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회
전쟁의 서막
회의가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중간 중간 성녀의 어시스트로,
내 말은 거의 기정사실화가 됐다.
성녀는 학교 대항전 때부터 악마의 등장을 어렴풋이 감지를 했었고, 현재는 확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꼭 사신 길드가 후방 업무를 봐야 합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제 남은 건,
눈치싸움이었다.
다른 길드에 비해 자신의 길드가 피해를 덜 입기 위해, 다들 한 발 뒤로 빼려고 했다.
“여기서 사신 길드보다 기동력 좋은 길드가 있습니까?”
내 말에 입을 열던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나도 사신 길드를 공격조에 편성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게이트가 열리면 악마의 씨앗을 먹은 인간들의 힘이 배로 강해졌다.
일반 길드가 막기에는 힘들 정도로.
그렇기에, 기동력 좋고 A급 능력자가 다수 있는 사신 길드에게 후방조를 맡겨야 했다.
이미 채린과는 이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끝마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시기가 언제쯤이냐, 서진아. 다음 주가 개학인데..”
별 말 없이 자리에 앉아있던 이순신 교장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내 말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이순신 교장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게이트가 등장하는 시기.
중요한 사항이었다.
하지만 나도 정확하게는 모른다.
이 맘 때쯤이라는 걸 말고는.
“그게..”
“빠르면 일주일 뒤. 늦어도 10일 안에 게이트가 열릴 거예요.”
옆에 있던 성녀가 나 대신 대답을 했다.
대답을 하고, 내 귀에 속삭이는 성녀.
“그런 느낌이 들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녀의 말이니,
틀리진 않을 것 같았다.
악마와의 전쟁.
그 서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
+ + +
“너희는 사신 길드와 같이 움직이면 돼.”
내 말에, 내가 거주하는 오피스텔에 모여 있는 녀석들의 눈초리가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긴급회의가 끝이 난 후,
협회장의 이름으로 즉각 공표했다.
악마가 나타날 것이라고.
그러니, 피난처로 빠른 시일 내에 대피를 하라고.
이 세상에는 재앙 대비 피난처가 곳곳에 마련 돼 있었고, 공표 된지 하루 만에 많은 사람들이 민족대이동을 하는 것처럼 이동을 했다.
헌데, 하라는 피난은 안 하고
우리 집으로 쳐들어온 이 녀석들.
“왜 그렇게들 쳐다봐?”
금석을 비롯해,
한설휘,정시아,강소라,박아름까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이 녀석들의 도움을 받으면,
물론 좋겠지만 신분이 헌터가 아닌 학생이었다.
깐깐한 대한민국에서 이 녀석들을 전선에 세우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나조차도 애를 먹었는데.
전력으로 보면 웬만한 길드와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지만, 미성년자라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스킵을 하려고 했다.
“사신 길드랑 움직이는 것도 겨우 허락을 받은 거야. 시아, 너는 알잖아. 채린씨가 이번에는 너한테 빠지라고 한 거.”
하지만 내버려두면 자기들끼리 작당모의를 할까봐서,
내가 선수를 쳤다.
“언니가 통화하는 거 얼핏 들었는데.”
“나도 할아버지가 통화하는 거 들었어.”
얼굴을 들이미는 한설휘와 정시아.
“너는 공격팀이라며?”
“그러니까. 왜 너 혼자만 공격팀이야?”
그야, 내가 기획하고 계획했으니까.
하긴, 이 녀석들은 모르고 있었다.
세간에 발표를 ‘성녀가 악마의 움직임을 감지했다.’라고 발표를 했으니.
“그렇게 됐어.”
“나도 공격팀 할래.”
“나도.”
“나도다.”
금석은 이해를 한다.
근데 정시아와 한설휘까지 애원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별로..”
강소라와 박아름은 내키지 않는 얼굴을 했다.
“왜 나한테 떼를 써?”
“아아, 서진아아.”
“우리도 공격팀에 넣어줘어어.”
앙탈을 부리는 정시아와 한설휘.
금석은 눈을 부릅뜨고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자꾸 그러면 채린씨한테 전화해서 후방조에서도 빼라고 그런다.”
“아..치사해.”
“내 말이.”
이년들이 악마 잡으러 가는 게 놀러가는 줄 아나.
“절대 한 눈 팔지마. 악마랑 싸울 때. 교묘하고, 얍삽한 놈들 천지니까. 후방조라고 안심하거나 방심하지 말고.”
나는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한설휘가 물었다.
“무슨 소리야. 어딜 가긴. 여기가 우리 집인데.”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
“너희가 가야지.”
“....”
“....”
친절히 친구들을 배웅하고,
나는 휴대폰을 꺼내 서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우냐.”
+ + +
매연 냄새인지.
오물 냄새인지.
상당히 역한 냄새가 대기에 진동을 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코를 틀어막아도 냄새는 점점 진해졌다.
나는 사방을 둘러봤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허공에서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이 총 3곳이 있었다. 거리상 육안으로는 확인이 불가능 했지만 7군데에서 연기가 더 피어오르고 있을 터였다.
연기는 곧, 균열이 되고, 균열은 곧 게이트가 될 터.
드디어 D-day가 밝았다.
나는 빌딩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전투태세를 갖춘 헌터만이,
도로에 밀집해 있었다.
일반인은 전부 대피를 한 탓에,
도시는 소음 없이 고요 그 자체였다.
이곳뿐만 아니라,
곳곳에 헌터들이 포진해 있었다.
공격조.
수비조.
후방조.
큰 틀로 보면,
세 개의 조로 운영되는 이번 작전.
핵심은 공격조였다.
수비조가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악마를 막고,
후방조가 악마의 열매를 먹은 인간들을 상대할 때.
공격조는 신속하게 게이트 내에 있는 코어를 파괴해야 했다.
공격1조의 대장은 태양 길드의 길드장인, 한태문이 맡았다. 팀원들은 태양 길드 소속 인원들과 추가적으로 2개의 길드가 서포터로 나섰다.
공격2조의 대장은 나이트 길드의 길드장인, 이강석이 맡았다. 나이트 길드는 이전 부길드마스터인 강찬 사건과 더불어 제일 그룹과의 비리 관계 때문에 이미지나 평판이 떡락을 했다. 그래서인지 이강석이 강력하게 어필을 했다.
선두에 서겠다고.
이번 일을 통해 이미지 세탁을 하려는 모양인데.
나는 환영이었다.
아무리 이미지가 나쁘다고는 해도, 나이트 길드는 대한민국에서 탑5 안에 드는 길드였으니까. 공격2조는 나이트 길드 외에 공격1조처럼 2개의 길드가 서포터로 나섰다.
마지막으로 공격3조.
원래 내 계획은 나 혼자였다.
하지만 반대가 너무 거셌고,
어쩔 수 없이 팀을 구성해야 했다.
“저.. 서진씨.”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생긴지 3년도 안 된, 신생 길드의 마스터였다. 하지만 개인 능력 하나만큼은 출중해, S랭크 능력자였다.
그의 소속 길드원들도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꽤 유능한 걸로 알고 있었다.
‘스카이 길드였나?’
현재는 ‘촉망 받는’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몇 년 안에 폭풍 성장을 하는 길드였다. 폭풍 성장의 중심에는 저 남자가 있었다. 그래서 안면이라도 터놓을까,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연이 생길 줄이야.
“준비 끝났습니다.”
“설민호씨. 맞죠? 이름.”
“아..예.”
나는 레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난간에서 내려왔다.
큰 키에 하얀 피부가,
상당히 여리여리해 보이는 남자였다.
또한 표정이나 하는 행동이 다소 어리숙해 보였다.
나는 턱으로 그가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가리켰다.
“..예?”
“잡으세요.”
“왜..”
“대화 좀 하게요.”
“....”
내 말에 눈을 깜빡이던 설민호.
쭈뼛대며 허리에 차고 있던 검에 손을 갖다 댔다.
“하아아..”
그 순간 마약이라도 흡입한 것처럼,
공기를 한 차례 흡입하는 설민호.
“말씀하시죠.”
나를 보는 표정과 눈빛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바뀌었다.
한 마리의 순한 양에서,
호랑이가 됐다고나 할까?
검을 쥐고 있는 설민호와,
그렇지 않은 설민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자가 화장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자신감 차이 정도라고 하기에는 성격이 확 바뀔 정도니.
‘특이하네.’
“저랑 내기 하나 합시다.”
“내기 말입니까?”
“예.”
나는 만월검을 빼내들었다.
“대련을 해서 이기는 쪽이 대장을 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진심입니까?”
“저, 농담을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입니다.”
“....”
공격 1조와 2조의 경우 대장이 확실했다.
한태문과 이강석.
하지만 3조는 애매했다.
대외적으로 내가 대장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는 하지만, 오늘 보니 아무도 나를 인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보다 설민호를 대장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누가 대장을 하건,
내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자유롭게 행동을 하려면,
대장이 가진 ‘지휘’ 능력이 필요했다.
“빨리 빨리 하죠.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으니까.”
검은 연기가 균열로 바뀌고 있었다.
속도를 보니 게이트로 변모할 때까지 30분도 채 안 걸릴 것 같았다.
“곧, 게이트가 열립니다. 대련은 추후에..큭.”
“오. 역시.”
나는 설민호를 향해 뻗었던,
만월검을 회수하며 손등으로 박수를 쳤다.
“근데 말입니다.”
나는 히죽 웃었다.
“천하제일검이라는 칭호를 가지신 분 치고는, 별 것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부류가 몇 있었다.
그 중에 칼을 든 부류는 자존심을 긁으면 아주 좋아 죽었다.
“그 발언. 후회하게 만들어드리죠.”
역시.
좋아 죽는다, 죽어.
‘어디 천하제일검의 솜씨 좀 볼까.’
+ + +
“내가 3조의 대장을 맡게 됐다.”
이제는 거의 다 열린 대형게이트.
그 앞에서 설민호가 조원들을 향해 말을 했다. 그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1번 게이트의 공략은 모두 다 숙지를 하고 있는 것처럼, 우선 게이트에서 나온 악마들을 어느 정도 처리를 한 후에 내부로 진입을 하는 걸로 하겠다. 다들 진영을 갖추도록.”
나는 검을 손에 꼭 쥐고 있는 설민호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아주 매서웠다. 나는 미소로 화답을 하며 레이에게 말했다.
“레이. 원래 크기로 변신해.”
크르릉.
소형화 크기에서,
본연의 늑대 모습으로 커진 레이.
나는 레이 등에 올라타며,
물끄러미 게이트가 완성 되는 모습을 쳐다봤다.
내가 설계한 톱니바퀴가 모두 잘 맞물린다면,
한 달 안에 최소한의 사상자를 남기고 인간측이 승리를 하게 될 테고.
만약 톱니바퀴 중 한 곳이라도 삐걱거린다면.
“....”
계획이 전체적으로 틀어질 수가 있었다.
공격조, 수비조, 후방조.
합이 관건이었다.
“준비해라!!”
호랑이가 포효하듯,
설민석이 검을 하늘높이 치켜들고 외쳤다.
완성된 거대 게이트.
꼭 블랙홀을 보는 것만 같았다.
축구 경기장의 반 정도 되는 크기의 게이트.
이곳뿐만 아니라,
멀리 두 개의 게이트가 거의 동시에 완성 됐다.
그렇다는 얘기는 다른 곳에서도 나머지 게이트가 완성 됐다는 뜻이었다.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스산한 바람이,
지상을 훑어보듯 한 차례 불었다.
“으으..”
“기..기분 나빠.”
추운 듯 몸을 움츠리는 사람들.
끼헤헤.
꺄하핫.
게이트에서 소음처럼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는 볼륨을 한 단계씩 높이는 것처럼, 점점 커졌다.
귀를 틀어막는 사람이 생겼을 때 쯤.
“오..온다!”
“악마다!!”
소악마들이 게이트 밖으로 대거 튀어나왔다.
인간과 악마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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