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62화 (162/196)

162회

필멸자의 영혼

부산의 남단에 위치한 A 지하 대피소.

"이번 재앙은 언제 끝나려나.“

“내가 협회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말이지, 그 사람이 그러기를 한 달 안에 끝날 수도 있다고 그러더라고.”

“한 달? 에이.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 아니야? 예전 암흑기를 생각해보라고. 그 때는 악마를 전부 소탕하는데 10년이 걸렸다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말 몰라? 헌터들이 그동안 손가락 빨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당연히 성장을 했겠지. 악마에 대한 대응책도 훨씬 많이 생겼을 테고.”

“아무리 그래도 한 달은 쫌..”

대피소로 피난하는 일이 빈번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없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대피소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보다는 따분한 얼굴로 수다를 떨었다.

학교 교실 크기 만 한 둥그런 공간에 모여 있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일반 시민이었고, 능력자는 통제관 역할을 하고 있는 협회 직원 한 명이 다였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아무리 약한 능력자라도 전부 필드에 나가 있었다.

군대로 치면, 전시상황에서 현역뿐만 아니라 예비군까지 전부 투입 된 상황과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사실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알게 모르고 사람들의 시선이 의자에 태평하게 앉아, 책을 보고 있는 통제관을 향했다.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의지할 무언가를 찾게 됐다. 이곳에서 통제관은 보모.선생님.부모님. 혹은 어떤 신적인 존재와도 맞먹는 위치였다.

“근데, 왜 복면을 쓰고 있지?”

“그러게?”

“C급 능력자겠지?”

“D급이 아닐까? 통제관은 전부 쩌리들만 맡잖아.”

“가서 물어볼까? 복면 벗으면 예쁠 것도 같은데.”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가서 물어보자.”

“오케이, 콜.”

20대 남자들이 모여 있는 그룹.

그 곳에서 한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매무새를 단정하며,

통제관을 향해 걸어가는 남자.

“저..”

“....”

책에서 시선을 떼고,

남자를 쳐다보는 통제관.

“음..그게..그러니깐..”

통제관과 눈을 마주하는 순간,

거미줄에 걸린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낀 남자.

“그게..”

“하실 말씀이라도?”

“아..아닙니다.”

아무런 수확도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통제관.

책을 덮고 대피소 내부를 천천히 스캔하듯이 살폈다.

“슬슬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됐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통제관.

“음?”

통제관의 시선이,

대피소의 구석 벽면을 쳐다봤다.

“엄마. 엄마.”

한 아이가 있었고.

“응?”

한 아이의 엄마가 있었다.

“저 아저씨 아까부터 혼자서 뭐 먹어.”

그런 그들의 옆에,

고개를 처박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한 남자.

“크크크..”

조용하게 웃고 있었다.

기이한 행동을 보이고 있는 탓에,

아이를 꼭 끌어안는 아이 엄마.

홱.

남자의 고개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갔다.

90도 정도가 꺾인 남자의 목과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

“크크..”

입에서는 침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꺄..꺅!!”

아이 엄마의 비명소리보다,

남자의 행동이 더 빨랐다.

연체동물처럼,

길게 늘어나는 남자의 손.

아이 엄마의 목을 움켜잡으려고 했다.

“거기까지.”

아이 엄마의 비명.

남자의 행동.

두 사람보다 더 빠른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통제관.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아이 엄마 앞에 서 있었다.

“통제관 따위가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크크..”

잠시 허공에서 방황하던 남자의 손이 통제관의 얼굴을 향했다.

“일반 통제관이었으면, 못 막았겠지.”

분명히 손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두 자리의 단검을 들고 있는 통제관.

하나는 남자의 손에 찔러 넣었고,

다른 하나는 다트를 하듯 남자의 미간을 향해 던졌다.

푹. 푹.

두 번의 살이 뚫리는 소리.

“다친데 없으시죠?”

단검을 회수하며,

아이 엄마를 쳐다보는 통제관.

“어..예..”

표정은 여전히 많이 놀란 것 같았지만, 순식간에 종료 된 상황 때문인지 어안이 벙벙해 보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통제관이 사람을 죽였는데?”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통제관을 향했다.

복면을 벗는 통제관.

“저는 사신 길드 소속, 채린이라고 합니다.”

“채..채린?”

“길드 마스터가 여긴 왜..아니, 왜 통제관 행세를 하고 있는 거야?”

의아한 반응은,

“악마가 숨어 있는 것 같아, 잠복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악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제가 방금 처리했으니, 이곳은 이제 안전합니다.”

그리고 안도로 다시 바뀌었다.

“거기 남성분들.”

채린은 아까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려고 했던 젊은 남자들을 쳐다봤다.

“이 시체 좀, 대피소 구석으로 치워주시겠습니까?”

“예..옙!”

“예!”

사람들을 가로질러,

대피소 입구 쪽으로 걸어가는 채린.

“현시점부터 진짜 통제관이 여러분들을 통제할 예정입니다.”

채린의 말에 시민 속에 섞여 있던,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일어났다.

“그럼.”

고개를 숙이고,

대피소를 나서는 채린.

핸드폰을 꺼내,

명단 리스트를 확인했다.

많은 이름 옆에 'X‘가 쳐져 있었고,

채린은 X자 하나를 추가해서 기입했다.

“서진씨 말대로, 사상자가 많이 나올 수도 있었겠어.”

서진에게 받은 악마의 열매를 먹은 인간 리스트. 리스트에는 특히 별표를 친 인간들이 몇 있었다.

대피소에서 변한 악마는 특별히 강하진 않았다. 하지만 서진은 별표를 쳤다.

능력자가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홀로 날 뛰는 악마.

충분히 별표를 칠만했다고 채린은 생각했다.

“병아리들은 잘 하고 있나, 전화를 걸어볼까.”

+ + +

삐약. 삐약.

음메에~

“..여기, 시골 아니야? 병아리 우는 소리랑, 소 우는 소리가 막 들리는 것 같은데?”

“들리는 게 아니라, 들려. 옆을 봐, 시아야.”

“아..맞네.”

정시아. 한설휘.

그리고,

“이런 곳에, 악마가 있는 게 확실하냐? 마귀? 할멈?”

금석까지.

세 사람은 3인 1조로 뭉쳐 다니고 있었다.

채린의 명령이었다.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언니 말로는..”

띠링. 띠링.

“언니 전화 왔다. 잠시만.”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는 정시아.

“어, 언니. 그냥 평온한 시골인데, 여기? 여기 무슨 악마가 있다고 그래. 응?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겠지, 악마는 사람이 아니니까. 응? 사람이 악마의 열매를 먹은 게 아니라고? 그럼 누가..”

멍멍!

세 사람의 앞에서 걷던 뚜뚜가 갑자기 짖기 시작했다.

멀리서 거친 흙바람을 일어났다.

그리고 등장을 한 수십 마리의 소와 말.

말은 켄타우로스처럼 보였고,

소는 미노타우로스처럼 보였다..

확실한 건,

일반 소와 말은 절대 아니라는 점이었다.

“소..랑 말이 먹었구나. 그것도 수십 마리가 사이좋게 나눠서. 언니, 끊어. 상황 끝나면 내가 전화 할게.”

휴대폰을 호주머니에 집어넣는 정시아.

기지개를 켰다.

“그래도 다행이네.”

“뭐가?”

정시아를 쳐다보는 한설휘.

“허접 같은 악마랑 싸우게 해 줄줄 알았는데, 쟤들은 소,말 새끼이긴 해도 허접해 보이지는 않잖아.”

“허접한 게 아니라, 쫌..무서운데?”

“에이, 저런 소,말 새끼들이 뭐가..”

음메에~ 음머어!

이히힝- 푸드득!

머리가 소인 미노타우로스.

하반신이 말인 켄타우로스.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덤프트럭처럼,

발을 구르며 시동을 걸었다.

“조금..그렇기는 한데.”

입술에 침을 바르는 정시아.

“괜찮아. 우리한테도 짐승이 있잖아. 두 마리씩이나.”

멍멍!

한 마리의 짐승과,

“가즈아!”

한 마리의 짐승 같은 인간이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여기가 맞는 것 같네.”

나는 거대한 관처럼 보이는 건물을 쳐다봤다. 닫혀있는 문 틈 사이로, 숨길 수 없는 마기가 풀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기의 농도를 봤을 때는,

이 안에 리치왕이 있을 확률이 99.9999%였다.

“고생했다. 고생했어.”

체감상 이곳에 들어 온지 며칠은 흐른 것 같은데.

나는 은빛 늑대의 머리를 한 마리, 한 마리 쓰다듬었다. 이 녀석들이 아니었으면, 한참을 찾아 헤맬 뻔 했다.

“이제 돌아가서 쉬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은총을 받듯 내 손길을 느끼던 은빛 늑대들.

스스스.

몸에서 하얀 연기가 나오는가 싶더니,

하얀 연기와 함께 증발하다시피 사라졌다.

은빛 늑대들이 돌아가고,

내 곁에 남은 늑대는 단 한 마리뿐이었다.

“네가 제일 고생했다. 레이.”

크르르..

내 말에 눈이 반쯤 간긴 레이가 내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나는 손을 들어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은빛 늑대를 여기까지 불러오고,

녀석들을 달빛 늑대 상태로 유지시키고.

마지막으로 녀석들을 본래 서식지로 돌려보내기까지.

이곳이 마계가 아니었으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 여기는 마계였다.

한 번 빠져나간 달빛력이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이 되질 않았고, 레이는 달빛력 고갈로 거의 탈진 직전이었다.

한 번씩, 내가 가진 달빛력을 나눠주지 않았으면 레이는 지금쯤 기절했을지도 몰랐다.

‘포인트 상점.’

나는 레이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상점을 열었다.

어두침침한 마계에 있다가, 순백의 공간을 마주하자 눈뽕을 맞은 것처럼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곳은 상점이긴 했지만,

나는 창고 용도로도 사용하고 있었다.

더불어, 나와 접촉을 하고 있는 생물 역시 이곳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다. 그래서 종종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야할 때, 레이를 이곳에 데려오기도 했다.

교감 능력의 영향일 수도 있었다.

내가 이곳에 레이를 데리고 올 수 있는 건.

아직, 인간을 데리고 이곳에 와본 적은 없기 때문에 확실하게는 몰랐다.

어쨌든.

“여기서 쉬고 있어, 레이.”

마음만 먹으면 ‘아이템 방’에서 회복 물약을 사서 레이를 회복시킬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회복 물약은 육체적인 피로는 없앨 수 있지만, 정신적인 피로까지는 회복시킬 수 없었다.

그리고.

‘나 혼자서도 리치왕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확실하진 않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 봤을 때, 내가 질 확률은 없다고 봐야했다.

상성도 상성이지만,

결정적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리치왕 공략법’

만약, 공략법을 몰랐다면 레이를 무리해서라도 데리고 갔겠지만.

‘공략법을 알면 얘기가 다르지.’

지피지기 백전백승.

오늘, 백승에 1승을 추가할 일만 남았다.

크르르.(같이 가. 주인.)

내 발등에 손을 올리는 레이.

눈은 아까보다 더 감겨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크기가 너무 미니멀한데? 레이?”

포인트 상점에 오자마자,

소형화 크기로 변한 레이.

크릉..(평소에 이 크기로 있다 보니, 이 크기가 쉴 때는 편해.)

“그래, 잘 생각했어.”

크르릉?

고개를 갸웃하는 레이.

너무 녹초가 돼서,

본심을 내뱉은 걸 모르는 모양이다.

나는 아이템 방으로 가서,

늑대가 먹을 만한 것들을 사왔다.

“먹으면서 쉬고 있어. 금방 갔다 올 테니까.”

크르..쿨..(같이 가자아...쿨..)

풀썩.

인절미 하나가 쓰러졌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고기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아이템 방에 다시 갔다.

‘베개. 이불. 또..나무 향 나는 향초.’

최대한 꿀잠을 잘 수 있는 세팅을 해주기로 했다. 레이는 나와 같이 침대에서 잠을 자다보니, 잠을 잘 때 푹신한 감촉을 되게 좋아했다.

나는 침구류와 향초를 사들고 아이템 방을 나와,

조심스레 세팅을 했다.

베개를 머리에 쑥 밀어 넣고,

이불을 덮고 향초를 피웠다.

이불에 파묻힌 인절미.

크르르..

마음에 드는지 코를 찡긋거렸다.

“갔다 올게.‘

포인트 상점을 닫았다.

보스 몬스터를 잡으러 갈 시간이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