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회
필멸자의 영혼
"쫌 놓으라고!!“
환장하겠네, 진짜.
나는 지팡이를 손에 쥐고 전혀 놓을 생각이 없는 리치왕의 손가락을 억지로 잡아당겼다. 하지만 자물쇠를 채워놓은 것처럼, 손이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사실은 살아있는 거 아니야?”
아니다.
심장을 확실히 터트렸으니,
그럴 리가 없었다.
그 증거로 번뜩이던, 리치왕의 두 눈이 전구가 나간 것처럼 빛이 사라져 있었다.
쿠웅. 쿵.
나는 뒤쪽을 쳐다봤다.
알현실의 천장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바닥에 균열이 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젠장.”
처음 사용해 보는 초식이라,
감이 전혀 없었다.
“이렇게 강할 줄 알았으면..”
힘 조절이라도 하는 건데.
힘 조절 실패로, 알현실 뒤편에 있는 1번 게이트의 코어까지 리치왕과 함께 날려버렸다. 그 덕분에 1번 게이트는 유지 기능을 잃고 닫히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1타2피에 환호를 했지만,
점점 후회를 하는 중이었다.
“놔! 놓으라고!”
죽은 리치왕.
몸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지만,
지팡이를 잡고 있는 오른팔만은 건재했다.
죽은 놈의 악력이 왜 이렇게 쎈지,
떼어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아..기운 없어.”
몇 번 시도를 하던 중,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10초식을 사용하느라,
남아있던 달빛력을 모두 소모해버렸다.
가뜩이나 마계에서는 달빛력 회복도 느린 참이라, 마나 탈수증세가 심하게 느껴졌다.
“안되겠다.”
나는 리치왕의 오른팔을 집어 들었다.
보기에는 흉해도,
이 상태로 가지고 가는 수밖에.
‘포인트 상점.’
“레이.”
크르릉!
잠에서 깨어난 레이가 기운차게,
꼬리를 흔들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필멸자의 영혼’을 잡고 있는 리치왕의 오른팔을 바닥에 툭 던지며, 레이에게 부탁을 했다.
“나 좀, 밖으로 데리고 가줘. 힘이 없다, 레이야.”
크릉!(알았어!)
나는 레이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포인트 상점을 닫았다.
소형화 크기에서 본래의 크기로 변한 레이.
나는 그런 레이의 등에 엎어지듯이 올라탔다.
“출바알.”
내 힘 없는 목소리를 신호로,
레이가 내 능력인 ‘월광쇄도’를 사용해 알현실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가까스로,
게이트가 닫히기 전에 탈출에 성공을 했는데.
“..무슨 일 있나?”
나는 엎드렸던 몸을 일으키며,
아래를 쳐다봤다.
많은 사람들이 바리게이트 주변에 모여 있었고,
하나 같이 내가 있는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 중 가장 대장으로 보이는 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협회장님? 거기서 뭐하세요?”
지휘통제실에 있어야 할 인물이,
여기는 무슨 일이람.
“서..진군!!”
표정을 보니,
되게 날 반기는 표정인데.
“저 녀석들은 왜 여기 있어?”
나는 협회장 옆에 있는 정시아,한설휘,금석을 쳐다봤다. 협회장과 표정이 비슷했다. 한설휘는 운 것인지,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웃고 있었다.
‘..뭐지?’
금의환향한 느낌인 것 같기는 한데.
왜 저렇게들 호들갑을 떨고 있어?
+ + +
“지구가 좋기는 좋구나~”
나는 온천욕을 하는 것처럼,
산 정상에 누워 만족감이 드러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너도 좋지? 레이?”
크르릉!
내 배 위에, 소형화 크기로 누워 있는 레이.
얼굴을 내 가슴에 비볐다.
마계에 있다가 원래 살던 세상으로 넘어오니,
공기부터가 달랐다.
“곧, 있으면 풀이네.”
나는 상태창을 닫으며,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쳐다봤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이유는,
달빛력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높은 곳에 있으면,
비약적으로 달빛력이 더 차는 느낌이었다.
마계에서는 찔끔찔끔 차던 달빛력이,
미친 듯이 차오르고 있었다.
‘1,2,3번 게이트가 닫혔으니.’
이제 남은 건 7개의 게이트였다.
한태문의 공격1조가 하나의 게이트를 지금 처리하고 있으니. 사실상 남은 건 6개의 게이트였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올려,
도시와 도시 위 하늘을 쳐다봤다.
3개의 게이트가 닫혔음에도 여전히 흉흉한 게이트가 일정한 간격으로 하늘을 뒤덮고 있었고, 악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지상은 내가 알던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이 파괴가 돼 있었다.
하지만, 협회장에게 듣기로는 사상자와 사망자 수가 그리 많지 않다고 들었다.
‘그거면 됐지.’
건물은 다시 복원을 하면 되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게이트 공략을 나서고 싶었지만, 휴식도 중요한 법이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나 할까.
딱 오늘만 쉬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몇 번 게이트를 공략하면 좋으려나.’
8번에서10번까지 게이트는 일단 보류였다.
협회와 헌터들에게도 그리 말을 해 놓았다.
1번에서 7번 게이트까지는 난이도가 대동소이였다. 하지만 8번부터 10번까지 게이트는 아니었다.
1번에서 7번 게이트가 난이도가 6이라고 치면,
8번과 9번 게이트는 10이었다.
‘10번 게이트는 15정도 되려나.’
이번 시나리오의 최종 보스는 10번 게이트에 있는 지배자 녀석이었다. 사실상 이번 시나리오는 그 녀석을 어떻게 잡냐가 관건이었다.
물론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서 사기를 꺾을 필요는 없었다.
‘지금 당신들이 하고 있는 건 워밍업 수준입니다.’
라고 말하면, 이탈자나 탈주자가 대거 생기지 않을까?
때론,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
‘공격1조가 지금 4번 게이트를 공략하고 있고, 공격2조가 내일 5번 게이트를 공략하러 간다고 했으니. 순차적으로 나는 6번이나 갈까? 그런데..’
“언제까지 거기 그러고 계실 겁니까?”
스토커도 아니고, 할 말이 있으면 하면 될 것이지.
“설민호씨?”
아까부터 나무 뒤에 숨어서 쳐다나 보고 있고.
생각하는데 거슬리게 말이야.
“아..알고 계셨..어요?”
쭈뼛거리며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설민호. 검에서 손을 떼고 있어서 그런지 상당히 어리숙한 모습으로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마나가 그렇게 불안정하게 흘러나오는데 모르겠습니까?”
“아..그..그게 아직 회복이 덜 돼서..”
나는 레이를 품에 안으며,
몸을 일으켰다.
레이는 온천욕을 하듯이,
달빛욕에 몸을 맡기고 잠들어 있었다.
쿠루루..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설민호를 쳐다봤다.
“피차, 오늘 게이트에서 나와서 힘들 텐데 용건만 간단히 하시죠.”
나는 턱으로 설민호의 검을 가리켰다.
“네..”
내 말 뜻을 이해한 설민호가,
검집에 손을 올렸다.
“엿보는 취미는 없습니다. 그저, 너무 편히 쉬는 것 같아 방해하지 않으려고 한 것뿐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성격이 싹 바뀌지?’
눈빛과 말투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설민호.
뿐만 아니라 살짝 굽었던 등을 쫙 폈다.
“그래서 여기까지는 어쩐 일입니까?”
“대련에서 제가 졌음에도, 대장을 제게 맡긴 이유. 아니, 떠 넘겼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은데. 틀렸습니까?”
‘역시 눈치를 챘네.‘
설민호와 빌딩 옥상에서 공격3조 대장 자리를 놓고 대련을 했고, 대련의 승자는 나였다. 설민호가 아니라.
단지, 명령을 했을 뿐이었다.
대장으로서.
‘그 쪽이 대장하세요~’
라고.
나는 홀로 행동을 하기 위해,
대장직을 설민호에게 넘겨야 했다.
헌데, 그냥 넘기기에는 명분이 없었다.
그리고 넘긴다고 해도 설민호 성격에 ‘아싸~’하고 받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대련을 신청했고,
합법적(?)으로 넘겼다.
누이 좋고,
매부도 좋은.
서로가 좋은 결과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찾아올 줄이야.
“그래도 바지사장은 아니잖아요. 비선실세는 더더욱 아니고. 그냥 짬 당했다라는 느낌이 들어, 그게 기분이 나쁜 거라면..”
“언제 출발할 생각입니까?”
“..예?”
“다음 게이트 공략 말입니다.”
“내일 갈까하는데요.”
“..빠르군요.”
고심하는 듯한 설민호.
“저희는 그럼 모레 따라붙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회복이 필요한 인원이 많아, 내일 당장 출발하기에는 무리가 있거든요. 협회에는 서진씨도 모레 출발하는 걸로 전달해 놓겠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주변 시선을 신경 쓰는 것 같으니.”
“....”
나는 물끄러미 설민호의 얼굴을 쳐다봤다.
안 그래도 고민이었다.
혼자 게이트로 쳐들어가면 분명 주변에서 말이 나올 텐데 하며. 그런데 설민호가 조취를 취해주면 한결 편하긴 했다.
설민호는 공격3조의 대장이었으니까.
“아무래도 학생 신분에, 집안도 보통 집안이 아닌지라. 그런데 말입니다, 설민호씨.”
“예.”
“제게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뭡니까?”
따지러 온 줄 알았더니,
호의를 베풀고 앉아있으니까.
‘꿍꿍이를 가지는 캐릭터는 아닌데 말이지.’
“저는 아직까지 살면서, 누군가에게 검대 검으로 져본 적이 없습니다.”
“....”
“그런데 졌습니다. 당신에게.”
설민호의 말이 내 귀에는 ‘너를 인정했다.’라고 들렸다. 표정을 보니 내 추측이 틀린 것 같지는 않았다.
“다시 한 번, 대련을 하고 싶습니다. 이번 대재앙이 끝나면. 그럼.”
고개를 숙인 설민호.
등을 돌렸다.
몇 발자국 가던 설민호.
제 자리에 우뚝 서서 말을 했다.
“쉽게 죽을 캐릭터는 아닌 것 같지만, 내일 무리는 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도우러 갈 테니. 그리고 저희 길드와 공격 3조는 생각보다 약하지 않습니다.”
제동을 걸었던,
설민호의 발이 다시 움직였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설민호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죽는다라.’
영화나 소설.
혹은 어떤 세계관이던지 주인공이 죽으면 이야기가 끝난다.
이 세계에서 주인공은 나였다.
왜냐하면 내가 죽으면 레볼루션에 의해 세상은 멸망하니까.
고로,
나는 절대 죽을 생각이 없었다.
레볼루션을 잡고,
성불할거다.
죽는다고 하니,
오늘 아침 게이트에서 나왔을 때가 생각이 났다.
나를 한참이나 끌어안았던 한설휘.
그리고 옆에서 욕을 바가지로 하던 정시아와 금석.
나는 내 죽음에 대해 무딘 편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나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존재였다.
“나쁘진 않네.”
내가 죽을까봐 걱정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게임 캐릭터처럼,
단지 하나의 캐릭터가 아닐까.
그래서 가끔 내 목숨에 상관없이 무모하게 행동을 할 때가 있었다. 내가 진짜 나인지, 확인을 하고 싶은 생각 때문에.
‘나는 살아있다.’
단순한 명제였다.
당장 볼만 꼬집어도,
“아..”
알 수 있으니까.
쿠루룽..
내 품에서 잠꼬대를 하는 레이.
나는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검은 연기에 반쯤 가려진 달을 올려다봤다.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은 날이네.”
+ + +
6번 게이트 앞.
사람 크기. 혹은 그 보다 더 큰 곤충형 몬스터들이 사방에 날아다니거나, 걸어 다녔다. 몬스터들의 중심에는 인간형 곤충 몇 마리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인간들 다 무서워서 도망 갔나봐. 쿠루루.”
“키이익. 그러게. 키익.”
“다른 구역 침범이나 할까? 갈갈?”
“쿠루루. 안 돼. 그러다 툴라님에게 혼나. 다른 구역 인간은 건들지 않기로, 약속 했잖아. 쿠루.”
“악마가 약속도 해?”
“쿠루루. 당연하지. 쿠루. 약속 했어. 다른 구역 인간들에게 침 흘리지 않기로. 쿠루루.”
“오호. 근데 너희들 말 중에 정정할게 있어.”
“키익?”
“갈갈?”
“쿠루루?”
“인간들이 무서워서 도망간 게 아니라, 수비조는 원래 공격조가 올 때까지 전선을 뒤로 잡고 있기로 한 거야. 그래야지 혹시나 인원의 공백이 생기면 다른 수비조가 와서 도와주기 용이해서. 무슨 말인지 알겠어?”
“우와. 진짜? 쿠루?”
“몰랐다, 갈갈.”
“똑똑하다, 키익. 키이익.”
“근데, 쿠루루. 어디서 인간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쿠루.”
“나도 느꼈다, 갈갈.”
“어디서 나는 냄새지, 키익?”
“아마, 너희들 뒤에서?”
씨익.
“안녕?”
나는 품에 안긴 레이의 앞발을 들고 인사를 했다. 신사적인 나와는 달리 레이는 거친 인사가 좋은지, 내 품에서 튀어나갔다.
크르르!
몇 번 번개가 치듯,
왔다 갔다 거린 레이.
커다란 메뚜기 다리를 입에 물고,
내게 걸어왔다.
“그거 지지야. 뱉어. 그거, 말고 저거 먹자. 레이.”
나는 손으로 6번 게이트 앞을 가로 막고 있는,
풍뎅이처럼 생긴 문지기를 가리켰다.
“저거 장수풍뎅이라, 몸에 좋아.”
크르르!
우리는 6번 게이트에 빠르게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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