미간에도 생겨난 주름.
“....”
이제 와, 주름을 피기에는 이미 많은 게 흘러가 있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지.’
거울에 손을 올리는 이강석.
20대 때 그 총명하고 자신감 넘치던 눈은 어디 갔는지, 꼬리를 만 강아지처럼 눈에서 많은 게 사라져 있었다.
‘분명 나는 최선을 다 했을 뿐인데.’
쾅!
주먹으로 거울을 한 차례 때린 이강석.
와장창하고 거울이 조각이 났다.
‘어째서..’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답을 알 수가 없었다.
남들 보다 좋지 못한 집안과 배경.
남들 보다 좋지 못한 능력.
하지만 극복했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다.
“난..”
패배자인 것일까.
운명의 순리를 벗어나기 위해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제 자리로 회귀를 해버린 것일까.
나이트 길드의 마스터 자리에 오른 후,
하루에 3시간 이상 자 본적이 없었다.
나이트 길드를 성장시키기 위해,
개인의 성장과 삶을 포기했다.
헌데, 한계가 명확했고 벽이 명확했다.
노력만으로 갈 수 있는 길의 끝은 막다른 길이었다.
그래서 손을 잡았다.
벽을 뚫고 막다른 길을 개척할 수 있는 것과.
‘재벌 그룹.’
처음에는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사신 길드와 태양 길드와 나란히 설 수 있는 기회. 재벌 그룹은 충분히 그런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국내에 내로라하는 기업이었다.
“손을 잡지 말았어야 했다.”
이강석은 만약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돌리고만 싶었다.
동등한 입장으로 시작 했던 재벌 그룹과의 관계는 어느새 인가, 주인과 주인이 키우는 개로 바뀌어 있었다.
자본이 가지고 있는 힘을 너무 얕본 탓이었다.
“이번 대재앙이 끝나면..”
주인을 무는 한이 있더라도,
재벌 그룹과의 관계를 청산할 생각인 이강석.
그가 이번 대재앙에 공격2조 대장을 자처한 이유는 재벌 그룹과의 손절을 하기 위한 방어막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진흙탕 싸움에,
여론전이 펼쳐질 게 분명한데.
공격2조 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한 점이,
여론전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도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래도 이강석, 저 사람은 이번 대재앙에서 목숨 걸고 싸웠잖아. 다들 안 그래?’
그럼 다른 누군가가 말하겠지.
‘그건 맞지.’
여론은 별 게 없었다.
누가 더 선동을 잘 하느냐.
어느 편에 선동꾼이 더 많냐.
이 싸움이었다.
혹자는 말 했다.
시민은 개, 돼지라고.
이강석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시민은 진실이 무엇인지.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마녀사냥처럼.
아침에 브런치와 함께 가십거리를 스윽 보고 넘기는 것처럼.
마른 오징어를 씹는 것처럼.
그럴 뿐이었다.
“찬이가 보고 싶군. 멍청한 자식. 괜히 쓸데없는 일을 저질러가지고.”
드라이기를 든 이강석.
머리를 말리는 건지, 머릿속에 부유물처럼 떠 있는 생각을 말리는 건지 한참을 말렸다.
똑똑.
머리를 말리고,
전투복을 갖춰 입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들리는 목소리.
“길드장님, 공격2조, 전부 집결했습니다.”
“곧, 나갈 테니 대기하고 있으라고 전해라.”
“예.”
문 너머, 발걸음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
짧게 한 숨을 쉬는 이강석.
오늘은 5번 게이트를 공략하는 날이었다.
이전 게이트 공략의 후유증과 피로도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쉴 수가 없었다.
한태문이 이끄는 공격1조는 이미 2번째 게이트에 입성을 한 상태였고, 공격 3조는 애송이 혼자서 게이트를 클리어 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알게 모르고 스포트라이트는,
1조와3조에 집중이 되고 있었다.
이 이상 스포트라이트를 뺏겼다가는,
대재앙이 끝나도 원하는 성과를 못 얻을지도 몰랐다.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이강석은 홀로,
경쟁을 하고 있었다.
늘상, 강박감에 사로잡혀서.
똑똑.
전투복을 다 입고,
마지막으로 무기 점검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인상을 찌푸리는 이강석.
“곧, 나가니까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을 텐데!”
이제는 아랫놈들까지.
이강석은 자신을 무시하는 기분에,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이 새..찬아? 강찬?”
욕을 쏟아내려던 이강석.
현관 앞에 서 있는 남성을 보며,
욕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후드를 깊게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이강석은 눈앞의 남자가 누구인지 단 번에 알아차렸다.
헌터계에서 퇴출됐지만,
한 때는 나이트 길드의 2인자였단 강찬.
더 나아가, 자신이 친동생보다 아끼던 놈.
헌터계에서 퇴출 명령이 떨어진 후,
땅에 꺼진 것처럼 잠수를 타더니.
“여기서 뭐..”
“형.”
“..일단 들어와라.”
호텔 복도를 한 번 살핀 이강석이,
강찬을 방으로 들였다.
“그동안 어디 짱 박혀 있었어? 어? 형이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형.”
“퇴출은 퇴출이고. 형이랑 연을 끊으려고 했어? 말해봐, 이 새끼야.“
“형.”
“아아. 미안하다. 흥분했다.”
이마를 손으로 짚고,
소파에 앉는 이강석.
강찬의 얼굴을 쳐다봤다.
“근데, 후드는 왜 그렇게 깊숙이 눌러쓰고 있는 거야?”
“....”
“후드 좀 벗어봐. 오랜만에 동생 얼굴 좀 보게.”
“형. 나 부탁이 있어.”
“부탁? 말해 봐.”
“나 좀 게이트에 같이 데리고 가 줘.”
“..뭐?”
“혹시 모르잖아. 악마 쫌 때려잡으면 복귀 시켜줄지.”
“..찬아.”
양 손으로 세수를 하는 것처럼,
얼굴을 비비는 이강석.
손을 내리며 강찬을 쳐다봤다.
“너도 알잖아. 협회장 노인네 성격.”
“형. 나 여태까지 한 번도 형한테 부탁 같은 거 해 본적 없잖아.”
“....”
“복귀 안 해도 괜찮아. 그냥 악마랑 싸울 수 있게만 해줘. 몸이 너무 근질근질 거려서 그래.”
“하아..”
이강석은 난처했다.
강찬의 부탁을 들어주자니, 혹시나 발각되면 공들이고 있는 탑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퇴출당한 헌터를 임무에 끌어들였다고 오히려 자신의 자리까지 위협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안 들어 주자니,
강찬과 함께 한 세월이 야속할 정도로 끈끈했다.
“형.”
“왜?”
고민이 깊어지고 있을 때,
강찬이 품에서 검은색 액체가 담겨 있는 유리병을 꺼내서 내밀었다.
“이게 뭔데?”
“피로회복제 및 각성제 효과가 있는 포션이야. 이틀밖에 안 쉬었다며? 이거 마셔. 유명한 약제사 능력자한테 얻어 온 거야.”
“그래?”
“응.”
“역시 내 생각해 주는 건 너밖에 없구나, 찬아.”
포션병 마개를 오픈 한,
이강석.
아무런 의심 없이 마시려고 하다가,
코를 킁킁거렸다.
“냄새가 쫌..뭐라고 해야 하지. 어디서 맡아본 것 같은..”
“약재 냄새야. 얼른 마셔. 오픈하고 바로 마셔야한다고 약제사가 그랬어.”
“음..”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강찬이 자신에게 이상한 걸 먹일 일이 없었다.
두 사람 사이의 유대감은,
친형제 보다 더 깊었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단숨에 마신 이강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찬아. 약제사 이름이 뭐야?”
“왜?”
“아니..마시자마자 몸에서 힘이 불끈불끈 나는 게, 뭐라고 해야 하지.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처음에 나도 그랬어.”
“너도 마셨어?”
이강석의 물음에 씨익 웃는 강찬.
“그래서, 형. 나 데리고 가 줄 거지?”
“어..어..당연하지.”
엉겁결에 대답을 한 이강석.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분에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 이렇게 다 죽여 버리고 싶지?’
약효가 너무 좋아서,
드는 생각이라고 생각을 했다.
자신감이 충만해진 부작용.
딱 그 정도라고 생각을 했다.
“가자. 늦었다.”
감정을 최대한 추스르려고 노력을 하며,
현관으로 걸어가는 이강석.
“근데 내가 후드 벗으라고 했어, 안 했어?”
뒤따라오는 강찬의 후드를 강제로 벗긴 이강석.
“너..너..머리에..뿔이..”
“형.”
“너..”
“우리는 이제 한 배를 탄 거야.”
“그게 무슨..”
순간 쎄한 느낌에,
자신의 머리를 만져보는 이강석.
“....”
혹이 난 것처럼,
세 개의 뿔이 돋아나려고 하고 있었다.
“이 개새..”
“형.”
이강석의 귀에 입을 가져다대는 강찬.
“이제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어.”
“....”
왜일까.
이상하리만큼 강찬의 말이 이강석의 귀에는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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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발암 듀오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