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64화 (164/196)

164회

필멸자의 영혼

“진짜 가지가지 하네.”

사방에서는 언데드 몬스터가 달려들고.

멀리서는 리치왕이 마법을 난사하고.

거기에 더해 지형까지 말썽을 피웠다.

나는 지진이라도 난 것 같은 지면에서 몸을 띄우며, 다가오는 좀비의 목을 한꺼번에 수 십 마리를 베어냈다.

내가 검을 휘두르는 찰나의 순간.

화르륵.

화륵.

리치왕이 만들어 낸,

검은 구체가 빈틈을 파고들었다.

“보름달 가두기.”

속박용이자, 쉴드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초식으로 빈틈을 방어했다.

내 신경이 양쪽으로 분산 된 틈을 타,

리치왕이 헛짓거리를 시전 했다.

“세뇌의 굴레!”

“소용없다고!”

나는 흔들리는 지면을 타고 그림자처럼 내가 다가오는 검은 기운을 피해, 천장에 닿을 정도로 몸을 띄웠다.

리치킹은 어떻게 해서든 나를 하수인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래서인지 눈이 뒤집혀 있기는 했지만, 공격이 크게 매섭지는 않았다.

‘거리를 좁혀야 하는데.’

페이즈가 15페이즈까지 접어들어서 그런지,

리치왕에게 다가가기가 쉽지가 않았다.

언데드를 죽이면서 길을 터도,

순식간에 다른 언데들이 자리를 메웠다.

“왕의 품에 안겨라!”

“발악하지마라! 인간!”

리치왕이 소환한 상급 악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내게 날아왔다. 나만 알고 있던 정보 선독점이라는 이점이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리치왕도.

녀석이 소환한 상급 악마들도.

내가 가진 능력과, 나도 모르는 사이 형성 된 공격 패턴에 익숙해져갔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오픈하지 않은 패가 내게 남아있었다.

‘달빛 제 9초식, 낮에 뜨는 달.’

내 남은 패가 조커이길 바라며,

절대 은신을 사용했다.

“뭐..뭐냐!”

“찾아라!”

내 모습이 갑자기 사라지자,

당황해 하는 상급 악마들.

당황한 건,

리치왕도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지 내 절대 은신을 파훼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은신 앞에 ‘절대’라는 말이 괜히 붙는 게 아니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는 상급 악마들을 지나쳐,

리치왕에게 다가갔다.

‘일격에 끝내야 한다.’

공격을 하는 순간,

내 모습이 탄로가 날 터.

단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걸 담아야 했다.

잔뜩 경계를 하고 있는 리치왕 앞에 서서,

만월검을 양 손으로 잡았다.

육안으로는 리치왕의 심장이 어디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어정쩡하게 ‘달의 광휘’로 연타로 두드리면 이전과 같은 결과를 낳을 확률이 높았다.

말 그대로 일격필살(一擊必殺)이 필요할 때.

‘간다.’

바스타드 소드를 잡고 있는 것처럼,

양 손으로 잡고 있는 만월검의 날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내가 사용하는 달빛 초식 중에는,

이렇다 할 제약이 걸려 있는 초식이 없었다.

하지만 단 한 초식.

지금 사용하려는 10초식은 제약이 하나 걸려 있었다.

‘달빛석으로 만든 아이템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전에는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을 못 했었다.

‘달빛 제 10초식. 1형.’

“레드문.”

나는 붉게 물든 만월검을,

리치왕을 향해 휘둘렀다.

+ + +

“늦는군.”

“그러게요. 스카이 길드도 감감무소식이고. 역시 조 편성에 문제가 있었다니까요, 협회장님?”

“....”

“공격 3조, 전력이 누가 봐도 다른 조에 비해 약한데. 협회장님이 너무 서진 학생을 높게 평가를 하신 거라니까요. 그나마 스카이 길드가 서진 학생이랑 같은 조를 하겠다고 해서 망정이었지. 안 그래요, 협회장님?”

지휘통제실에 앉아 있던 이무신.

옆에서 조잘조잘 거리는 직원의 목소리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무신이 눈을 감든 말든, 계속 자기 할 말을 쏟아내는 직원.

“10대의 객기에 여러 사람 피곤하게 생겼네. 진짜 서진 학생 말처럼 혼자 보냈다고 생각해보세요, 협회장님. 어우. 창조 그룹이랑 원한 살 일 있어요? 그런데, 협회장님. 제 생각인데..”

뭔가 조심스러워진 직원.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지금까지 아무 소식 없는 거 보면..게이트로 들어간 공격3조는 전원 전멸한 게..”

눈을 뜬 이무신.

직원의 얼굴을 쳐다봤다.

“하..하하..”

멋쩍게 웃으며 시선을 회피하는 직원.

이무신 협회장은 시선을 돌려 앞에 보이는 모니터를 쳐다봤다.

던전형 게이트에 인원을 투입 후,

10일이 경과할 때가지 아무 소식이 없을 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구출조를 투입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특수 상황이지 않던가.

그리고.

10일이 경과할 때까지, 게이트에서 나오지 못한 인원은 거의 내부에서 죽었을 경우가 파다했다.

일반 게이트도 아니고 특수 게이트에,

혹시나 죽었을지도 모를 공격 3조를 구하기 위해 구출조를 투입한다?

이무신의 시선이 모니터 중,

공격3조가 들어간 게이트를 비추고 있는 화면으로 향했다.

여전히 1번 게이트는 건재했고,

언데드형 몬스터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 수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오늘만 기다려보지.”

오늘이 딱 10일 째 되는 날이었다.

한태문이 대장을 맡고 있는 공격1조는 이미 한 개의 게이트를 클리어 한 후, 오늘 아침 새로운 게이트에 들어갔다.

나이트 길드의 마스터인 이강석이 이끄는 공격 2조는 이틀 전, 게이트를 클리어 한 후 오늘까지 휴식 중이었다.

그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하기를,

‘정확했습니다.’

였다.

서진이 제공한 정보가 말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제 발에 걸려 넘어진다?

‘서진군.’

이무신 협회장은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억눌렀다. 서진이라면 분명 살아 있을 게 분명했다. 단지, 약간의 착오가 생겼을 뿐.

“잠깐만 안에 들어가 보면 안돼요?”

“구경만 할게요.”

조용하던 지휘통제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총총.

살짝 열린 문틈으로,

검은 개 한 마리가 들어왔다.

앙증맞은 크기에,

귀엽게 생긴 강아지였다.

“저 강아지는..”

이무신 협회장이 기억을 떠 올리려고 할 때,

문이 벌컥 열리며 우르르 세 사람이 지휘통제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뒤로 난처한 얼굴로 따라 들어온 협회 직원.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협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앳된 얼굴의 세 사람.

정시아,한설휘,금석이었다.

그들의 뒤로,

머리를 긁적이며 협회장을 쳐다보는 직원.

“안된다고 했는데도 워낙 막무가내라..”

“됐네. 가서 일 보게.”

“..예.”

직원이 지휘통제실을 나가고.

“와. 화면이 몇 개야, 도대체?”

“나 옛날에 할아버지 따라서, 이런데 와본 적 있어.”

“화면이 너무 많아서 어지럽다. 어지러워.”

각자의 방식으로 지휘통제실을 둘러보는 세 사람.

“유망주 친구들이 견학을 하러 온 모양이군. 김비서, 마실 거라도 내오지.”

“협회장님, 지금 시기가 어떤 시기인데 견학을..”

“김비서.”

“네.”

“나는 녹차로 부탁하네.”

“..네.”

김비서가 지휘통제실을 나가고,

세 사람에게 자리를 권하는 이무신 협회장.

“지휘통제실이 궁금해서 온 건 아닐 테고.”

자리에 착석을 한 세 사람의 얼굴을 인자한 미소와 함께 쳐다봤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려무나.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대답해 줄 테니.”

“어..그게..”

들켰다는 얼굴로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정시아와 한설휘.

정시아가 총대를 멘 사람처럼,

이무신 협회장을 얼굴을 비장하게 쳐다봤다.

“아무도 말을 안 해줘서요.”

“뭐를 말인가?”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정시아의 시선이 이무신 협회장 뒤에 있는,

현황판에 잠깐 머물렀다.

부상자 수와,

사망자 수가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서진은 무사해요, 협회장님?”

“....”

예상은 했다.

이들이 무작정 이곳에 들이닥친 이유를.

“고맙네.”

차를 테이블에 세팅을 하는 김비서.

잔을 들고 천천히 한 모금 마시는 이무신 협회장.

‘나도 저럴 때가 있었던가.’

국가의 안위나, 집단의 존속보다 친구의 안전이 먼저였던 때가.

“그 질문에는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을 것 같구나.”

“네? 왜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예요?”

“문제는 무슨! 멀쩡 할거다, 서진은!”

이무신 협회장은 차를 들라고 손짓을 하며 말했다.

“나도 모른단다. 아직 서진군이 들어간 게이트에서 소식이 없구나.”

“....”

“....”

일동 침묵을 했다.

“그렇다는 말씀은..”

“아니다. 나보다 너희가 서진군의 친구니,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이무신 협회장.

“1번 게이트! 클리어 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협회장님, 지금 1번 게이트에 들어갔던 인원들이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겉옷을 챙기는 이무신 협회장.

“너희도 함께 가 볼 테냐?”

“네!”

“따라 나서 거라.”

지휘통제실을 나서는 이무신 협회장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 + +

“그게..무슨 말인가?”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

1번 게이트 밖으로 형성 돼 있는 바리게이트.

이무신 협회장은 바리게이트 너머로 보이는 1번 게이트를 쳐다봤다. 게이트가 불규칙하게 흔들리며, 축소 과정을 밟고 있었다.

1번 게이트는 확실히,

클리어했다.

그런데.

“서진아..”

“나올 거야. 분명히.”

“할멈 말이 맞다.”

한 사람이 나오질 않고 있었다.

“뒤늦게 서진씨를 따라 게이트에 진입을 했지만, 서진씨가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끼리 코어를 찾으려고 수색을 하던 중, 갑자기 게이트가 닫히려는 징조가 보여 빠져나왔습니다.”

스카이 길드의 길드장인, 설민호가 똑같은 말을 기자들에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서진 학생이 코어를 파괴 했다는 말입니까?”

“저도 확실히는 잘 모르겠으나..그럴 확률이. 아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서진 학생은 나오질 않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코어를 파괴한 후 나올 여력이 없어서 갇히게 됐다거나, 사망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

설민호가 고개를 숙였다.

“지금 무슨 몹쓸 짓인가!”

낙담한 얼굴로 게이트를 보고 있던 이무신 협회장이 기자와 설민호 사이에 끼어들어, 호통을 쳤다.

“자네 눈에는 이 친구 모습이 안 보이는가!!”

설민호.

그리고 그의 뒤에 서 있는 그의 길드원들.

전부 꼴이 만신창이였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분명 이번 대재앙이 진행되는 동안 기자는 전부 대피소에 쳐 박혀 있으라고 했을 텐데! 대재앙이 끝나면 자네와 자네. 그리고 자네. 전부 옷 벗을 각오하고 있게!”

“아..아니 협회장님. 저희는 그저 시민들의 알 권리를..”

“권리? 권리?!”

“아닙니다..죄송합니다. 설민호 길드장님. 죄송합니다.”

“썩, 물러가게!”

기자들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나도 사과를 하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고생했을 텐데, 어서 가서 쉬도록 하게. 마무리는 내가 할 테니.”

“..아닙니다. 완전히 닫히는 걸 보고 가겠습니다.”

“몸도 성치 않은 양반이..알겠네. 힐러들을 소환할 테니, 치료 받으면서 가치 지켜봄세.”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더 감사하지.”

설민호의 어깨를 토닥인 협회장.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아직 게이트가 닫힌 게 아니니, 기다려보자꾸나.”

“협회장님..협회장님..”

“서진이 이미 나온 게 아닐까요?”

“오! 마귀! 나도 그 생각 중이었는데!”

이무신 협회장은 아무 말도 하질 않았다.

그래서인지 행복회로를 굴리던 정시아와 금석의 회로가 끊겼다.

일반 게이트가 닫히는 시간은 크기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평균 10분에서 20분이었다. 하지만 1번 게이트의 크기는 일반 게이트에 비해 최소 10배 이상은 크니 게이트 닫히는 시간도 어쩌면 10배 이상이 걸리지 않을까?

“너무 빠르군..”

이무신 협회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게이트 닫히는 속도가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이 속도라면 앞으로 5분도 안 돼서 게이트가 닫힐 게 분명했다.

‘아..’

게이트가 어느덧,

10평 남짓한 크기로 작아졌다.

9평,8평..5평.

초조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게이트에 고정 돼 있었다.

“제발..”

한설휘와 정시아가 기도를 하듯,

양 손을 모았다.

이무신 협회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진군..서진아. 제발 나와 다오..’

게이트가 사람 한 명 지나다닐 정도로,

축소 됐을 때.

크르릉!

늑대 한 마리가 게이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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