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만 보이는 S급들-161화 (161/196)

161회

선취점

10개의 게이트는 전부 출현하는 악마와 몬스터가 제각각이었다.

10개의 게이트 중,

공격3조가 맡고 있는 1번 게이트.

게이트가 하나의 테마라고 친다면,

1번 게이트의 테마는 ‘영혼 없는 자들’이었다.

“스..스켈레톤이다!!”

나는 허둥지둥 거리는 헌터를 대신해,

만월검을 공중으로 휘둘렀다.

산산조각 나는 스켈레톤.

“좀비다!!”

나는 왼쪽을 쳐다봤다.

게이트에서 나온 좀비 떼가,

지상에 추락을 했다.

추락 여파로 몸이 기이하게 뒤틀린 좀비들.

아랑곳 않고, 몸을 일으켰다.

나는 토해내듯,

좀비와 스켈레톤을 쏟아내고 있는 게이트를 쳐다봤다.

좀비와 스켈레톤은 몬스터지, 악마가 아니었다. 두 몬스터 틈에 숙주라고 할 수 있는 소악마가 숨어있었다.

백날 좀비나 스켈레톤을 처치해봤자,

말짱 도루묵이었다.

사태를 조금이라도 진정시키려면,

소악마를 찾아 죽여야 했다.

근본적으로는 게이트 내에 있는 코어를 파괴해야 했지만, 임시방편으로는 괜찮았다.

나는 각 게이트별 공략법을 이번 작전에 참가한 헌터들에게 전파했다.

공격3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들 눈앞에 있는 좀비나 스켈레톤을 상대하는데 급급했다.

제대로 된 공략을 실행하고 있는 건.

‘스카이 길드뿐이네.’

설민호를 필두로, 그의 길드원들이 공중에서 인형 뽑기를 하는 것처럼 소악마를 찾아 죽이고 있었다.

스카이 길드는 길드 이름값을 하는 길드였다. 그들은 공중전에 특화 된 길드였고, 하나 같이 하늘을 나는 아이템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도 슬슬 가 볼까, 레이?”

크르르!

몸이 근질거리는 것처럼,

레이가 아까부터 발을 구르고 있었다.

잠깐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장이 가져다주는 과도한 아드레날린 분비 타이밍을. 아무도 내게 시선을 주지 않는 그런 타이밍을.

“가자.”

레이는 교감 능력을 통해,

내가 가진 능력을 사용 가능 했다.

플라이 능력을 시전한, 레이.

“게이트로 직진!”

다들 각자의 일에 집중한 이 틈에,

나는 게이트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괜히 남들이 보는데 홀로 게이트로 들어가면, 따라 들어오려는 전우애가 넘치는 녀석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사아악!

게이트로 접근하는 동안,

나는 딱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레이가 앞발을 한 번 휘두르면,

낙엽처럼 스켈레톤 뼛조각과 좀비의 살덩어리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양탄자를 탄 알라딘처럼,

유유자적 게이트 앞에 도착을 했다.

휘이이~

휘이익~

게이트에서 찝찝하다 못해,

끈적끈적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게이트를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스윽 훑었다.

“어디 간 거야?”

있어야 할 놈이,

도대체 어딜 간 걸까.

그냥 게이트로 들어갈까 고민하고 있을 때,

밑에서 헐레벌떡 안광이 번쩍이는 스켈레톤 하나가 다가왔다.

“한참 찾았잖아.”

“물러나라. 인간.”

“너, 근무태만 아니냐? 문지기가 문을 지켜야지, 어딜 싸돌아다녀?”

“..물러나라.”

내 앞을 가로막은 스켈레톤은,

다른 스켈레톤과 생김새와 차림새가 달랐다.

눈이 텅 비어 있는 다른 스켈레톤과 달리,

자줏빛 안광이 번뜩였다.

그리고 로브를 입고 있었다.

이 녀석은 게이트를 지키는 문지기이자,

중급 악마였다.

문지기가 자리를 비우는 일은 거의 없는데, 워낙 스카이 길드가 소악마를 빠르게 처치하고 있어서 잠깐 내려갔다 온 것 같았다.

“내가 문제의 답을 다 알려줬거든. 아마, 여기 말고도 다른 곳에서도 핵심만 쏙쏙 집어내고 있을 걸?”

“..무슨 소리냐?”

“기출 문제를 변형하지 않으면, 너희는 인간들 손에 다 디진다는 소리야. 이미 늦은 것 같지만. 자, 그럼 내가 문제를 내줄게. 아니, 문제가 아니라 자비라고 해야 하려나.”

나는 만월검을 들어,

중급 악마를 가리켰다.

“리치왕의 위치. 어디야? 말하면 살려줄게.”

“인간 놈 따위가 감히 왕의 이름을 함부로 거론하다니!! 죽어라!”

양 손을 드는 중급 악마.

푸른 불길이 회오리치듯 생겨났다.

서걱.

나는 만월검에 달빛을 두르고,

단숨에 중급 악마를 양분했다.

“내 속성이 달빛이라.”

나는 경악스러운 얼굴을 하고,

아래로 추락하는 중급 악마를 쳐다봤다.

“재생이 안 될 거야. 근데..”

리치왕이 만든 모조품이라 그런지,

중급 악마치고는 너무 약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골 악마는 저렇게 허약하지 않았다.

“아무튼 1인분은 했네.”

내가 워낙 쉽게 잡아서 그렇지,

모조품이라 해도 다른 헌터들이 상대하기에는 꽤 까다로운 녀석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내가 처리를 했다.

“이 정도면 알아서 하겠지? 레이, 가자.”

게이트에 발을 내딛는 레이.

“서진씨!!”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고 있었나.’

설민호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게이트 안으로 완전히 들어갔다.

+ + +

광활하고 메마른 대지.

황사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액체 한 방울도 없는 것만 같은 이곳은,

악마들의 서식지.

마계였다.

크륵. 크르륵.

크룩.

메마른 땅덩어리에서, 자라나듯 모습을 드러내는 스켈레톤과 좀비. 경작을 잘한 논밭처럼, 풍성하게도 등장했다.

녀석들은 하나 같이, ‘게이트 밖을 나가라’라는 명령어가 걸린 것처럼 우두커니 레이 등에 앉아 있는 나를 무시하고 게이트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간혹, 동선이 나와 겹치는 녀석들이 장님이 눈을 뜬 것처럼 나를 공격해왔지만 레이가 곧바로 정리를 했다.

“물량 공세, 장난 없네.”

1번 게이트는 다른 게이트에 비해,

물량이 가장 많은 편이었다.

이곳의 지배자 능력 때문이었다.

리치왕.

또 다른 말로는 시체의 왕.

녀석을 죽이지 않는 이상, 댐이 무너져 물이 범람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몬스터가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갔다.

“혹시나 했는데.”

나는 레이의 등을 받침대 삼아,

서서 주변을 살폈다.

“역시나네.”

끝을 알 수 없는 지평선.

사방에서 비슷한 농도로 풍기는 마기.

내 감각이라면 어쩌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나라고 해도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리치왕의 위치.’

첫 번째 난관이었다.

“여기는 술래가 많단 말이지.”

나는 레이의 등에서 내려오며,

녀석의 얼굴을 쳐다봤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레이.

아우울~

힘차게 적색 하늘을 보며 울기 시작했다.

레이의 울음소리에, 공기가 진동을 하는가 싶더니 게이트가 열리는 것처럼 우리의 머리 위 공간이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공간에서, 기관총을 쏘는 것처럼 은빛 늑대들이 1열종대로 쏟아져 나왔다.

레이가 달빛 늑대로 각성을 한 후,

생긴 능력 중 하나였다.

‘대장의 호령.’

은빛 늑대 서식지에 있는 은빛 늑대들을 소환할 수 있었다.

크르르.

크르..

우리 앞에 도열을 한 은빛 늑대들.

왕을 알현하는 신하처럼,

머리를 숙이고 꼬리를 내렸다.

그 중, 은빛 늑대의 우두머리인 대장 늑대가 선두로 걸어 나왔다.

“오랜만이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달빛계승자시여.”

능숙하게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대장 늑대가, 고개를 돌려 레이를 쳐다봤다.

크르르.

다른 늑대들처럼,

머리를 숙였다.

짝짝.

“자, 자. 마음껏 날 뛰어 보라고.”

나는 독려하는 말과 함께,

레이를 쳐다봤다.

레이의 털이 곤두서며,

달빛이 뿜어져 나왔다.

뿜어져 나온 달빛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은빛 늑대들에게 향했다.

은빛 늑대의 몸에 닿자마자,

스며들 듯이 녹아 없어지는 달빛.

‘대장의 위엄.’

대장의 호령과 마찬가지로 각성 후, 얻은 레이만의 능력이었다. 레이의 달빛력을 소모해, 은빛 늑대들을 달빛 늑대로 일정 시간동안 변신시킬 수 있었다.

은빛 털이 하얀 털로 탈색을 한 것처럼 변했고, 몸집이 벌크 업이라도 한 것처럼 커져가는 은빛 늑대들.

아우울~

아우우~

세례를 받은 것처럼,

숙였던 고개를 들어 감사의 인사를 표출했다.

“산개해서, 리치왕을 찾아라.”

은빛 늑대를 부른 것도, 달빛 늑대로 잠시나마 승격시킨 것도 레이였지만 명령을 내리는 건 나였다.

내 명령에,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은빛 늑대들.

좀비와 스켈레톤을 발판 삼아,

빠른 속도로 시야에서 멀어졌다.

“우리도 찾으러 가 볼까?”

나는 레이와 함께 움직였다.

+ + +

“오늘이 며칠인가? 아니, 며칠 째인가?”

“5일차입니다.”

“그렇구만.”

게이트가 열린 후,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번 작전의 총괄 대장을 맡고 있는 이무신 협회장.

임시로 설치 된 지휘통제실에 앉아,

허리를 두드렸다.

전면에 보이는 수십 개의 모니터.

그리고 측면에 보이는 지휘통제실 현황판.

모니터를 차례차례 훑어보던 이무신은,

현황판을 쳐다봤다.

10개의 게이트를 표시해 놓은 등에,

모두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아직까지 하나의 게이트도 닫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클리어 등 밑으로 보이는,

숫자를 쳐다보는 이무신.

-부상자: 경상(320명), 중상(58명).

-사망자: 22명.

“....”

이무신 협회장은 알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저 숫자는 양호하다는 걸.

아니, 거의 전력 손실이 미비한 수준이라는 걸.

40년 전에, 악마가 처음 이 땅을 침공을 했을 때만 해도 거진 일주일 만에 한국의 반 정도가 초토화 됐었다.

“어떡해..부상자 수가 계속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어.”

“아직 공격조에서는 소식이 없어?”

“수비4조에서 지원 연락이 왔습니다!!”

이 자리에는, 40년 전 1차 악마 침공을 겪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내일 세상이 멸망이라도 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 호들갑.

이무신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 정도 현상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저들은 알까?

‘서진.’

그가 미리 각종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어쩌면 1차 악마 침공과 같은 사례가 되풀이 됐을지도 몰랐다.

“끌끌. 사태가 마무리되면 전국민 절이라도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혀..협회장님!”

“왜 그러는가?”

협회 직원 중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바..밖에 악마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듯, 각 게이트에 인원을 알맞게 분산을 했다고는 하지만 점점 구멍이 생기고 있었다.

“일들 보게.”

마실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지휘통제실을 나선 이무신.

킬킬.

하늘에 떠서,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악마를 쳐다봤다.

“인간형 악마인건가. 그렇다는 건 중급 악마 정도는 되겠군.”

삼지창 보다는, 대형 포크 같은 걸 들고 있는 중급 악마.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뿔에서 스파크가 튀겼다.

“점심 먹은 걸 소화시키기에는.”

딱.

딱밤을 때리듯,

제 자리에서 손을 튕구는 이무신.

펑.

거의 딱밤 소리와 동시에 중급 악마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너무 날파리군. 흐음..”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무신.

게이트 영향인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점점 검게 변해갔다.

그 때문에 오후였음에도,

그늘이 진 것처럼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협회장님!!”

방금 전, 자신에게 뛰어왔던 직원이 다시 뛰어왔다.

“이번에는 무슨 일인가?”

“그..그게..”

방금 전은 말라비틀어진 약초를 먹은 것 같더니,

지금은 달콤한 사탕을 먹은 것 같은 표정의 직원.

“게이트 하나를 클리어 했습니다!

환하게 웃는 직원.

이무신의 입가도 덩달아 위로 올라갔다.

“몇 조인가? 몇 조가 선취점을 따냈냐, 이말이세!”

“공격1조 입니다!”

“1조라 함은.”

한태문과 태양길드인가.

‘아직 녹슬지 않았구만.’

이무신은 한태문을 떠 올리며,

지휘통제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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